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7
1327회. 혼란의 선봉장
공요롭게 그 일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구천검령이 안타르 신의 어깨와 엘리오의 머리에 박혔다.
“크윽!”
“…….”
그러나 신과 인간의 반응은 달랐다.
안타르 신이 묵직한 신음과 함께 진저리를 친 반면,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던 엘리오는 도리어 잠잠해졌다.
안타르 신의 한쪽 어깨가 뭉텅 잘려 팔과 함께 날아갔다.
깜짝 놀란 안타르 신은 사라진 어깨를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를 일으켜도 잘려 나간 어깨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상처 부위에 신의 의지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영체(spiritual body)는 의지만 있으면 무한히 복구가 가능하지만, 복구가 되지 않으면 필멸자들과 다를 게 없다.
안타르 신은 증오의 눈으로 자신에게 쇄도해 오는 아스트랄 소드(Astral Sword)들을 노려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스트랄 소드였다.
필멸자인 인간 군주의 몸에 불멸의 아스트랄 소드가 담겨 있다니?
그건 호수가 바다를 품은 격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아스트랄 소드.
전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친 신이 도달한 돌이킬 수 없는 종착지.
영원토록 존재하는 신이, 영원히 전쟁만 해야 한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아스트랄 바디, 즉 영체도 그보다 더 큰 권능 앞에서는 파괴될 수 있다.
신들의 전쟁에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더 강하고 압도적인 신이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신을 파괴했다.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면 신도 소멸한다.
샤이틴과 마나 프트라스의 전쟁에서 약한 신들이 소멸했다.
‘생존’의 욕망과 ‘적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원한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스트랄 소드다.
신들은 신격을 버리고 사물화를 선택했고, 마침내 ‘전능의 검’으로 다시 태어났다.
처음에는 분명 약한 신들의 마지막 발악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스트랄 소드에 강한 신들이 소멸당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강한 신들마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자신을 아스트랄 소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신들의 전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스트랄 소드와 아스트랄 소드가 맞붙었고, 다시 상대적으로 약한 아스트랄 소드가 파괴됐다.
아스트랄 소드로 인해 신들은 빠르게 소멸했다.
아스트랄 소드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처음에는 신들을, 그러다 종국에는 아스트랄 소드마저도 집어삼켰다.
‘아스트랄 소드가 출현하면 그가 속한 차원의 신들이 소멸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아스트랄 소드를 ‘차원의 지배자’라고까지 불렀다.
결국에 가서는 한 차원에 하나만 살아남았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아스트랄 소드가 세 개? 아니 인간 군주를 공격하는 것까지 합치면 네 개나 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사지가 멀쩡할 때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스트랄 소드다.
그런데 한쪽 어깨가 날아간 상태에서는 오죽할까.
콰직! 콰직! 콰지직―!
끝내 세 자루의 아스트랄 소드가 안타르 신의 몸에 박혔다.
안타르 신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소명을 다한 구천검령들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박혔던 검들이 사라지자 안타르 신의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안타르 신은 멍한 얼굴로 인간 군주를 보았다.
아스트랄 소드의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붉은 검에 관통당할 때마다 불길이 작아졌다.
상반신을 휘감고 있던 불길은 이제 머리카락에만 남아 있었다.
아스트랄 소드가 인간 군주의 몸에 붙은 ‘둠파이어(Doomfire)’를 소멸시킨 탓이다.
엘리오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하얀 불꽃이 사라진 뒤에도 붉은 검은 계속해서 엘리오의 몸을 관통했다.
그럴 때마다 엘리오는 벌모세수(伐毛洗髓)의 쾌감을 느꼈다.
오래전 ‘왕들의 하늘’에서 영기지체를 이룬 뒤로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엘리오가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바쁘게 그의 몸을 찌르던 붉은 검은 홀연히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오는 가장 먼저 얼굴을 매만졌다.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었다.
내친김에 머리통까지 더듬어 보았다.
머리카락이 만져지는 걸 보니 거의 탈태환골 수준으로 뭔가 이루어진 것 같다.
‘다행이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던 엘리오는 안타르 신에게 다가갔다.
무릎 꿇은 상태지만 거대화한 안타르 신의 얼굴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했다.
천천히 죽어 가는 신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목적과 무관한 신이라 더 그랬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이네?”
엘리오는 상대에게 들었던 말을 돌려주었다.
초점이라도 맞추려는 것일까? 안타르 신이 몇 차례 눈을 깜빡였다.
이윽고 안타르 신의 입이 열렸다.
“그대가 이겼다.”
“나는 살 기회를 줬다고. 그걸 걷어찬 건 그쪽이야.”
“인정한다.”
“우샤스 운드라를 그렇게까지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뭐야?”
“그것이 샤이틴님의 뜻이니까.”
“샤이틴은 왜 그러는데?”
“그야 당연히 마나 프트라스의 세계를 끝장내기 위해서가 아니겠나.”
“우샤스 운드라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마나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죽으면 마나 프트라스의 힘도 약해진다. 더불어 전쟁의 혼란은 세계를 카오스로 이끌어 준다.”
“마나 프트라스가 바람잡이라는 소리야?”
“그는 혼란의 선봉장이다.”
“그래서 마나 프트라스를 배신한 신을 마족의 신으로 만들어 준 거냐?”
