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69
1369회. 마나 프트라스님을 믿습니까?
파비안은 상대가 입은 회색 로브를 보고 그가 마나 프트라스교와 관계된 사람임을 알았다.
사제일 수도 있지만 덩치로 봐서는 성기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대충 사죄하고 넘어가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인에게 차이고 감정이 격앙된 파비안은 그러지 않았다.
“보아하니 마나 프트라스교의 관계자 같은데, 사제요? 성기사요?”
성기사 중의 성기사인 팔라딘 메타트론이 기막힌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자신이 마나 프트라스 교단 관계자임을 알고도 저런 소리라니!
역시나 이단적인 사상을 가진 자들다운 발언이다.
“나는 성기사 메타트론이다. 너는 누구이기에 감히 마나 프트라스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느냐? 보아하니 기사 같은데, 기사 서임을 받았다면 네 이름쯤은 밝힐 용기가 있겠지?”
메타트론은 조롱하듯 상대의 말을 흉내 냈다.
성기사는 신전 사제와 같은 신분으로 기사로 치면 소드 익스퍼트급의 강자다.
파비안은 흥분한 와중에도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와 뒤로 뺄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에스카토스 왕국의 기사인 파비안 클라우드요. 그런데 내가 언제 마나 프트라스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는 거요?”
“그대는 조금 전에 ‘마나 프트라스님이 실제로 있기는 한 거냐? 없는데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아니라고 부인할 텐가?”
“그, 그거야…….”
파비안은 구차한 변명을 하려다 말았다.
메타트론은 느긋한 태도로 더 해 보라는 듯 턱짓까지 했다.
두 사람의 말다툼으로 식당 안은 조용해졌다.
궁색해진 파비안을 대신해 엘리오가 나섰다.
“성기사님, 제 일행이 흥분해서 말실수를 했습니다. 마나 프트라스님에게 기도했는데 들어주지 않았다는 푸념인데……. 듣기에 거북했다면 죄송하게 됐습니다. 성직자의 넓으신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엘리오는 마나 프트라스를 믿는다.
마나 프트라스의 부탁으로 이세계에 와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찌 그 존재를 부인할 수 있나 말이다.
더불어 마나 프트라스교의 성기사를 같은 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 무익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낮췄다.
순간 메타트론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거칠고 야만적이라 들었는데 이런 정중함이라니.
“귀하는 누구요?”
“아, 제 소개를 깜빡했군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입니다.”
“…….”
메타트론이 깊은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응시했다.
엘리오는 상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메타트론의 입이 열렸다.
어쨌든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이단 사상을 검증해야 하는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라고아 백작, 귀하는 마나 프트라스님을 믿습니까?”
“나는…… 믿지 않습니다.”
너무도 간단히 마나 프트라스를 부정하는 상대의 말에 메타트론은 한순간 당황했다.
그렇다면 조금 전 클라우드 남작을 변호하던 태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이단임을 고백하는 것이오?”
“믿지 않는 게 왜 이단입니까?”
“그것은 마나 프트라스님을 부정하는 것이니…….”
“부정이라뇨? 내가 언제 마나 프트라스님을 부정했습니까? 그분이 계시다는 건 알지만, 섬기지 않을 뿐입니다.”
“그건 무슨 해괴한 논리요? 그분이 계심을 알면서 어찌 섬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성기사님은 악신 샤이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요?”
“알다 뿐이오? 악신의 추종자를 섬멸하는 것이 우리 성기사의 주된 일이라오.”
“알지만, 악신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그 추종자를 섬멸하러 다니시지요? 저 역시 마나 프트라스님을 알지만, 섬기지 않을 뿐입니다.”
“역시 네놈은 악신 샤이틴의 주구였던가!”
메타트론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악신 샤이틴의 추종자가 아닌 다음에야 마나 프트라스를 거부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덩달아 답답해진 엘리오도 언성을 높였다.
