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85
1385회. 그걸 개발한 마공학자가 아직까지 살아 있나?
마공학자가 늙어 죽었을 거라는 엘리오의 말에 파비안이 애매한 얼굴로 말했다.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의 존재감이 강렬하다 보니 자꾸 그분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엑시티움을 개발한 마공학자 말입니다. 그가 오십 년 전에 젊었다면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그게 아니라도 바디 체인지를 해서 수명이 늘어났을 수도 있고요. 라고아 백작님도 일반인보다는 훨씬 오래 사실 거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일찍 죽은 걸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야 엘리오는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바디 체인지가 아니더라도 그 마공학자가 우샤스 운드라의 화신이면 살아 있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파비안의 말처럼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생긴 착오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타불라 마탑에서 개발한 것이니 레올라 후작을 찾으면 알아봐야겠다.”
고개를 끄덕이던 파비안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백작님.”
“응?”
“혼란의 선봉장을 처리하면 말입니다.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건 왜?”
“아니, 가시기 전에 북부 왕국을 좀 도와주실 수 없나 해서요.”
“글쎄다. 네 마음은 이해하는데……. 그건 내가 관여할 전쟁이 아니야. 내게 주어진 권한을 많이 벗어난 일이기도 하고.”
엘리오는 복잡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솔직히 금사와 천자마 외에 다른 사람들을 죽인 것도 부담스러웠다.
이세계의 인과율이 아닌 자신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들은 악인이라 그랬다 쳐도, 전쟁은 다르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그거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업(業)을 쌓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파비안은 더 묻지 않았다.
엘리오는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인 투명한 사람이다.
게다가 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라고아 백작을 보면 이 세상 사람 같다는 생각이 안 든다.
라고아 백작은 인간의 몸으로 신들을 죽였고, 육화한 여신과 사랑을 나누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육화한 신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백작은 엑시티움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여러 차례 넘겼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애처가요 딸 바보다.
신과 인간의 특성을 모두 가진 존재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그에게 전쟁이란 그저 학살 행위에 불과할 뿐이니 내키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를 막아 주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랜드 마스터 역시 반신 취급받는 존재라 큰 부담은 없을 터였다.
‘게다가 그건 일방적인 학살도 아니고.’
파비안은 때가 되면 북부 왕국을 위해 그것만이라도 부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다음 날 정오.
아펜델 산 초입에 마차 한 대가 달려와 멈춰 섰다.
이윽고 마차에서 두 청년이 내리자 마부는 마차를 가까운 공터로 몰고 갔다.
파비안이 멀어져 가는 마차를 보며 구시렁거렸다.
“아니, 무슨 마차 하루 쓰는 데 3실버를 받습니까? 페르모사 에스텔라의 숙박비도 하루에 1실버인데.”
“북부에서는 얼만데?”
“1실버 조금 넘습니다. 제도는 거의 두 배를 받네요. 돈 없는 사람은 제도에서 못 산다고 하더니…….”
“나 아직 제국 백작이다. 마차 하루 빌리는 거 얼마나 한다고.”
사실 엘리오는 금전 감각이 없었다.
산채 생활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노략질이니 말할 것도 없고, 산적을 그만둔 뒤로는 ―어쩌다 돈이 필요할 때면― 가볍게 매검(賣劍)만 해도 기천냥이 생기니 부족함을 몰랐다.
이세계에 와서는 처음부터 병영 생활을 해서 돈 나갈 일이 없었다.
히르헤라를 떠난 뒤로 지금까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재정을 책임졌다.
그러니 마차 임대료가 하루에 3실버라 해도 파비안처럼 분개하지 않았다.
“백작님, 혹시 저 모르게 영지를 담보로 돈을 빌린 적이 있습니까?”
“내가 돈은 안 빌리고 산다. 없으면 안 쓰고 말지 돈을 왜 빌리냐?”
“올바른 마음가짐이십니다. 부디 고향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변치 마십쇼.”
“내가 빚이라도 떠넘기고 갈까 봐?”
“에이, 설마요. 저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 아닙니다. 다 백작님 생각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으셔야죠.”
