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1
1331회. 이건 즉결 처분해도 되는 전쟁 범죄입니다
제국군이 처음부터 말썽을 일으킨 건 아니었다.
전쟁 초기, 그러니까 양측이 토플라 공국과 쉐이드 왕국 국경에서 전투를 벌일 때만 해도 군기가 엄정했다.
그러나 강철 골렘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어반까지 후퇴하는 동안 제국군은 조금씩 병이 들었다.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 찬 제국군은 바탈리온 부대를 앞세워 대반격에 나섰다.
그 결과 며칠 만에 빼앗긴 토플라 공국의 영토를 되찾고, 한 달이 되지 않아 쉐이드 왕국까지 점령했다.
반격의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후방에서 출발한 보급대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급로가 길어지자, 이번에는 쉐이드 왕국의 저항 세력들이 길어진 보급로를 급습했다.
보급에 문제가 생긴 제국군은 ―행군 속도를 늦추기보다― 보급품 현지 조달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한다.
만약 제국의 영토 안에서 그 일이 추진됐다면, 어느 지휘관이라도 예의를 갖추고 징발 확인증을 끊어 줬을 것이다.
그러나 최전방의 제국군이 있는 지역은 적진인 쉐이드 왕국과 아드리아 왕국.
지휘관의 성향에 따라 예의를 갖추기도 했지만 대부분 약탈하듯 빼앗았다.
징발 확인증을 꼬박꼬박 끊어 준 곳은 ―어쩌다 길에서 마주친― 역마차의 화물을 가져갈 때뿐이었다.
복수심과 분노와 약탈이 어우러지자 군기는 대번에 무너졌다.
특히 적진에 던져진 선두 부대의 경우 자신들의 약탈 행위를 덮기 위해 증인들을 몰살시키는 잔혹한 일도 자행했다.
아드리아 왕국.
강철 도시 페로무로스 외곽의 마을.
제국군 중대 하나가 막 약탈을 끝내고 마을 중심에 모였다.
공터에는 오십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사 하나가 보급관인 리코 게리얼 준남작에게 다가갔다.
“보급관님. 징발을 끝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리코 게리얼 준남작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국군의 움직임이 왕국군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 싹 다 정리해.”
기수인 테리얼 소위는 흠칫했지만 꾸벅 군례를 올리고 돌아섰다.
나쁜 일도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스콜피언 중대가 마을을 없앤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제국군의 마력총이 불을 뿜었다.
퍼퍼퍼펑―!
오십여 명의 마을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쓰러졌다.
이윽고 제국군은 시체를 한곳에 쌓은 뒤 기름을 부었다.
잠시 후 매캐한 검은 연기가 꼬물꼬물 하늘로 올라갔다.
멀찍이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던 중대장 행크 스타우런 남작이 손짓으로 보급관을 불렀다.
“예, 중대장님.”
“페로무로스가 지척인데 연기를 피워 올리면 어떻게 하나? 우리가 이곳에 있다고 광고라도 할 셈인가!”
“그래도 시체를 태우지 않으면…….”
남부는 더운 곳이라 시체를 소각하지 않으면 지역 전체가 오염이 되고 만다.
리코 게리얼 준남작은 그걸 지적하려 했다.
“뭐? 전염병이라도 퍼질까 봐? 그런 건 치료사들이 걱정하라고 해! 우리가 할 일은 징발과 정찰이야. 치료사가 할 일을 왜 당신이 해서 일을 키우냐고.”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왕국군도 연기를 봤을 테니 빠르게 이탈한다. 징발은?”
사실 행크 스타우런 남작이 궁금한 것은 징발 품목이었다.
“밀 다섯 자루와 옥수수 세 자루, 그리고 아드리아 왕국 은화 다섯 개입니다.”
“이런 젠장. 제도의 빈민가를 털어도 그것보다는 많이 나왔을 텐데. 다음부터는 마력총 대신에 칼로 마무리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잠시 후 마을을 빠져나간 스콜피언 중대는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정오 무렵.
멀리서 제국군을 발견한 역마차들이 조금씩 속도를 줄였다.
