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03
1403회. 과정, 작은 선택의 결과들
지난해와는 상반된 상황이 펼쳐졌다.
예컨대 지난해에는 호천맹에서 남직례성으로 무인들을 파견했다면, 지금은 남맹에서 하남성으로 그렇게 했다.
무림대회를 앞두고 하남성 인근에서 호천맹과 남맹의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특정 방파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그랬다면 한날한시에 양측이 모여 크게 싸웠을 것이다.
남맹은 네 개의 대(사신대)가 흩어져 하남성 일대를 돌아다녔고, 호천맹 무인들도 숫자를 쪼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남맹의 방해는 단오절 무림대회 전날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단오절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호천맹 무림대회가 시작됐다.
남맹의 방해 때문에 참가자 숫자는 예상보다 저조했다.
그렇다 해도 무림의 종주답게 남맹 무림대회보다는 많았다.
비무 대회도 무려 보름간이나 지속됐다.
다분히 남맹의 무림대회를 의식한 결과였지만 참가자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호천맹 무림대회를 통해 일곱 명의 초신성이 떠올랐다.
호천맹은 그 일곱 명의 강자들을 호천칠군이라 불렀다.
양측의 무림대회가 끝나자 사람들은 ‘남맹의 사대천왕과 호천맹의 호천칠군 중에 누가 더 강한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남맹이 더 강하지. 호천맹은 한 번 더 비무를 했어야 하는데 사대천왕보다 많아 보이려고 중지한 거잖아. 최종 단계가 생략된 결과니 호천칠군을 최강자라 부를 수 없다고.”
“참가자 숫자를 생각해야지. 호천맹이 훨씬 많았으니 최종 단계까지 일곱이나 남았던 거잖나. 남맹보다 닷새나 더 비무를 했는데 뭘 중지해?”
“은거기인들은 죄다 남맹으로 몰려갔다는 말이 있어. 그동안 칠파이문의 행동에 실망이 컸던 거지. 유명교 때 봐. 남맹은 싸웠지만 호천맹은 숨죽이고 있었잖나.”
“그래 봐야 우물 안 개구리들이지. 은거기인도 칠파이문의 수천 년 역사를 못 따라가. 칠파이문이 괜히 무림 종주인 줄 알아? 강하니까 무림의 주인 노릇을 해 왔던 거라고.”
“다 필요 없어. 조만간 남맹 천하가 될 거야. 왜냐고? 다들 잊었어? 남맹에는 남천 대협이 있잖아. 호천맹에 남천 대협을 능가할 고수가 있어? 없어. 남천 대협은 천하십대고수 다섯 명의 합공도 물리친 고금제일고수라고. 남천 대협이 헛기침 한번 하면 호천맹은 설설 길걸? 그런데 뭐? 호천칠군? 내 장담하는데 남맹의 안중에도 없을 거다.”
“그쪽이야 말로 뭘 모르는군. 남천 대협이 고금제일인인 건 맞지만, 남천 대협의 석경장은 남맹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뿐인 줄 알아? 얼마 전까지 남천 대협과 검왕은 의절까지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 한번 신뢰가 깨지면 다시 이전처럼 돌아가기 어려워. 남천 대협이 남맹을 지지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라고.”
“어이, 어이. 밖으로 굽는 팔 본 적 있어? 검왕이 부탁하면 남천 대협도 마지못해 따라 줄 거야. 작년에 무극문이 항주로 쫓겨난 거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해? 호천맹이 남경을 접수했다가 남천 대협 한마디에 싹 다 철수했잖아.”
“남천 대협의 뜻에 달려 있는 건 맞아.”
“남맹이든 호천맹이든 지지고 볶기 전에 남천 대협의 의중부터 확인해 봐야 할걸?”
“확인은 무슨! 남천 대협은 금분세수만 안 했지 이미 강호를 떠나신 분이야. 석경장에 은거하신 분을 왜 끌어들여?”
“누가 강호를 떠났대? 남천 대협이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왜 은거 소리가 나와?”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알아? 남천 대협이 오봉산을 내려가실 때 강호를 떠난 거야. 척하면 알아먹어야지.”
“알긴 뭘 알아? 누가 들으면 네가 남천 대협 배 속의 회충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격론의 끝에는 항상 남천 연적하가 있었다.
사람들은 ‘호천맹이든 남맹이든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남천 연적하의 의중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
초저녁.
안채의 객청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석경장 장주 남천 연적하와 손님으로 찾아온 호천맹 총사 공손방이다.
본래는 호천맹의 대총사 격인 공손일랑 공손기가 왔어야 하지만, 그는 연적하에게 맞은 과거가 있어 공손방이 대신 온 것이다.
공손방이 미지근하게 식은 찻물로 말라 오는 목을 적신 뒤 계속해서 말했다.
“……무림대회 전날까지 남맹은 하남성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지난해 호천맹이 무극문을 돕기 위해 남직례성에 진입한 적이 있으니……. 서로 상쇄한다 치고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측의 무림대회가 끝난 지금부터가 문제입니다. 호천맹은 남직례성에 진출할 의향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맹은……. 공공연하게 ‘천하를 경영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호천맹에서 남맹의 무림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황룡방을 제거했다고 하는데, 거짓말입니다. 저희 호천맹은 남맹의 무림대회에 관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맹은 황룡방의 복수를 하겠다며 호천맹에 계속해서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황룡방의 실종을 대륙 진출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것이지요.”
묵묵히 듣던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석경장은 남맹 소속이 아닙니다. 솔직히 나는 남맹과 호천맹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남맹이 황룡방에게 한 짓을 알기에 남맹과 거리를 뒀다. 심지어 석경장의 남맹 재가입도 보류한 상태였다.
