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46
1346회. 우리에게도 그 못지않은 신무기가 있다면?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
점심 시간.
샬레(남부의 산장)의 관리자 겸 요리사인 하이디가 탁자에 스튜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요즘 동네에 왜 이렇게 노점상들이 늘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엘리오가 아무 생각 없이 되물었다.
“노점상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좋기는 한데 외지인들이 갑자기 늘어나니까 찜찜해서 그러죠. 이런 외진 마을에 뭐 팔아먹을 게 있다고 꾸역꾸역 들어오는지 원…….”
“전에는 노점상이 없었어요?”
“노점상은 있었는데……. 전쟁 중에 두 배나 늘어날 일은 아니잖아요?”
“마을 사람들이 물건을 내다 파는 게 아니라 외지인이라고요?”
“그렇다니까요. 가족들이 없는 걸 보면 피난민도 아닌 것 같은데. 파는 물건은 또 어디서 가져오는지 질이 좋아요. 노점상이 아니라 상점 같다니까요.”
“신기하네요.”
“예. 별일이 다 있죠? 피난을 갈 거면 큰 도시로 가야지, 작은 산간 마을에 뭐 먹을 게 있다고.”
“큰 도시는 전쟁터로 변할 수 있잖아요.”
“아, 그건 또 그러네요. 그럼 진짜 전쟁을 피해서 온 사람들인가?”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탁자 위에 빠진 음식이 없는지 확인한 뒤,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엘리오는 샬레 밖으로 나갔다.
산으로 가던 그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방향을 돌렸다.
과연! 하이디 씨의 말처럼 거리 곳곳에 노점상이 보였다.
그들 중 일부는 궁핍한 티가 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파는 물건도 달랐다.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은 사냥한 동물이나 채집한 열매 따위를 팔았다.
반면 옷차림이 깨끗한 사람들 앞에는 밀가루, 쌀 등의 식재료와 각종 향신료, 무두질 된 가죽 등이 쌓여 있었다.
산간벽지 마을이 아니라 흡사 페트로폴리스(제도)의 노점상을 보는 듯했다.
‘게다가 다들 젊단 말이지.’
엘리오는 혹시나 싶어 노점상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마나는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선발했을 수도 있으니 믿어서는 안 된다.
그는 ‘몇 사람에게 언법(言法)을 사용해 볼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정체를 알면 뭐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엘리오는 느긋하게 마을을 둘러본 후 샬레로 돌아갔다.
***
아드리아 왕국.
크라시온.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남부의 대귀족들과 만났다면 파비안은 남작, 준남작 등과 어울렸다.
제국 출신인 하워드와 크레아는 딱히 만날 사람이 없어 조용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따라다녔다.
요즘 들어 파비안이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 혜성부대의 중대장 콜맨 오프너 남작이었다.
그는 매일 밤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지원받은 접대비로 콜맨 오프너 남작을 고급 바(Bar, 술집)에서 만났다.
고급 바 ‘구름이 머문 자리’.
남부의 일반적인 바에서는 주인이 홀로 술과 안주를 팔고 긴 나무 탁자 건너편에서 손님이 술을 마신다.
그러나 고급 바는 거기에 십여 개의 탁자를 더했음은 물론, 젊은 아가씨들까지 두고 손님의 술 시중을 들게 했다.
어쩌다 손님과 아가씨가 눈이 맞으면 매춘으로 이어지는 방식이라 자연히 술값도 비쌌다.
비록 전시지만 기이하게도 술집만큼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왕국군이나 제국군 모두 술집만큼은 건드리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늦은 밤.
예쁘장한 아가씨가 젊은 사내 둘이 마주 앉은 탁자로 다가갔다.
이십 대 중반의 남자가 아가씨를 힐끔 보더니 맞은편의 사내에게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마음에 드시면 옆에 앉히셔도 됩니다.”
그러자 삼십 대 중반인 콜맨 오프너 남작이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다.
