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9
139회. 강호는 힘이 진리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일관되게 구별된다.
연적하의 경우 무신경하게 있다가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많았다.
그와 달리 심통은 의도적으로 시비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었다.
속이 꼬여 있던 연적하가 일을 벌였고, 무신경하게 있던 심통이 휘말렸다.
“아직 날도 추운데 어디서 파리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심 노인도 들었어?”
연적하의 말에 심통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믄요. 음식점에 파리가 있으면 안 되는데, 사람만 한 놈이 버티고 앉아 있네요.”
심통이 야비한 눈초리로 십삼검 임허단을 바라보았다.
시비를 가라앉히기보다 더 크게 부풀리기 위한, 나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다.
연적하의 배배 꼬인 말에 달아오른 임허단은 이어진 심통의 눈빛 공격에 폭발하고 말았다.
“뭐라! 이자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대놓고 나를 조롱하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콰당.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반점을 절반쯤 채우고 있던 봉무방도들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런 일에 익숙해진 청운검 남궁천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하나뿐인 여동생을 따로 데리고 간 처사에 부글거리던 참이라 오히려 시원했다.
그래서 그런지 뚝 떨어졌던 입맛이 돌아왔다.
그는 손짓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주인장을 불러들였다.
“뭐가 더 필요하십니까요?”
“여기 탁자에 있는 요리들 새로 싹 내오세요.”
“전부요?”
“예,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알겠습니다요.”
주인장이 굽실거리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한자리에 앉은 봉무방도들이 불편한 얼굴로 눈치를 주었지만 남궁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
보다 못한 방도 하나가 ‘허엄!’ 하고 헛기침을 터뜨렸다.
그러자 남궁천이 허리춤의 검을 풀어 탁자 위에 ‘척’하고 올려놓았다.
묘하게 박력 넘치는 그 행동에 봉무방도들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연적하의 자리에서 시비가 일어나자 설차수는 유근식을 힐끔 보았다.
“사제, 그래도 정의맹의 일원인데…….”
‘중재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도 봉무방에서 여자들만 따로 빼간 게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이심전심이라고 유근식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용 방주를 욕하고 싶었지만 주변이 온통 봉무방도들이라 그것만은 꾹 참았다.
“사형, 차라리 빨리 터지는 게 낫습니다. 화가 쌓일수록 더 다쳐요.”
“그렇겠지?”
설차수는 봉무방에 대한 걱정을 툴툴 털어 냈다.
유근식 말대로 감정의 골이 얕을 때 한번 부닥치는 게 나았다. 죽을 자가 살고, 중상이 경상으로 바뀌려면 그래야 한다.
잠시 멈춰졌던 설차수의 손이 다시 바빠졌다.
설차수와 유근식은 마치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일인 양 식사에 열중했다.
임허단이 일으킨 소란은 방주 무진검 용유천의 자리에도 전해졌다.
옆에서 살풍경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용유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거 어쩌나. 연혼대 대주는 불같은 사람이라 한번 흥분하면 상대를 홀랑 태워야 잠잠해지는데. 어떻게, 내가 나서서 말려 볼까?”
남궁연은 여전히 묵묵부답, 음식만 집어 먹었다.
그래도 정의맹의 까마득한 후배라고 진설하가 성심성의껏 답했다.
“말리지 않으면 크게 다치실 거예요.”
순간 용유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는 마치 임허단이 다칠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임 대주를 다치게 할 수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랬다가는 봉무방을 적으로 돌리게 될 텐데.”
“하아! 그러지 마세요. 저분들은 맹주님의 부탁으로 모종의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에요. 방주님은 맹주님의 뜻을 거스르실 건가요?”
“흥! 미안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외부의 압력에 굴해 뜻을 꺾은 적이 없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용유천은 진설하의 말을 거절했다.
여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정사지간을 오락가락하는 그의 성정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그는 여자들 앞에서 정의맹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일행을 용서해 달라’며 여자들이 자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리게 하고 싶었다.
싸우다 보면 다치는 사람도 나오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본래 강호가 다 그런 거지.’
살짝 흥분한 용유천이 부방주 추혼도 용비천을 보며 말했다.
“아우. 임 대주를 도와 저 무도한 자들을 제압해라. 오늘 우리 봉무방의 기개가 어떤 것인지 보여 줘야겠다.”
“예, 형님.”
방주와 부방주 이전에 둘은 사촌지간이다.
평소보다 더한 유대감이 필요했던 두 사람은 사적인 호칭으로 서로를 불렀다.
용비천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명의 방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연혼대주 임허단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연적하와 심통을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요절을 내고 싶지만 임무 수행 중인 정의맹 무인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를 향해 심통이 말했다.
“왜 그렇게 망부석처럼 서 있어? 혹시 정의맹이 신경 쓰여서 그러는 게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공자님과 나는 정의맹이 아니니까.”
“정의맹이 아니라고? 너희들은 누구냐!”
“공자님과 나는 녹림의 호걸이시다. 이제 됐느냐?”
심통은 실실 웃으며 계속해서 분위기를 달궜다.
“헛! 이제 보니 녹림의 도적들이었구나! 어쩐지 주둥이에서 나오는 말들이 예사롭지 않더니만! 녹림의 도적들이 감히 봉무방의 구역에 얼굴을 내밀다니! 왜 정의맹 형제들과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
“으흐흐흐! 경고하는데 감히 공자님 앞에서 날붙이를 빼 들면…….”
심통이 슬쩍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이 멍청이들을 상대로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연적하는 뚱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산을 내려온 이후로 오늘 기분이 가장 더러웠다.