“하지만 검왕이 도움을 요청하면요? 관여하지 않으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맹주님이 아무 때나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나도 남맹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생각이 없고요.”
“…….”
그의 말에 공손방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했다.
‘남천 대협이 남맹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구나.’
지난해 소림사 대웅전·장경각·천불전을 박살 내고, 무극문 지원 부대를 남직례성에서 쫓아낼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남맹이 대륙에 욕심을 내면 필연코 호천맹과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유명교나 마교 때처럼 무고한 피만 흘리게 될 것입니다.”
“남맹이 그들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연적하가 지적하자 공손방은 급히 말을 바꾸었다.
“물론, 남맹이 유명교나 마교와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까놓고 말해 양측 모두 이익 때문에 벌이는 싸움이 아닙니까? 지킬 것은 지키되,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지는 마세요.”
적당한 선에서 내줄 건 내주라는 소리다.
공손방은 가타부타 답하지 못했다.
그건 일개 총사에 불과한 자신이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상방들 간의 분쟁도 중재가 어려운데 하물며 강호의 패권을 놓고 하는 싸움이다.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알기 전까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휴우! 그래도 남천 대협이 지난해처럼 강하게 개입하지는 않겠구나.’
그걸 알게 된 것으로도 석경장을 방문한 보람이 있다.
공손방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용히 떠나갔다.
연적하가 차갑게 식은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남궁연이 찾아왔다.
“혼자서 뭐 해?”
“그냥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요.”
“호천맹과 남맹의 다툼 때문에 그래?”
“예.”
객청 마루로 올라간 남궁연이 연적하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너 볼 면목이 없다.”
“누님이 왜요?”
“남맹이 과욕을 부리는 건 네가 맹주의 사위이기 때문이잖아. 너만 아니었어도 남맹은 남직례성의 패주로 만족했을 거야.”
“누님.”
“응?”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상계(上界) 사람들도 박 터지게 싸우더라고요. 누님도 구주의 종문들이 싸우는 거 봤잖아요. 내가 남궁세가의 사위가 아니었어도 싸움은 났을 거예요. 싸우는 건 사람의 본성이니까 누님이 미안해 할 것 없어요.”
“그랬을까?”
“싸울 사람들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싸운다니까요.”
“남맹처럼 말이지?”
남궁연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내심 뜨끔한 연적하가 확인하듯 물었다.
“누님도 알고 있었어요?”
“황룡방의 실종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모든 정황이 남맹을 가리키고 있잖아. 심 노인과 황룡방, 모용각의 관계를 생각하면…… 뻔하지. 남맹이 장차 절강성 진출에 방해가 될지도 모를 황룡방을 없앴다. 맞지? 그런데 말하는 걸 보니 넌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것 같구나.”
“심 노인이 모용각을 밟아 준 날, 화가 나서 남맹에 갔다가…… 장인어른과 대총사가 나누는 말을 들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남맹에 두 번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았던 거야?”
“초대한 손님을 죽이는 건 녹림에서도 드문 일이거든요. 그건 진짜 악독한 놈들만 하는 짓인데…….”
연적하가 말끝을 흐렸다.
장인이 관계되지 않았다면 진즉에 터뜨렸을 것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다 보면 저지르게 되는 잘못이지.”
“장인어른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에게 황룡방의 일을 안다고 했어?”
“아뇨. 그냥 ‘전에는 남궁세가의 의협심이 부러웠는데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러셨어요.”
“그건 비겁한 변명이야. 나무가 모여서 숲이 되는 거니까. 과정도 따지고 보면 ‘작은 선택의 결과들’이라 할 수 있어. 과정과 결과가 서로 다른 게 아니라는 거지.”
“선택의 문제라는 건가요?”
“맞아. 우리가 항상 옳은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지.”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절 무림대회 전날 장인어른은 대총사에게 ‘선택’에 대해 말했다.
―싸울 상대로 누굴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오. 석경장이냐, 황룡방이냐? 석경장은 남맹의 든든한 친구인 반면, 황룡방은 미래의 적이지 않소.
그날 장인어른은 그릇된 선택을 했다.
‘싸울 상대로 누굴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가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심통에게 ‘맹주님은 따님보다 남맹이 더 소중하냐?’는 부끄러운 질문을 받지도 않았고, 심통에게 패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공손방은 내가 지난해처럼 호천맹의 손을 들어줄까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흐음. 그랬단 말이지?”
잠시 생각하던 남궁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왜 웃어요?”
“어쩌면 이번에는 네가 관여할 일이 생기지 않을지도 몰라.”
“왜요?”
“호천맹의 총사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거야.”
“어떻게요?”
“천하십대고수들이 뒤로 물러나면 남맹에서도 네게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 너 같은 천외천의 고수를 막싸움에 불러들일 수는 없으니까.”
“그런가요?”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하자 남궁연이 찬찬히 설명했다.
“호천맹에서 천하십대고수를 동원하면, 남맹에서는 너에게 도움을 요청하겠지?”
“그러겠죠?”
“하지만 호천맹이 천하십대고수나 전대의 고수들을 배제한다면? 그래서 남맹의 도발에 칠파이문의 제자와 무림대회에서 뽑은 무인들로만 대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맹에서 저를 부르기가 민망하다?”
“대총사가 애원해도 아버지 자존심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지난해 네가 나설 때는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오히려 너와 남맹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 되어 버린다고.”
“그렇기는 하죠.”
연적하도 하수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천맹의 총사부도 그 정도 머리는 쓸 줄 알 거야.”
십전무후 남궁연의 장담에 연적하는 마음의 짐을 덜어 낼 수 있었다.
그녀의 뜻대로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