운송 책임자 웨일즈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제국군 주둔지를 피한다고 피했는데 운이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지. 지휘관이 제대로 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그는 애써 불안을 떨치고 선두로 나섰다.
일곱 명의 가드들이 빠르게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이윽고 역마차들의 속도가 사람 걷는 속도로 떨어졌다.
웨일즈는 기수를 향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다가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역마차 운송 협회의 운송 책임자 웨일즈입니다.”
“나는 스콜피언 중대의 수석 기사 테리얼이오. 제국 전시 특별법에 의거 군수품을 징발하겠소. 짐마차가 몇 대요?”
“…….”
깜짝 놀란 웨일즈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휘관이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는데 똥을 밟았다.
제국군이라고 역마차의 짐을 모두 징발하는 것은 아니다.
제국군 지휘관은 모두 작위를 받은 귀족.
명예를 아는 지휘관은 민간인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징발하겠다는 걸 보니 닳고 닳은 놈들이었다.
“……두 대입니다.”
“선두요? 후미요?”
“후미에 있는 마차 두 대입니다.”
“알겠소. 마차에 승객이 타고 있는지만 확인하고 통과시켜 주겠소.”
“…….”
웨일즈는 머릿속으로 부지런히 계산을 굴렸다.
한 대의 짐마차에는 커피, 차, 향신료 따위가 실렸다.
가격으로 치면 이백 골드 정도.
징발 확인서에도 그렇게 적힐 것이다.
마음에 걸리는 건 다른 한 대다.
‘나무 상자에 책과 연금술 재료 따위가 들었다고 했는데…….’
자신이 직접 확인한 건 가장 위에 놓인 상자 몇 개다.
‘별일 없겠지.’
제국군의 징발이니 의뢰인도 역마차 협회에 책임을 묻지는 못할 터였다.
그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국군과 남부 왕국군의 전투로 도로를 오가는 일반인은 없었다.
‘그래, 다 가져가라.’
괜히 반항하다가 맞으면 자신만 손해니 그냥 내주는 게 나았다.
제국군은 마차 내부를 들여다보고는 한 대씩 앞으로 보냈다.
간략한 검문이 끝난 마차는 조금 전진하다가 멈춰 섰다.
가드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탄 세 대의 역마차가 스콜피언 중대를 통과했다.
그리고 짐마차 차례가 됐다.
첫 번째 짐마차가 제국군 손에 넘어갔다.
기사들은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꼼꼼하게 화물을 확인했다.
곧이어 두 번째 짐마차 차례가 됐다.
나무 상자를 강제로 개봉하던 기사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곧이어 기사 하나가 마차 아래에 서 있는 리코 게리얼 준남작을 불렀다.
“보급관님!”
“뭐냐?”
“와 보셔야겠습니다.”
“뭐가 실렸길래 나더러 보라는 거야?”
귀찮다는 듯 구시렁거리면서도 리코 게리얼 준남작은 마차로 올라갔다.
“뭔데 그러나?”
기사는 말 대신 물건 위에 덮여 있는 헝겊을 슬쩍 걷어 냈다.
쉐이드 왕국의 금화가 반짝였다.
순간 리코 게리얼 준남작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재빨리 다른 상자들을 뜯어냈다.
은화가 한 상자, 나머지는 값비싼 장신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남부 왕국의 대귀족이 역마차를 이용해 재산을 빼돌리려고 했던 모양이다.
잠시 생각하던 리코 게리얼 준남작이 기사에게 명했다.
“뚜껑을 모두 덮어라.”
“예.”
기사가 열려 있던 나무 상자의 뚜껑을 다시 덮기 시작하자 리코 게리얼 준남작은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역마차 운송 책임자 웨일즈는 제국군 보급관에게 다가갔다.
물론 징발 확인서를 받기 위해서다.
“보급관님.”
그러자 보급관 리코 게리얼 준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징발 확인서 때문이라면, 잠시 기다려 주시오. 중대장님에게 보고부터 해야 해서 말이오. 역마차 협회가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게요.”
“감사합니다.”
웨일즈는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속은 쓰렸지만 칼자루를 쥔 쪽은 저쪽이니 어쩔 수 없었다.
중대장을 찾아간 보급관 리코 게리얼 준남작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
“중대장님. 드디어 우리에게도 대박이 찾아왔습니다.”
