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0
1360회. 처라리 세상을 바꾸겠다
강철 군단 신임 군단장 일마르 라그 백작이 황망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믿었던 바탈리온 부대가 허무하게 박살 났다.
강철 골렘은 발견 즉시 파괴하지 않으면 아군이 죽임당하는 극단의 병기.
바탈리온 부대는 지금까지처럼 강철 골렘의 가슴 부위에 엑시티움을 퍼부었다.
그곳에 강철 골렘을 움직이는 마력원, 즉 코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는 가슴에 구멍이 나면 강철 골렘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총병들의 집중 사격에도 강철 골렘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코어가 있는 지점을 타격한 엑시티움이 튕겨 난 때문이다.
몸통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강철 골렘은 바탈리온 부대 앞까지 걸어왔다.
그 과정에 두 기의 강철 골렘이 작동을 멈췄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골리앗들이 뛰쳐나갔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바탈리온 부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눈 깜짝할 사이에 사지가 잘려 나갔다.
곧이어 바탈리온 부대마저 강철 골렘이 쏘아 낸 죽음의 빛에 절단 났다.
강철 군단도 바탈리온 부대와 골리앗을 빼면 나머지는 과거의 편제와 같다.
기마대와 검방병, 약간의 총병으로 강철 골렘을 막는다는 건 헛된 망상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기마대가 돌진하고, 검방병이 그 뒤를 이어 내달리는가 싶더니 메뚜기 떼처럼 사방팔방으로 달아났다.
검방병들이 달아나자 군단장은 마력 통신으로 포병여단에 마력포 사격을 요청했다.
“강철 골렘에 바탈리온 부대가 몰살당했다! 전방 접전지에 마력포를 쏴라! 강철 군단 위에 마력포를 쏘란 말이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포병여단은 바탈리온 부대가 몰살당했다는 말에 두 번 묻지 않았다.
원정군 총사령관인 황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곧이어 원정군 후방에서 마력포가 날아와 최전방에 떨어져 내렸다.
꽝! 꽝! 꽝! 꽝! 꽈앙―!
흙먼지가 자욱이 일어나 강철 골렘과 강철 군단을 뒤덮었다.
제국군 포병여단의 마력포 사격은 장장 10분에 걸쳐 계속 됐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전장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철 군단의 시체들 사이로 거대한 강철 골렘이 철탑처럼 서 있었다.
제국군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쳐다볼 때, 흡사 죽은 것처럼 어둡게 그늘져 있던 강철 골렘의 두 눈에 붉은빛이 번쩍 하고 들어왔다.
쿵! 쿵! 쿵! 쿠웅―!
강철 골렘들이 제국군 중앙으로 걸어갔다.
중앙에 있던 31사단은 피하지 않고 그 앞을 가로막았다. 황태자가 있는 제1 집단군과 33사단이 후퇴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제1 집단군에도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가 있었지만, 총사령부는 일단 후퇴를 결정했다.
바탈리온 부대가 괴멸당한 원인부터 파악하기로 결정한 때문이다.
그날 페로무로스에서 대패한 제국군은 무려 20킬로미터나 뒤로 물러났다.
***
페로무로스 북서부.
소도시 세르보.
제국군의 충격적인 패배 소식은 이내 아드리아 왕국 전역에 알려졌다.
파비안은 소피아 오를로바 남작에게 전투 결과를 전해 듣자 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라고아 경! 남부 왕국군이 대승을 거두었답니다!”
“대승씩이나?”
“예, 제국군 강철 군단과 33사단이 전멸하고, 황태자의 부대는 20킬로미터나 뒤로 후퇴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작 하루 만에요.”
엘리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루 동안 원정군 본진이 20킬로미터나 후퇴한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가만, 33사단이면 라이노스 부대가 있는 곳인데…….”
“그곳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엘리오는 파비안에게 페인 마쿠스 자작이 찾아왔던 일을 들려주었다.
“……라이노스 부대장이 아니었으면 너는 지금쯤 백치가 되었을 거다.”
“안됐네요. 괜찮은 사람 같은데.”
“이럴 때 보면 하늘이 참 무심해. 나쁜 놈들만 골라서 데려가면 좀 좋아?”
“그러게 말입니다.”
