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22
1422회. 호천맹에서 무슨 일로 나를 찾나?
장사로 달아났던 현무대 일 조원들은 하루가 지나도 조장이 돌아오지 않자 악양으로 떠났다.
다음 날 저녁 무렵, 악양에 도착한 일 조는 현무대 본대를 찾아가 형산파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현무대주 강남일검 송여량이 벽력도 황산월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조장의 생사도 확인하지 않고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말이냐?”
“자칫 저희들만으로는 명왕교의 손에 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네가 염탐도 불가능할 정도로 고수더냐?”
“예, 적이 방심하지 않았다면 저희는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끙!”
송여량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명왕교가 그처럼 강하다면 일 조원들의 행동을 탓할 수도 없었다.
한편으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현무대가 홀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인가?’
못한다.
일 조 조장이 건재하다면 혹 모를까?
자신과 비슷한 무위의 일 조 조장이 당했다면 현무대로는 무리다.
“하아! 일 조 조원들 중에 다친 사람은?”
“셋이 암기에 맞았으나 경미한 부상입니다.”
“암기술이 변변치 않았던 모양이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송여량이 눈을 찌푸렸다.
조장의 생사조차 모를 정도로 큰 사건치고 피해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적들의 무공은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장이 상대하던 자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사십 년 전의 유명교 괴담이 생각날 정도로요.”
호천맹에서조차 과거 유명교의 일을 괴담 취급하는 게 현실이었다.
두 세대나 전에 벌어진 일이니 그런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송여량이 문득 말했다.
“황산월, 풍 조장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 네가 일 조 조장을 맡아라.”
“그건 좀…….”
“임시다. 내가 일 조를 지휘할 수는 없지 않느냐.”
머뭇거리던 황산월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날숨을 길게 내뱉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조장님은 살아 계실 겁니다.”
황산월은 조장의 생존을 확신했다.
비룡검 풍자운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칠파이문의 장문인도 못할 것이다.
그런 조장이 형산파에서 마주친 명왕교 따위에 당할 리가 있나.
잠시 후 황산월을 내보낸 송여량은 호천맹에 ―위기 시 사용하게 되어 있는― 전서구를 날렸다.
***
하남성.
정주.
칠리하촌 호천맹.
악양에서 날아든 전서구 한 마리로 인해 호천맹 수뇌부가 발칵 뒤집혔다.
명왕교의 출현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일 조 조장 풍자운 때문이다.
풍자운이 누군가.
석경장 총관인 운중룡 풍운비의 아들이자, 남천 연적하가 증손자처럼 아끼는 사람이었다.
호천맹의 주축인 청장년들이야 석경장의 이름을 들어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호천맹 원로들에게 석경장은 경외의 대상이다.
십 년 전 풍자운이 호천맹에 입맹했을 때 원로들은 ―비록 내색은 안 했지만― 기뻐서 며칠간 술판을 벌였었다.
남천 연적하의 남맹행으로 얼마나 남맹의 눈치를 봤던가.
그러나 풍자운이 호천맹에 의탁했으니 남맹의 속이 얼마나 불편할지 안 봐도 훤했다.
간부의 자리에 비해 칠파이문의 제자가 너무 많아 고위직은 내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오 년은 빨리 조장에 앉혀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대주급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고심하던 중인데,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호천칠군의 일인이자 호천맹 맹주인 검군 신중낙이 탁자를 후려치며 말했다.
“생사 불명이라니! 고작 형산에서 명왕교 잔당과 조우했을 뿐인데! 조장이 그렇게 될 때까지 현무대주는 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이오!”
총군사 신산자 공손천수가 맹주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현무대주는 악양에서 남맹 측과 협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형산파의 의뢰를 받아 일 조만 따로 파견했던 것입니다. 현무대주를 책망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현무대주의 보고에 의하면 명왕교 수뇌부의 무위는 대주급을 상회한다고 합니다. 현무대가 동원됐어도 화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
신중낙은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누르느라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공손천수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천하가 어수선한 틈에 유명교 잔당들이 세력을 키운 것 같습니다. 형산에 나타난 명왕교 고수는 십두마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명교주는 죽었지 않소?”
