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17
1417회. 마당이나 쓸게 해라
결과적으로 이 남 일 녀는 객청에 남았다.
폭우가 너무 쏟아진 것도 있지만, 총관의 눈을 피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밤중에 이런 폭우를 뚫고 달아나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하기 어려웠다.
자칫 석경장에 그들을 적대시할 빌미를 줄 수도 있었다.
다음 날.
날이 밝았음에도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 남 일 녀는 다시 마루에 모였다.
마당을 내다보는 세 사람의 표정은 착잡했다.
억지로 가면 못 갈 것도 없지만 이 빗속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다만 하룻밤을 머물러서 그런지 어제만큼 불안해 하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앞으로의 일정을 두고 논의할 때 일꾼 하나가 다가왔다.
어젯밤 총관의 무위를 보고 놀랐던 세 사람은 말을 멈추고 일꾼에게 주목했다.
다행히 일꾼은 평범해 보였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모시고 오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일꾼의 말에 뇌운신도 공천백이 물었다.
“누가 그렇게 말씀하셨소? 장주님이시오? 아니면 총관님이시오?”
“그야 물론 총관님이시지요.”
세 사람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일꾼을 따라 안쪽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빗줄기는 가늘어져서 딱히 머리를 가리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일꾼은 안쪽의 전각을 가리켜 보인 후 되돌아갔다.
전각 안에는 탁자 세 개가 길게 늘어져 있는데, 식탁 좌우편으로 여섯 명의 남녀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마치 나이를 따라 자리를 나눈 것처럼 좌측에는 혈색 좋은 노파 둘과 총관이, 우측에는 이십 대 초중반의 이 남 일 녀가 앉아 있었다.
재빨리 구성원을 살핀 공천백은 일단 안면이 있는 총관에게 인사를 올렸다.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풍운비가 서둘러 말했다.
“자네들을 초대한 건 내가 아니라 장주님 내외분이네. 그러니 인사는 장주님 내외분에게 하도록 하게.”
그 말에 옥녀검 여혜진, 뇌운신도 공천백, 신검서생 주무생은 부랴부랴 전각 안의 사람들을 살폈다.
총관을 빼면 혈색이 좋은 노파 둘과 이십 대의 이 남 일 녀가 남는다.
그런데 총관은 분명히 장주님 내외라고 했다.
삼십 년 전에 은거할 때 남천 연적하와 십전무후 남궁연의 나이는 삼십 대였다.
은거한 뒤로도 삼십 년이 더 지났으니 지금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의 나이는 육십 대일 터.
하지만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살펴도 육십 대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자연히 세 사람은 ‘아직 장주 내외가 나오지 않았다’고 착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풍운비의 말이 이어졌다.
“좌측부터 뇌운신도 공천백, 옥녀검 여혜진, 신검서생 주무생이라 합니다. 뭣들 하나? 인사 올리지 않고.”
손가락까지 짚어 가며 세 사람을 소개하던 풍운비가 채근하자, 깜짝 놀란 공천백이 급히 머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공천백입니다!”
뒤늦게 여혜진과 주무생이 공천백을 따라 했다.
“여혜진입니다.”
“주무생입니다.”
세 사람은 장주 내외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일단 머리부터 조아렸다.
이윽고 세 사람이 고개를 들자 풍운비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적당히 자리 잡고 식사하게.”
그 말에 세 사람은 또래들로 보이는 이 남 일 녀의 옆으로 이동했다.
자리 배치가 꼭 세대를 나눈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곧이어 찬모들이 요리와 생선탕이 든 냄비를 가져와 탁자 위에 배치했다.
잠시 후 찬모들을 지휘하던 초로의 여자가 자연스럽게 풍운비의 옆에 앉았다.
세 사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초로의 여자를 힐끔거리자 풍운비가 피식 웃었다.
“이쪽은 내 안사람이네. 부인, 저 셋이 지난밤에 석경장을 찾아온 손님들이오.”
초로의 여자가 빙그레 웃으며 세 사람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세 사람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정중하게 묵례를 올렸다.
한동안 달그락달그락 젓가락질하는 소리만 났다.
