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26
1426회. 그래. 그럼 가자
시체들이 이상하게 변해 갈 때 풍운비는 연적하의 말을 떠올렸다.
―예, 그런데 장주님. 만에 하나 그게 명왕교 짓이라면……. 제가 마물이 된 저들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 실종자 문제가 이제 대두된 거면 아직 백두마군까지 못 갔을 거야. 지금의 너라면 십두마병 하나 정도는 문제없어.
―하나만입니까?
―혹여 형산에서 적과 싸우게 되더라도 단숨에 둘 이상 베지는 마.
―십두마병으로 변할까 봐 그러시는 거군요?
―그렇지. 너에게 둘은 무리거든.
―주의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달아나야겠지요?
―당연하지. 너도 자운이 장가가는 건 봐야 하잖아. 참! 자운이가 마음에 둔 여자는 있냐?
―십 년 전 석경장에 찾아왔던 당돌한 녀석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핏덩어리들?
―예, 그때 알게 된 여자를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그 정도면 혼인 얘기가 나와야 되는 거 아니야?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여자 집안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만 좋으면 그만이지 집안은 무슨.
―하하핫! 세상 사람들이 다 장주님처럼 살지는 않지 않습니까.
연적하를 떠올리자 가슴이 또 쓰렸다.
석경장의 보물이라며 자신만큼이나 자운을 아끼던 분이었다.
명절에나 찾아오는 친손주들과 달리 자운은 석경장에서 자랐으니 더 정이 들었으리라.
그러는 동안에도 마치 굼벵이에서 매미가 나오듯, 각각의 시체에서 괴형체가 몸을 일으켰다.
뒤로 물러난 풍운비는 땀 찬 손바닥을 옷자락에 슥 닦고 도를 고쳐 잡았다.
아들의 죽음과 관계된 것들을 남겨 두고 달아날 생각은 없었다.
상대가 누구라도 찢어발길 것이다.
가장 먼저 시체를 찢고 나온 마인 둘이 양팔을 벌리고 포효하듯 소리 질렀다.
“크라라라라―!”
“크라라라라―!”
소름이 돋는 기괴한 소리에 명왕교도들은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팔왕의 시체에서 머리에 뿔 난 마인이 튀어나오다니?
선대에게 들은 믿지 못할 이야기를 떠올린 누군가 덜덜 떨며 말했다.
“지옥의 사자들이 왔다. 다 죽을 거야. 다 죽는다고.”
그 말에 놀란 명왕교도들은 메뚜기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돌연 감로왕의 시체에서 서기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곧이어 청아한 염불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상이 현세에 강림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대웅전 안에 있어야 할 관세음보살이었다.
망자가 바라는 모습으로 현현하는 염마의 이능이 만들어 낸 기적이다.
“옴 기리나라 모나라 훔 반타!”
관세음보살의 진언에 달아나던 명왕교도들은 관세음보살 앞으로 몰려가 절을 올렸다.
어떤 이는 살려 달라 애원했고, 또 다른 이는 마음에 품고 있던 소원을 빌었다.
관세음보살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엎드려 비는 명왕교도들을 마치 파리나 모기 잡듯 내리찍었다.
쿵! 쿵―! 쿠웅―!
십여 명의 명왕교도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압살당했다.
뒤늦게 살아남은 명왕교도들이 다시 줄행랑을 놨다.
관세음보살의 손바닥이 가장 뒤처진 사람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이윽고 손을 들어 올린 관세음보살은, 긴 혀를 뻗어 피범벅 된 제 손바닥을 핥았다.
그 좌우편에 십 척 장신의 거인 둘이 나란히 섰다.
하나는 몸뚱어리가 검붉었는데 쩍쩍 갈라진 피부에서 불꽃이 튀었고, 다른 하나는 입과 코에서 ―마치 굴뚝처럼―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던 다섯 마인의 시선이 풍운비에게서 멈췄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일각마인들이었다.
칼날 같은 손톱을 활짝 편 일각마인들이 번개처럼 풍운비를 덮쳐 갔다.
