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5
1335회. 어느 부분이 오해입니까?
도시 중심부로 갈수록 제국군이 늘어났다.
평상시 군대는 도시 외곽에 주둔하지만, 전시의 점령지는 다르다.
하르키트를 점령한 제국군 35사단은 도시 중심부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역마차 협회를 지나쳐 제국군 밀집 지역으로 걸어가자, 파비안이 슬쩍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35사단 사령부.”
“거긴 왜요?”
“내 고향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
“35사단 사령부가 호랑이 굴입니까?”
“‘혼란의 선봉장’은 이 전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 근처에 있을 거야. 지휘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잖아.”
“아…….”
파비안이 입으로는 탄성을 내뱉었지만 표정은 좋지 않았다.
“표정이 왜 그래?”
“며칠 전에 제국군하고 안 좋은 일이 있었잖습니까. 그런데 제국군 지휘관을 만나러 가신다니 걱정이 돼서요.”
“뭐가 걱정이야? 우리가 잘못한 거 있어?”
“없죠. 없지만 그때 죽은 중대장이 황제령에서 유명한 후작가의 아들이라지 않습니까. 스타우런 후작의 강철 군단도 페로무로스에 있다는데…….”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강철 군단이 자랑하는 부대가 바탈리온 부대 아닙니까. 총병들이 전원 엑시티움으로 무장했다는.”
“아, 그 부대가 강철 군단에 있었어?”
그제야 엘리오도 조금은 관심을 보였다.
스타우런 후작의 아래에 바탈리온 부대가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바탈리온 부대는 강철 골렘조차 박살 낼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엑시티움은 소드마스터를 죽이는 전략 병기.
자신도 수차례 당해 봐서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역마차 협회 사람들에게 같이 들었잖습니까?”
“말이 좀 많았어야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게 흘려집니까?”
“사람마다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 거라고.”
“알겠습니다. 여하튼 바탈리온 부대가 근방에 있는데, 그 부대 최고 지휘관인 군단장의 아들을 라고아 경이…….”
“‘우리가’지. 나 혼자 그런 건 아니잖아.”
“하아! 그래도 중대장을 죽인 건 라고아 경이시잖습니까?”
“그래서 스타우런 후작이 너는 용서해 줄 것 같아?”
“예, 우리네요. 여하튼 제국군 지휘관들과 만날 때 틈을 보이면 안 됩니다. 후작의 강철 군단이 반나절 거리에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쇼.”
“틈이라면 걱정 마라. 내가 얼마나 촘촘한 사람인데.”
“바탈리온 부대가 강철 군단이라는 것도 잊어버리신 분이 무슨 그런 말씀을.”
“중요하지 않은 자잘한 일을 다 기억하며 살 수는 없다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뇨? 엑시티움에 두 번이나 당하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모르고 두 번이나 당한 건 맞지만, 죽을 정도의 위기는 아니었다고.”
“라고아 경, 다른 건 몰라도 지난번에는 누가 봐도 목숨이 오락가락하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루나 마일러스 님께서 헌신적으로 치료하지 않으셨다면…….”
“오해야.”
“어느 부분이 오해입니까?”
엘리오는 대답 대신 손을 들어 거대한 석조 건물을 가리켰다.
“제국군 깃발이 걸려 있는 거 보니 사단 사령부가 저건가 보다. 오마르 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군 깃발과 경비병의 숫자를 생각하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파비안이 빠르게 경비병들 앞으로 다가갔다.
“이곳이 35사단 사령부인가?”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파비안은 대답에 앞서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소리쳤다.
“사령부가 맞답니다!”
그리고 연이어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전하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이 방문하셨다고.”
“라고아 백작님이시라면…… 라티누스의 영주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네.”
그러자 경비병 중 선임이 허겁지겁 사령부 안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석조 건물에서 지휘관들이 쏟아져 나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등은 다른 방으로 안내되고, 엘리오만 35사단 지휘관들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상석에 앉아 있던 35사단 사단장 라울 샌더스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는 35사단 사단장 라울 샌더스 백작입니다.”
“엘리오 라고압니다.”
엘리오가 가볍게 묵례를 함으로 화답했다.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라울 샌더스 사단장이 빈자리를 가리켰다.
엘리오는 주저 없이 빈자리에 걸터앉았다.
참모들이 부랴부랴 다과를 내왔다.
라울 샌더스 사단장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펴며 말했다.
“하하. 전시라 대접할 게 없습니다. 방문하실 줄 알았다면 연회를 준비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전쟁 중에 연회라니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강철 군단이 선봉에 선 뒤로 연전연승이라, 승전 축하 연회를 열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실제로 연회를 개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죠. 전황이 불리해지면 두고두고 욕먹을 일입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강철 군단이 워낙 강해야지요. 이제는 코르보 마법 병단도 뒤에서 지원만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코르보 마법 병단도 이곳에 있습니까?”
엘리오가 반색을 하자 라울 샌더스 사단장이 되물었다.
“코르보 마법 병단을 잘 아십니까?”
“킬리언 헤일 공작님과 좀 압니다. 기사단에 지인도 있고요.”
물론 기사단에 있다는 지인은 애슐리 넬슨 남작이다.
“그러셨군요. 코르보 마법 병단은 페로무로스 동부에 주둔 중입니다. 이전이었다면 가장 위험한 북부에 주둔했어야 하는데……. 그 자리를 강철 군단에 내어 주었지요. 바탈리온 부대만이 적의 강철 골렘을 상대할 수가 있으니까요.”