“내가 언제 악신 샤이틴을 섬긴다고 했습니까? 나는 마나 프트라스와 악신 샤이틴은 물론, 그 어떤 신도 섬기지 않습니다!”
“…….”
한순간 식당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성기사 메타트론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떴다.
회색 로브를 입은 열두 명의 성기사들이 메타트론의 뒤에 늘어섰다.
성기사들은 암암리에 전투 준비를 끝내고 메타트론의 명령만 기다렸다.
그러나 메타트론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마나 프트라스 교단은 악인과 이단을 말살한 반면, 불신자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그들에게 불신자는 포교의 대상이지 척살 대상이 아닌 까닭이다.
“그대는 스스로를 불신자라 했다. 허면 묻겠다. 불신자인 그대는 어찌하여 마나 프트라스님과 악신 샤이틴에 대한 이단적인 주장을 퍼트렸는가?”
“내가요? 무슨 주장을 퍼트렸는데요?”
“어비스는 우샤스 운드라의 거처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대는 어비스를 악신 샤이틴의 은신처라고 했다. 또한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에 신들이 관여되어 있다고도 했다. 인정하는가?”
“그게 왜 이단입니까?”
“우샤스 운드라님은 마나 프트라스님의 충직한 종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 충직한 종의 거처에 악신 샤이틴이 있다고 한 것이다. 선과 악이 어떻게 한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에 신들이 관여됐다는 것은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허황된 주장이다. 그대는 자칭 불신자이면서 이단적인 주장을 퍼트렸다. 이에 성하께서 나에게 부여한 권한으로 즉각적인 죽음을 선고한다. 그대는 겸허히 교단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는가?”
“죽으라고요?”
“공개된 자리에서 그대의 주장을 철회한다면, 살길을 열어 줄 수도 있다.”
곰곰 생각하던 엘리오가 물었다.
“파비안 때문인 줄 알았더니, 처음부터 나를 목적으로 찾아왔던 거죠?”
“부인하지 않겠다. 그대의 이단적 발언이 대신관 성하의 귀에까지 전해진 연고로, 신관께서 나에게 조사를 명하셨다.”
“나는 그쪽 교단의 사람이 아니니까, 이단 소리는 안 했으면 하는데요?”
“그대가 불신자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교단의 가르침과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 이단이다.”
메타트론이 복잡한 눈으로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솔직히 그가 악신 샤이틴에 대해서만 떠들었다면 그냥 봐줄 의향도 있다.
하지만 마나 프트라스와 관계된 걸 건드린 게 문제다.
멀뚱멀뚱 성기사를 보던 엘리오가 입을 열었다.
“선과 악이 어떻게 한자리에 있을 수 있냐고 했죠? 교단은 우샤스 운드라가 악신 샤이틴의 편으로 넘어갔다는 걸 모르나 봐요?”
“불신자여, 그대가 그랜드 마스터라고 해서 교단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답이나 해 봐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당신들은 마나 프트라스님을 믿고 섬긴다면서요? 그럼 마나 프트라스님이 가르쳐 줬을 텐데. 왜 그 중요한 걸 모르죠? 혹시 소통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불신자인 줄 알았더니, 미친놈이었군.”
메타트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까지 수도 없는 심판을 했지만 저런 소리를 한 사람은 처음이다.
교단 성직자들의 믿음을 의심하다니?
더러운 자신이야 그런 의심을 받아도 싸지만 대신관 성하와 신관들은 다르다.
그분들은 그야말로 티끌만 한 흠도 없는 완전무결한 성직자들이었다.
“성기사라면서, 쌍욕은 하지 맙시다. 갑자기 천박해 보이잖아.”
말과 함께 엘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성기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싸웠던 어떤 인간들보다 강해 보였다.
물론 마족 군주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말이다.
그가 움직이자 열두 명의 성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메타트론은 무심한 얼굴로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성기사 아저씨들, 교단의 심판은 밖에 나가서 합시다. 이 가게 부서지면 변상해 줘야 하잖아. 교단은 부자라서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난하거든.”