번쩍! 번쩍―!
풍운비는 반사적으로 도를 휘두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채챙―!
뒤늦게 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대웅전 앞마당을 울렸다.
단 일격에 풍운비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자신이 안일하게 대처했음을 깨닫고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처음에 죽인 둘은 십두마병인 줄도 몰랐다.
연적하의 당부가 있었음에도 십두마병 셋을 죽인 건, 우발적이었다.
십두마병은 연적하에게 들었던 것보다 많이 약했다.
그들은 셋이나 됐지만 자신의 일격을 당해 내지 못하고 달아났다.
천뢰무망은 십두마병들을 죽이기 위해 펼친 것이 아니라, 무력화시키기 위해 펼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한 수에 십두마병들의 머리통이 박살 났고, 다섯 명의 마인이 탄생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달아나지 않았다.
아들의 복수를 끝내기 위함도 있지만, 십두마병이 예상보다 약해 방심한 탓도 있었다.
그런데 일각마인은 십두마병의 후신(後身)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연적하가 하나씩 상대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얼마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적을 둘이나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번쩍! 번쩌억―!
또다시 양옆에서 빛이 번뜩이자 풍운비는 본능적으로 도를 휘둘렀다.
채앵! 터엉―!
하나는 막아 냈지만 다른 하나의 손톱이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다행히 호신강기가 막아 주었지만 옷이 잘려 나가 너덜너덜해졌다.
몸을 세운 풍운비는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게 일각마인들 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 다가왔는지 등 뒤에서 관세음보살이 집채만 한 손바닥을 휘둘렀다.
피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풍운비는 도강을 일으켜 맞받아쳤다.
콰앙―!
귀청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풍운비가 뒷걸음질 쳤다.
힘에서 관세음보살에 밀린 것이다.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화염마인의 화염이 휘감았다.
화르르륵―!
풍운비는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린 뒤 불길을 거슬러 달렸다.
불길을 뚫고 나간 그는 기둥처럼 서 있는 화염마인의 다리를 베었다.
아니 베려 했다.
그러나 화염마인의 다리를 베기 직전 좌우편에서 뭔가 다가왔다.
‘이런!’
일각마인들의 칼날 같은 손톱이 어느새 지척에 도달한 상태였다.
찰나지간에 풍운비는 도를 거두어 좌우로 빠르게 휘둘렀다.
창! 채앵―!
일각마인들은 마치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 추가 공격 없이 뒤로 빠졌다.
곧이어 관세음보살의 거대한 손바닥이 풍운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풍운비는 지면을 굴러 간발의 차이로 자리를 벗어났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대웅전 앞마당에 손바닥 자국이 났다.
다섯 마인은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번갈아 가며 풍운비를 몰아세웠다.
강적과 무리하게 싸우다 다치면 자신의 손해니 차륜전을 선택한 것이다.
풍운비가 아무리 천외천의 고수라 해도 인간에 불과하다.
내력이 고갈됐는지 점차 위력적인 도강을 쓰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호신강기도 약해져 온몸이 검게 그을렸다.
관세음보살이 비칠거리는 그를 내려다보며 진언을 읊조렸다.
“나모라 다나다라야야 옴 아나바제 미아예 싯디 싯달제 사바하.”
‘부처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는 관세음보살 수주수(數珠手)의 진언이다.
부드러운 진언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풍운비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풍운비가 칼 끝을 천천히 내렸다.
아들의 죽음에 극단으로 치닫던 그는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
천천히 올라가던 관세음보살의 거대한 손이 허공 한 지점에서 멈췄다.
풍운비는 그러거나 말거나 관세음보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거짓일망정 이 비참한 현실에서 구원받고 싶었다.
관세음보살의 손바닥이 떨어져 내리기 직전, 하늘에서 천둥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멍청한 놈!”
순간 풍운비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먼 하늘 저편에서 하얀 구름 한 덩어리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눈에 익은 그것은 장주가 만들어 낸 운종술의 구름이 틀림없다.