제국의 전쟁에 관심이 없던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접점이 없던 라울 샌더스 사단장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라고아 백작이 왜 갑자기 찾아왔지?’
그는 갑작스러운 라고아 백작의 방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라고아 백작은 제국과 남부 왕국 간 벌어진 전쟁에 거리를 두기 위해 제국의 백작위까지 받은 인물.
그런 그가 왜 최전선에 있는 35사단 사령부를 찾아온단 말인가?
스콜피언 중대가 그에게 몰살당한 일은 제국군 내에서도 극비로 다뤄지고 있는 터라, 35사단장은 그쪽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엘리오가 지나가듯 물었다.
“최근 전황은 좀 어떻습니까? 바탈리온 부대 때문에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아, 전황요? 말씀하신 그대롭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참전하신 뒤로 무패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페로무로스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페로무로스의 점령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강철 도시라는 별명답게 성벽이 좀 단단해야지요. 어디서 그렇게 강철이 나왔는지 성벽을 강철로 덮었습니다.”
“바탈리온 부대로도 안 되나요?”
“엑시티움의 파괴력이 뛰어나지만 그래 봐야 대인용이잖습니까? 성벽을 무너뜨리려면 공성 병기가 있어야 하는데……. 강철 벽을 무너뜨릴 공성 병기는 아직 없습니다.”
“아하.”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엑시티움을 마력총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마공학자들이 엑시티움으로 공성 병기도 만들어 내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런 날은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처음에야 제국군이 사용하겠지만, 언젠가는 왕국군 손에도 들어갈 테니까요.”
“동감입니다. 그 밖에 다른 변화의 조짐은 없습니까?”
“변화의 조짐요?”
“전쟁이 더 격화될 가능성 같은 거 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보급이 막히면 적군도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할 겁니다. 페로무로스를 점령하면 그 뒤로는 뻥 뚫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남부 왕국에서 페로무로스보다 방비가 잘된 곳은 없으니까요.”
“제국군이 페로무로스를 점령하면 전쟁도 끝날 거라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저희는 그렇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라울 샌더스 사단장의 얼굴에 여유가 묻어났다.
그는 황태자가 평화 협정문의 초안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엘리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혼란의 선봉장’으로까지 불리는 우샤스 운드라가 제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게 내버려 둘까?
‘그럴 리가 있나.’
분명히 끝이 보이는 전쟁을 다시 격랑으로 몰고 갈 터였다.
하지만 그걸 제국군에서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미 제국군은 엑시티움으로 남부 왕국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인 상태니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피던 라울 샌더스 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고아 백작님은 어쩐 일로 이곳을 방문하셨습니까?”
“아, 제도로 올라가는 길에 전황이 궁금해서 들러 봤습니다.”
“어비스로 가셨다는 소문은 진즉에 들었습니다. 이제 제도로 돌아가십니까?”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시군요. 어비스는 어떻던가요? 페트라 산의 광산에서 강철 골렘이 출토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강철 골렘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기에 엘리오는 감추지 않았다.
“그 큰 골렘이 땅속에 묻혀 있다니……. 놀랍군요.”
“골렘이 완성체로 묻혀 있는 건 아닙니다. 강철 파츠를 한곳에 모아 두면, 강철 파츠들이 스스로 뭉쳐 강철 골렘으로 변합니다.”
“세상에! 강철 파츠들이 스스로 뭉친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겁니다.”
“허! 그런 일이! 그건 고대의 마공학자들이 만든 것일 테지요?”
35사단장의 말에 엘리오는 웃기만 했다.
고대의 마도 시대는 사실 티탄족이 활동하던 시기.
강철 골렘도 티탄족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굳이 그런 사실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티탄족의 유물로 마나 프트라스의 세계에 분탕질을 일으키고 있었네?’
누구의 계획인지 몰라도 꽤나 악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은 라울 샌더스 사단장의 배웅 속에 35사단 사령부를 나섰다.
거리를 걷던 엘리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시간 참 빨리 가네.”
낮에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파비안이 말했다.
“나이를 드셔서 그런 겁니다. 어릴수록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한편으로 가소로웠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전에 잠에서 깬 것 같았는데 벌써 석양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드마스터가 되었어도 시간의 흐름만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문득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돌아보았다.
“원하시던 것은 찾았습니까?”
“아직요. 페로무로스 동부로 가 볼까 합니다. 그곳에 코르보 마법 병단이 주둔 중이라고 하네요. 킬리언 헤일 공작님이라면 고급 정보를 알고 있을 것 같아서요.”
순간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애슐리 넬슨 남작이 좋아하겠네요?”
“어째 네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엘리오의 지적을 파비안은 실실 웃으며 받아넘겼다.
“제가 좋아한다면 양보해 주시게요?”
“인마, 사람이 물건이냐? 양보를 하게? 게다가 애슐리 남작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기나 한대?”
“제가 어때서요? 저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겁니다. 크레아, 그렇지 않냐?”
파비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크레아는 지체 없이 ‘맞아요’라고 답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파비안 정도면 괜찮은 게 아니라 훌륭했기 때문이다.
사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주목을 못 받지, 파비안은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게 없는 기사였다.
그러자 엘리오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크레아 양은 파비안이 남자로 마음에 들어요?”
“전혀요.”
하워드의 앞인지라 그녀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당황한 파비안이 급히 ―크레아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전후 사정을 설명하려 했지만, 엘리오는 기다리지 않고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