엘리오가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메타트론을 보았다.
메타트론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성기사들을 이끌고 나갔다.
엘리오가 걸음을 떼자 파비안이 따라붙으며 말했다.
“죽이지는 마십쇼.”
“왜?”
“성기사를 죽이면 평생 암살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저도 반드시 보복당할 거고요.”
“성직자들 뒤끝이 그렇게 심해?”
“장난 아닙니다. 황제도 암살이 무서워서 교단은 안 건드리잖습니까.”
“싹 다 잡아서 법대로 처형하면 되잖아.”
“교단 암살자들은 처형을 순교로 생각합니다. 방법이 없어요.”
“징그러운 놈들이네.”
“성직자들은 잘 달래는 게 최선입니다.”
“알았어. 주먹으로 잘 달래 볼게.”
“순교자만 나오지 않게 하십쇼. 순교자 나오는 순간, 라고아 경은 몰라도…… 저는 진짜 죽습니다.”
“왜 갑자기 약한 소리를 하고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삶에 미련이 없어 보이던데?”
말과 함께 엘리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엘리오와 파비안이 밖으로 나가자 성기사 하나가 따라오라는 듯 몸을 돌려 걸어갔다.
성기사가 멈춰 선 곳은 북구의 거대한 광장이었다.
성기사들이 광장 중앙에 있던 시민들을 외곽으로 몰아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제도답게 마나석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엘리오가 광장 중앙에 도착하자 메타트론이 소리 높여 말했다.
“나 팔라딘 메타트론과 성기사들은 마나 프트라스 교단이 부여한 권한으로, 이단 궤설의 근원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심판한다!”
그러자 열두 명의 성기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크시도다! 마나 프트라스님의 권능이여!”
“악인과 이단을 멸하시리라!”
뚱한 얼굴로 성기사들이 하는 짓을 보던 엘리오가 맞받아쳤다.
“북부 슬래시 랜드와 공국 라티누스의 영주이며, 샤스트라 파라크티(구천현녀)의 사도인 나 엘리오 라고아가, 마나 프트라스 교단에 엄중히 경고한다! 마나 프트라스님의 이름을 팔아먹지 말고! 마나 프트라스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라는 말에 메타트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 너는 거짓의 아비다! 너 같은 불신자가 어찌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사도이겠느냐! 뭣들 하느냐! 사악한 자를 쳐라!”
메타트론의 명령이 떨어지자 열두 명의 성기사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신성력이 깃든 성기사들의 롱소드가 하얗게 빛났다.
그러자 엘리오도 마하담에서 ‘공허의 검’을 꺼내 들었다.
이윽고 엘리오와 성기사들이 맞부닥쳤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싸움은 허무하게 끝났다.
엘리오가 휘두른 ‘공허의 검’에 맞아 성기사들이 훌훌 날아간 것이다.
다행히 검면으로 가격당해 피가 튀지는 않았다.
그래도 충격이 컸던지 성기사들은 처박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단 일격에 성기사들이 제압당하자 메타트론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대단한 검술도 아니고, 그냥 장난치듯 휘두른 검면에 저런 꼴이라니!
‘성기사들의 검술 훈련을 더 혹독하게 시켜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그가 움직였다.
‘마나 프트라스시여! 부족한 종을 도우소서!’
그는 먼저 자신의 몸에 보호와 집중의 축복을 부여했다.
피부가 강철같이 단단해지고,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라고아 백작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집중의 축복은 단지 정신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팔라딘쯤 되면 시간의 흐름까지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그 앞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검술은 의미가 없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검술을 쓴다 해도 굼벵이처럼 느려 보이기 때문이다.
메타트론의 몸이 마치 블링크를 쓴 것처럼 ‘퍽!’ 하고 사라졌다.
곧이어 하얗게 빛나는 검날이 엘리오의 목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