“술을 얻어먹는 것도 미안한데…… 아가씨는 무슨.”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아가씨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청년, 파비안이 피식 웃으며 아가씨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가씨가 콜맨 오프너 남작의 옆에 앉아 비어 있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제국군이 다시 페로무로스를 공격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어, 어젯밤부터 마력포를 쏘고 있다네? 이번에는 사면에서 포격하는 걸로 봐서 끝장을 보려나 봐.”
“페로무로스가 점령당하면 전쟁도 끝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제국 측과 전쟁 중재에 대한 말이 오가는 겁니까?”
“끝은 무슨.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평화 협정이 아니고요?”
“우리 군단이 최근 ‘철벽’에서 ‘승리’로 이름을 바꿨어. 대대적인 부대 개편도 이루어졌고. 너는 ‘승리’와 ‘실컷 얻어 맞고 마지못해 하는 평화 협정’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취기가 돌자 콜맨 오프너 남작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다.
파비안은 슬며시 상대를 떠보았다.
“하지만 제국군에는 강철 군단이 있잖습니까? 엑시티움에 맞으면 소드마스터도 죽고, 강철 골렘에도 구멍이 뚫린다면서요? 그런 놈들을 무슨 수로 상대합니까?”
“페로무로스는 떡밥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 제국군의 시선을 잡아 두기 위해서 그냥 방치해 둔 거라고.”
“그렇게 큰 떡밥도 있습니까?”
‘페로무로스에 아드리아 왕국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믿고 있던 파비안은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덕분에 그들은 크라시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잖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말했잖아. 우리 군단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크크크.”
“이름이야 뭐 바꿀 수도 있죠. 내용물이 그대로잖습니까?”
“누가 그대로래? 많이 개편됐다니까. 우리 부대만 해도…….”
두 남자가 군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가씨는 옆에서 연신 술잔을 비웠다.
그러다 술병이 비면 제 발로 새 술을 가져오기도 했다.
파비안은 돈이 아까웠지만 정보가 더 소중한지라 제지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가씨는 눈치가 보였던지 한두 번씩 옆에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가씨가 반응할 때마다 콜맨 오프너 남작은 더 의기양양해서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주절거렸다.
“아가씨도 집이 부서지거나 하면 나를 불러. 내가 공병 부대 중대장이잖아.”
“어머, 그래요?”
아가씨는 공병 부대가 뭔지도 모르면서 다시 술잔을 비웠다.
아가씨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콜맨 오프너 남작은 또 떠벌렸다.
“그냥 잡일만 하는 공병 부대가 아니야. 이전에 없던 전투 공병 부대라고.”
“형님, 전투 공병 부대가 뭡니까?”
“강철 골렘과 함께 움직이는 공병 부대가 전투 공병 부대야.”
“와아! 형님 부대에 강철 골렘이 있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콜맨 오프너 남작이 어깨를 으쓱일 때 술에 살짝 취한 아가씨가 무심코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그런데 강철 골렘이 제국군 신무기에 상대가 안 된다면서요? 아주 두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다고 하던데. 아, 두부 먹고 싶다. 두부 좀 시켜도 돼요?”
“어, 시켜요, 시켜. 물론 제국군에 엑시티움이 있기는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가씨는 콜맨 오프너 남작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부를 가지러 간 것이다.
이를 악물고 있던 콜맨 오프너 남작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대반격이 시작될 거야. 그때는 우리 승리 군단이 강철 군단을 박살 낼 거라고.”
“하지만 형님, 제국군에는 엑시티움이…….”
“우리에게도 그 못지않은 신무기가 있다면? 그래서 강철 군단을 박살 낸다면, 전쟁이 어떻게 될 것 같아?”
“강철 군단이 박살 나면 제국령으로 밀고 들어가겠죠.”
“우리 승리 군단이 그 선봉에 서게 될 거다. 괜히 이름을 바꾼 게 아니야.”
“신무기가 있어요?”
