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4
1414회. 안에 재승이 있냐?
다음 날.
남옥 대장군부의 총관은 점심 즈음 건원표국을 방문해 편지 하나를 맡겼다.
물론 수신인은 석경장의 남천 연적하였다.
건원표국은 석경장에서 그러했듯 군말 없이 편지를 받았다.
그날 오후, 연적하의 편지를 남옥 대장군부에 배달했던 표두가 석경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전과 달리 직접 연적하를 만나지 못했다.
연적하가 직접 부른 것이 아닌 만큼 총관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남옥 대장군부의 총관이 맡긴 편지를 석경장의 총관에게 건넸다.
풍운비는 개봉에서 운중룡이라 불리던 고수.
그가 날카로운 눈으로 표두를 응시하자 표두는 서늘한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건 뭡니까?”
“남옥 대장군부의 총관이 말하기를 ‘남천 대협에게 드리는 대장군님의 답신’이라 했습니다.”
“흥! 재밌는 사람들이군.”
풍운비가 느끼기에 그것은 ‘따라 하기’로 일종의 기세 싸움이었다.
총관이 더 묻지 않자 표두는 꾸벅 인사를 올리고 돌아섰다.
풍운비는 편지를 들고 안채로 향했다.
남옥 대장군 양재승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 시대의 권력자.
그런 자가 일개 무림인의 지시에 따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상대가 아무리 이십 년 전에 고금제일인이라 불렸다 해도 말이다.
이윽고 안채에 이른 풍운비가 말했다.
“장주님, 남옥 대장군부에서 답신을 보냈습니다.”
“가져오거라.”
“예.”
마루로 오른 풍운비는 조심스럽게 안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연적하가 편지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대장군부의 사람이 왔다 갔더냐?”
“아닙니다. 일전에 장주님께서 불렀던 건원표국의 표두를 통해 보내왔습니다.”
“뭐야? 나를 직접 상대하지 않겠다는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연적하는 남옥 대장군부를 모르니 표국을 이용했지만, 석경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표국을 이용한 것은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였다.
연적하는 편지를 꺼내 읽었다.
장황한 인사치레 뒤에 적힌 글은 ‘역모는 중범죄라 사사로이 놓아줄 수 없다’였다.
“운비야.”
“예.”
“역모는 중범죄라 사사로이 놓아줄 수 없단다.”
“남옥 대장군이 장주님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가 봅니다.”
“흠. 이걸 어떻게 하지? 죽여? 살려?”
농담처럼 가벼운 말이지만 풍운비는 장단을 맞춰 주지 않았다.
남옥 대장군의 생사가 달린 문제인 까닭이다.
한참을 죽일지 살릴지를 두고 고민하던 연적하가 풍운비에게 말했다.
“운비야, 남옥 대장군부에 갔던 표두를 오라 해라. 내가 직접 가서……. 아니지, 아랫사람에게 백번 말해도 소용없겠지? 내일은 오랜만에 나들이나 해야겠다.”
“길잡이는 필요 없으십니까?”
“괜찮아. 내가 아무리 길눈이 어두워도 황궁 하나 못 찾아가겠냐?”
“아, 예.”
풍운비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남경이나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저토록 자신만만하신 것을.
***
남직례성.
남경.
태화전.
정오 무렵.
오전 내내 대신들에게 시달리던 어린 황제는 답답한 마음에 잠시 마당을 거닐었다.
두 명의 환관과 여덟 명의 궁녀들이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추운 날씨 탓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산책 중인 사람들의 입과 코로 하얀 숨만 속절없이 흘러나왔다.
그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던 어린 궁녀의 입에서 ‘아!’ 하는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궁녀의 탄성에 황제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궁녀는 놀라 머리를 숙이고 사죄할 만도 한데 오히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황제와 내시, 궁녀들의 눈이 어린 궁녀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솜털처럼 하얀 구름 위로 한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뒷짐을 지고 도도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은 사람이되 사람 같지 않았다.
하기사 사람이라면 황제의 행차 앞에 저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리라.
하얀 구름이 천천히 황제를 향해 내려왔다.
뜻밖의 상황에 모두가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때다.
은밀하게 따라다니던 금의위 삼십여 명이 빠르게 달려와 황제의 앞을 막아섰다.
이윽고 친위대장 정오품 무덕장군 심여경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폐하! 침입자이옵니다. 속히 안전한 곳으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 위에서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황궁 맞습니까?”
마치 길이라도 묻는 듯한 담담한 어투에 심여경의 곤두세웠던 신경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렇습니다만 선인은 누구시며, 무슨 일로 황궁을 찾으십니까?”
“아! 제대로 찾아왔군요. 나는 여강현 석경장의 주인인 연적하라고 합니다. 황제를 만나기 위해 왔는데, 혹시 거기 계신 분이 황제실까요?”
심여경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선인께서 정녕 남천 연적하 대협이란 말씀이십니까?”
무관들은 대체로 무림인들을 경원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오품 무덕장군 심여경도 그랬다.
왜냐고? 허풍이 너무 심해서다.
자기들끼리 드잡이질을 하고서는 산이 갈라지고, 바위가 쪼개졌다고 했다.
검기니, 장풍이니, 격공장이니 하지만 대부분이 짜고 하는 거짓말이다.
풀잎을 밟고 다닌다는 초상비, 허공을 걸어다니는 허공답보,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는 답설무흔도 과장이거나 사기다.
그런데 남천 연적하가 대낮에 구름을 타고 나타난 것이다.
