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89
1389회. 북부의 밤이 이렇게 빠르오?
남부 살람 왕국.
왕도 다르에스.
이른 아침.
다르에스 앞의 광활한 평원에 남부 왕국군이 새까맣게 밀려왔다.
남부 왕국군은 다르에스의 성문 앞에 보란 듯 진지를 구축했다.
다르에스 성.
방책 뒤의 통로에서 성 밖을 응시하던 황태자가 기가 막힌 듯 중얼거렸다.
“저것들이 대놓고 우리 선형진(line formation)을 따라 하고 있군.”
황태자는 한쪽 팔에 붕대를 감아서 그런지 상당히 처량해 보였다.
옆에 있던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설명하듯 말했다.
“아나토르에서부터 적의 보병들이 마력총으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동안 적들이 선형진에 당했으니 따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선형진은 모든 총병들이 ―가로로 길게 늘어선― 선(line)을 유지한 채 마력총 사정거리 내에서 전면전을 펼치는 다소 무지막지한 전투법이다.
화력이 극대화된 선형진의 파괴력은 적진을 단숨에 녹려 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그럼 이제 제국군의 이점이 사라진 건가?”
“아직 마력포의 사거리는 우리 제국군이 이십 미터 정도 앞섭니다.”
“이십 미터라고 해 봐야 전투에서 한두 발 더 쏘는 게 전부잖나.”
전투가 벌어지면 양측 군대는 서로를 향해 마력총을 쏘며 전진한다.
남부 왕국군만 오는 게 아니라 제국군도 앞으로 나아간다.
제국군이 남부 왕국 마력포 사거리까지 전진하면 더 이상 사거리의 우위는 의미가 없게 된다.
마력포 한두 발 쏠 시간이면 전열 보병이 이십 미터를 전진하니, 그 뒤로는 사거리의 우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했다.
“적군에 비해 아군의 숫자가 적습니다. 한두 발이라도 지금은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투 개시가 언제라고 했지?”
“정오입니다.”
황태자는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그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제국군의 준비가 미흡해 시간을 끌수록 남부 왕국군에 유리한 까닭이다.
남부 왕국들의 지원 부대가 더 합류하기 전에 주력을 분쇄해야 했다.
제국군은 11시쯤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남부 왕국군은 제국군이 성 밖으로 다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제국군이 성안으로 달아날까 봐 기다리는 것이다.
제국군과 남부 왕국군의 팽팽한 대치가 시작됐다.
그러다 정오가 되자 나팔 소리와 함께 제국군 전열 보병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에 맞춰 남부 왕국군 전열 보병도 움직였다.
양측 전열 보병의 움직임과 맞물려 제국군 진영에서 마력포 소리가 울렸다.
꽝! 꽝! 꽝! 꽈앙―!
포탄이 남부 왕국군의 선두에 떨어졌다.
포탄의 절반은 빈 땅을 때렸지만 나머지 절반은 남부 왕국군 머리 위로 떨어졌다.
폭발음과 함께 남부 왕국군의 팔다리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그래도 남부 왕국군 전열은 꾸역꾸역 대오를 유지한 채 걸어갔다.
두렵다고 여기서 이탈하면 독전관의 마력총에 맞아 죽기 때문이다.
뒤이어 남부 왕국군의 마력포도 불을 뿜었다.
이십 보쯤 전진하던 제국군 선두에 포탄이 내리꽂혔다.
사거리는 제국군이 길었지만 마력포 숫자는 남부 왕국군이 앞선다.
남부 왕국군 전열에서 일어났던 일이 제국군 전열에서 반복됐다.
포격은 전진하던 양측 전열이 마주칠 즈음 약속한 듯 멈췄다.
포격의 정밀도가 떨어져 자칫 아군까지 피해를 볼 수 있으니 멈춘 것이다.
상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총병들의 사격이 시작됐다.
그때 제국군 후미에서 하늘로 불덩어리가 날아올랐다.
저 유명한 파이어 볼이었다.
포병 여단 예하의 마법 병단이 움직인 것이다.
포성이 멎자 안도하던 남부 왕국군 중앙에 파이어 볼이 작렬했다.
퍼엉! 퍼엉! 퍼엉!
묵직한 폭발음과 사람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불길에 휩싸인 총병들이 땅바닥을 굴러다녔다.
