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6
1326회. 신의 권능 앞에 절망하여라!
안타르 신은 자신의 공격이 인간 군주에게 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덤덤하던 인간 군주의 얼굴에 깃든 초조함이 그 증거다.
아직은 미미할지라도 본래 둑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인간의 몸을 가진 군주를 무너뜨리기로 했다.
군주는 신에 근접한 능력자이나, 진정한 신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육체를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스트랄 바디(Astral Body)를 얻는데 그것이 영체다.
‘인간 군주여, 하찮은 육체의 한계를 깨닫게 해 주마.’
물론 그 깨달음의 끝은 그의 죽음이다.
안타르 신은 더욱 세차게 인간 군주를 몰아쳐 갔다.
쾅! 쾅! 쾅! 쾅! 쾅! 콰앙―!
마법? 검술? 권능?
지금 이 순간 그런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
영체도 파괴할 수 있는 ‘초월자의 창’ 앞에서 다른 건 무의미하다.
인간 군주의 육체가 영기로 재구성되었다 해도, 초월자의 창에 찔리면 파괴되고 말 터였다.
콰앙! 가가가각―!
한순간 ‘초월자의 창’과 ‘공허의 검’이 서로 엇갈렸다.
안타르 신이 교차한 창과 대검 너머로 보이는 인간 군주에게 말했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이구나.”
물론 아직 엘리오의 얼굴에 땀 한 방울 맺히지 않았으니 단순한 도발에 불과하다.
그러자 손해 보기 싫어하는 엘리오가 되받아쳤다.
“응, 네가 그래.”
“너의 육체가 다른 군주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느냐?”
“마족보다 단단한 상위 마물도 많더라.”
육체가 좋아 봐야 의미 없다는 소리다.
안타르 신은 슬쩍 말을 돌렸다.
“너의 육체는 티탄족보다 못하다. 그리고 나는 이 창으로 티탄족을 무수히 죽였지.”
“내 손에 죽은 신도 많아.”
“그랬겠지. 지금까지 버티는 너를 보니 알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오늘 너는 죽고, 너와 함께 온 인간들은 마족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마음대로 하세요. 하나만 묻자.”
안타르 신이 말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
“그 영체라는 거 말야. 어떤 형태로도 변할 수 있는 거냐?”
“폴리모프(polymorph)를 말하는 거라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검으로 변할 수도 있나?”
그러자 안타르 신이 흠칫 놀란 눈으로 인간 군주를 보았다.
“왜 그런 걸 묻느냐?”
“영체라니까. 혹시나 해서.”
“한낱 사물로 변하고 싶어 하는 신격이라면, 신의 자격이 없다!”
안타르 신은 뜬금없이 소리를 버럭 내지르고 창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 기세에 엘리오는 두세 걸음 뒷걸음질 쳤다.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안타르 신은 벼락처럼 창을 뻗었다.
번쩍!
뇌전이 앞서고 그 뒤를 초월자의 창이 뒤따랐다.
엘리오는 ‘공허의 검’으로 뇌전을 받아 낸 뒤, 잇따르는 창날을 손끝으로 슬쩍 쳐 냈다.
그런데 창날에 손이 닿은 순간, 엘리오는 ‘윽!’ 하고 신음을 삼켜야 했다.
파직―!
창과 맞닿았던 손끝에서 예의 그 하얀 불꽃이 튄 것이다.
하얀 불꽃이 엘리오의 손가락에 달라붙어 기세 좋게 타들어 갔다.
‘헉!’
엘리오는 정신없이 손을 흔들었지만 불꽃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엘리오의 몸을 양분 삼아 크기를 키워 나갔다.
불꽃이 손바닥을 지나 손목까지 올라왔다.
당황한 엘리오를 안타르 신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아껴 왔던 힘을 모두 쏟아 내 인간 군주를 압박했다.
콰! 콰! 콰! 콰! 콰! 쾅―!
엘리오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손은 꺼지지 않는 불꽃에 타들어 가지, 무지막지한 창은 정신없이 날아들지, 당장 고꾸라지지 않고 버티는 게 용한 상황이다.
한편 신과 인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의 속도 타들어 갔다.
특히나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신의 싸움을 처음 보는 하워드와 크레아의 경우 초조한 마음에 입술까지 물어뜯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생사에 자신들의 운명이 걸렸으니 당연하다.
두 사람의 눈에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던 크레아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어떻게 하죠? 불이 계속 번지고 있어요. 저러다가 머리에 옮겨붙겠어요. 무슨 불이 저렇죠?”
손가락에서 시작된 불길은 어느새 엘리오의 한쪽 팔까지 번져 있었다.
파비안, 하워드, 크레아의 시선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했다.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불꽃의 정체를 모르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비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기서 죽는 건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타메이온을 다녀온 뒤로 믿는 마음이 생겼다.
천공성에서 태양신을 쓰러뜨리는 것을 본 뒤로 믿음은 더욱 커졌다.
어비스까지 꾸역꾸역 따라온 것도 그래서다.
마족이든 신이든 라고아 백작의 상대가 못 됐으니까.
라고아 백작의 옆에만 있으면 어비스가 아니라 어디를 가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훗날 영웅담의 주인공이 될 생각으로 라고아 백작을 따라다녔다.
켄티우스 분지에 와서도 죽을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라고아 백작은 신보다 강하니까.
마족 초월자들이 믿는 안타르 신도 이길 수 있으리라.
그랬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라고아 백작은 그가 태양신을 몰아붙일 때처럼, 안타르 신에게 당하고 있었다.