“영지를 담보도 돈 땡겨 쓰면 더러운 추억이 되는 거냐?”
“제가 갚아 나가야 하니까 좋은 소리는 안 나오겠죠.”
“너는 아주 잘살 것 같아.”
“감사합니다.”
파비안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던 엘리오가 멈춰 섰다.
“잠깐. 레올라 후작이 어디 있는지 탐색을 좀 해 봐야겠다.”
말을 마친 엘리오는 아펜델 산에 영기를 방사했다.
어비스와 달리 마나 프트라스의 세계는 거칠 게 없었다.
한쪽 손을 하늘 위로 들고 서 있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동쪽 능선인가.”
엘리오를 마검사로 알고 있는 파비안은 놀라지도 않았다.
“산이 제법 높은데 정상 부근은 아니겠죠?”
“정상에 조금 못미처에 있지만 걱정 마라. 우리에게는 토르누비스(운종술)가 있잖냐.”
곧이어 엘리오가 운종술을 펼치자 구름이 발아래 몰려들었다.
엘리오와 파비안은 거침없이 구름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태운 구름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이내 산 위로 날아갔다.
10분쯤 날아갔을까?
쉬지 않고 구름 아래를 살피던 파비안이 짧게 소리쳤다.
“저기 고성입니다!”
잠시 후 거대한 고성 안마당에 구름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엘리오는 거침없이 고성 안으로 들어갔다.
파비안이 급히 그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속삭였다.
“그렇게 대책 없이 막 가셔도 됩니까? 그래도 레올라 후작은 6서클이나 되는 마법사인데.”
“그사이 마구스(7서클 대마법사)라도 됐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후작의 마법은 신경 안 써도 돼.”
엘리오는 과거 타불라 마탑에서 레올라 후작과 싸워 봤기에 무덤덤했다.
그러나 고성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네요? 탐색 마법으로 고성을 찾은 겁니까?”
“아니, 여기서 제법 큰 마나의 파장이 느껴졌어. 지금도 느껴진다고.”
“그런데 왜 아무도 없습니까? 혹시 텔레포트로 달아난 거 아닐까요?”
“아직도 남아 있다니까. 그런데 왜 안 보이는지 모르겠네.”
“마법으로 연구실을 숨겼나 봅니다. 마법사들은 개인 연구실을 그런 식으로 잘 숨긴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예, 어디서 느껴지십니까?”
“여기.”
엘리오가 검지 손가락으로 석벽을 가리켰다.
전문가처럼 석벽을 두드리며 다니던 파비안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가 입구인지 못 찾겠는데요?”
“아유! 저걸. 난 또 뭐 좀 아나 보다 했더니만. 잠깐이라도 기대한 내가 바보지.”
“마법을 익힌 적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혹시나 해서 본 것뿐입니다.”
“야, 비켜 봐.”
엘리오의 말에 파비안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엘리오는 검결지를 관자놀이에 대고 통천안(通天眼)의 주문을 외웠다.
그의 눈에 붉은빛이 맺혔다.
“거기였구나.”
말과 함께 엘리오는 벼락같이 ‘공허의 검’을 꺼내 휘둘렀다.
가가가각―!
검기에 석벽이 대각선으로 길게 갈라졌다.
그러다 어느 지점을 통과한 순간, 갑자기 번쩍하고 섬광이 터졌다.
폭발은 아니었다.
섬광과 함께 석벽이 출렁거리더니 급기야 검은 수정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절반으로 잘린 검은 수정구는 석벽의 환영을 다 빨아들이지 못했고, 이내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쨍그렁―!
남아 있던 석벽 모양의 환영이 멈칫하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환영 뒤편에서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라고아 백작? 클라우드 남작? 내 개인 연구실에는 어쩐 일이죠?”
파비안은 복잡한 눈으로 후작을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작이 소피아를 죽게 한 것은 아리에트 양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아리에트를 사랑했던 그로서는 원망도 분노도 쏟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엘리오는 다르다.
그는 소피아 남작을 죽음으로 내몬 후작에게 분노한 상태였다.