“사십여 년 전 명왕교를 창설한 자들은 네 명의 백두마군들 입니다. 그들은 죽었겠지만, 명왕교에 십두마병을 만드는 법이 전해진 것 같습니다.”
“십두마병의 무위는?”
“최소한 초절정입니다. 과거의 문헌으로 볼 때 호천칠군이나 칠파이문 장문인들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풍자운 조장이 처음부터 달아날 생각이었다면 모를까? 정면대결로 치달았다면 빠져나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상대가 십두마병인 걸 몰랐으니 일단 부딪쳐 봤을 테고, 거기서 발목이 잡힌 게 틀림없다.
“풍 조장이 죽었을 거라는 소리요?”
“과거 유명교의 행적을 볼 때……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명교는 인명을 경시하기로 유명했다.
존경해야 마땅할 수도자들을 인신 공양의 제물로 삼는 자들이니 오죽할까.
“즉시 석경장에 상황을 알리시오. 그리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 대를 호광성으로 급파해 풍 조장의 생사부터 확인하라 하시오.”
“맹주님, 풍 조장의 생사 확인에 네 개의 대까지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쯤 명왕교도 형산파를 떠났을 테니 생사 확인은 악양에 있는 현무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가급적 빨리 토벌대를 보내야 합니다.”
“토벌대라 함은…….”
“호천칠군이 움직이거나 칠파이문 장문인급의 무인들이 필요합니다.”
칠파이문 장문인을 거론했지만 실은 호천칠군이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무림의 중대사가 아닌 다음에야 칠파이문 장문인들이 움직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호천칠군이 처음 무림에 등장한 것은 사십 년 전 호천맹 무림대회다.
호천맹에서 해마다 무림대회를 열었지만 호천칠군보다 더 뛰어난 무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자나면서 호천칠군은 무군, 검군, 도군, 창군, 권군, 조군, 독군의 위명을 얻었다.
‘왕(王)’으로 할 수도 있지만 남맹의 맹주였던 ‘검왕’과 차별하기 위해 ‘군(君)’으로 호칭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맹주이자, 호천칠군의 일인인 검군 신중낙은 총군사의 말속에 담긴 저의를 간파했다.
“총군사는 이것이 정녕 호천칠군 전체가 움직여야 할 사안이라 생각하시오?”
“남천 대협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있습니다만, 소문의 절반만 사실이라 해도…… 그렇습니다. 만에 하나 풍 조장이 사망했다면, 남천 대협은 호천맹의 전후 행보를 주의 깊게 살펴볼 것입니다. 풍 조장이 당한 것은 몰랐기에 그렇다 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처리에 호천맹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증손자 같은 풍 조장을 잃은 남천 대협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총군사 신산자 공손천수가 맹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숙부인 전대 총군사 공손일랑 공손기에게 남천 연적하가 어떤 인간인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바 있다.
사십 년 전 총군사이던 숙부는 호천맹 한가운데서 연적하에게 두드려 맞았다.
당시 총사부에 있던 공손남 숙부도 연적하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기까지 했다.
남천 연적하의 무위가 소문의 반만 돼도 자신과 맹주는 그들의 전철을 밟게 될 터였다.
맹주는 환갑을 넘겼고, 자신도 오십 줄에 들어섰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날로 은거를 해야 할 판이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검군 신중낙은 내키지 않았지만 총군사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정말 명왕교가 발호한 것이라면 호천칠군이 나서야 정리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합시다. 다만 무군은 방랑벽이 심한 사람이라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오. 그를 제외한 여섯이 움직일 테니 청룡, 백호, 주작대로 호종(護從)하게 하시오.”
“명대로 하겠습니다.”
총군사 공손천수가 답하자 신중낙이 다시 물었다.
“총사부에서는 누굴 종군시킬 계획이오?”
“맹주님까지 직접 움직이시는 마당에 누굴 보내겠습니까? 제가 가야지요.”
