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3
1323회. 감당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카우슬란도 인간 군주의 검에 아르파고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보았다.
‘멍청한 놈.’
드라고니안인 아르파고는 자신의 강체술을 너무 믿었다.
사실 신체가 드래곤처럼 변하면 어지간한 물리, 마법의 타격을 무시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지간하다’는 게 문제다.
드래곤의 신체보다 강한 물리, 마법 공격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
마족들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가 없다 보니 조금 안일한 대처를 했다.
상대는 인간이라 해도 군주.
신의 반열에 도달한 존재의 공격을 강체술로 막으려 하다니.
그 정도 분별력이면 죽어도 싸다.
‘한 번만. 한 번만 쳐다봐라.’
그는 인간 군주를 에워싼 ‘죽음의 눈’을 믿었다.
‘죽음의 눈’은 크라노스족들에게 죽은 자들의 원한으로 만들어졌다.
그 어떤 것도 망자들의 원한을 피할 수 없다.
이 세계의 카르마로 얽혀 있는 존재라면, 설사 상대가 신이라 해도 망자들의 원한에 발목이 잡힐 것이다.
운 좋게 즉사를 면한다 해도 망자들의 원한에서 즉시 풀려나지는 못한다.
놈이 망자들의 원한에서 벗어나려 할 때, 크라노스족 보물인 ‘소멸의 단검’으로 끝장을 내리라.
카우슬란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자신의 등 뒤에 ‘죽음의 눈’을 생성했다.
이제 ‘죽음의 눈’과 마주하지 않고 자신을 상대할 방법은 없다.
“죽어라!”
승리를 확신한 카우슬란이 벼락처럼 소리치며 단검을 뻗었다.
순간 아르파고를 베느라 신전 바닥에 박혔던 ‘공허의 검’이 사선으로 솟구쳐 올랐다.
카우슬란의 예측대로 엘리오는 ‘죽음의 눈’을 보았다.
마족의 등 뒤에 둥둥 떠 있는데 장님이 아닌 다음에야 보지 못할 리가 없다.
‘흉측하게도 생겼네.’
그런데 뭘 믿고 뱀 머리는 이토록 저돌적으로 돌진해 오는지 모르겠다.
그가 들고 있는 단검보다 자신의 대검이 훨씬 더 긴데 말이다.
서걱―!
쳐올리는 단순한 동작에 마족의 두 팔이 잘렸다.
연이어 내리찍는 공허의 검에 마족의 머리통이 반듯하게 잘렸다.
카우슬란이 죽음과 동시에 ‘죽음의 눈’들도 연기처럼 푸스스 흩어졌다.
뱀 머리 마족을 죽인 엘리오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아스타로이드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다시 한차례 ‘공허의 검’을 내리찍었다.
한편 갑자기 눈앞에서 인간 군주가 사라지자 오싹해진 앙네스 로덴이 소리쳤다.
“되겠다!”
‘공허의 검’이 앙네스 로덴의 머리에서 멈췄다.
그래도 정수리를 조금 파고들었는지 앙네스 로덴의 하얀 이마로 핏물이 주룩 흘렀다.
엘리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챔피언, 그대의 챔피언이 되겠다.”
그 말에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거둬들였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자기를 따르면 살려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가서 사티로스들의 뿔을 잘라 와.”
“사티로스들의 뿔 말인가?”
“어, 아까 사티로스족이 나 죽으라고 제사 지내는 거 봤잖아.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없겠나. 사티로스족은 안타르 신의 종이다. 사티로스의 뿔을 자르는 건, 안타르 신을 모욕하는 것과도 같다.”
“내가 아까 한 말 잊었어? 나는 안타르 신도 죽일 거야. 어차피 죽일 건데 모욕 좀 하는 게 뭐 대수라고.”
“…….”
앙네스 로덴이 복잡한 눈으로 인간 군주를 보았다.
흥분해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말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던 앙네스 로덴은 날개를 펄럭이며 신전 밖으로 날아갔다.
