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2
1412회. 외삼촌! 아버지를 구해 주십시오!
석경장 안채.
해어화라 불리는 절세미녀 연지안이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쪽은 합비 건원표국 이원득 국주님의 둘째 공자인 이만양 소협이에요. 석 달 전 천아호(天鹅湖)에서 알게 되었는데, 오늘에야 소개를 시키게 되었네요. 이 소협, 인사드리세요. 제 부모님이세요.”
천아호는 합비에서 제법 큰 호수다.
그렇게 합비를 드나들더니 기어코 사내와 눈이 맞은 모양이다.
긴장한 이만양은 급히 머리를 조아리다 이마로 방바닥을 찍었다.
‘쿵!’ 소리가 안채를 울렸다.
“이만양이라 합니다.”
연적하는 금석이라도 녹일 듯한 눈초리로 사내를 쏘아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남궁연이 웃으며 손짓을 했다.
“이 소협, 반가워요. 편하게 앉으세요. 건원표국 이 국주님에게 헌앙한 아들 둘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과연 그런 소리가 나올 만하네요.”
“과, 과찬이십니다.”
이만양은 십전무후 남궁연의 말에 가슴 한편이 뿌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내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마치 노상강도를 보는 듯한 남천 연적하의 살기 가득한 표정 때문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남궁연이 연적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멀리서 인사를 왔는데 당신도 한마디 해 줘요.”
사십 줄에 접어들면서 남궁연은 남들 앞에서 연적하를 당신이라 호칭했다.
그녀의 채근에 연적하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스물여섯입니다.”
“너는 상대의 집안에 인사를 갈 정도로 지안이와 깊은 관계냐?”
“부족하지만…… 장래를 함께하겠다 약속했습니다.”
순간 연적하가 ‘쾅!’ 소리가 나도록 서탁을 내리쳤다.
“고작 석 달 만에 장래를 약속했다고?”
연적하의 서슬에 놀란 이만양이 어깨를 움츠리자, 연지안이 나섰다.
“아버지, 소윤 언니가 한 달 조금 넘게 만난 사람과 혼약했다는 걸 잊으셨어요? 소윤 언니에 비하면 만남의 기간이 두 배는 된다고요. 소윤 언니도 잘 살고 있잖아요.”
“소윤이는!”
연적하는 버럭 소리쳤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딸의 말대로 큰형의 수양딸인 연소윤은 한 달 보름 만에 조현덕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현덕을 떠올리니 울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조현덕을 연가무관으로 보낸 건 자신이니 누굴 원망하랴.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남궁연이 연적하의 손을 살짝 잡았다.
부들부들 떨던 연적하는 날숨을 길게 내뱉어 화를 가라앉혔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어릴 때 그렇게 말을 잘 듣던 딸이 오늘은 남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남보다 못했다.
남이었다면 감히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지 못했을 테니까.
연적하는 기대를 반쯤 내려놓고 이만양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지금은 형님과 함께 표국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조만간 남경에 건원표국 분점을 내어 독립할 계획입니다.”
“분점의 점주가 되겠다는 말이구나.”
“예.”
“…….”
연적하는 못마땅한 눈으로 연지안을 보았다.
골골거리는 서생 놈을 떨쳐 냈더니 호수에서 표국 점주를 물고 왔다.
남천 연적하와 십전무후 남궁연의 딸이자, 남직례성에서 해어화라 불리는 딸이 고작 표국 점주와 맺어지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해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매파들 중에 혼처를 찾아볼 걸 그랬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금까지 딸은 한 번 결정하면 번복하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사위 될 놈이 그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닌지라, 연적하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누구처럼 녹림의 사내와 사귀지는 않았잖아요.”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거야말로 젊은 시절의 자신을 두고 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부인, 그래도 나는 착하지 않았습니까.”
“이 소협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으니 지안이의 안목을 믿어 보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만난 지 석 달 만에…….”
