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08
1408회. 무관으로 보내세요
석경장을 뛰쳐나간 연적하는 한달음에 여강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몇 개 안 되는 다관을 뒤지고 다녔지만 조현덕은 없었다.
여기서 포기할 연적하가 아니다.
그는 곧바로 여강현에 있는 조양상방 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강현 조양상방.
조양상방의 문은 여느 상방들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정문에 경비 무사가 배치되어 있었지만 딱히 출입자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연적하는 붉은 노을을 등지고 조양상방으로 다가갔다.
정문 좌우편에 서 있던 경비 무사들은 무장도 하지 않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도리어 연적하가 신기하다는 듯 경비 무사들을 아래위로 힐끔거렸다.
그 꼴이 영락없는 시골 촌놈의 행색이라, 경비 무사 하나가 물었다.
“누굴 찾아왔나?”
연적하의 나이는 어언 사십 대 중반이지만 얼굴은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인다.
중년의 경비 무사가 반말을 하지 않은 것만도 장한 일이건만, 속이 배배 꼬인 연적하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방주를 찾아왔는데…….”
불쾌한 만큼 반말로 끝을 흐렸다.
하지만 시골 청년이 당황해서 그러는 것으로 지레짐작한 경비 무사는 친절하게 답했다.
“안채에 계시니 얼른 들어가 보게. 그러나 약속을 하지 않았으면 만나 뵙기 어려울 게야.”
연적하의 성격은 강강약약이다.
상대가 친절하게 응대하자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로 다가가자 중년의 일꾼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누굴 찾아왔소?”
“조 방주님요.”
정문에서 화가 많이 누그러진 연적하는 순순히 답을 했다.
“방주님과는 약속이 되어 있소?”
“아니요.”
“허어, 그럼 좀 어려울 텐데. 오늘 행수님들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일단 말씀은 전해 드리리다. 어디의 누구라고 하면 되오?”
“석경장에서 왔다고 전해 주십쇼.”
“아, 석경장에서 오셨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중년의 일꾼은 급히 눈을 내리깔고 허둥지둥 안채로 뛰어들었다.
곧이어 조성찬 방주와 세 명의 행수가 달려 나왔다.
선두에 섰던 조성찬 방주가 연적하를 알아보고 멈칫했다.
그는 십이 년 전 양문산 행수의 아들이 혼인할 때 연적하를 본 적 있었다.
그때도 삼십 대치고 젊어 보인다 생각했는데, 십이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니!
“남천 대협! 어서 오십시오!”
남천 대협이라는 말에 행수들은 물론 말을 전한 일꾼도 허리를 꺾었다.
잠시 후 안채.
상석에 앉은 연적하가 조성찬 방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행수들을 모두 물리고 연적하와 독대한 조성찬의 목울대로 연신 마른침이 넘어갔다.
‘무슨 일로 직접 찾아오셨지? 혹시 최근 석경장에 납품한 물건에 하자가 있었나?’
양문산 행수의 아들 양지학과 월아가 혼인한 뒤로 조양상방은 석경장에 생필품을 대고 있었다.
석경장으로 들어가는 물건은 두 번 세 번 검수를 하게 했지만 불안했다.
십 년이나 같은 일을 하다 보면 타성에 젖어 실수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눈치를 살피던 조성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어…… 저희 조양상방에서 납품하는 물건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연적하는 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화가 나서 달려오기는 했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의 골골거리는 셋째 아들이 내 딸을 따라다니지 못하게 하라?
하지만 딸과 조카의 말을 들어 보면 이제 몇 번 마주친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적하의 침묵이 길어지자 잔뜩 긴장한 조성찬 방주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한참 만에 연적하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납품에 문제가 생겨서 온 건 아닙니다. 조양상방은 석경장과 무관한 곳이 아니라서, 지나던 길에 들러 본 겁니다. 월아가 시집간 상방의 기풍(氣風)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양상방은 조씨와 양씨가 손잡고 세운 상방.
엄밀히 말해 월아의 남편은 양씨 집안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양상방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생각하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연적하의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다행히 조성찬 방주는 그 말을 ‘상방의 분위기를 보러 왔다’고 알아들었다.
“아! 그러셨군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조양상방은 조씨와 양씨가 힘을 합쳐 세운 상방입니다. 상방 운영도 두 가문이 힙을 합쳐 하고 있지요. 그러니 기풍 역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씨와 양씨 집안의 기풍이 같은지 다른지는 그도 몰랐다.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졌다.
창문 밖이 어두워지자 조성찬은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감히 남천 대협에게 저녁 식사를 권할 수도 없고 어쩐다…….’
그는 자신이 실수하거나 놓친 게 있는지 지금까지의 대화를 되짚어 봤다.
딱히 걸리는 게 없었다.
연적하의 말은 ‘조양상방의 기풍이 궁금해서 왔다’는 게 전부였다.
다만 ‘업무 시간도 끝난 지금 그걸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는가?’가 문제다.
“저어…….”
조성찬이 어렵게 그가 입을 연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 말했다.
“아버지, 계십니까?”
조성찬은 하던 말을 멈추고 연적하를 보았다.
연적하가 계속하라는 듯 턱짓하자 조성찬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저의 셋째입니다. 아침에 왕희지의 첩문 하나가 흘러 들어와 진위를 가려 달라 했는데……. 그 일로 찾아온 모양입니다.”
난감한 상황에 풀어져 있던 연적하의 눈이 번득였다.
셋째란다.
“들어오라 하세요.”
“예? 예.”
