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7
1337회. 그는 행크 스타우런 남작입니다
정보부는 어느 기관이든 비밀스러움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 이유로 대귀족들에게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당연히 제국군 정보부 참모들이 만나자는 것은 조사를 하기 위함이다.
킬리언 헤일 공작은 최전방에 갑자기 제국군 정보부 참모들이 찾아온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제국군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간에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북부 왕국에서 참전하기로 한 건가?’
패배에 직면한 남부 왕국들이 적극적으로 북부 왕국들에 손을 내밀었고, 그에 북부 왕국이 마음을 바꾸었다면?
그렇다면 제국군 정보부 참모들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찾아올 만도 하다.
킬리언 헤일 공작이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을 이어 갈 때 엘리오가 말했다.
“한 가지가 있기는 합니다.”
“있다고? 뭔가? 혹시 북부 왕국들에게서 연락이 온 게 있었나?”
“북부 왕국요?”
“지금쯤 남부 왕국들이 적극적으로 북부 왕국들에 매달릴 때가 됐겠다 싶어서 하는 말이네.”
“전혀요. 저와 제국군 사이의 일입니다.”
“제국군이 라고아 경에게 참전해 달라고 압박을 넣기라도 하던가?”
“그런 쪽과도 거리가 멉니다.”
“그것도 아닌데 제국군 정보부가 왜 라고아 경을 찾는단 말인가?”
아직까지 킬리언 헤일 공작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그의 얼굴이 굳었다.
“며칠 전에 페로무로스 인근에서 제국군 중대가 제가 탄 역마차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역마차 화물을 강탈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허! 그런 일이……. 그래서?”
“그들은 목격자를 남기지 않으려고 역마차에 마력총을 쏴 댔습니다. 나중에 잡고 조사해 보니 벌써 남부 왕국의 마을들에서 열 차례 이상 그런 짓을 했더군요.”
“열 차례 이상이나……. 엄청난 짓을 했군.”
“그래서 싹 다 죽였습니다.”
“제국군 중대를 모두 죽였단 말인가?”
“예, 누구 하나 반성하는 놈이 없더라고요. 반성하는 척해도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놈들은 아예 그런 기미조차 안 보였습니다.”
“그럼 제국군 정보부가 찾아온 게…….”
“아마 그 일 때문일 겁니다.”
“허어! 라고아 경의 행동이 지나치기는 했지만……. 제국군이 극악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으니 조사만 하고 끝나겠군.”
“그런가요?”
“당연하지 않나. 전쟁 중이라지만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데. 남부 왕국의 마을에 이어 역마차까지 공격했다면……. 극형을 면치 못할 걸세. 게다가 라고아 경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그랜드 마스터가 탄 마차를 공격하다니? 죽으려고 제 무덤을 판 게지.”
“저도 조용히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엘리오는 일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혼란의 선봉장인 우샤스 운드라를 찾는 게 급한 까닭이다.
“나도 한마디 해 줘야겠군. 정보부 참모들을 들여보내게.”
공작의 말에 스파이크 고어 기사단장은 군례를 올린 후 물러났다.
잠시 후 제국군 참모로 보이는 기사 셋이 지휘 본부로 들어왔다.
킬리언 헤일 공작은 물론 엘리오도 앉은 자리에서 방문자들을 향해 고개만 슬쩍 돌렸다.
인솔자로 보이는 기사가 묵례를 한 후 자신들을 소개했다.
“제국군 정보부에서 왔습니다. 저는 칼 바무트 백작이고, 제 옆은 리사 코르도 자작, 그리고 끝이 크로드 쿠엘로 남작입니다.”
가볍게 고개만 까딱인 칼 바무트 백작과 달리 리사 코르도 자작과 크로드 쿠엘로 남작은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인사가 끝나자 킬리언 헤일 공작이 먼저 운을 뗐다.
“제국군 정보부에서 이곳까지 어쩐 일인가? 라고아 백작에게 무슨 용무가 있다고?”
칼 바무트 백작이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그 전에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은 제국군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간의 문제입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친히 ‘외부의 간섭이 있을 시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예.”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기에 황태자 전하께서 그런 말씀까지 하셨다는 건가?”
킬리언 헤일 공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칼 바무트 백작을 번갈아 보았다.
칼 바무트 백작이 작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닷새 전 페로무로스 남부에서 스콜피언 중대가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이 있고 이틀 후 역마차 협회에서 강철 군단으로 협상안을 제시했습니다. 스콜피언 중대가 역마차를 습격했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 일행이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시켰는데, 그 일이 공개되면 피차 곤란해지니 남부 왕국의 저항 세력이 벌인 일로 하고 조용히 덮자는……. 제가 지금까지 한 말에 거짓이 있습니까? 라고아 백작?”
칼 바무트 백작의 질문에 엘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역마차 협회에서 한 제안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킬리언 헤일 공작이 한마디 했다.
“제삼자인 내가 듣기에 나름 적절한 대처 같은데 문제 될 게 있나?”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빠져 있었습니다.”
“중요한 내용?”
“스콜피언 중대가 역마차를 공격한 이유와 중대장의 요구 사항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스콜피언 중대가 화물을 강탈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들었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건가?”
“저희가 역마차 승객들을 조사하던 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공작 각하께서도 들으신다면 놀라실 겁니다. 계속할까요?”