곧이어 사티로스족의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30분 후, 앙네스 로덴은 자루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이윽고 그녀는 자루를 인간 군주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켄티우스 분지에 있는 사티로스의 뿔이다. 어비스에 있는 모든 사티로스의 뿔을 원하나?”
엘리오가 하워드와 크레아를 돌아보았다.
멍하니 마족을 올려다보던 하워드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것만 해도 용병단을 백 개쯤 만들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됐어. 다른 사티로스족들은 죄가 없잖아. 아무리 군주라도 너무 막 나가면 안 되지.”
앙네스 로덴은 속으로 ‘이미 그대는 충분히 막 나갔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우샤스 운드라의 신상에 오줌을 누고, 안타르 신의 사자들을 죽였으며, 심지어 안타르 신마저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그것에 비하면 사티로스의 뿔을 자른 건 일도 아니다.
엘리오는 일단 사티로스의 뿔이 든 자루를 마하담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아스타로이드를 돌아보았다.
“안타르 신은 어디 가면 만날 수가 있지?”
그 말을 듣자마자 앙네스 로덴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하아! 정말 안타르 신을 죽일 생각인가?”
“나는 말한 건 꼭 지켜. 그쪽을 살려 둔 걸 보고도 모르겠어?”
“그쪽이 아니라 내 이름은 앙네스 로덴이다. 자신을 따르는 챔피언의 이름쯤은 알아 둬라.”
“저기요, 챔피언 씨. 당신도 내 이름을 모르잖아.”
“가르쳐다오.”
“엘리오 라고아. 그냥 엘리오라고 불러. 나도 그쪽을 앙네스라고 부를게.”
앙네스 로덴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오가 거듭 물었다.
“그래서 안타르 신은 어디 있는 거야?”
“안타르 신을 찾기 전에 안타르 신께서 그대를 찾아오실 것이다.”
살기 위해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지만 아직 충성심이 없는 앙네스 로덴은 군주에게 이전의 말투를 그대로 사용했다.
엘리오는 기간타스 전사인 쿰도 그랬기에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안타르 신이 나를 찾아온다고?”
“그렇다.”
“안타르 신을 만난 적 있어?”
“지금까지 꿈으로만 만나뵈었을 뿐이다.”
“나한테도 꿈속에 찾아오는 거 아냐? 가위 눌림 같은 거라도 하려나?”
“마족의 신들은 현실에 존재한다. 마치 군주들처럼. 꿈은 신들이 가진 연락 수단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럼, 이리로 오겠네?”
“사자로 보낸 초월자들이 실패했으니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잘됐네. 그런데 우샤스 운드라는 왜 코빼기도 안 보여? 내가 오줌까지 쌌는데. 아직 소식을 못 들어서 그런가?”
그러자 앙네스 로덴이 한심한 얼굴로 엘리오 군주를 보았다.
“신상에 신성이 담겨 있으니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우샤스 운드라 역시 자신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으니 찾아올 것이다.”
“그럼 여기서 죽치고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네?”
“정말 신들과 싸울 생각인가?”
“어.”
“아무리 군주라도 신을 상대로는 무리가 아닌가?”
군주는 수련을 통해 올라간 자리지만, 신은 그와는 격이 다르다.
군주를 준신급이라고 하지만 말 그대로 신에 준할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군주도 신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인간 군주는 뭘 믿고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이, 챔피언. 당신은 신과 싸워 본 적 있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신들과 싸웠어. 최근에는 카마 데비아스(천자마)와도 싸웠다고. 누가 이겼냐고? 내가 여기에 있는데 누가 이겼겠어?”
“그대가 카마 데비아스를 죽였다는 것인가?”
“어. 어둠의 에테르에 오염이 돼서 나쁜 짓을 좀 하고 다녔거든.”
“분수를 모르고 카오스의 힘을 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악한 신은 아니었으니까 욕하지는 마. 정신이 좀 오락가락했을 뿐이니까.”
