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
136회. 당주님은 알고 계십니까?
화용독심 남궁연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대부분의 엉터리 점쟁이들이 저런 식으로 장난을 치곤 해. 감나무 때문에 산고를 치렀다고? 훗!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목숨 걸고 아이를 낳아.”
“아!”
“‘형제가 있지?’ 하고 먼저 운을 떼서 그것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지. 그때 네 표정이 어두워서 우애가 나쁘다고 넘겨짚었던 거야.”
“그, 그럼 구천구검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처음부터 네가 구천현녀를 스승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저 여자는 ‘가르친 것은 잘하고 있느냐?’고 슬쩍 미끼를 던진 거야. 너는 거기에 넘어가서 구천구검을 술술 털어놓았던 거고.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구천구검이 어쩌고 한 거지.”
“그랬구나! 내가 다 가르쳐 준 거였어!”
연적하가 자책하는 얼굴로 제 머리를 툭툭 쳤다.
생각해 보니 남궁연의 말대로였다.
구천동모가 뭘 아는 것처럼 말해서 한순간 구천현녀로 착각했다.
듣고 있던 구천동모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정말 구천현녀를…….”
“심 노인. 이 아줌마 입에서 다시 구천현녀의 이름이 나오면 혀를 뽑아 버려.”
“예! 요사스러운 년. 계속 지껄여 보거라. 오랜만에 손맛 좀 보자.”
심통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구천동모를 쏘아보았다.
그는 한순간이나마 깜빡 속아 넘어갔던 것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연적하야 무림 초출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구밀복검이라 불리던 자신이 당할 줄이야!
‘쳐 죽여도 모자랄 년!’
심통의 작은 눈에서 시퍼런 광망이 쏟아져 나왔다.
구천동모는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슬그머니 내리깔았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 같던 마을 사람들 기세도 한풀 꺾였다. 그들도 눈과 귀가 있으니 구천동모에게 실망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적하 일행처럼 시선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구천동모의 화려한 언변에 길들여져 온 만큼 반신반의에 머물렀다.
구천동모가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저어, 내가 정말 그분이면 어쩌려고……. 당신들은 그냥 추측만 할 뿐이잖아요.”
그 와중에도 살겠다고 구천현녀의 이름만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연적하가 뚱한 표정으로 구천동모를 내려다보았다.
“아줌마. 사람을 죽이는 신선은 내가 사양이야.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천현녀는 아줌마처럼 애들을 죽이지 않아. 아줌마는 선을 넘은 거라고.”
그제야 구천동모는 청년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음을 알았다.
자신을 선녀라고 부르던 때와는 너무도 달라진 태도다.
이제는 자신이 진짜 구천현녀의 화신이라 해도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다.
“자,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구천동모가 굽실거리며 열심히 손을 비볐다.
그것으로 그녀가 쌓아 왔던 모든 위상이 허물어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구천동모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곧이어 마을 사람들 속에서 한두 마디 욕이 터져 나왔다.
막혔던 둑이 터지듯 욕설은 점점 커져 갔다.
어떤 이는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펄펄 뛰기도 했다.
구천동모가 그간 구천현녀의 이름으로 못된 짓을 제법 많이 했던 모양이다.
“아줌마. 왜 그랬어?”
연적하의 물음에 구천동모가 기어 들어가는 음성으로 답했다.
“도, 돈을 더 받으려고…….”
“그럼 차라리 악귀를 쫓아 준다고 하지 그랬어.”
“마을 사람들의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들려면 누군가…….”
“희생이 필요했다?”
“…….”
구천동모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순간 마을 사람들 속에서 여자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미친년! 네년이 바로 악귀였구나! 내 자식 살려 내라! 내 자식 살려 내!”
길길이 날뛰는 걸 보니 이전에도 비슷하게 죽은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다독이고 있을 때 노인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저어, 협객님. 저는 장옥촌 촌장입니다. 덕분에 눈뜬장님 신세를 면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저희 마을의 은인이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그동안 구천동모에게 속아 죽은 이가 둘이나 됩니다. 저 마녀를 저희에게 넘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너무 원통해서……. 제발 부탁드립니다.”
연적하가 슬쩍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남궁연은 지체하지 않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로 연적하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
마을 사람들이 구천동모를 끌고 나가자 객잔은 다시 고요해졌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진설하가 중얼거렸다.
“하아! 한바탕 태풍이 쓸고 지나간 것 같아요. 점쟁이 말만 듣고 사람을 막 죽였다니……. 유명교만 뭐라고 할 건 아니네요.”
청운검 남궁천이 말을 받았다.
“그래서 정파의 고수들이 협객행을 다니는 게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세상 구석구석에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악인들을 처치해야 하니까요.”
“역시 대협다우신 말씀이세요.”
진설하가 존경 어린 눈으로 남궁천을 보고 있을 때다.
객잔의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의원에서 쉬고 있어야 할 설차수였다.
“사형? 왜 나왔어요?”
“몸이 근질거려서……. 겨우 어깨 좀 찔린 거 가지고 중환자처럼 누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런데 사람들이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아! 사형이 나오기 전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사형도 봤어야 하는데.”
진설하가 구천동모와 있었던 일을 간단히 들려주었다.
“허! 좋은 구경을 놓쳤네. 하여튼 세상에 별 인간들이 많아. 그래서 아이는 무사히 돌아간 거야?”
“예, 마을 사람들이 데려다준다고 해서 함께 보냈어요.”