한쪽 팔을 태운 불길이 마침내 어깨에 이르자 파비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중대장님! 불부터 어떻게 좀 해 봐요!”
콰앙―!
강력한 일격에 엘리오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그는 지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안타르 신은 최선의 몸 상태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하물며 지금은 한쪽 팔이 타들어 가고, 그 불길이 얼굴까지 어른거리는 상황.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지만 불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호신강기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호신강기가 아니었다면 팔은 새까맣게 타서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나마 ―저주스러운 하얀 불꽃에 활활 타는 와중에도― 아직 팔이 움직이는 건 호신강기가 열기를 어느 정도 막아 준 덕분이었다.
‘씨발…….’
처음으로 엘리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맹세코 칼을 잡은 이래 지금과 같이 막막하기는 처음이다.
적을 제압하기는커녕, 휘몰아쳐 오는 창날 앞에서 살아남기 바쁘다.
엘리오는 저 끔찍한 창날에 몸을 스치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누적된 충격에 저릿저릿하던 두 팔이 어느 순간 무겁게 느껴졌다.
쉬이익―!
백색으로 빛나는 창날이 엘리오의 턱 밑으로 지나갔다.
순간 그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반응이 느려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얼굴이 베였을 터였다.
창날에 닿기만 해도 하얀 불꽃이 옮겨붙는 걸 생각하면 아찔했다.
그때 문득 눈이 따가웠다.
깜짝 놀라 멀쩡한 손등으로 눈을 훔치니 땀이 흠뻑 묻어났다.
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안타르 신의 얼굴로 향했다.
‘썅!’
안타르 신의 얼굴은 처음 만난 그대로였다.
마치 남의 싸움을 구경이라도 하듯 그는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억지로 꾸민 구석은 있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안타르 신은 자신보다 여유가 있었다.
졌다.
진 싸움이다.
과연 상계(上界)의 신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안타르 신과 엘리오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놀리듯 안타르 신의 창이 구석구석 찔러 갔다.
이제 엘리오는 누가 봐도 막기에 급급했다.
쾅! 쾅! 쾅! 쾅! 콰앙―!
마지막 창격을 막아 낸 엘리오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러자 안타르 신이 ‘초월자의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이제야 인간족다운 얼굴을 하고 있구나.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신을 조롱하던 인간 군주여, 신의 권능 앞에 절망하여라!”
돌연 안타르 신의 모습이 열 개로 분열했다.
열 명의 안타르 신이 엘리오를 둥그렇게 에워쌌다.
내뿜는 강렬한 기세를 보니 모두가 허상이 아닌 실체다.
곧이어 안타르 신들이 ‘초월자의 창’을 앞세우고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순간 엘리오가 악에 받친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 졌다! 이 개새끼야! 네 말대로 나는 육체에 얽매인 존재다! 그런데 나를 일격에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내가 아니야!”
말과 함께 엘리오는 기경팔맥에 깃들어 있던 구천검령을 불러냈다.
고오오오―!
숨 막히는 압력이 켄티우스 분지를 찍어 눌렀다.
그 기운이 얼마나 광포하고 무지막지했던지 안타르 신조차 움찔할 정도였다.
거대한 검 세 자루가 어비스의 하늘에 나타났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던 안타르 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헉! 아스트랄 소드(Astral Sword)? 저게 왜 여기에? 너, 너는 누구냐!”
안타르 신이 흡사 귀신을 보는 얼굴로 엘리오를 보았다.
“나? 알잖아. 육신에 얽매인 존재. 마족 군주. 엘리오 라고아다.”
구천검령 세 자루가 벼락치듯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에 맞서 안타르 신들이 일제히 창끝을 하늘로 돌렸다.
초월자의 창에서 하늘로 눈부시게 하얀 뇌전이 뻗어 나갔다.
번쩌억―!
그러나 번개는 구천검령에 닿자 맥없이 사라졌다.
세 자루 구천검령이 안타르 신들의 머리에 박혔다.
파직! 파직! 파지직―!
구천검령에 직격당한 안타르 신 셋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깜짝 놀란 안타르 신은 분열한 몸을 다시 하나로 합쳤다.
분열한 영체의 힘으로는 아스트랄 소드를 당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체를 합친 안타르 신은 일단 몸집부터 키웠다.
드드드득―.
곧이어 안타르 신과 구천검령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니,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 저항에 가까웠다.
안타르 신이 세 방향에서 몰아쳐 오는 구천검령을 막기에 급급했으니 말이다.
구천검령이 화살처럼 날아오면 안타르 신은 부랴부랴 쳐 내기 바빴다.
쾅! 쾅! 콰앙―!
쾅! 쾅! 콰앙―!
안타르 신과 구천검령의 싸움이 시작되자 엘리오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하얀 불길은 어느새 어깨를 지나 목 언저리까지 번져 있었다.
호신강기가 아니었으면 고통에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기괴한 불길을 다스리지 못하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엘리오는 구천기를 팔에 보내 보았지만 불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불길은 마침내 엘리오의 머리에 옮겨붙었다.
머리가 불타자 엘리오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극심한 공포와 고통 속에 그는 머리를 움켜잡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뜨거워! 누가 좀 꺼 줘! 꺼 달라고! 으아아아―!”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은 그런 엘리오를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도와주고 싶지만 저 불꽃에 닿고도 살아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굴러다니는 엘리오 위로 거대한 붉은 검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신맥에 깃들어 있던 구천검령이었다.
이윽고 붉은 검이 벼락처럼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엘리오에게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