씁쓸한 얼굴로 거리를 응시하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하루에 20킬로미터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는 거야?”
“그럴 만도 하죠. 믿었던 강철 군단이 몰살당했다니.”
“남부 왕국군의 신물질이 그렇게 효과적이었다는 건가?”
“강철 골렘의 코어 부근에 아르테늄을 바르면 뚫리지 않는답니다. 같은 자리를 두 번 맞으면 강도가 현저하게 약해진다는데……. 같은 자리를 두 번 맞추는 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그래서 강철 골렘의 피해는?”
“총 30기가 출전해서 3기가 파괴됐답니다. 이전을 생각하면 미친 전과죠.”
“바탈리온 부대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구나.”
아르테늄의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3기를 파괴할 정도면 칭찬할 만했다.
“말을 들어 보니 남부 왕국 연합군은 이대로 제도(페트로폴리스)까지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제국의 해체가 목표라고 합니다. 우리도 한발 걸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전쟁 끝나면 공국이라도 하나 달라고 하게?”
“아드리아 왕국 스컬 군단 군단장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분위기로는 남부 왕국군이 제도까지 갈 수 있겠던데요?”
“잊었냐? 이 전쟁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혼란의 선봉장’이 그렇게 되도록 그냥 두겠냐?”
“그건 그런데 제국에 강철 골렘을 저지할 수단이 없잖습니까?”
“엑시티움이 있잖아.”
“아르테늄으로 막았잖습니까?”
“제국군은 바탈리온 부대 하나였잖아. 황태자의 제1 집단군에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부대가 있다는 소문 못 들었냐?”
“제1 집단군도 맥없이 후퇴한 걸 보면 헛소문일 겁니다.”
“그야 바탈리온 부대가 몰살한 걸 보고 놀라서 달아난 거겠지. 하지만 지금쯤이면 제국군도 아르테늄의 대처법을 알아냈을걸?”
“제1 집단군이 전부 엑시티움으로 무장했다면 모를까? 한두 개 부대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넉넉잡고 6기는 파괴하겠네요. 하지만 제1 집단군은 강철 골렘에 몰살당할 겁니다. 그 정도 교환 비율이면 싸울수록 제국군에 손해 아닙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더 많은 제국군이 엑시티움으로 무장하는 거야.”
“예? 설마요?”
“네가 황태자라면, 제국의 해체와 엑시티움의 보급 중에 어느 걸 택하겠냐?”
“제국에 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제국군 전부를 엑시티움으로 무장시킬 정도는 아닐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전에 망할 겁니다.”
“그렇기는 한데……. 나는 제국이 손 놓고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엑시티움을 제국군에 더 보급하려고 할 테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남부 왕국에 한쪽 발을 걸치시는 게…….”
“왜 자꾸 발을 걸치래? 오를로바 남작이 시키든?”
“여기서 소피아 남작이 왜 나옵니까? 그리고 오를로바 남작이 뭡니까? 정 없게. 라고아 경도 이름으로 부르시지요?”
“나는 아직 오를로바 남작이랑 친하게 지낼 마음이 없으니까 강요하지 마라.”
“에이, 제가 만나 보니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희생적이고, 바나나 속살처럼 여린 사람입니다.”
“아주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졌구나.”
“라고아 경이야말로 선입견을 버리십쇼. 라고아 경은 처음부터 아무 이유 없이 소피아 남작을 싫어하셨잖습니까?”
“왜 이유가 없어? 처음 만난 날 아침에 너를 꾀어내서 덮친 여잔데.”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솔직히 제가 먼저 꼬셨습니다.”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 아둔한 놈.”
“아, 진짜 가슴을 열어서 보여 드릴 수도 없고. 참 답답하네요.”
“됐으니까, 가서 작별 인사나 하고 와.”
작별 인사라는 말에 파비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르보를 떠나시게요?”
“신물질의 위용도 알았겠다 여기서 뭐 더 할 게 없잖아. 크라시온 성에 가서 아드리아 왕국 국왕을 만나 봐야겠다.”
“왜요?”
파비안이 멍청한 얼굴로 묻자 엘리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거 봐. 아주 정신 빼놓고 살지? 인마! 아르테늄이 전세를 뒤바꿀 물건이라는 걸 알았으면 이제 뭘 해야 돼? 그 귀한 걸 남부 왕국에 팔아먹은 놈이 누군지 알아내야 할 거 아냐?”