파비안이 관심을 보이자 콜맨 오프너 남작은 잠시 주위를 살핀 후 속삭이듯 말했다.
“있어. 두고 봐. 우리 승리 군단이 제국의 강철 군단을 박살 낼 거야.”
파비안이 더 물으려 할 때 아가씨가 두부 요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돌아왔다.
술자리는 계속됐지만 뒤늦게 ‘아차!’ 싶었던지 콜맨 오프너 남작은 더 이상 부대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파비안은 아쉬워하는 콜맨 오프너 남작을 뒤로하고 쿠스코 성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쿠스코 성.
아침 식사 자리에서 파비안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하워드, 크레아에게 지난밤 전투 공병 중대장 콜맨 오프너 남작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새로 개편된 승리 군단에 남부 왕국군의 신무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무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 돌려서 물어봤는데, 대답을 회피하더군요. 계속 파고들면 수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거기까지만 했습니다.”
그동안 돈을 댔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잘했네. 나머지는 내게 맡기게. 내가 거기까지 알고 있다는 걸 흘리면…… 남부 왕국 대귀족들도 더 감추려 하지 않을 걸세. 그나저나 그런 식으로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놀랍군.”
가만히 듣던 하워드가 슬쩍 끼어들었다.
“남부 왕국들이 마지막으로 저항을 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신무기를 들고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신무기도 마탑에서 뒷구멍으로 팔아 치운 거겠죠?”
“그럴 가능성이 높네. 그 정도 신무기를 만들 만한 기술을 가진 곳은 마탑밖에 없으니까.”
그러자 크레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남부 왕국의 신무기를 마탑에서 만들었다면……. ‘혼란의 선봉장’이 마탑에 있는 걸까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중얼거렸다.
“마탑에 있는 마공학자거나……. 혹은 마탑이 개발한 신무기를 제국과 남부 왕국 양측에 팔아먹은 무기상일 수도 있네.”
고개를 주억거리던 파비안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남부 왕국의 ‘신무기 개발자’와 남부 왕국에 신무기를 공급한 ‘무기상’이 ‘혼란의 선봉장’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남부 왕국과 북부 왕국을 통해 신무기의 개발자와 무기상이 누군지 알아봐야겠군.”
“그럼 저는 라고아 백작님에게 돌아가서 그런 사실을 전하겠습니다. 남부 왕국의 신무기가 뭔지는 오마르 백작님이 알아내시는 대로 알려 주십쇼.”
그러자 크레아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미노스에 계시면 죽는다고 했다면서요?”
“괜찮아. 미노스에서 알 수 없는 포격전이 벌어졌었다면서? 그거 보나 마나 강철 군단과 라고아 백작님이 싸운 걸 거야. 라고아 백작님을 건드렸으면 스타우런 후작은 끝났다고 봐도 돼. 일단 위험은 지나갔을 거야.”
“그래도 라고아 백작님이 다시 떠나라고 하면,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바로 돌아오세요. 아셨죠?”
“그야 당연하지. 나도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오마르 백작님, 식사를 마치는 대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자네가 잡는다고 남아 있을 사람도 아니잖나.”
“에이, 그래도 백작님이 만류하시면 못 떠납니다. 아시면서.”
“잡을 생각 없네. 남부 왕국에 신무기가 있다는 건 라고아 경에게도 꼭 필요한 중요한 정보일 걸세.”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라고아 경이 바탈리온 부대를 용서해 주셨으면 하네. 이런 상황에 바탈리온 부대까지 사라지면……. 제국이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니까. 그렇게 되면 세상은 통제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고 말 걸세.”
“백작님이 염려하시는 바를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고생하게.”
잠시 후 아침 식사를 마친 파비안은 즉시 숙소로 돌아가 짐을 꾸렸다.
다시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돌아간다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들떴다.
하워드와 크레아가 부엌에서 먹을 걸 챙겨서 파비안에게 가져갔다.
파비안이 쿠스코 성을 나서던 그때, 엘리오도 샬레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