“뭔데 그러나?”
“금화 한 상자, 은화 한 상자, 그리고 보석이 박힌 장신구가 세 상자나 됩니다. 제국 화폐로 환산하면 최소한 십오만 골드,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
한순간 중대장 행크 스타우런 남작의 숨이 멎었다.
마을 하나에서 고작 은화 다섯 개를 얻었는데 금화와 은화가 각각 한 상자란다.
겨우 정신을 차린 행크 스타우런 남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귀족이 재산을 빼돌리려고 했었나 보군.”
“그렇습니다. 주인은 앞서 보낸 세 마차 중 하나에 타고 있을 겁니다.”
“어쩐다.”
행크 스타우런 남작이 슬쩍 운을 띄웠다.
징발 확인서를 발행한다는 것은 즉, 모든 재물이 제국에 귀속된다는 뜻이다.
징발 확인증을 제국에 제출하면 제국에서 그걸 보상해 주는 것도 그래서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면 십오만 골드 가치의 재물은 제국군에 들어간다.
얼마간 떡고물이야 만질 수 있겠지만 그게 떡은 아니다.
떡은 제국군 상부에서 잘게 나눠 먹을 터였다.
중대장 월급이 오십 실버니 십오만 골드는 얼마나 큰 돈이란 말인가.
징발 확인서를 발행하지 않으면 십오만 골드는 개인의 것이 된다.
그러려면 했던 것처럼 역마차를 흔적도 없이 지워야 한다.
하지만 ‘남부 왕국의 주민을 몰살하는 것’과 ‘역마차를 없애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남부 왕국의 마을 일에야 누가 신경 쓰겠냐만, 역마차를 상대로 하는 강도 짓은 제국에서도 중죄였다.
그러자 보급관 리코 게리얼 준남작이 말했다.
“중대장님, 이건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입니다. 이번에 한탕 하면, 더 이상 마을을 불태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꼬리가 길면 밟힐 수도 있습니다.”
제국군의 군기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감찰부 칼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리코 게리얼 준남작은 그걸 지적한 것이었다.
“그래서?”
“역마차를 지워 버리고, 적의 재물을 우리가 취해야지요. 애초에 잘못은 역마차 협회가 한 겁니다. 남부 왕국 대귀족의 재물을 뒤로 빼돌리는 데 협조한 거 아닙니까? 이건 즉결 처분해도 되는 전쟁 범죄입니다.”
리코 게리얼 준남작은 마치 역마차 협회가 큰 죄를 저지른 것처럼 포장했다.
행크 스타우런 남작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죽여도 하자가 없는 전쟁 범죄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죽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배분은 어떻게 했으면 하나?”
“중대장님께서 십오만 골드의 절반을 취하십시오. 제가 남은 것의 절반을 취하고, 나머지를 기사와 병사 들에게 나눠 주겠습니다.”
“좋군. 진행하게.”
“예.”
리코 게리얼 준남작은 중대장에게 군례를 취한 후 돌아섰다.
마차 안에서 한가하게 창밖을 내다보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야아,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야.”
어쩐지 비꼬는 듯한 그의 말에 파비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운송 책임자가 오면 출발할 테니 답답해도 조금만 참으십쇼.”
“출발 못 한다에 내 왼손을 건다. 너는 뭘 걸래?”
“저는 걸고 싶어도 걸 게 없습니다. 무슨 일인지 그냥 말씀해 주시면 안 됩니까?”
엘리오가 막 답하려고 할 때다.
퍼퍼퍼펑―!
마력총 쏘는 소리와 함께 마차에 매여 있던 말들이 픽픽 쓰러졌다.
말들부터 처리한 총병들은 곧바로 총구를 가드들에게 돌렸다.
이미 여러 차례 해 온 짓들이라 모든 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징발 확인서를 기다리던 웨일즈는 한순간 굳어 버렸다.
역마차 협회가 창설된 이래 제국군에 공격당한 역마차는 없다.
남부 왕국군도 역마차는 건드리지 않았다.
역마차가 제국과 왕국 모두에게 꼭 필요한 기관인 까닭이다.
‘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