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51
1351회. 칼보다 강한 게 엑시티움이다
페로무로스 북서부.
원정군 총사령부.
참모 랜드 게티 백작은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을 찾아갔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에 대한 심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다.
“참모장님.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일차 심문을 끝냈습니다.”
“…….”
참모장이 슬쩍 고개를 들어 랜드 게티 백작을 올려 보았다.
진짜 죄가 있어 잡아 온 게 아닌 터라 콕 찍어 물을 건 없었다.
“협의를 완강히 부인하더군요. 그러나 남부 왕국군 중대장을 자주 만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만나던 상대가 승리 군단 소속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과거 철벽 군단이었는데 군단을 재편성하면서 이름을 바꿨습니다.”
“역시, 뭐가 있는 게 틀림없어.”
“클라우드 남작이 정말 남부 왕국군과 내통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보다는 개편 과정에서 군단의 이름이 바뀐 게 마음에 걸린다.”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철벽’은 방어에 치중한 느낌이지만, ‘승리’는 그게 아니잖나. 전선에 ‘남부 왕국군이 대반격을 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데……. 군단의 이름이 ‘승리’로 바뀌었다. 방어에서 공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 봐야 강철 군단을 뚫지 못할 겁니다. 바탈리온 부대가 건재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제1 집단군에는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부대들이 있습니다.”
전부터 엑시티움은 총사령부에서 직접 관리했다.
총사령부에서 보관하다가, 바탈리온 부대에서 요청하면 소진된 만큼의 수량을 공급해 주는 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보관 중이던 엑시티움으로 제1 집단군의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를 재무장시켰다.
제국군의 전투력이 세 배 늘어난 셈이다.
총참모가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을 긴급 체포한 배경에는 그런 제국군의 막강한 군사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물론 최종 승리는 제국군이 할 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의 대반격이 언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몰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총참모의 지적에 랜드 게티 백작은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백작이 반성하는 듯하자 총참모는 다시 화제를 클라우드 남작에게 돌렸다.
“클라우드 남작이 승리 군단 중대장과 자주 만났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거의 매일 저녁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편한 승리 군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겠군.”
“하지만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그렇다면 마음을 돌리게 해야지. 어떻게든 쥐어짜서 정보를 얻어 내라.”
“정신 마법이 아니면 어떤 정보도 얻어 내지 못할 겁니다.”
“그럼 써야지.”
“정신 마법을 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자는 ‘적을 이롭게 한 죄’로 체포되었다. 그 죄의 무게에 걸맞은 대접을 해 줘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자칫 클라우드 남작에게 문제가 생기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라고아 백작이 두렵다면 클라우드 남작을 체포하지도 말았어야지. 제국군이 그를 두려워하는 것만큼 그도 제국군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애초에 그게 우리의 또 다른 목적이 아니었나?”
긴장한 랜드 게티 백작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클라우드 남작을 체포한 것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정신 마법을 사용한 순간, 제국군과 라고아 백작의 관계는 파탄이 나고 말 터였다.
“뭘 그렇게 망설이나? 아직도 제국군과 라고아 백작의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다는 환상을 버리지 못한 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랜드 게티 백작이 쓰게 웃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지금까지 한 짓만 보면 그는 이미 제국의 적이다.
하지만 그 빌미를 군단장과 스콜피언 중대가 먼저 제공했으니, 아직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클라우드 남작에게 정신 마법을 사용하라니?
아무리 참모장의 명령이라도 갈등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망설이는 랜드 게티 백작을 보던 참모장이 차갑게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나? 황태자 전하는 그를 죽일 것이다. 제국과 라고아 백작은 공존할 수 없다. 과거였다면 황제 폐하가 크나우프 대공에게 그랬듯, 황태자 전하도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봤을 테지만……. 시대가 변했다. 칼보다 강한 게 엑시티움이다.”
랜드 게티 백작이 깜짝 놀란 얼굴로 참모장을 보았다.
소드마스터인 참모장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 정말 시대가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황제 폐하는 평생 그랜드 마스터인 크나우프 대공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엑시티움을 손에 쥔 황태자 전하는 그럴 것 같지 않다.
황태자 전하라면 총사를 백 명, 천 명까지 늘릴 수 있다.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천 명의 총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하겠습니다.”
그러자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다. 최대한 신속하게 결과물을 가져와라.”
“예.”
결연한 얼굴로 답한 랜드 게티 백작은 황급히 돌아섰다.
클라우드 남작에게 정신 마법을 걸려면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정신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부터 물색해야 한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킬리언 헤일 공작(코르보 마법 병단 단장)의 관계를 알면 거절할 게 분명하니 적당한 마법사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
페로무로스 동부.
미노스.
아침에 킬리언 헤일 공작을 만난 엘리오는 곧바로 역마차 사무소를 찾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페로무로스 북서부의 총사령부로 가고 싶었지만, 탑승권 판매원은 페로무로스 북부행 마차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도 포격전이 한창이라 정오에 한번 출발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용케 역마차가 중단되지는 않았네요?”
“저희도 역마차의 안전을 생각하면 그러고 싶지요. 그런데 제국과 남부 왕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역마차 운행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예? 왜요?”
“우리 같은 일반인이 뭘 알겠습니까? 역마차를 이용할 일이 있는가 보죠.”
“아…….”
엘리오는 더 묻지 않았다.
높으신 분들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자신도 이용할 일이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됐다.
미노스에서 시간을 보내던 엘리오는 정오가 되자 다시 역마차 사무소를 찾아갔다.