어린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식사 자리는 조용하기만 했다.
공천백은 슬쩍 옆자리 청년들을 보았다.
또래의 청년들이라 그런지 경계심이 조금 풀어졌다.
그는 슬쩍 말을 걸었다.
“노형도 석경장의 사람입니까?”
“총관님이 제 부친입니다.”
“아! 이제 보니 총관님의 자제분이셨군요. 저는 공천백이라 합니다. 뇌운신도라는 별호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풍자운이라 합니다.”
“풍 형제는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저는 스물일곱입니다.”
“스물셋입니다.”
“아!”
그때 여혜진과 주무생이 슬쩍 끼어들었다.
“저는 스물둘이에요.”
“저는 스물다섯입니다.”
나이를 밝힌 뒤로 젊은이들끼리 소곤소곤 떠들기 시작했다.
석경장에서 가장 어린 풍자운은 모처럼 또래를 만나 기분이 들떴다.
게다가 이 남 일 녀 모두가 용과 봉처럼 기상이 높아 마음도 잘 맞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이들은 호형호제를 하기에 이르렀다.
불청객인 세 사람이 석경장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풍자운을 공략한 덕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여혜진의 입에서 ‘풍 오라버니’소리가 나왔다.
식사를 마칠 즈음 네 사람은 십 년은 알고 지낸 것처럼 친해졌다.
여혜진은 처음과 달리 편한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석경장은 다른 무림의 무가들과 달리 그냥 평범한 집 같았다.
실내 어디에도 패도적인 글귀나 병장기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저기 책이 보였다.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낙향한 문관의 집 같았다.
경계심이 풀린 그녀는 풍자운의 옆에 앉은 남녀에게 눈을 돌렸다.
나이는 풍자운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다.
그녀는 두 남녀도 풍자운처럼 누군가의 자녀려니 생각했다.
‘두 노파의 손자, 손녀일까?’
풍자운이 총관 부부의 아들인 것으로 보아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풍 오라버니, 옆에 계신 두 분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꾼 하나가 마당을 가로질러 왔다.
“총관님, ‘삼존’이라는 무림인들이 장주님을 찾습니다.”
석경장에 틀어박힌 지 삼십 년이 넘는 풍운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삼존이 누구지?”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공천백이 슬쩍 끼어들었다.
“삼존은 강남 일대에 흉명을 떨치고 있는 마두들입니다. 스스로를 천존, 지존, 인존이라 칭하는데 손속이 잔혹해 삼 년 전 호천맹에서 무림공적으로 선포했습니다.”
공천백의 설명이 끝나자 여혜진도 한마디 보탰다.
“그들 세 사람은 새외에서 흘러 들어온 고수들이에요. 그래서 사용하는 무기와 수법이 괴랄하기로 유명하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사람이 앞마당에 나타났다.
허연 수염에 호랑이 눈을 가진 세 사람은 한눈에 봐도 비범해 보였다.
선두에 선 노인은 자루가 긴 낫처럼 생긴 무기를 어깨에 척 걸쳤고, 그 뒤의 이는 곡도를, 마지막 노인은 손에 강철조를 끼고 있었다.
낫처럼 생긴 병기를 어깨에 길친 천존 배광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흐. 석경장이 무림 최고의 신비라고 하더니……. 막상 와 보니 여염집과 다를 바가 없구나. 대륙 놈들의 허풍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곡도를 든 지존 창해가 그 말을 받았다.
“정문에서 안채에 이를 동안 저항하는 이조차 없으니……. 가히 허명 중에 최고라 하겠다. 남천이라는 놈이 누구냐?”
인존 묘황은 말대신 손에 낀 강철조를 혀로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풍운비가 젓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풍자운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친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풍자운의 옆자리에 있던 두 남녀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청년은 고기전을 들어 보이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화란아, 오늘은 간이 아주 제대로구나. 나는 심심한 것보다 이 정도가 좋더라.”
옥녀검 여혜진이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어 볼 때, 총관의 부인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건강을 생각해 심심하게 드세요.”
“나는 간간하게 먹어도 괜찮다니까.”
“가모님도 생각하셔야죠.”