“선인인지는 나도 모르겠고, 남천 연적하 맞습니다. 거기 뒤에 계신 분 황제시냐고요.”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무례한 발언이지만 심여경은 감히 따지지 못했다.
“예, 황제 폐하십니다. 무슨 일로 황제 폐하를 찾으시는 것인지요.”
그러자 구름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 앉았다.
이윽고 구름에서 걸어 나온 연적하가 금의위 뒤에 서 있는 황제를 향해 말했다.
“잠시 둘이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심여경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연적하와 황제를 번갈아 보았다.
본래 침입자를 발견하면 닥치고 난도질을 해야 하지만, 상대가 구름을 타고 나타난 선인인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심여경이 머뭇거릴 때 황제가 말했다.
“과인은 선인과 대화를 나눌 것이니 금의위는 물러가도록 해라.”
그제야 심여경은 머리를 조아려 보인 후 금의위와 함께 뒤로 빠졌다.
황제는 환관과 궁녀 들마저 뒤로 물린 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선인께서는 어인 일로 과인을 찾아오셨습니까?”
연적하는 담담한 어조로 매제 진우생이 당한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남옥 대장군에게 서찰을 보냈는데, 역모는 중범죄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내 매제는 역모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풀어 주라 하십쇼.”
마지막 말은 단호했다.
연적하는 황제마저 역모 운운하며 거절하면 귀싸대기를 날릴 생각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황제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남옥 대장군이 혼자서 벌인 일이라면 지금 즉시 무죄 방면을 약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의 배후에는 숙부가 있고, 조정 대신들은 자신보다 숙부를 더 어려워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남옥 대장군은 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가 진 천호를 무죄 방면하라고 지시해도 듣지 않을 겁니다.”
“그럼 남옥 대장군은 누구 말을 듣습니까?”
“그는 제 숙부의 사람입니다.”
연적하가 황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린 황제가 스스로 나서서 일을 처리하려 했다면 얼마든지 도울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 우유부단한 황제는 모든 걸 숙부의 탓으로 돌렸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릇이 안 되는 거다.
조정의 군소 신료들이 남옥 대장군 편에 선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쯧!’
속으로 혀를 차던 연적하는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치솟은 그는 허공에서 방향을 돌려 어디론가 날아갔다.
황제가 멍하니 텅 빈 하늘을 응시할 때 심여경이 황급히 다가왔다.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괜찮네.”
그제야 심여경이 읍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이번에는 사례태감(司禮太監) 왕연이 어린 황제에게 바싹 붙었다.
“폐하, 선인과 무슨 말씀을 나누셨습니까? 혹여 선인이 불경스러운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니. 진우생이라는 금의위를 풀어 달라 하더라고.”
“진 천호는 이 태감을 독살한 자가 아닙니까? 그런 자를 왜?”
“선인의 매제래.”
“아!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라고 무슨 힘이 있나. 남옥 대장군이 숙부의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지.”
“선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지 그러셨습니까?”
“황제 체면에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라고?”
그러자 왕연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선인이 황상을 도와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그런 인연 하나 만들어 둔다면 그보다 든든한 뒷배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어린 황제의 생각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떠났어. 숙부를 찾아가 한바탕 뒤집어 주면 좋겠는데.”
왕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날려 버린 걸 황제는 아는지 모르겠다.
***
날아가던 연적하의 눈에 마침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표국 하나가 보였다.
빠르게 표국 마당에 떨어져 내린 그는 남옥 대장군부까지 안내해 줄 사람을 찾았다.
“남옥 대장군부라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누군가 나서자 연적하는 한 손으로 표사의 허리를 잡고 날아 올랐다.
이윽고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두 사람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아래를 살피던 표사가 갑자기 악을 썼다.
“저깁니다! 저기요!”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방향을 틀어 거대한 장원으로 날아갔다.
황제와 대면한 뒤로 짜증이 났던 연적하는 대문을 건너뛰고 안마당에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한겨울이라 넓은 마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연적하가 표사에게 턱짓을 보냈다.
눈치 빠른 표사가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발소리와 함께 한순간 십여 명의 무인이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웬 놈들이냐!”
“대낮에 남옥 대장군부의 담을 넘다니 대담하구나!”
“누구냐!”
무사들은 불청객들과 거리가 좁혀지자 일제히 도검을 뽑아 들었다.
무사들을 가볍게 둘러보던 연적하가 짜증 어린 어조로 말했다.
“닥치고! 당장 남옥 대장군인지 여옥 대장군인지에게 튀어나오라고 해.”
불청객이 남옥 대장군을 조롱하자 한순간 마당이 고요해졌다.
곧이어 ‘쳐라!’라는 외침과 함께 무사들이 앞으로 짓쳐 들어갔다.
그 흉흉한 서슬에 놀란 표사의 입에서 ‘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쾅!’ 하는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무사들이 일제히 뒤로 날아갔다.
무사들은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워낙 강력한 충격에 감히 다시 덤벼들지는 못하고 불청객의 눈치만 살폈다.
뒤늦게 총관이 달려 나왔다.
무사들의 행색을 보고 대충 분위기를 짐작한 총관이 정중하게 물었다.
“나는 남옥 대장군부의 총관 고진이오. 당신들은 어디의 누구요?”
얼떨결에 함께 온 표사도 궁금하다는 듯 청년을 뚫어져라 보았다.
연적하가 턱을 쳐들며 말했다.
“나? 여강현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 님이시다. 안에 재승이 있냐?”
순간 고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반면 십여 명의 무사들과 표사는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무려 이십 년 전에 사라진 전대 고수가 이십 대의 앳된 얼굴로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된 고진은 두말하지 않고 앞장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