말하다 울컥한 연적하가 이만양을 노려보았다.
옆에 딸이 없었다면 분근착골이라도 썼을 것이다.
살기등등한 그의 눈빛에 이만양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걸 본 연지안이 소리를 빽 내질렀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이 소협도 다른 집안의 귀한 자식이라고요!”
애지중지 키운 딸이 다른 사내를 위해 자신에게 큰소리치자 연적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틀린 소리도 아닌지라 그는 군말 없이 살기를 거두었다.
어색한 침묵이 안채를 찍어 눌렀다.
십전무후라 불리는 남궁연도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연적하는 답답한 마음에 빈주먹만 쥐락 펴락 했다.
사실 그도 결국은 모든 게 딸의 뜻대로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혼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결정에 앞서 살짝 귀띔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가 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왜 이 남자를 만날 때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 결과를 통보하듯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버지의 눈에 드는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그동안 석경장에 드나든 매파가 서른 명이 넘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단 한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그냥 돌려보내셨잖아요.”
“그때는 네가 어려서…….”
“스무 살이었어요, 아버지. 연지도 스무 살에 혼인을 했고요.”
환갑이면 장수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여자 나이 스물이면 꽉 찬 나이였다.
부녀의 말을 듣던 남궁연이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실소를 흘렸다.
장시간 계속된 부녀간의 말싸움은 연적하의 완패로 끝났다.
고금제일인도 자식을 이기지는 못했다.
연지안과 이만양의 혼인은 빠르게 진행됐다.
연적하와 남궁연은 외동딸의 혼인을 친지들에게만 알렸다.
연적하가 은거한 지도 어언 십구 년.
그와 알고 지내던 원로 고수들 대부분이 죽었기에 따로 초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알았는지 남맹과 호천맹의 맹주들이 꾸역꾸역 찾아왔다.
그들의 목적은 남천 연적하가 무림에 뜻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데 있었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들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행보가 이 세상에서는 자연재해에 비견되기 때문이다.
그런 연적하의 태도에 남맹 맹주는 아쉬워 했고, 호천맹 맹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혼인 후 연지안은 이만양과 함께 남경으로 떠났다.
이만양이 연지안과 혼인하자 건원표국에서 곧바로 남경에 분점을 낸 까닭이다.
딸이 남경으로 떠나자 연적하는 다시 소호로 낚시를 다녔다.
남궁연은 서각에서 시간을 보냈음은 물론이다.
연적하는 딸이 보고 싶어지면 남궁연을 데리고 운종술로 남경에 날아갔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사위를 봐도 이제는 화가 치솟지 않았다.
겨울이 되자 연지안에게 태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연적하는 딸의 배 속에 든 아기보다 딸을 더 걱정했다.
임부에게 좋다는 건 다 수집해 남경으로 보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땅거미가 질 무렵, 한 청년이 굳게 닫힌 석경장의 문을 두드렸다.
삿갓 위로 쌓인 눈과 거친 호흡이 쉬지 않고 달려온 모양새다.
잠시 후 젊은 일꾼 하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개봉에서 온 진재영이라 합니다. 장주님의 사촌 조카 되는 사람이지요.”
“아! 그러시군요. 들어오십쇼.”
일꾼이 얼른 진재영을 안채로 안내했다.
연적하와 남궁연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일꾼의 음성이 들려왔다.
“장주님, 개봉에서 진재영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일꾼의 말이 끝나자 곧 문을 열고 연적하가 마루로 나왔다.
진재영을 발견한 연적하가 놀라 물었다.
“재영아! 이 추위에 남직례성까지 무슨 일로 왔느냐?”
진재영은 사촌 동생 이유화의 장남이었다.
외숙과 외숙모의 장례식 이후 소식이 뜸했는데 갑자기 무슨 일로 온 것일까?
뒤늦게 나온 남궁연이 마당에 서 있는 진재영을 보며 말했다.