“잘됐소. 아무쪼록 토벌대를 잘 운영해 보시오. 나는 그런 쪽으로 영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저도 칼 쓰는 일은 맹주님의 반도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허허. 공손가에서 칼 쓸 일이 뭐가 있다고. 돌아가 출정 준비를 해 주시오. 이왕 결정한 것, 석경장에 트집 잡히지 않게 부지런을 떨어 봅시다.”
“알겠습니다.”
공손천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호천맹 지붕 위로 수십 마리의 전서구가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
남직례성.
합비.
여강현 석경장.
정오 무렵.
누군가 석경장의 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잠시 후 초로의 일꾼이 대문을 조금 열고 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십니까?”
“호천맹 회남 지부의 지부장 벽력권 진가장이라 하오. 급한 일로 장주님을 뵈러 왔소.”
“잠시만 기다려 보십쇼.”
일꾼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십 대 장한의 모습에 놀라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일꾼은 손님을 객청으로 모셨다.
객청.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던 진가장은 발소리가 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당을 내다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급한 일로 장주를 만나러 왔는데 웬 청년이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었다.
청년은 그를 빤히 보더니 객청 마루 위까지 거침없이 올라왔다.
손님인 진가장은 청년이 하는 양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이윽고 진가장의 맞은편에 앉은 청년이 입을 열었다.
“호천맹에서 무슨 일로 나를 찾나?”
순간 진가장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한동안 눈을 끔뻑였다.
“남천…… 대협이십니까?”
“그래. 왜?”
‘세상에!’
깜짝 놀란 진가장은 마른침을 삼키다 그만 사레가 걸리고 말았다.
한참을 컥컥거리던 그가 겨우 말했다.
“저, 저는 호천맹 회남 지부 지부장 진가장이라 하옵니다. 총단에서 남천 대협께 전해 드리라고 전서구를…… 아니, 전서구를 통해 전하라는 내용이……. 아니 말씀이 있어 찾아뵀습니다.”
당황한 그는 말을 두서없이 내뱉었다.
그래도 연적하는 그를 탓하지 않고 호천맹의 전언을 기다렸다.
다행히 처음에만 그랬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진가장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팔월 스무닷새 날, 현무대 일 조와 형산파를 습격한 명왕교도들 간에 일전이 벌어졌는데, 조장 비룡검 풍자운의 생사를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현무대가 형산으로 가서 풍자운을 찾는 중이며, 호천맹은 명왕교 토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뜻밖의 비보에 연적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며칠 전 풍운비와의 대화 중에 명왕교를 떠올렸지만 설마 하고 넘겼다.
그 잠깐의 방심이 이런 위기를 부른 것이다.
자신의 안일함에 대한 분노로 이를 악물고 있던 연적하가 다시 눈을 떴다.
“명왕교가 확실한가?”
“예.”
“그렇다면 십두마병이 나타난 게로군.”
연적하는 단번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
풍자운의 무위를 생각하면 상대가 십두마병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호천맹에서도 호천칠군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들었습니다.”
“형산파라고 했느냐?”
“예. 형산파에서 호천맹에 조사를 요청해 현무대가 손을 쓴다는 것이 그만…….”
“알았으니 돌아가라.”
“예? 예…….”
진가장은 연적하에게 머리를 조아려 인사한 후 객청을 떠났다.
홀로 남은 연적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후 서각으로 향했다.
서각(書閣).
십전무후 남궁연의 앞에 철퍼덕 주저앉은 연적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누님. 자운이에게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정말 명왕교의 짓이었구나?”
“예, 자운이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십두마병들이 많다면 운비까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으니까요.”
“하아! 사람이 내일 일을 모른다고 하더니……. 감히 명왕교가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몇 안 남은 백두마군들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너의 존재를 의심하는 후대들이 벌인 짓일 테지.”
호천맹의 무인들까지도 사십 년 전 남천 연적하가 벌인 일들을 ‘거짓이다, 과장이다’ 떠들어 대는데, 명왕교라고 다를 리 없다.
남궁연은 남궁연대로 자신이 미연에 막지 못해 그렇게 됐다 자책했다.
“다녀올게요.”
연적하는 맥 빠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풍운조화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니 기가 막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