그때 머리 위에서 풍압이 느껴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풍운비는 땅바닥을 굴러 자리를 벗어났다.
콰아앙―!
맨땅을 때린 관세음보살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건 다른 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마인의 눈은 구름 위에 두 발로 서 있는 인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건 또 뭐지?’ 싶었지만, 이내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이 밀려왔다.
이 하찮은 세계에 염마왕보다 강한 존재감을 가진 인간이 있다니?
다섯 마인은 저항의 의지를 잃고 눈알을 굴렸다.
달아나려는 것이다.
곧이어 다섯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렇지 않아도 빠른 일각마인들은 아예 빛줄기였다.
초열마인과 화염마인, 관세음보살도 큰 다리로 겅중겅중 뛰었다.
마인들이 달아나자 강남일검 송여량은 구름 위에서 ‘저거! 저거!’만 연발했다.
그 순간 연적하가 마하담에서 ‘공허의 검’을 꺼냈다.
허공에서 거대한 대검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란 송여량은 눈을 끔뻑였다.
이윽고 연적하가 공허의 검을 아래로 가볍게 던졌다.
지상으로 날아가던 공허의 검이 한순간 다섯 개로 불어났다.
다섯 개의 검은 상원사에 이르자 다섯 방향으로 나뉘어 날아갔다.
“캑!”
“크어어!”
“꺄아아아―!”
공허의 검에 관통당한 초열마인, 화염마인, 관세음보살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잠시 후 먼 곳에서 두 번의 비명이 연달아 들려왔다.
십두마병의 시체에 강림한 마물은 어차피 상원사 일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빛처럼 빠른 일각마인도 공허의 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마인들을 없애고 다시 하나로 합쳐진 공허의 검이 연적하에게 돌아왔다.
연적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다시 마하담에 넣었다.
송여량은 허공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비의 검이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했다.
하얀 구름이 대웅전 앞마당에 내려앉았다.
연적하가 넋을 잃고 서 있는 풍운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운이는 찾았느냐?”
“예…….”
대답과 함께 풍운비가 대웅전을 가리켰다.
날듯이 달려간 연적하는 신발도 벗지 않고 대웅전으로 뛰어들었다.
“…….”
관세음보살상 앞에 놓인 관을 발견한 연적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풍자운은 손자 같은 아이였다.
사실상 명절 때나 찾아오는 친손주들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자운이 옹알이를 하는 것은 물론, 처음 두 발로 걷는 것도 곁에서 지켜봤다.
이를 악물고 서 있던 연적하는 조심스럽게 관 뚜껑을 열었다.
무명으로 둘둘 말아 놓은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린 손자의 변은 더럽지 않다.
손자의 썩어 가는 시체도 역겹거나 꺼림칙함과 거리가 멀다.
무명천 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연적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자신의 부주의로 생긴 일 같았다.
심통이나 당운망이 죽었을 때와 다르게, 불쑥불쑥 드는 자책감에 화가 났다.
그는 이를 악물고 관뚜껑을 다시 덮었다.
한참 만에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연적하는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감정을 수습한 풍운비가 연적하의 앞에 나아 와 머리를 조아렸다.
“이성을 잃고 그만 십두마병의 숫자를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중에 둘은 십두마병인 줄도 모르고 죽였지만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셋이나 다섯이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같았기 때문이다.
“고생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숫자를 세지 못한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풍자운의 장례를 치를 것인지, 계속 명왕교를 죽이러 다닐 것인지 묻는 것이다.
“석경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를까 합니다.”
“그래. 그럼 가자.”
연적하의 말에 풍운비는 대웅전으로 들어가 관을 들고 나왔다.
그때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호천맹 토벌대가 대웅전 앞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상원사에서 달아난 명왕교도들을 죽였는지 살기를 풀풀 날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와 풍운비, 송여량은 그들을 지나쳤다.
날 선 눈으로 장내를 살피던 추혼검 화선룡이 송여량을 불러 세웠다.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