“아, 그런가?”
여혜진은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청년이 하대를 하고, 초로의 여자가 그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총관과 풍자운은 물론, 두 노파도 웃기만 할 뿐 청년을 나무라지 않았다.
한편 삼존은 기껏 존재감을 뽐냈는데 식탁에서 음식 타령만 해 대자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윽고 배광이 낫과 같은 무기로 풍운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남천이라는 놈이냐?”
그러자 풍운비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나는 석경장의 총관으로 풍운비 님이라 하신다. 너희가 삼촌이라는 늙은이들이냐?”
“삼촌이 아니라 삼존이다!”
“삼존은 처음 듣는 이름이니 이참에 그냥 삼촌으로 바꾸거라.”
“이놈이…… 남천도 우습게 보는 우리에게 총관 따위가…… 뒈져라!”
돌연 배광이 들고 있던 낫으로 풍운비를 내리찍었다.
전광석화 같은 그 수법에 풍운비의 목이 댕강 잘릴 듯 보였다.
캉―!
언제 뽑았는지 풍운비가 검으로 낫을 막았다.
배광은 낫을 끌어당기려 했지만 낫은 바위에 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배광을 본 창해와 묘황이 뒤늦게 싸움에 끼어들었다.
곡도와 강철조가 풍운비를 덮쳤다.
순간 풍운비가 검을 슬쩍 틀자 배광의 몸이 곡도를 막아섰다.
대경실색한 창해는 곡도를 황급히 뒤로 물렸다.
그사이 강철조가 풍운비를 훑고 지나갔다.
카카카캉―!
쇠가 쇠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묘황은 멀쩡한 풍운비와 강철조를 번갈아 보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몸이 강철로 된 게 아니라면 호신강기가 분명했다.
상대가 호신강기와 같은 절기를 쓴다면 강철조로는 어쩔 수 없었다.
한차례 접전이 끝나고 삼존이 멈칫할 때, 풍운비가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구처세법 삼 식 운룡풍호(雲龍風虎)다.
검 끝에서 일어난 세 가닥 검풍이 우물쭈물하고 있던 삼존을 덮쳤다.
콰콰콰콰―!
삼존은 미친 듯 병기를 휘둘러 검풍을 베었지만 소용없었다.
그에 삼존은 각자의 병기 뒤에 몸을 웅크리고 검풍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칼날 같은 검풍이 삼존을 쓸고 지나갔다.
촤라라락―!
머리카락이 잘리고,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찢어진 옷조각 끝으로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덜덜 떨던 배광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시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창해와 묘황도 소리를 높였다.
“우리를 죽여 봐야 석경장에 무슨 이익이 있겠소!”
“살려만 준다면 무엇이든 하리다!”
그러자 풍운비가 검을 거두며 말했다.
“너희가 장주님을 모욕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죽이고 살리는 것은 장주님에게 달려 있으니 기다려라.”
곧이어 풍운비가 돌아서자 삼존은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달아날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전각 앞에 이른 풍운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주님. 삼존이라는 자들을 어찌할까요?”
연적하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삼존이 세 방향으로 달아났다.
아까부터 삼존을 지켜보던 공천백의 입에서 ‘어!’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풍운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혜진과 공천백, 주무생은 풍운비의 실책으로 삼존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쉬쉬쉿―!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무엇인가가 삼존의 허리를 때렸다.
삼존이 ‘악!’ 소리와 함께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
닭뼈를 날려 삼존을 제압한 연적하가 손을 오므렸다.
그러자 삼존이 빨려들듯 날아와 전각 앞에 툭 떨어졌다.
연적하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묻어 줄 땅도 아깝다. 운비 네가 잘 타일러서 마당이나 쓸게 해라.”
“예.”
풍운비가 청년, 연적하를 향해 읍을 해 보인 뒤 삼존에게 걸어갔다.
초로의 나이인 총관과 청년의 대화를 듣던 이 남 일 녀는 숨도 쉬지 않았다.
노파들의 손자쯤으로 생각한 청년이 남천 연적하였다니!
초절한 무공보다 아직도 이십 대로 보이는 얼굴이 더 기괴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