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80
1380회. 왜 제국군이 종전을 준비해야 하지?
아도브 마탑은 메기스투스와의 만남 이후 타나토스의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마탑 한 개 층에 마련된 타나토스의 제작 시설은 삼대마탑이 보면 엑시티움의 제작 설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똑같았다.
핵심 소재만 빼고 다 같으니 아도브 마탑에서 제작 설비를 복제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아도브 마탑은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대량의 타나토스를 생산할 수 있었다.
아도브 마탑은 생산된 타나토스를 마젠타에 넘겼고, 마젠타는 그것을 일반 물품들 속에 섞어 남부 왕국으로 보냈다.
***
아드리아 왕국을 점령한 제국군은 살람 왕국에 쉐이드 왕과 아드리아 왕을 넘기라고 통보했다.
남부 왕국들과 전쟁 중이지만 살람 왕국을 쳐들어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까닭이다.
살람 왕국은 제국군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들어줄 수 없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저 침공의 명분 쌓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제국군은 아드리아 왕국을 점령한 지 사흘 후, 살람 왕국 국경선을 넘었다.
살람 왕국에 있는 남부 왕국군은 상당히 많았다.
살람 왕국의 5개 사단과 쉐이드와 아드리아 왕국에서 후퇴한 남부 왕국군 9개 사단, 그리고 드니로프 왕국에서 합류한 7개 사단까지 모두 21개 사단이나 된다.
그에 반해 제국군은 제1 집단군과 5개 전투 사단, 포병 여단이 전부였다.
숫자상으로 남부 왕국군이 3배나 많았지만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다.
여전히 기사단과 검방병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남부 왕국군은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제국군을 당해 내지 못했다.
국경에서 벌어진 단 하루의 전투에서 남부 왕국군은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
그야말로 남부 왕국군에는 악몽과도 같은 전투였다.
왕도 다르에스로 후퇴한 남부 왕국군은 11개 사단에 불과했다.
한편 쉐이드 왕국의 ‘노토스 전투’에서 대패한 뒤 우름 왕국 귀족들 사이에 반전 여론이 일어났다.
초급 지휘관이 될 귀족들은 ‘남부 왕국군의 6개 전투 사단이 제국군 1개 지원 사단만도 못한데,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우름 왕국에서 일어난 반전 여론은 동부와 서부 지역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다.
그러나 남부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살람 왕국은 아드리아 국왕의 신무기 개발을 믿고 전쟁 의지를 불태웠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왕국의 반을 빼앗긴 상황이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살람 왕국.
다르에스 인근.
원정군 총사령부.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원정군 총사령관인 루이스 프레이저 3세에게 말했다.
“살람 왕국을 제외하면 남부 왕국들의 전쟁 의지는 크게 약화된 상태입니다. 우름 왕국과 동부 지역은 종전을 바라는 귀족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다르에스까지 제국군에 점령당하면, 물 밑에 있던 종전 협상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겁니다. 그 전에 슬슬 종전 조건을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사령관이 삐뚜름한 눈으로 참모장을 보았다.
“그 이야기는 페로무로스에서 한차례 나왔던 것 같은데. 우리가 페로무로스를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실제로 그래서 평화 협정안 초안까지 마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남부 왕국군은 페로무로스는 물론 아드리아 왕국까지 빼앗겼지만 아직 항전의 의지를 꺾지 않고 있었다.
“그때는 아르테늄이 있었지만 지금 남부 왕국군은 더 이상 내세울 패가 없지 않습니까? 아르테늄의 생산마저 중단되었으니 남부 왕국군은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왜 제국군이 종전을 준비해야 하지?”
“예?”
“남부 왕국군이 끝났다면 우리는 그저 주워 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냐? 우리가 종전에 응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전하께서 바라시는 것은……. 설마 왕국의 멸망입니까?”
“로디나 대륙에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들을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말이 틀렸나?”
“…….”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대답을 망설였다.