“…….”
앙네스 로덴이 엘리오 군주를 힐끔 보았다.
마나에 카오스가 섞이면 충돌이 일어나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 힘에 중독이 되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끝내 샤이틴의 추종자가 된다.
정신이야 오락가락했는지 몰라도, 능력만큼은 이전보다 뛰어났을 터였다.
‘그런 카마 데비아스를 죽였다고?’
초월자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건 알지만 신까지 죽였을 줄이야!
‘혹시 안타르 신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카마 데비아스를 죽였다고 안타르 신까지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엘리오 군주가 안타르 신을 이겨 줬으면 하고 바랐다.
엘리오 군주가 죽으면 그다음은 자신의 차례일 게 분명해서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과 앙네스 로덴은 지붕이 날아간 신전을 떠나 밖으로 나갔다.
아직 사방의 벽이 남아 있어 아늑했지만 엘리오가 오줌을 싼 게 문제였다.
엘리오 일행은 신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천막을 세웠다.
신전은 엘리오 일행의 화장실이 됐다.
뒷일은 걱정되지만 사방 벽이 시야를 차단해서 볼일을 보기에는 딱이었다.
처음에는 꺼려 하던 엘리오 일행도 막상 급해지니 신전을 이용했다.
가깝기도 하거니와 마족들이 신전을 저주받은 장소라 부르며 피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엘리오 일행은 하루 종일 천막 앞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무료함을 견디다 못한 파비안이 슬그머니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라고아 경.”
“왜?”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오늘내일 출발해도 한 달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사람이 카오스에 오래 노출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한 달을 주기로 어비스를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파비안은 그걸 지적한 것이었다.
“한 달에서 며칠 넘기는 건 괜찮다잖아.”
“며칠 정도야 괜찮겠지요. 그런데 우샤스 운드라와 안타르 신이 안 올 수도 있잖습니까?”
“올 거야.”
“그걸 라고아 경이 어떻게 아십니까?”
“저길 봐.”
엘리오가 손을 뻗어 켄티우스 분지를 가리켰다.
파비안의 시선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물소를 닮은 켄티우스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켄티우스를 보라는 겁니까?”
“아니. 사티로스족, 사프족, 가루드족, 부라퀴족, 발리족들이 안 보여?”
“보입니다. 왜요?”
“신전 건축은 물 건너갔는데 남아 있잖아. 안타르 신이 돌려보내지 않은 거라고.”
“그게 어때서요?”
“쯧쯧! 머리는 장식이냐? 안타르 신이 왜 저들을 남겨 뒀겠어? 이곳에 신전을 짓겠다는 거 아냐? 그런데 이곳에는 우리가 있잖아. 그럼 우샤스 운드라와 안타르 신이 오겠어? 안 오겠어?”
“오! 오겠는데요?”
“그래, 우샤스 운드라와 안타르 신은 금방 온다. 돌아가는 건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파비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샤스 운드라를 만나기 위해 대륙을 종단한 걸 생각하면 버티는 게 맞았다.
“그런데, 우샤스 운드라야 그렇다 치고……. 안타르 신은 괜찮습니까?”
“무슨 소리야?”
“우샤스 운드라는 마족들도 경시하지만 안타르 신은 다르다면서요? 악신 샤이틴의 오른팔인데……. 감당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안타르 신이 무서운 거야? 그 뒤에 있는 샤이틴이 무서운 거야?”
“둘 다요. 악신 샤이틴은 창조신인 마나 프트라스의 유일한 대적자입니다. 그렇고 그런 신들 중에 하나가 아니라……. 이 세계 최강의 신이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마나 프트라스의 활동이 뜸한 건 악신 샤이틴과의 싸움에서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래서 파비안은 ‘안타르 신을 죽이겠다’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안타르 신도 두려운 상대지만, 그 뒤에 무려 악신 샤이틴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허튼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엘리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파비안도 꼭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본 건 아닌 듯 더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