중앙의 전열이 한순간 흐트러졌다.
그걸 본 남부 왕국군 사령관 사비에르 라미네스 공작이 소리쳤다.
“마법 병단이다! 승리 군단의 강철 골렘을 투입해서 마법사 놈들을 없애라고 해!”
그러자 참모장 아이작 반릿 백작이 반대했다.
“안 됩니다! 마법 병단을 호위하는 기사단이 엑시티움으로 무장했습니다. 몇 기 안 남은 강철 골렘만 잃게 될 겁니다.”
“그럼? 마법 병단이 활개 치는 걸 구경만 하자는 건가?”
“제국군 후미에 있으니 마력포로 대응하는 게 낫습니다.”
“후미라도 거리를 조정하는 단계에서 아군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질 거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분명히 아군 머리 위로도 떨어질 게 뻔했다.
“한두 발 맞더라도 그편이 낫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마법 병단을 없앨 기회입니다.”
참모장의 확신에 찬 말에 사비에르 라미네스 공작은 흔들렸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마력포에 한두 발 맞는 게 파이어 볼에 계속 두드려 맞는 것보다 나을 터였다.
“제길, 어쩔 수 없나. 포병대에 마법 병단을 목표로 포격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참모장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남부 왕국군 후미에서 다시 마력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꽝! 꽝! 꽝! 꽈앙―!
곧이어 초탄이 남부 왕국군 전열을 뒤흔들었다.
사비에르 라미네스 공작은 이를 악물고 전방을 응시했다.
운 좋게 두 번째 포탄은 제국군 진영에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포탄부터 마법 병단 위로 떨어져 내렸다.
마법 병단이 메뚜기처럼 사방으로 튀어 달아나는 게 보였다.
당연히 파이어 볼도 멈췄다.
그래도 포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어렵게 찾은 포격 지점이니 그냥 퍼붓기로 한 모양이다.
집중 포격으로 마법 병단 주위가 초토화됐다.
더 이상 탄착 지점에 사람이 보이지 않을 즈음 포격도 멎었다.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원정군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황태자를 잡아끌었다.
그의 어깨가 피로 물들었을 정도로 제국군 피해는 막심했다.
원정군 총사령관이자 황태자인 루이스 프레이저 3세가 상체를 뒤틀었다.
“놔라! 이 자리에서 싸우다 죽겠다!”
말과 함께 황태자는 보검을 빼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빅터 로저 자작이 그런 황태자의 허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전하! 전쟁에서 패하는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전하를 잃으면 원정군이 적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다음 기회에 설욕하실 생각을 하십시오!”
“무엄하다! 놔라!”
황태자가 롱소드 퍼멀(손잡이 끝)로 빅터 로저 자작의 머리를 찍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빅터 로저 자작은 팔을 풀지 않았다.
그러자 극도로 흥분한 황태자는 롱소드로 참모를 찌르려 했다.
보다 못한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주먹으로 황태자의 뒤통수를 가격하자, 황태자가 맥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모셔라.”
“예!”
빅터 로저 자작이 황태자를 어깨에 둘러업고 뒤로 내달렸다.
황태자가 사라진 직후 지휘부로 남부 왕국군이 몰려들었다.
소드마스터인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야수처럼 날뛰며 남부 왕국군을 베어 넘겼다.
사방에서 마력탄이 날아들었지만 소드마스터의 마력장에 튕겨 나갔다.
미친 듯 칼을 휘두르던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눈앞으로 파란 섬광이 지나가자 깜짝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
북부 전선.
세베린 왕국 국경.
대륙의 마탑들이 마력총 생산에 매달리자 북부 왕국의 군대들 역시 빠르게 마력총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황은 제국군에 불리하게 전개됐다.
무엇보다 극심한 추위가 문제였다.
제국이 자리한 중부는 사계절이 있지만, 북부의 추위는 궤를 달리했다.
제국군은 전투에서의 부상자보다 동상 환자가 더 많이 나왔다.
물론 파이어 스톤이 있지만 그건 귀족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병사들은 주로 나무를 사용했는데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리는 병사가 늘어 가자 사령관은 둘 중 하나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북부 왕국군을 돌파해 가까운 도시를 점령하느냐?