오십 년 전의 제국 전쟁도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
물론 끝까지 갈 수도 있지만 양측의 피해가 만만치 않아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국군에 엑시티움이 있다지만 그게 만능은 아니다.
지금이야 제국군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몰아붙이고 있지만, 남부 왕국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총병을 중심으로 군대를 개편하는 남부 왕국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엑시티움의 파괴력은 최강이지만 마력총이라는 한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제대로 준비된 남부 왕국군 총병 부대를 만나면 제국군에도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제국군의 희생도 불가피한 것이다.
“전하, 엄밀히 말해 지금은 개전 초기라 할 수 있습니다. 남부 왕국군이 육성한 총병 부대가 전장에 투입되면 제국군도 상당한 희생을…….”
“아! 그러고 보니 참모장은 아직 듣지 못했겠군. 얼마 전 마력 통신으로 연락을 받았다. 타불라 마탑에서 골리앗의 개량에 성공했다는군.”
“개량이라 하심은?”
“지금까지 골리앗은 거대한 칼을 들고 돌격만 하지 않았나?”
“그랬습니다.”
“강철 골렘은 눈에서 ‘죽음의 빛’을 쏘는데 우리는 육탄 돌격이라니 우스운 꼴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장착할 무기가 딱히 없지 않습니까?”
“양손에 마력총을 달고, 팔에 삽입한 마력탄을 자동으로 장전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일반 마력탄으로는 골리앗의 장갑을 뚫을 수 없으니……. 남부 왕국이 총병 부대를 투입한다 해도 전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어둡던 참모장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전하의 말씀대로 종전 협상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남부 왕국군에 골리앗을 파괴할 수단이 없으니 전쟁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음 달에 공급되는 골리앗부터 개량형이라고 하니……. 기대해 보아도 될 것이다.”
“그 전에 살람 왕국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골리앗이 도착하기 전에 살람 왕국을 끝장내겠다는 다짐이다.
참모장의 충성스러운 발언에 황태자는 기분 좋게 웃었다.
다음 날 아침.
제국군 포병 여단은 살람 왕국 왕성인 다르에스에 마력포를 발사했다.
제국군의 진격을 알리는 포성이었다.
다르에스에서도 응사했지만 제국군 주둔지에는 닿지 않았다.
제국군 마력포의 사정거리가 조금 더 길었던 것이다.
오전 내내 계속된 포격에 마침내 다르에스의 한쪽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제국군 제1 집단군이 다르에스로 진격했다.
남부 왕국의 검방병과 기사단이 조금 저항하는가 싶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제1 집단군 사령관 이반 웨일스 백작이 참모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예, 사령관님.”
참모인 빅터 로저 자작이 급히 사령관의 곁에 바싹 붙었다.
“적의 저항이 약한 것 같지 않나?”
“잘 보셨습니다. 포격이 계속되는 동안 은밀하게 후퇴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면 승부를 피한다고 봐야겠지?”
“총병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하아! 총병이 전쟁을 좌우하는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이전 전쟁까지만 해도 마력총은 석궁보다 조금 나은 취급을 받았다.
소드 익스퍼트가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총병을 제압했다면, 소드 마스터들은 마나를 이용해 아예 마력탄을 튕겨 낼 정도였다.
마법사들은 더했다.
마력탄은 2서클 마법인 실드를 뚫지 못했고, 5서클 마법인 강화 실드는 마력포탄까지 막아 냈으니까.
마법사들은 디사이플(Disciple, 1―3서클)만 돼도 마력총 앞에서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소드 익스퍼트나 4서클 마법사쯤 되면 총병 부대를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제국과 남부 왕국의 군대가 기사단과 검방병을 총병으로 바꾸지 않았던 이유다.
그러던 것이 엑시티움 하나로 변했다.
총병이 소드마스터는 물론 대마법사까지 죽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들 그랬을 겁니다. 이 모든 변화를 예측하신 황태자 전하가 대단한 거지요. 대륙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가 되실 겁니다.”