십두마병이 마을에서 분탕질을 쳤어도 이렇게 엿 같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던 남궁천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노선배, 식사 중이니 가급적 피를 보지 않고 끝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는 심통의 손속이 어떠한지 알기에 제동을 걸었다.
심통은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남궁천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지금부터 날붙이를 들이미는 놈들은 이빨을 털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심통의 일방적인 선언에 임허단이 기막힌 얼굴로 말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입심만큼 무공도 대단한지 봐야겠다!”
말과 함께 임허단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봉무방도들이 뒤쪽으로 우르르 물러났다.
눈먼 칼에 맞지 않으려고 거리를 벌린 것이다.
미녀들의 합석으로 달아올랐던 식사자리가 한순간에 살풍경한 곳으로 변해 버렸다.
임하단의 별호는 십삼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빠른 열세 번의 연환검식으로 얻은 별칭이었다.
쉬이익.
임허단의 검이 공간을 갈랐다.
그는 늙은이가 슬쩍 상체를 뒤틀자 연이어 이 검, 삼 검을 펼치려 했다.
퍽!
입안이 화끈거리더니 머리가 뒤로 홱 젖혀졌다.
쓰러질 듯 휘청거리던 임허단이 겨우 자세를 바르게 잡았다.
문득 입안에 단단한 알갱이들이 굴러다니는 게 느껴졌다.
“퇫.”
뭔가 싶어 손바닥에 뱉어 보니 부러지거나 뽑힌 이빨이었다.
그 숫자가 무려 다섯 개.
‘이런 미친!’
임허단은 신경질적으로 이빨을 패대기친 후에 다시 달려들었다.
“죽엇!”
그의 검이 광풍처럼 심통을 향해 몰아쳐 갔다.
하지만 심통의 무위는 그의 칼끝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이르러 있다.
가볍게 일검을 피한 심통이 유령처럼 임허단에게 다가갔다.
퍼억-.
주먹이 볼때기를 가격하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쿠당탕.
한 바퀴를 빙그르 돈 임허단은 하필 방주가 앉아 있던 탁자에 엎어졌다.
이번에는 부방주 용비천과 두 명의 호위가 심통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용비천은 늙은이의 무위가 대단함을 보고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봉무방의 부방주 추혼도 용비천이라 하오. 귀하의 별호는 무엇 이오?”
“구천노도라 한다. 네놈도 날붙이를 꺼내면 평생 죽을 떠먹게 될 것이다.”
용비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수하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흥! 무명의 늙은이가 광오하구나! 얘들아! 쳐라!”
그는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는지 수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차차창.
칼집에서 빠져나온 세 자루 도검이 심통의 몸을 갈랐다.
그러나 심통은 마치 이형환위의 신법이라도 펼친 것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퍽. 퍽. 퍽.
과정은 임허단의 때와 판박이처럼 같았다.
세 사람의 머리가 격렬하게 뒤로 젖혀졌다가 돌아왔다.
그들 모두 입이 뭉개져 있는데, 어떤 이는 벌어진 입으로 피에 젖은 이빨을 줄줄 흘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남궁천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심통은 상대를 한 방에 제압하지 않고 교묘하게 이빨만 부러뜨리고 있었다.
반격의 여지를 남겨 둠으로 악랄하게 가지고 노는 것이다.
피를 보지 말자고 했는데도 저 정도니 말하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역시나 힘이 남은 세 남자는 ‘와악!’ 하는 고함과 함께 다시 심통에게 달려들었다.
용비천과 두 호위무사의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심술맞은 심통도 은근 눈치가 보였는지 세 번까지는 가지 않았다.
우당탕 쿵쾅!
용비천과 두 명의 호위가 추풍낙엽처럼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방주 용유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너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봐서 그런지 머릿속이 멍했다.
‘저 정도의 고수라면 강호에 소문이 자자할 텐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기억 속에 구천노도라는 이름은 없었다. 특별히 관계되지 않은 다음에야 정주의 일을 바로 알 수가 없으니 당연하다.
심통의 압도적인 무위를 본 봉무방도들은 연신 방주의 눈치만 살폈다.
반점에 있는 소수의 인원으로 저 늙은이와 그 일행을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다.
뒤늦게 용유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방주가 보기 좋게 당했으니 이제는 싫든 좋든 자신이 수습해야 했다.
“노선배, 대단하구려! 어느 산채의 고인이시오?”
역시나 강호는 힘이 진리다.
단번에 ‘도적’이 ‘노선배’가 되고, ‘늙은이’가 ‘고인’으로 바뀌었다.
어떻게든 말로 잘 풀어 보려는 상대의 뜻을 눈치챈 심통이 냉소를 쳤다.
“흥! 왜? 이제 슬슬 겁이 나느냐? 너는 조금 전에 봉무방의 기개를 보여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설마 한 입으로 두말하는 개만도 못한 놈은 아니겠지?”
이 정도면 거의 ‘입 닥치고 그냥 싸우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용유천은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마음은 그러하나 어찌 정의맹의 손님에게 끝까지 각을 세우겠습니까? 임 단주가 무슨 실수를 한 모양인데, 방주인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용유천은 근자에 보기 드물게 자신을 낮추었다.
미녀들 앞이라 체면을 차리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방파의 생존이 먼저였다.
저 정도 고수를 데리고 있는 산채라면 녹림에서도 한가락 할 게 틀림 없다. 그런 녹림의 산채와 적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부방주까지 맞았는데 도리어 사과하겠다는 말에 심통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심드렁한 얼굴로 구경하던 연적하가 끼어들었다.
“거기 아저씨, 사과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꿇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