“아드리아 왕국의 재상에게 이야기 다 듣고 왔으니까, 주접 떨지 마세요.”
천박한 라고아 백작의 말에 레올라 후작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법사들은 수천 년간 고귀한 존재로 군림했고, 특히나 마탑 탑주는 어딜 가도 왕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런 자신을 잡범 취급하니 기가 막혔다.
엄밀히 말해 자신이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니다.
대귀족이 정적을 암살하는 것은 오랜 관행으로 걸려도 그만이었다.
심지어 타불라 마탑 탑주가 남부 왕국의 남작 하나를 죽인 일은 제국 법정까지 갈 일도 못 된다.
법으로 따져도 자신은 무죄였다.
“아드리아 왕국의 재상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요. 제국은 물론 아드리아 왕국의 법정에서도 무죄를 받을 거예요.”
뻔뻔한 레올라 후작의 말에 엘리오는 일순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해도 정말 법관들이 무죄라고 할 것 같아서다.
“그래. 당신 말대로 법관은 돈 있고 권력 있는 것들 편이니 무죄라고 할 테지. 그런데 말야. 이걸 어쩌지? 나는 당신을 재판정에 세울 마음이 없거든?”
“사사로운 복수야말로 문명 사회에서 큰 죄가 된답니다.”
“그거 알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라. 나는 그랜드 마스터로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그러시다면 더더욱 법과 규범을 지키시겠군요.”
레올라 후작은 애써 차분한 얼굴로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그녀에게 라고아 백작은 언제고 미쳐 날뛸 수 있는 흉포한 야수였다.
“내가 생각하는 책임은 당신과 좀 달라.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그거야말로 원초적인 하늘의 법이라 믿지.”
“그, 그건 야만의 시대에나 통하는 규칙이에요. 인간은 그보다 훨씬 문명화되었어요.”
“돈과 권력을 문명화라고 포장하지 마. 당신이 타불라 마탑의 탑주가 아니었어도 무죄를 받을 것 같아?”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으로 나는 무죄예요.”
“상관없어. 당신을 법정에 세울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
“나, 나를 죽일 건가요?”
“당신의 태도를 보고 결정할 테니까, 지금부터 대답 잘해.”
“하아! 좋아요. 물어보세요.”
레올라 후작은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라고아 백작이라는 사람은 도무지 모르겠다.
소피아 남작이 혈육도 아닌데 왜 저렇게 자기 일처럼 분노하는 것일까?
“타불라 마탑에서 엑시티움을 개발했다고 들었어. 그걸 개발한 마공학자가 아직까지 살아 있나?”
질문이 엉뚱한 데로 튀자 당황한 레올라 후작은 눈을 끔뻑였다.
“태도가 좋지 않군.”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레올라 후작은 서둘러 답했다.
“살아 있어요.”
“이름은?”
“메기스투스.”
“그에 대해 말해 봐.”
“타불라 마탑에서 배출한 최초의 아크 메이지예요. 지금은 마공학 연구소가 아니라 개인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어요.”
“고대의 마법 실험실이라는 곳에서 말인가?”
“그건 어떻게…… 혹시, 아리에트 알바노가 말했나요?”
“재밌는 아가씨더군. 고대의 마법 실험실은 어디에 있지?”
“……위치는 저도 몰라요. 메기스투스는 의심이 많은 마공학자라 그것을 빼앗길까 봐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그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매달 월말에 골리앗의 재료인 소울 스톤을 가지고 마공학 연구소로 와요. 소울 스톤은 3세대 골리앗의 핵심 재료로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죠. 고대의 마법 실험실에서 제작해 마공학 연구소에 제공해 주고 있어요.”
“남부 왕국에서 제국군이 쓰고 있다는 쇳덩어리가 3세대 골리앗인가?”
“맞아요. 마공학 분야에서 메기스투스를 따라갈 마공학자는 없어요.”
“재밌군.”
엘리오의 눈이 빛났다.
이세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들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니!
어쩌면 그가 ‘혼란의 선봉장’, 우샤스 운드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