칼 바무트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칼 바무트 백작이 말을 이어 갔다.
“제국군이 역마차를 공격한 이유에 대한 승객의 증언은…… 역마차 협회의 중재안과 달랐습니다. ‘역마차가 적국과 내통한 줄 알고 공격했다’는 제국군 지휘관의 말을 들었답니다. 역마차가 제출한 화물 목록과 실제로 역마차에 실려 있던 화물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하더군요. 정보부에서 화물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드리아 왕국의 대귀족이 빼돌리던 재물이었습니다. 빼돌린 재물의 최종 목적지가 저항군인지, 아니면 단순한 재산 빼돌리기인지는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습니다만.”
킬리언 헤일 공작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단순히 전쟁 범죄에 대한 응징인 줄 알았는데 어째 내용이 조금 달라져서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시켰다면, 그때는 아무리 그가 그랜드 마스터라도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또 다른 것은……. 스콜피언 중대장이 살해당하기 전에 제국에서 재판받게 해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라고아 백작은 그것을 묵살하고 그를 죽였습니다. 인정하십니까?”
“예.”
칼 바무트 백작의 확인 질문에 엘리오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가 스콜피언 중대를 죽인 것은 역마차에 대한 공격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반응에 오히려 칼 바무트 백작이 흠칫했다.
역마차가 적국과 내통했다면, 그것을 공격한 스콜피언 중대는 죄가 없다.
스콜피언 중대장이 재판을 요구했다면 더더욱 죽여서는 안된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행동은 ―대귀족의 정당한 자기 방어를 넘어선― 명백한 범죄다.
문제는 그런 엄청난 범죄 행위를 저지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그랜드 마스터이며, 북부의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체포 또는 사살하려면 바탈리온 부대가 동원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 사상자가 몇이나 나올지 모른다.
어쩌면 바탈리온 부대가 괴멸 수준의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남부 왕국들과의 전쟁과 북부 왕국들의 반발을 고려하면 모든 걸 저항군 소행으로 돌리고 덮는 게 나았다.
하지만 살해당한 중대장의 부친인 테오 스타우런 후작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만이 아니다.
황태자조차도 이번 기회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응징해야 한다고 난리다.
둘 중 어느 한 사람만 참았어도 이번 일은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 테오 스타우런 후작과 황태자 모두 짠 것처럼 강경하게 나왔다.
칼 바무트 백작은 이번 일이 강 대 강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협조적으로 나와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 킬리언 헤일 공작이 끼어들었다.
“스콜피언 중대의 전쟁 범죄도 조사했겠지?”
“전쟁 범죄요?”
“남부 왕국의 마을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살해한 것만 열 건이 넘는다 들었네.”
“실례지만 그 증언의 출처가 어디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아 백작에게 들었네.”
“아시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라고아 백작의 증언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은 스콜피언 중대의 전쟁 범죄는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설사 그중 일부가 사실이라 해도 스콜피언 중대와 라고아 백작의 사건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겁니다.”
“라고아 백작이 스콜피언 중대에 손을 쓴 것은 스콜피언 중대가 중대 범죄 행위를 저질러서였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라고아 백작의 혐의는 ‘적국과 내통한 역마차를 공격한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한 것’과 ‘재판을 요구한 귀족을 살해한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한 것은 도리어 스콜피언 중대의 범죄에 대한 주장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라고아 백작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결론적으로 그렇습니다. 스콜피언 중대의 범죄 행위를 증언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랜드 마스터의 말을 의심한다고?”
“증인들을 모두 살해한 당사자이니까요. 더구나 살해당한 사람들이 제국군임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도 이미 중대 범죄입니다.”
“그래서? 라고아 백작을 체포라도 하겠다는 건가?”
“라고아 백작께서 자신에게 씌워진 범죄 혐의를 인정하면……. 체포하라는 황태자 전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이런 젠장! 라고아 백작을 체포할 능력은 있고? 북부 왕국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아무리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해도 아직 제국군에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체포할 여력이 없었다.
설사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후일을 생각하면 덮는 게 최선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한 이유가 알려지면 남부 왕국과 북부 왕국에서 그를 추앙할 것이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지적 앞에서도 칼 바무트 백작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킬리언 헤일 공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이해를 못 하겠군. 황태자 전하도 그렇지만, 제국군 정보부에서 그렇게까지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공작 각하께서는 스콜피언 중대의 중대장이 누군지 모르십니까?”
“분수를 모르고 욕심만 많은 남작 나부랭이겠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행크 스타우런 남작입니다.”
“…….”
순간 킬리언 헤일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코르보 마법 병단에게 강철 군단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은 ‘굴러 들어온 돌’이었다.
‘쯧쯧! 하필 스콜피언 중대장이 테오 스타우런 후작의 아들이었다니!’
황태자가 그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강철 군단의 화력이면 그랜드 마스터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기는 하다.
한참 만에 킬리언 헤일 공작이 말했다.
“테오 스타우런 후작이야 아들을 잃었으니 그렇다 쳐도, 황태자 전하께서 이 일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뭔가?”
“그야 스타우런 후작님께서 황태자 전하의 최측근이라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여하튼 제국군 정보부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고아 백작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승객들과 대질 심문하고, 인정할 경우 즉시 체포해 제국군 정보부의 특별 수사 본부로 압송한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