아니면 일단 제국령으로 후퇴하느냐?
참모들은 제국령으로 후퇴할 것을 건의한 반면, 세 명의 사령관들은 전선 돌파를 원했다.
공국의 군주들인 사령관들에게 이렇다 할 전공도 없는 후퇴란 패배와 같았기 때문이다.
제국군 사령부.
오늘도 작전 회의가 지지부진하자 1군 사령관 케네스 아크몰린 공작(아크몰린 공국 군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1군의 사전에 후퇴란 없소. 단독으로라도 전선을 돌파하겠소.”
그의 선언에 2군 사령관 발렌틴 블러티키 후작(포메른부르크 공국)과 3군 사령관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헤드나르 공국)은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포메른부르크 공국군도 후퇴하지 않겠습니다.”
“헤드나르 공국군도 후퇴를 모르는 강군입니다.”
3군 사령관들이 뭉치자 3군의 참모들도 더는 반대하지 못했다.
다음 날.
제국군은 북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다시 한번 북부 왕국군을 향해 전진했다.
아침부터 울리기 시작한 포성은 해가 떨어질 때까지 쉬지 않았다.
그러나 제국군은 백병전까지 갔음에도 북부 왕국군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양측의 전사자로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북부의 해는 중부보다 더 빨리 졌다.
오후 2시가 되자 벌써 어두워져서 제국군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케네스 아크몰린 공작과 발렌틴 블러티키 후작,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한자리에 모였다.
문득 시간을 확인한 1군 사령관 아크몰린 공작이 말했다.
“이제 오후 3시인데 이토록 캄캄하다니……. 나는 이와 같은 일기를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소.”
그러자 2군 사령관 블러티키 후작이 씁쓸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어둠이 도왔습니다. 한 시간만 더 싸웠어도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물론 적진은 돌파했겠지만……. 북부 왕국군의 후속 공격에 공국령까지 밀려났을 겁니다.”
“블러티키 후작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오늘 고작 반나절의 전투로 저는 헤드나르 공국군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오늘의 전투는 지금까지 제가 치른 그 어떤 전투보다 끔찍했습니다. 지원군 없이는 전선 돌파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상의 후퇴 선언을 들었음에도 아크몰린 공작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 역시 엄청난 전사자 수에 놀란 참이었다.
3개 공국에서 끌어모은 정예 병사들 중 절반 이상이 반나절 만에 죽어 나갔다.
얼마나 죽었는지는 날이 밝아 봐야 알 테지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북부 왕국군의 전투력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어둠을 응시하던 그가 무심코 말했다.
“본래 북부의 밤이 이렇게 빠르오?”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은 8월로 북부에 백야가 지속될 시기입니다.”
“기상이변이 틀림없습니다.”
발렌틴 블러티키 후작과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한마디씩 던졌다.
인상을 찌푸리던 케네스 아크몰린 공작이 물었다.
“경들은 괜찮소? 나는 요즘 어두워지면 마나의 운용이 조금 불편하던데.”
“저도 그렇습니다.”
“허!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두 분도 같은 증상을 겪고 계셨군요.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어둠이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
대수림.
노천 광산.
어비스 출입 관리소.
이른 아침.
조장인 사칼이 난로에 파이어 스톤을 추가할 때, 요네츠가 뛰어 들어왔다.
“조장님! 조장님!”
“웬 호들갑인가?”
“어비스가, 어비스가……. 단상에서 한참 위로 올라갔습니다!”
“또?”
“크기도 엄청 커졌습니다. 이제는 쳐다만 봐도 무서워 죽겠습니다. 어비스에 들어간 사람들을 싹 다 철수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아?”
사칼이 손을 툭툭 털고 관리소 밖으로 나갔다.
과연!
요네츠 말처럼 어비스의 검은 구멍이 단상에서 십 미터쯤 위로 올라가 있었다.
크기도 두세 배는 더 커져서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자네는 얼른 가서 협회에 보고하게. 단상을 저 위까지 높게 쌓든, 사람들을 철수시키든 하겠지.”
“예, 예!”
요네츠가 며칠 전에 그랬던 것처럼 노천 광산을 거슬러 올라갔다.
사칼은 이번에는 굳이 자로 어비스 크기를 재려 하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 봐도 큰 문제가 생긴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