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4
1324회. 마나 프트라스의 실체가 뭔데?
마족들은 켄티우스 분지를 떠나지 않고 종족별로 뭉쳐서 다녔다.
사냥을 하기 위해 나갔다가도 금방 돌아왔다.
부라퀴족과 발리족은 소규모 켄티우스 무리를 사냥했다.
마족들은 공사가 중지됐음에도 본래의 거주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엘리오의 말처럼 신적 존재의 지시에 대기를 하는 것 같았다.
정오 무렵.
꼭꼭 숨어 흐느끼던 사티로스들이 갑자기 신전 앞 공터에 몰려나와 ―어제 신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안타르 신의 이름을 불러 댔다.
패잔병들처럼 흩어졌던 하위 마족들이 하나 둘 신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마족들이 사티로스들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사티로스들을 둘러싼 마족들은 음울한 얼굴로 제사를 구경했다.
“오오! 안타르 신이시여!”
“저희 사티로스의 수치를 갚아 주소서!”
“원수의 손에서 종들을 구하소서!”
“종들에게 말씀하소서!”
“말씀하소서!”
언덕에서 마족들을 보던 크레아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슬쩍 물었다.
“라고아 경, 마족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안타르 신을 찾아요. 자기들을 구해 달라고.”
“아! 저런 걸 보면 사람이나 마족이나 하는 짓이 비슷한 거 같아요.”
동감이라는 듯 하워드와 파비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만히 듣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말했다.
“다른 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단 심문관을 만나게 될 걸세.”
“네에, 조심할게요.”
크레아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사람과 마족이 비슷하다니?
그런 소리를 한 게 마나 프트라스 교단 귀에 들어가면 잡혀가고도 남았다.
인간에게 마족은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의 원수며 절대악인 까닭이다.
엘리오 일행이 잡담을 할 동안 사티로스족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흥분한 사티로스들은 네발로 펄쩍펄쩍 뛰며 단창으로 자기 몸을 긋기 시작했다.
사티로스족의 상체가 피에 물들어 갔다.
“사티로스족이 또 저러네?”
파비안의 말에 크레아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족은 뭐가 달라도 다르……. 어?”
갑자기 돌변한 마족들의 행동에 크레아는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사티로스족 제사를 구경하던 마족들이 사티로스들을 덮친 것이다.
마족들은 각자의 무기로 사티로스족을 도륙했다.
놀라운 것은 사티로스족이다.
그들은 저항 없이 다른 마족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았다.
다수의 마족들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일어났다.
마족들은 그들이 죽인 사티로스족을 그 자리에서 뜯어 먹었다.
황망한 얼굴로 보던 하워드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돌아보았다.
“저건 뭡니까?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죠?”
크레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사티로스족은 안타르 신의 종이잖아요? 안타르 신의 종을 저래도 돼요?”
하지만 엘리오 본인도 마족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행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자신의 챔피언인 앙네스 로덴에게 물었다.
“앙네스, 마족들이 왜 사티로스들을 잡아먹는 거야? 사티로스족이 안타르 신의 종이라며?”
그러자 앙네스 로덴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사티로스족이 안타르 신에게 수치를 줬으니까. 자신의 몸을 바쳐 속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저게 속죄의 행위라는 거야?”
“그렇다.”
“다른 마족들이 안타르 신의 종(사티로스족)을 잡아먹는 건 괜찮고?”
“모두가 안타르 신의 뜻이다.”
“뜻이라고? 안타르 신이 시켰다는 소리야?”
“맞다. 지난밤 사티로스족과 다른 마족들이 안타르 신을 만난 것 같다. 본래는 나도 그랬어야 할 테지만, 그대의 챔피언이 되어서…….”
“이제 당신은 안타르 신을 만날 수 없게 된 거야?”
“아마도. 나는 안타르 신에게 버림을 받은 것 같다.”
“잘됐네. 자기 종을 다른 마족의 먹이로 내어 주는 신이라니. 쓰레기 같은 짓을 잘도 하네.”
“그대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대가 사티로스족의 뿔을 자르라고 해서 일어난 일이니까.”
“아무리 마족이라도 말은 똑바로 하자고. 사티로스가 먼저 나를 건드려서, 뿔을 자른 거잖아. 사티로스가 가만히 있었으면 나도 그러지 않았을 거야. 다른 군주들에 비하면 나는 진짜 착한 거지. 어디 군주 앞에서 군주를 욕하고 저주해.”
앙네스 로덴은 반박하지 않았다.
확실히 어제 사티로스족이 보인 행동은 죽어 마땅한 죄였다.
다른 군주들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모조리 죽이고도 남았다.
앙네스 로덴이 별말 없자 엘리오는 일행들에게 그녀가 한 말을 전했다.
‘속죄의 행위’라는 소리에 일행은 입을 쩍 벌렸다.
엘리오가 일행과 열심히 안타르 신을 욕할 때 마족들이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머리를 땅에 처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마족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 겁니까?”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묻자 엘리오는 다시 앙네스 로덴을 올려다보았다.
엘리오가 묻기도 전에 앙네스 로덴의 입이 열렸다.
“신이 오고 있다.”
“어느 신?”
“거기까지는 나도 모른다.”
그제야 엘리오는 그녀가 안타르 신에게 버림받았음을 떠올리고 더 묻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담담한 어조로 파비안에게 말했다.
“신이 오고 있단다. 어느 신인지는 모르고.”
“…….”
순간 파비안과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달리 그들은 그야말로 한낱 인간에 불과한 때문이다.
잠시 후 켄티우스 분지에 삼십여 명의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타로이드와 드라고니안, 크라노스족 들이었다.