“추운데 거기 서 있지 말고 우선 안으로 들어오거라.”
그제야 연적하도 진재영을 재촉해 방으로 이끌었다.
진재영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연적하와 남궁연에게 큰절부터 올렸다.
그리고 비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외삼촌, 아버지가 모반죄로 잡혀가셨습니다.”
“진우생이 모반을 했다고?”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진우생은 금의위 개봉 지부 소기(小旗)에서 시작해 남경의 천호(千戶)까지 올라간 착실한 관리다.
그런 그가 뭐 아쉬운 게 있다고 모반을 한단 말인가?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아버지를 따르던 무관들의 말로는 남옥 대장군과 진위 대장군의 암투에 희생양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희생양이라니?”
“늦가을에 사례병필태감(司禮秉筆太監) 이승이 돌연 죽음을 맞이한 바 있습니다. 모두가 노환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남옥 대장군이 독살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독살의 배후로 이승과 마지막으로 만난 남진 무사를 지목했습니다. 그분이 아버지의 직속상관이십니다.”
“그래서 진우생이 휘말려 든 게로구나.”
“예. 금의위 북진이 남옥 대장군을, 남진이 진위 대장군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정 대신들 대부분이 남옥 대장군 쪽으로 넘어가서……. 남진 무사와 그분을 호위하던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진위 대장군이라면 풍승을 말하는 것이냐?”
“예. 그분은 남옥 대장군의 칼끝이 자신을 향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합니다.”
진재영의 이야기가 끝나자 연적하는 남궁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인은 어떻게 생각해요?”
남궁연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답했다.
“이 문제는 단지 진위 대장군과 남옥 대장군 간의 알력이 아니에요.”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건가요?”
“진위 대장군은 당금 황제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조정의 대소 신료들은 남옥 대장군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죠. 그리고 남옥 대장군은 황제의 숙부 쪽 사람이고요.”
“그 말은 황제와 황제의 숙부가 암투를 벌이고 있다?”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남진 무사와 진우생이 잡혀간 걸 보면…… 황제 쪽이 밀리고 있는 거고?”
연적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남궁연이 설명을 덧붙였다.
“유명교를 황궁에 받아들인 일로 황제의 권위와 기반이 다 무너졌을 거예요.”
“독살의 책임이 진위 대장군까지 올라갈 수도 있을까요?”
“황제의 숙부는 이 기회에 진위 대장군을 없애려 할 거예요.”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런데 사례병필태감이 독살당하기는 한 걸까요? 가을에 죽었으면 몇 달이나 지난 일이라 증명하기도 어려울 텐데.”
“의혹을 제기한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한 거예요. 증명이야 나중에 그의 시체를 파내 독을 묻혀도 그만이고요.”
“와아, 나는 이래서 머리 좋은 사람들이 무섭다니까.”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궁연의 말대로라면 남진 무사와 진우생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다.
“외삼촌! 아버지를 구해 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아버지는 참수를 당하실지도 모릅니다!”
“에이, 그래도 진우생이 내 매제인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거야. 그렇죠? 부인?”
그러나 남궁연의 대답은 그가 기대한 것과 달랐다.
“지금의 금의위는 당신이 알던 금의위와 다를 거예요. 금의위 지휘사도 바뀐 지 오래고, 당신과 알고 지내던 분들은 모두 관직에서 물러났잖아요. 게다가…….”
“또 뭐가 남았어요?”
“진위 대장군과 달리 남옥 대장군은 무림을 멀리하는 사람이에요. 당신과 황실의 관계는 이십 년 전에 끝났어요. 대소 신료들이 당신의 이름 정도는 알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에요.”
진우생이 참수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화 내용에 비해 다소 가볍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궁연이 확인하듯 말을 덧붙였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여기서 십 년이 더 지나면 석경장을 두려워 하는 무림인도 찾아보기 어려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