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87
1387회.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나요?
대수림.
노천 광산.
어비스 출입 관리소.
이른 아침.
목조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흐아암!”
기지개를 켜던 중년 남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어비스를 향했다.
“어?”
고개를 갸웃하던 남자가 어비스 출입 관리소의 동료를 불렀다.
“요네츠! 잠깐 나와 봐!”
잠시 후 부스스한 몰골의 청년이 그의 한 걸음 뒤에 섰다.
“왜요?”
“어비스의 입구를 봐! 공중에 뜬 것 같지 않나?”
요네츠는 조장인 사칼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그러네요? 어제까지 지면에 붙어 있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런데 지금은 무릎 높이까지 올라간 것 맞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예, 어제는 분명히 지면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게 올라가 있지? 밤새 돌풍이라도 불었던 건가?”
“에이, 조장님. 어비스 출입구는 비물질인데 바람 분다고 떠오르겠습니까?”
“나도 알아. 하도 기가 막혀서 해 본 소리야. 그나저나 더 떠오르지는 않겠지?”
“더 떠오르면 큰일 납니다. 일꾼들이 나오다 떨어지면 다리가 부러질 겁니다.”
용병과 모험가 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일꾼들은 자칫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어비스의 일꾼은 지금도 부족한데 부상자까지 생기면 곤란했다.
“이런 젠장. 지금 당장 어비스 관리 협회에 알리고 와. 계단을 만들든, 단상을 만들든 알아서 조치를 취해 주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장님.”
“왜?”
“저기서 더 위로 올라가지는 않겠죠?”
“올라갈지 내려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걸 만든 신의 마음이지.”
“우샤스 운드라님요?”
그러자 사칼이 눈을 찡그리며 요네츠에게 되물었다.
“자네 아카데미 안 나왔나?”
“예.”
“그랬군. 누가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어. 계속 어비스 출입 관리소에서 일하려면 관련 공부를 좀 해 두는 게 좋을 걸세.”
“조장님은 어디 아카데미 나오셨습니까?”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아카데미를 가? 나는 독학으로 배웠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비스 관리 협회에 다녀오게.”
“예.”
요네츠는 조장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노천 광산을 거슬러 올라갔다.
요네츠가 시야에서 멀어지자 사칼은 다시 어비스의 입구를 보았다.
다시 보니 크기도 어제보다 조금 더 커진 느낌이다.
사무소 안으로 들어간 사칼은 자를 가지고 나와 어비스의 크기를 쟀다.
5미터 폭이었던 어비스가 무려 1미터나 더 커져 있었다.
사칼은 기록지에 떠오른 높이와 커진 길이를 기록했다.
“설마 저 위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사칼의 시선이 노천 광산 위로 보이는 하늘을 향했다.
***
론디니움 제국.
수도 페트로폴리스 중구.
월말이 되자 엘리오는 새벽부터 일어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위해 파비안이 아침 식사를 날랐다.
엘리오는 타불라 마탑 입구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파비안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라고아 백작과 오래 동행했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신들조차 죽이던 그가 단지 사람 하나를 찾는 데 저렇게 필사적이라니!
“저어, 백작님. 메기스투스가 우샤스 운드라면 말입니다. 백작님은 그를 제거하고 바로 떠나실 겁니까?”
“왜?”
마탑에 시선을 고정한 엘리오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송별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가시기 전에 오마르 백작님과 하워드, 크레아도 봐야 하지 않습니까?”
“만나 보고 가면 되지. 그게 뭐 어렵다고.”
“가시면 다시 안 오십니까?”
“안 와.”
단호한 라고아 백작의 말에 파비안이 입술을 삐죽였다.
“백작님은 우리와 헤어지는 게 섭섭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시원섭섭하지.”
“예? 시원이라고요? 우리가 백작님에게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이 세계는 상계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썩었어. 상계가 이렇게 개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이런 개차반 같은 세계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시원할 수밖에.”
파비안은 반박하지 못했다.
하기야 그동안 라고아 백작이 당한 걸 생각하면 욕을 할 만도 하다.
물론 백작은 한 대를 맞으면 열 대로 되갚아 주었지만 말이다.
엘리오가 오전 내내 자리를 지켰지만 메기스투스는 오지 않았다.
그러다 정오 무렵.
갑자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엘리오가 또 무슨 일이 났나 의아해할 때다.
양손 가득 먹을 걸 들고 돌아온 파비안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백작님! 총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제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총동원령?”
“예. 남부 드니로프 왕국 국경에 있던 제국군이 살람 왕국 왕성까지 밀렸답니다. 황태자도 부상을 당했다네요?”
“황태자가? 난리 났겠네.”
“지금 제국령 국경선이 전부 봉쇄됐답니다. 50세 이하에 영지병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징집 대상이랍니다.”
“머릿수로 밀어 보겠다는 거야?”
“머릿수뿐이 아닙니다. 지금 제국령에 있는 모든 마탑에서 엑시티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마력탄 대신에 엑시티움을 쓰게 할 거랍니다.”
“돈이 그렇게 많대?”
“남북 왕국이 타나토스로 맞대응하니까 물량으로 밀겠다는 거죠. 초반에 승기를 잡으려고 그러는 걸 겁니다.”
“나중에는 다시 물량 조절을 하겠지?”
“당연하죠. 아무리 제국이라도 엑시티움을 무한으로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어 가겠군.”
“그래도 황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겁니다.”
“북부의 전황은 어떻대?”
“전선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직은 팽팽한가 봅니다. 그런데 크나우프 대공이 북부 전선에 투입되면……. 바로 뚫릴 겁니다.”