선두에 선 아스타로이드들을 본 앙네스 로덴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음…….”
엘리오가 그녀를 힐끔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앓는 소리를 내?”
“안타르 신이 사자로 보냈던 초월자들의 종족을 앞세우고 왔다.”
“누가 안타르 신이야?”
“아스타로이드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분이 안타르 신이다.”
엘리오는 등에 날개가 달린 아스타로이드들을 살폈다.
그들 중앙에 특이한 광경이 보였다.
날개 달린 마족 하나가 드라고니안 네 명이 맨 가마를 타고 있었다.
덩치가 부라퀴족처럼 작지 않았다면 아스타로이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애매하게 생겼네.”
그래도 얼굴이 인간을 닮아서인지 생각보다 위화감은 덜했다.
아니 오히려 친근감마저 들었다.
독수리, 뱀, 염소, 소 따위를 닮은 마족들 사이에서 사람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서른 명의 상위 마족들은 하위 마족들을 지나 엘리오 일행 앞에 이르러 멈춰 섰다.
안타르 신이 가마 위에서 찬찬히 엘리오를 살폈다.
성별을 파악하기 어려운 얼굴에 깃든 감정은 적의가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네가 인간으로 군주가 된 그냐?”
뜻밖에도 부드러운 그의 물음에 엘리오는 정중하게 답했다.
“맞습니다. 엘리오 라고아라고 합니다. 안타르 신이십니까?”
“그래, 내가 안타르다. 너는 어찌하여 신전을 더럽히고, 사티로스의 뿔을 잘랐느냐?”
“우샤스 운드라에게 볼일이 있어서요. 사티로스의 뿔은 그들이 나를 저주해서 벌을 주느라 자른 겁니다.”
일단 엘리오는 고분고분하게 답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안타르 신과 직접 만나기는 처음인 까닭이다.
엘리오의 대답에 안타르 신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안타르 신의 눈빛이 변했다.
사티로스들에게 한 짓은 그를 탓하기 어렵지만 신전을 더럽힌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죄였기 때문이다.
“사티로스들의 뿔을 자른 것은 뭐라 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샤스 운드라를 만나기 위해 신전을 더럽힌 것은 너의 잘못이다. 신상 앞에서 우샤스 운드라를 불렀어도 그가 응답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답이 없더라고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건 아니고?”
“기다릴 시간이 없었거든요. 보다시피 우리는 인간들이라 카오스에 오래 노출되면 좀 그렇거든요. 시간은 촉박한데 응답이 없으니 어쩝니까? 강제로라도 불러내야죠.”
“…….”
안타르 신은 거침없는 인간 군주의 말에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나 샤이틴, 혹은 마족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그런 게 아님을 알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너는 왜 우샤스 운드라를 만나려고 하느냐?”
안타르 신의 계속된 질문에 놀란 쪽은 앙네스 로덴이다.
그녀는 안타르 신이 곧바로 인간 군주를 죽이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말투와 표정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게 끝날 수도 있으려나?’
제발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바람은 인간 군주의 대답에 덧없이 무너졌다.
“죽이려고요.”
안타르 신은 어느 정도 예상한 듯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우샤스 운드라 신상에 오줌을 쌀 정도면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샤스 운드라와 원한이 있느냐?”
“원한은…… 있었지만 내가 복수를 했으니까 사라졌다고 봐야죠?”
“그런데 왜 그를 죽이려 하느냐?”
“그를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요. 그를 죽여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 어떻게든 죽이는 수밖에 없어요.”
안타르 신이 눈을 찡그렸다.
부탁은 뭐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우샤스 운드라를 죽여 달라고 부탁한 자가 누구냐?”
“그건 좀 밝히기가 그런데요.”
“마족 군주들 중에 하나냐?”
그는 우샤스 운드라를 질투한 마족 군주의 소행이라 생각했다.
“아뇨.”
“아니라고? 마족 군주가 아니라면 누구냐? 누가 너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부탁을 했단 말이냐? 그리고 마족 군주인 네가 가지 못할 곳이 어디 있다고?”
“…….”
엘리오는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를 응시하던 안타르 신의 입에서 돌연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이제 보니 너는 별의 바다를 건너왔구나.”
“정답.”
안타르 신은 충격을 받았는지 한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곧이어 부드럽던 안타르 신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 갔다.
“마나 프트라스가 시킨 일이냐?”
“시킨 게 아니라 부탁해서 들어준 건데요?”
“나는 너를 드높은 마족의 군주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침략자의 용병이었구나. 하기야 그러니 신전에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겠지.”
안타르 신이 적의를 드러내자 엘리오도 지지않고 맞받아쳤다.
“우샤스 운드라 같은 박쥐를 극진히 대접하는 당신들도 뻔뻔한 건 마찬가지 아냐?”
“우샤스 운드라는 마나 프트라스의 실체를 알고 샤이틴님에게 헌신하기로 맹세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와 아무런 상관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왜 우리를 비난하느냐?”
“…….”
안타르 신의 반격에 엘리오는 멈칫했다.
본래 거짓과 담 쌓고 사는 그인지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문득 엘리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이한 어비스의 하늘과 산천, 그리고 다양한 마족과 마물, 마수 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은 이 세계에 대해 너무 모른다.
솔직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카마 데비아스(천자마)와 우샤스 운드라(금사)를 죽이고 돌아갈 생각만 했다.
이 세계의 카마 데비아스와 우샤스 운드라는 과거의 그들과 다르다.
그걸 알기에 더 알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골치 아프다고 무조건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 앞에 떳떳하게 서려면 그래야 한다.
“마나 프트라스의 실체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