“그 애는 유 사제가 살린 거나 마찬가지네. 사제가 다치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거 아냐.”
“어머,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정말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아, 참! 그런데 남궁 소저는 구천동모에 대해 어떻게 아신 거예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던데. 남자들도 그렇고…….”
사람들의 시선이 남궁연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조금 전 남궁연이 구천동모에게 했던 말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남궁연이 사람들을 슬쩍 둘러본 후에 담담하게 말했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에요. 여자의 말투에 강남 사투리가 섞여 있었어요. 그녀가 입고 있던 비단옷과 오래된 진주 목걸이, 모두 강남에서 애용하는 것들이죠.”
“그럼, 남자들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남자들이 귀신을 보는 것처럼 놀라던데. 대충 아무나 막 찍은 건 아니실 테고. 그랬다면 남자들이 펄쩍 뛰었을 테니까.”
“구천동모의 몸에서 향내가 심하게 났었죠?”
“네.”
“그 향 속에는 음심을 자극하는 몽연향 냄새가 섞여 있었어요. 몽연향이 사람의 땀과 만나면 물에 잘 씻기지 않아요.”
“아!”
“구천동모는 남자들이 찾아오면 몰래 몽연향을 켰을 거예요. 음란한 여자였거나, 남자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였겠죠.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자들 몸에 몽연향 냄새가 배어 있었어요.”
“세상에! 저는 그 여자의 향냄새 때문에 코가 삐뚤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냄새를 어떻게 다 구별하셨대요? 사람들도 많았는데.”
진설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놀라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몽연향의 냄새를 아는 것도 놀랍지만 사람들 속에서 그걸 구별할 정도의 능력이라니!
남궁천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하! 제 동생의 오감이 보통 예민한 게 아니랍니다. 제가 밖에서 이상한 걸 집어 먹고 집에 가서 물어봐도 금방 알아맞히더라니까요.”
그는 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자신의 나이와 신분을 잊고 재잘재잘 떠들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에 익숙한지 다들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
제녕.
광명장원.
해거름 무렵, 정문 앞에 한 노인과 흑의를 입은 여섯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백마 주유심과 살아남은 여섯 명의 흑암대 고수들이다.
그들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패잔병의 모습으로 소리 없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주유심은 환영신마 웅재귀가 애용하는 전각 앞에서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웅재귀의 음성이 들려왔다.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뭐하는 게냐?”
“예.”
결국 주유심은 체념한 얼굴로 섬돌 위에 올라섰다.
마루를 걷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높은 상석에 앉아 열린 문을 바라보던 웅재귀가 눈썹을 찡그렸다.
십두마병 셋을 보냈는데 하나만 돌아오다니?
주유심이 자리에 앉자마자 웅재귀가 날 선 음성으로 물었다.
“다른 이들은 어쩌고 너만 왔느냐?”
“그것이……. 흑마와 흑암대 대주는 놈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속하와 흑암대 여섯만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당주님.”
웅재귀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내가 분명히 애써 맞서려 하지 말고 놈의 무위만 파악하고 돌아오라 하지 않았더냐!”
“저희도 그럴 마음이었으나 상황이 공교롭게 그리되었습니다.”
주유심은 분노한 웅재귀에게 전날 있었던 싸움에 대해 상세히 털어놓았다.
“……그러다 흑마와 흑암대주가 동시에 치명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연적하는 물론 구천노도라는 늙은이도 십두마병보다 고수였습니다.”
“흐음!”
웅재귀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고수가 둘씩이나 있었다면 주유심이 살아 돌아온 것도 기적이었다.
십두마병을 둘이나 잃었다는 게 아까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웅재귀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애써 추슬렀다.
“허어! 대체 어디서 그런 자들이……. 놈들의 사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느냐?”
“그것이 좀 믿기 어렵습니다만, 속하가 여기저기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연적하는 와룡장 출신이고, 구천노도는 연적하에게 무공을 배웠다 합니다.”
“와룡장? 언사의 월하교당 자리에 있던 그 와룡장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참월검객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미친……. 고작 와룡장 출신들에게 십두마병이 둘이나 당했다고?”
갑자기 두통이 밀려오자 웅재귀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움켜잡았다.
웅재귀의 안색을 살피던 주유심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당주님. 혹시 십두마병의 변화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십두마병의 변화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그것이, 흑마와 흑암대주가 죽은 뒤에 실로 끔찍한 모습으로, 그건 정말이지…….”
주유심은 자신이 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렸다.
“놈! 무슨 말인지 분명하게 해라.”
주유심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에 차분하게 말했다.
“흑마와 흑암대주가 숨이 끊어지자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흑마는 팔 척의 거인이, 암혼귀살은 정수리에 뿔이 난 검붉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둘 다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으며, 사람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술이라도 처먹고 왔느냐?”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죽음과 동시에 시커먼 괴물로 변했습니다. 살아 돌아온 흑암대 놈들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십두마병이 죽은 뒤에 괴물로 변했다고?”
“예.”
주유심은 대답과 함께 웅재귀의 안색을 살폈다.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니 그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연적하가 다시 그들을 죽이자……. 그들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뭐라? 시체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제야 웅재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 그 둘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주님은 십두마병에게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주유심이 불안한 눈으로 웅재귀를 보았다.
그는 십두마병이 되는 과정을 일종의 흡정대법으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십두마병이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결과는 그것과 전혀 달랐다.
대체 자신들은 무슨 짓을 벌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