파비안은 말하다 말고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총동원령이 떨어졌으니 크나우프 대공의 북부행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투입되면 북부 전선은 하루도 버티지 못할 터였다.
무심한 눈으로 타불라 마탑 앞을 응시하던 엘리오가 물었다.
“세라 경에게서 연락은 왔냐?”
“아직 없습니다. 한창 전투 중일 텐데 편지 쓸 틈이나 있겠습니까?”
“걱정되냐?”
“당연하죠. 저 때문에 그렇게 됐는데……. 만에 하나 세라 경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는 수도사가 될 생각입니다.”
“그것도 괜찮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라 경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셔야죠.”
“그렇게 걱정이 되면 세라 경의 곁으로 가 있든가.”
그러자 파비안이 발끈했다.
“제가 무슨 염치로 그녀를 찾아갑니까?”
“그건 알아?”
“백작님, 저도 사람입니다.”
“세라 경이 용서해 준다면 북부로 가서 함께 싸울 거냐?”
“백작님에게 더 이상 제 도움이 필요 없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으흥.”
엘리오가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파비안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제가 백작님 옆에 없어도 되겠습니까?”
“그 전에 세라 경에게 용서부터 받아야지. 내 대답은 그 후에 들어도 늦지 않아.”
“하아!”
영 자신이 없는지 파비안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엘리오가 놀리듯 말했다.
“네가 소드 익스퍼트가 돼도, 총사보다 못하다는 건 알지? 이젠 세라 경 같은 총사의 시대다. 앞으로는 승작도 총사가 더 빠를걸?”
최근 전투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 총사는 기사의 보조 역할을 수행했다. 기사가 전투를 함에 있어 후방에서 엄호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젠 위치가 바뀌었다.
기사는 검방 부대와 함께 총병 부대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기사를 대신해 총사들이 총병을 지휘해 전투를 이끌어 가니, 총사들이 공적에서 기사를 앞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제 기사가 빛을 보는 순간은 패전으로 후퇴할 때뿐이다.
총병 부대가 자리를 빠져나갈 때까지 기사들이 몸으로 버텨 주어야 한다.
하지만 패한 싸움에서 피를 흘려 봐야 공적이 될 리 없다.
엘리오의 말은 그런 현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듣기가 불편했던지 파비안이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메기스투스가 안 나타나면 어쩌실 겁니까?”
“나타나겠지.”
“안 나타나면 마공학 연구소를 찾아가 마공학자들을 만나 보십쇼. 어쩌면 탑주보다 동료인 마공학자들이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후작은 월말이라고 했지만 가끔 날짜를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소울 스톤의 제작이 늦어지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파비안의 말에 엘리오는 굳어 있던 몸을 살살 풀었다.
새벽부터 집중하고 있었더니 삭신이 쑤셨다.
오후 3시쯤 되니 어제처럼 하늘이 시커멓게 변해 갔다.
날이 흐려지자 마탑에 드나드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안 되겠다. 더 가까이 가서 지키고 있어야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엘리오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엘리오는 타불라 마탑 앞의 노점상을 향해 다가갔다.
온갖 잡화를 팔고 있던 초로의 노인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나리,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좀 볼게요.”
“예, 예, 없는 게 없으니 잘 찾아보십쇼. 혹시라도 따로 구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구해다 드릴 수 있습니다.”
엘리오는 쪼그리고 앉아 물건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손만 그럴 뿐 온 신경은 마탑 출입구에 쏠려 있었다.
“그건 50쿠퍼입니다. 그건 80쿠퍼고, 그건 1실법니다.”
노인이 계속 가격을 말하자 엘리오가 짜증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가격은 내가 고르고 나면 가르쳐 주세요.”
“예, 예. 그러시지요. 참고로 지금 들고 계신 물건은 90쿠퍼까지 드릴 수 있습니다.”
노인은 악착같이 말하고 짐짓 딴청을 부렸다.
고요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3시부터 어두워지더니 4시가 되자 한밤중처럼 캄캄해졌다.
사위가 어두워지자 노인은 가판대 주변에 유등을 밝혔다.
“어이쿠!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한여름에 무슨 해가 4시에 진답니까? 말세야 말세.”
엘리오가 마탑 출입구를 보며 물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나요?”
“없다마다요. 북부는 여섯 달 동안 스물네 시간이 대낮이고, 나머지 여섯 달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중부와 남부는 아침, 점심, 저녁이 분명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4시만 돼도 이 모양입니다. 3시부터 어둑어둑했으니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일찍 해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말세가 오는 건 아닌지 겁이 나네요. 저야 뭐 다 살았지만, 나리 님처럼 앞날이 창창하신 분들은 조금 억울하시겠습니다.”
“…….”
마탑 입구를 보는 엘리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전쟁이 혼란으로 치달을수록 해가 빨리 지다니 생각할수록 기이했다.
‘이러다 진짜 세상이 망하는 거 아냐?’
오늘 총동원령이 내려졌으니 전쟁은 더 격화될 게다.
‘아 몰라. 난 우샤스 운드라만 잡으면 돼.”
이 세계가 망하는 건 전적으로 이 세계의 탓이다.
망해도 싸다.
귀족은 노예를 가축 취급하고, 황제와 왕은 백성들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한다.
이미 한차례 구주를 경험했기에 상계의 고아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의 도와 덕이라는 게 있지 않나.
하지만 자신의 눈에 비친 이 세상은 밑바닥이 없는 나락이다.
잠시 후, 한 치 앞도 구분하기 어렵게 되자 거리가 한산해졌다.
총동원령의 여파로 도시는 고요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노인은 구시렁거리며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엘리오는 들고 있던 물건을 계산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메기스투스가 오지 않았으니 마공학 연구소를 방문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