조성찬은 연적하가 왜 셋째를 들어오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아들을 불러들였다.
안으로 들어온 조현덕이 상석의 청년과 그 아래 앉은 제 부친을 번갈아 보았다.
안채에서 막 나온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방주가 집무실 주변의 사람을 모두 내보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상방집 자제라고 눈치는 있어 먼저 입을 열어 묻지는 않았다.
“인사 올리거라. 석경장의 장주님이신 남천 연적하 대협이시다.”
깜짝 놀란 조현덕은 급히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절을 올렸다.
“남천 대협! 소생 조현덕이라 합니다!”
자신을 한껏 낮춘 인사에도 연적하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무거운 침묵이 방주의 집무실에 내려앉았다.
연적하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조현덕은 처박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조성찬 방주가 옆에서 안절부절할 때 마침내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나는 과한 인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제야 조성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조현덕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랐다.
연적하가 범 같은 눈으로 조현덕을 응시하며 물었다.
“너는 서생이냐?”
“예, 과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상방의 일을 돕지 않고.”
“소생은 장사에 재주가 없어…… 상방에 오히려 누를 끼칠 뿐입니다.”
“글재주는 있고?”
“단지 열심히 할 뿐입니다.”
제 딴에는 겸손한 대답이었지만 연적하의 눈매가 좁아졌다.
“장사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소리군.”
그제야 말이 이상함을 눈치챈 조현덕은 황급히 변명했다.
“그게 아니고, 장사도 열심히 해 보았지만 흥정을 못해 손해만 보았습니다.”
“허면 글공부는 장원 급제할 자신이라도 있느냐?”
“그건 아니옵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놈이 대낮부터 다관에는 왜 드나들어!’
연적하는 조현덕의 면상에 벼루를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네 번째 하늘에서 만난 남궁연은 조현덕을 ‘글공부를 하던 문사였다’고 했다.
그 말은 ‘병들어 죽을 때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다’는 소리다.
이놈은 장사뿐 아니라 글공부에도 소질이 없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지안이는 이런 머저리 같은 놈의 어디가 좋아서 혼인까지 한 걸까?
“장원 급제할 자신이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이루는 것은…….”
“허튼소리. 하늘까지 갈 것도 없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면 아니까. 네 학문이 하늘에 닿았다면 장원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너 자신이 더 잘 알겠지. 내 말이 틀렸느냐?”
연적하의 날카로운 지적에 조현덕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맞다.
자신은 장원 급제를 자신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장사에 재주가 없어 차선으로 선택한 게 글공부일 뿐이다.
글공부를 하는 한,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한편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조성찬 방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천 대협이 아들의 인생에 엄청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다.
‘혹시 글공부가 아니라…… 무재가 있었나?’
그게 아니고서야 저 무시무시한 눈빛과 집요한 질문을 설명할 수 없다.
‘헉! 제자로 받아들이시려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들이 고금제일인의 제자라 생각하니 천하를 손에 넣은 것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십대상방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다.
조성찬은 상인답게 연적하와 아들의 대화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연적하는 머리를 떨군 조현덕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한편으로 동병상련의 느낌도 들었다.
자신도 창고에서 구천현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렇게 살다 죽었을 것이다.
“방주님에게 왕희지의 첩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에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릴 수 있는 재주가 있느냐?”
그런 재주라도 있다면 나름 비범하다 할 수 있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없습니다. 소생의 친구 중에 눈이 날카로운 이가 있어 가져가 보였던 것입니다.”
“쯧!”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저놈은 진짜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이 평범했다.
‘이런 놈을 지안이와 짝지어 줄 수는 없지.’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렇게는 못 한다.
“방주님.”
갑작스러운 연적하의 부름에 조성찬 방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글공부를 시키는 것은 시간의 낭비 입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유명한 무관에 보내는 게 나을 겁니다.”
“무관요?”
조성찬이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석경장으로 데려가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무공을 배우기에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상방이나 표국에서 일할 정도는 될 겁니다.”
“무가에서는 대여섯 살에 입문하지 않습니까? 제 아들은 스물셋인데…….”
조성찬은 말끝을 흐렸다.
스물셋이면 조금 늦은 게 아니라 많이 늦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석경장으로 가면 후광 효과라도 보겠지만, 일반 무가에서 성공하기란 장원 급제만큼이나 어려울 터였다.
“그래도 인생을 낭비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무관으로 보내세요. 내가 본래 남의 일에 나서는 사람이 아닌데,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그제야 조성찬 방주와 조현덕은 연적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천하에 누가 감히 남천 연적하의 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조성찬 방주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대협의 말씀을 들으니 흐릿하던 눈이 밝아진 느낌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허투루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지요. 대협의 가르침대로 하습니다.”
그는 셋째 아들이 연적하의 눈 밖에 났음을 알고 납작 엎드렸다.
조현덕은 윗분들의 일방적인 결정에 맥이 풀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현덕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관은…… 낙양의 연가무관이 좋겠습니다. 우리 연씨의 구천검이라면 늦은 나이에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조현덕을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다.
천오백 리나 떨어진 낙양에 뚝 떨어트려 놓으면 딸이 조현덕과 만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조성찬 방주와 조현덕은 ‘연씨의 구천검’ 소리에 입이 귀에 걸렸다.
연적하는 조현덕을 위한 추천장까지 써 준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떠나기 전 문득 조현덕에게 말했다.
“연가무관에서 너를 받아들이면 너와 나는 동문이 된다. 부디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예.”
추천장을 품에 갈무리한 조현덕은 복잡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분에 넘치는 호의를 베푸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