“아!”
뒤늦게 파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간단하고 당연한 걸 깜빡하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했다.
“제가 아직 정신 마법의 후유증으로…….”
“정신 마법 후유증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여자에게 정신이 팔린 거지. 에혀! 너 같은 놈을 영주로 모실 슬래시 랜드 주민들이 불쌍하다.”
“그건 진짜 오해십니다. 제가 북부를 떠난 뒤 세라 양에 대해 말하는 거 보셨습니까? 북부로 돌아가면 남부 일은 생각도 안 날 겁니다.”
“자랑이다.”
“정열적으로 사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라고아 경도 좀 인생을 화끈하게 사십쇼. 노인네처럼 그러지 마시고요.”
“너는 정열이 아니라 쾌락의 노예야.”
“쾌락이 어때서요? 쾌락도 마나 프트라스 신께서 허락하신 즐거움입니다.”
“아, 예에. 너는 쾌락 많이 즐기고 오세요. 오실 때 크라시온행 역마차 표 사 가지고 오는 거 잊지 마시고요. 이번에도 역마차 표 안 구해 오고 딴소리하면, 나 혼자 떠난다.”
“딴소리라뇨. 저, 북부의 자랑인 ‘균열의 기사’입니다. 역마차 표만 구해 가지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파비안은 행여나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잔소리를 할까 싶어 후다닥 티팝을 떠났다.
***
아드리아 왕국.
변방 도시 마그레브.
강철 도시 페로무로스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마그레브는 아드리아 왕국과 쉐이드 왕국의 접경지이기도 하다.
조용하던 마그레브가 갑자기 몰려든 제국군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페로무로스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제국군 전투 사단들까지 총사령부를 따라 마그레브까지 내려온 탓이다.
원정군 총사령부.
총사령관 루이스 프레이저 3세가 굳은 얼굴로 참모장의 보고를 들었다.
“……강철 군단과 33사단, 원정군 기병대대가 전멸했습니다. 제1 집단군의 검방병 중 절반이 사망, 또는 실종 상태입니다. 그리고 31사단과 36사단의 기마대도 강습 작전에 투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팬텀 부대와 쉐도우 부대는 어떤가?”
“당장이라도 전투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부대장들이 바탈리온 부대가 당하자 바로 전선에서 이탈할 것을 명해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간 황태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바탈리온 부대는 최후의 일인까지 싸워 강철 골렘을 3기나 파괴했다. 그런데 엑시티움까지 지급받은 부대들이 전선을 이탈했다는 건가?”
“부대원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엑시티움이 통하지 않는 걸 봤으니……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참모장은 지휘관들을 두둔했다.
페로무로스에서 두 부대마저 잃었다면 강철 골렘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서다.
황태자도 현실을 받아들였는지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강철 골렘에 사용된 신물질이 아르테늄이라고 했나?”
“예. 남부 왕국에서는 불멸의 신물질이라 떠들어 대지만……. 엑시티움에 같은 부위를 두세 차례 피격당하면, 아르테늄도 무력화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엑시티움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소리지. 안 그런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황실에 그만한 재정이 있겠습니까?”
“일전에 말했을 텐데…… 엑시티움을 대량 생산하면 하나에 10골드까지 제작비를 낮출 수 있다고.”
“제국군 총병을 엑시티움으로 무장시키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겁니다.”
“10골드가 아니라 1골드라면?”
“그게 가능합니까?”
“타불라 마탑 내부에도 황실의 정보원이 있다. 그는 ‘10골드가 아니라 1골드로도 충분하다’고 하더군. 점잖은 척하던 타불라 마탑주가 제작비를 뻥튀기했던 거다. 마법사들의 음흉함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지.”
“…….”
충격적인 말에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눈만 끔뻑거렸다.
“제국은 몰락하지 않는다. 내가 허락하지 않아. 그럴 바에야 차라리 세상을 바꾸겠다. 아드리아 왕국을 다시 내어 줘도 상관없다. 쉐이드 왕국에 저지선을 구축해라. 제국의 대반격은 쉐이드 왕국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