“어허! 제도에 황제 폐하께서 계신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지만 나무라는 것치고는 표정이 온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1 집단군의 지휘관들은 모두 황태자를 따르는 사람들인 까닭이다.
특히나 사령관인 그와 참모는 황태자의 사조직인 ‘빅원’의 일원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전쟁이 끝나면 양위를 하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황태자 전하를 원정군 총사령관에 임령한 것도 치적을 쌓게 하시기 위함이라고요.”
치적이 없거나 약한 황태자는 황제가 되어서도 정적들의 견재를 심하게 받는다.
심할 경우 양위를 받기 전에 황태자의 자리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내세울 게 마땅치 않은 황태자일수록 자리가 위태로웠다.
황태자는 천재로 소문이 났지만 드러낼 만한 게 없었다.
심지어 ‘재주는 많으나 쓸 만한 재주가 없다’는 수치스러운 소리까지 듣고 있다.
이 모두 검사인 황태자가 마법에 한눈을 팔다가 생긴 일이다.
황태자는 검술로 소드 익스퍼트고, 마법은 4서클이다.
서른세 살의 나이를 생각하면 대단한 경지이나 각각을 놓고 보면 부족하다.
차라리 한 우물만 파서 소드 마스터나 대마법사가 됐다면 ‘재주가 없다’는 치욕스러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을 터였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오늘 밤 편히 쉬려면 도시나 샅샅이 수색해라. 남부 왕국의 잔당들을 남겨 둬서는 안 될 것이다.”
“예.”
군례를 올린 빅터 로저 자작이 한창 수색 중인 전방의 부대원들에게 달려갔다.
***
살람 왕국으로 진격한 제국군의 승전 소식은 제국에도 알려졌다.
원정군이 다르에스를 점령하자 사람들은 황태자를 칭송했다.
“역시 황태자 전하시다!”
“살람 왕국을 마지막으로 남부 왕국과의 전쟁도 끝날 것이다.”
“남부 왕국이 전쟁 배상으로 강철 골렘을 줄 예정이라고 한다.”
“어비스의 소유권도 제국에 넘긴다고 한다.”
술집과 연회장에서 제국의 사람들은 희망에 찬 예측을 쏟아 냈다.
론디니움 제국.
수도 페트로폴리스 북구.
여관겸 술집 페르모사 에스텔라.
초저녁.
하루 종일 나가 있던 파비안이 지친 얼굴로 돌아와 엘리오 앞에 앉았다.
“아이고! 난리네요, 난리야.”
“이번에는 또 뭔데?”
“제국군이 살람 왕국을 완전히 해방시켰답니다.”
“해방? 점령했다는 말이지?”
“예.”
고개를 끄덕이던 파비안은 빈 잔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남부 왕국군의 상태는?”
“초반에는 엄청나게 피해를 입었다는데……. 뒤로 갈수록 그런 소식은 없습니다. 싸우지 않고 땅을 내어 주면서 물러나는 느낌입니다. 오마르 백작님과 하워드, 크레아는 무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없으면 별일 없는 거야. 제국군도 머리가 있는데 건드리겠냐? 그나저나 종전 협정은 안 한대?”
“제국에서는 슬슬 말이 나오고 있는데, 정작 남부 왕국은 조용합니다. 자존심에 끝까지 버티는 건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탑 쪽은 조사해 봤어?”
“그게 좀 어렵습니다. 마탑들이 아예 방문자를 받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텐데……. 계속 입구에서 막히고 있습니다.”
“네가 누군지 알고 막는 거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방문자 자체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마탑 주변을 돌아다니다 들은 소문인데요. 마탑에 엄청난 양의 마력총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마력총?”
엘리오가 그 의미를 곱씹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천천히 다가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엘리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북부 에스카토스 왕국의 궁정 마법사 오스번 칼로스 자작이었다.
오스번 칼로스 자작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