“…….”
안타르 신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엘리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엘리오가 아스트랄 소드에 대해 물으려 할 때다.
안타르 신의 몸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푸스스스―.
엘리오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순간 멀찍이서 구경하던 하위 마족들이 사방으로 튀어 달아났다.
엘리오는 마족들을 잡으려 한다거나 쫓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켄티우스 분지는 공동묘지처럼 고요해졌다.
켄티우스들만이 한가하게 몰려다니며 풀을 뜯었다.
파비안 등이 우르르 그를 향해 몰려갔다.
사람들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그들은 곧 우샤스 운드라가 안타르 신처럼 나타날 거라 믿었다.
엘리오 역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기에 부지런히 주위를 살폈다.
침묵 속에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시 한 시간이 지나자 하워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 올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자 파비안이 눈을 부라렸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말이 씨가 된다는 거 몰라? 그러다 진짜 안 오는 수가 있다고. 안 오면 네가 책임질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엘리오가 한마디 했다.
“파비안, 너나 조심해 인마. 하워드가 한마디 하면 너는 두 마디를 한다고. 오늘 안 오면 다 네 입방정 때문인 줄 알아.”
“시작은 하워드가 했는데요?”
“하워드가 붙인 불에 기름을 끼얹은 건 너야.”
“…….”
그 말에는 파비안도 변명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엘리오는 챔피언인 앙네스 로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승처럼 서서 군주의 눈치만 보던 앙네스 로덴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네?”
“뭐가 네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 말씀해 주세요.”
앙네스 로덴은 감히 엘리오 라고아 군주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눈을 사르르 내리까는 건 물론, 우아한 날개마저 미미하게 떨렸다.
최고위급 신들의 싸움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올 거면 벌써 왔을 텐데, 안 올 것 같지?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고 와 봐.”
“예!”
그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개를 펄럭여 석양 속으로 사라졌다.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째 오지 않을 분위기죠?”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신상에 오줌까지 눴는데요?”
“어쩌면 그를 대신해 안타르 신이 온것 일지도 모릅니다.”
“아!”
순간 엘리오는 안타르 신의 말을 떠올렸다.
죽기 전에 안타르 신은 우샤스 운드라를 ‘혼란의 선봉장’이라고 했다.
선봉장이라면 당연히 전장을 떠나지 못할 터였다.
“왜요?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안타르 신이 죽기 전에 우샤스 운드라가 혼란의 선봉장이라고 했거든요.”
“혼란의 선봉장요?”
“예.”
엘리오는 안타르 신의 말을 들려주었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 죽으면 마나 프트라스의 힘도 약해지고, 전쟁의 혼란은 세계를 카오스로 이끌어 준답니다. 우샤스 운드라는 혼란의 선봉장이고요. 그의 말대로 우샤스 운드라가 선봉장이라면……. 그가 있는 자리를 떠나지 못할 테죠?”
“예. 말씀대로 우샤스 운드라가 이곳에 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만히 듣던 파비안이 알은체를 했다.
“결국 안타르 신이 그를 대신해 왔다가 죽은 거네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때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에서 앙네스 로덴이 내려왔다.
“군주님, 사방 십 킬로미터를 둘러보았지만 우샤스 운드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고했어.”
엘리오의 칭찬을 들은 앙네스 로덴이 만족한 얼굴로 물러났다.
그녀가 떠나자 파비안이 물었다.
“뭐랍니까?”
“근처에 우샤스 운드라가 없단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더 기달리 것 없이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시죠?”
“더 안 기다려 보고?”
“그래도 신인데, 올 생각이 있었으면 벌써 왔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마르 경?”
파비안의 물음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봉장이라는 말도 그렇고 어비스를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엘리오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자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후 물었다.
“어비스에 없다면 어디로 갔을까요?”
“정체를 숨기고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을 겁니다.”
“전선에 있을 가능성은요?”
전쟁에 관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황제나 왕을 부추겨도 되고, 전선에서 직접 수작을 부려도 된다.
전자라면 후방에 있을 테고, 후자라면 최전선에 있을 터였다.
“반반입니다. 사람들은 물론 마족들까지 우샤스 운드라가 어비스에 있는 줄 알고 있으니……. 다른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요.”
엘리오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천자마(카마 데비아스)도 흑마법사 흉내를 하며 북부에서 활동을 했는데, 금사(우샤스 운드라)도 그런 모양이다.
하는 짓들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우선은 전선을 둘러보고, 딱히 단서를 찾지 못하면 그때 제도로 가시지요.”
“그래야겠네요. 파비안, 오마르 경 말씀 들었지? 전선부터 확인하고, 제도로 올라간다. 차질 없게 준비해라.”
“예, 그런데 뭘 준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것저것 다.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냐?”
“차질 없게 하라시니까, 왠지 책임감이 느껴져서 여쭤본 겁니다.”
“알아서 대충 잘하라고.”
“그거 진짜 이상한 말씀인 거 아십니까? 알아서 해라, 대충 해라, 잘해라. 지금 그 세 가지 지시를 동시에 내리신 겁니다.”
“그래서? 못 하겠어?”
“해야죠. 맡겨만 주십쇼. 제가 알아서, 대충, 잘하겠습니다.”
파비안은 얼렁뚱땅 답한 뒤에 하워드와 크레아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