포격전이 한창임에도 페로무로스 북부로 가는 손님은 세 명이나 됐다.
이윽고 승객용 마차 한 대와 짐마차 두 대가 역마차 사무소를 떠났다.
역마차 승객들은 묵묵히 창밖만 내다볼 뿐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건 엘리오도 마찬가지였다.
황태자의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고 파비안을 체포했다니?
몇 번을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고 수도 없이 경고했건만 결과가 이 모양이다.
“미친 거지.”
그의 혼잣말에 옆자리의 중년 사내가 물었다.
“뭐라고 했습니까?”
“미친 거라고 했습니다.”
“험,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나 봅니다?”
“나를 자꾸 툭툭 건드리는 놈들이 있어서요.”
“아…….”
고개를 주억거리던 중년인이 청년의 행색을 힐끔 살폈다.
칼은 없지만 복장을 보면 기사다.
그것도 남부가 아닌 중부나 북부 출신의 기사 같다.
‘용병 아니면 모험가겠군.’
타지 출신이라 남부 출신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마을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리는 게 인간이니까.
“어지간하면 참으십쇼. 화를 내 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나만 손해를 보게 되니까요.”
“참아 줬더니 사람을 호구로 생각해서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네요.”
“아, 계속 참아 주면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죠. 그럴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기를 떠나면 먹고살 방법이 있나? 없으면 죽은 듯 참고, 있으면…… 그곳을 뜬다는 각오로 엎어 버립니다. 간단하죠?”
“후후. 그래서 몇 번이나 엎어 봤어요?”
“두 번요. 두 번 다 내가 엎고, 떠났습니다. 엎기 전에는 앞날이 캄캄했는데, 막상 그곳을 뜨고 나면 ‘내가 왜 그렇게 오래 참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쪽은 용병입니까? 모험가십니까?”
“모험가요.”
“그럼 뭐 다른 데 가서도 충분히 잘살 수 있겠네요. 본인이 잘못한 일이 아니라면 속 끓이지 마십쇼.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린 놈은 발 뻗고 자고, 맞은 사람이 웅크리고 자면 되겠습니까? 때린 놈이 불안에 떨어야지. 안 그렇습니까?”
“화끈한 모험가시군요. 맞습니다. 모험가라면 응당 그런 기백으로 살아야죠. 지금은 마음고생이 심해도 나중에 크게 되실 겁니다.”
“마음고생은 안 합니다. 어떻게 뒤집어 엎을까를 고민하면 했지.”
“하하하! 그러시군요. 나는 캐럿 상회 라이소 대리점의 점주인 캐틀 브라운입니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싸게 드릴 테니 들러 주십시오.”
라이소는 페로무로스 북부의 도시 중 하나로 역마차 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엘리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하담(공간 창고)에 쌓아 두었던 먹거리의 대부분을 어비스에서 먹어치워 다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럴게요.”
청년 모험가가 조만간 다른 지역으로 떠날 거라고 생각한 캐틀 브라운이 자연스럽게 물었다.
“구매 예정인 물품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쇼. 그래도 아는 사람이라고 어렵게 찾아와 주셨는데 없으면 곤란하니까요.”
“혹시 남부에도 북부 왕국의 ‘에너지 볼’ 같은 게 있나요?”
“북부 왕국의 전투 식량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아, 남부에는 그런 전투 식량이 없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각종 과일 말린 것과 훈제한 육류가 있습니다.”
“오! 그거 괜찮네요.”
“말린 과일과 훈제 육류는 항시 구비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은요?”
“어지간한 건 다 있어서요. 항상 먹거리가 문제더라고요.”
“알겠습니다. 먹거리라면 아무 때고 오시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함이?”
“엘리오.”
“엘리오 님이시군요. 떠나시기 전에 저희 캐럿 상회 라이소 대리점을 꼭 방문해 주십쇼.”
캐틀 브라운은 청년이 이름만 가르쳐 줬지만 반말을 하지 않았다.
성을 가졌지만 평민인 라무스에게 모험가는 함부로 하기 어려운 손님인 까닭이다.
“알겠습니다.”
엘리오는 사내의 장삿속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지만 흔쾌히 답했다.
먹거리를 채워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의 처세술에 크게 공감해서다.
용병도 아닌 상인이 판을 뒤엎고 떠나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그 짓을 두 번이나 했다니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자신이야 반신의 경지에 이른 무공이 있으니 어딜 간들 못 살겠냐만 그는 다르다.
‘아저씨, 내가 꼭 팔아 줄게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 사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미노스를 출발한 역마차가 페로무로스 북부에 도착한 때는 오후 5시다.
그곳에서 캐틀 브라운과 작별한 엘리오는 서둘러 아수카르(페로무로스 북서부의 도시)행 역마차로 갈아탔다.
***
페로무로스 북서부.
아수카르.
저녁 7시경.
원정군 총사령부가 있는 고대 도시 아수카르에 역마차가 들어왔다.
잠시 후 역마차 역에 세 남자가 내렸다.
그중 두 사람은 일행인 듯 착 붙어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엘리오는 일단 허기진 배부터 채우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총사령부가 있어서 그런지 거리마다 무장한 제국군으로 들끓었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부상자를 가득 실은 짐마차가 줄지어 지나갔다.
피 냄새가 코끝으로 훅 밀려오자 엘리오는 눈을 찌푸렸다.
전쟁 한복판에 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짐짝처럼 실려 가는 제국군 부상자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식당을 찾아 걸어가던 엘리오가 문득 멈춰 섰다.
자신을 향해 중무장한 제국군 1개 소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