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3
143회. 나를 본 거야
부채주 십리도객 구자승은 이십여 명의 도적들을 이끌고 마차로 접근했다.
지금 그의 눈은 구천노도라는 늙은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처음 저 늙은이를 볼 때부터 알았다.
일이 틀어지면 자신의 상대는 저 늙은이가 될 거란 것을.
척 봐도 연적하를 제외하면 그가 가장 고수였다.
구자승은 박도를 앞세우고 심통에게 달려갔다.
치릿.
박도가 심통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심통은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구자승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살과 뼈를 자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던 구자승의 상체가 둘로 나뉘어 갈라졌다.
그를 따르던 도적들이 놀라 멈칫한 순간이다.
이십여 명의 도적들 사이로 뛰어든 심통이 호랑이처럼 날뛰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열 명이 쓰러졌다.
평범한 도적들은 아예 심통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살아남은 열 명의 도적들은 심통의 압도적인 무위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흐흐. 내가 분명히 칼 든 놈들은 썰어 버린다고 했다.”
심통의 말에 기가 약한 도적 넷이 칼을 내던졌다.
나머지 여섯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빨리 총순찰을 죽이고 구천노도라는 늙은이까지 해결해 주기를 바라서다.
삼도산 채주 냉면검귀 공거인의 입에서 노호가 터져 나왔다.
“죽어!”
파랗게 빛나는 검강이 연적하의 몸을 찔러 갔다.
“너나 죽어!”
연적하의 검이 부드럽게 검강을 흘렸다.
반각(약 7분) 정도 지난 지금 연적하의 검에는 여유가 엿보였다.
그는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치명적인 검격에 놀라 무조건 걷어 내려고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의 원리를 체득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공거인의 검은 연적하에게 닿지 않았다.
연적하의 검은 신묘한 검법에만 의지하던 이전과 또 달라졌다.
그는 형식에서 벗어난 살기 충만한 상대의 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힘만으로 흘려 내는 데 재미를 붙였다.
그러다 마침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나자 한 걸음 뒤로 훌쩍 물러났다.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된 공거인이 잠시 들끓는 내기를 가다듬고 있을 때다.
연적하가 돌연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흠칫 놀란 공거인은 급히 뒷걸음질 쳤지만 연적하가 더 빨랐다.
공중에서 몸을 뒤집은 그는 한 마리 매처럼 검을 앞세우고 떨어져 내렸다.
구천세법의 오 식 건곤번천이다.
‘하늘과 땅이 뒤바뀐다’는 초식명처럼 가공할 검기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고개를 들어 위쪽을 올려다보던 공거인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발밑이 쑥 꺼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다.
깜짝 놀란 그는 허둥지둥 좌우를 살폈다.
사방에서 검기와 검풍이 휘몰아쳐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공거인은 땅도 하늘도 구별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미친 듯 검을 휘저었다.
쉬익. 쉭. 쉭.
하지만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운명처럼 정수리로 한 가닥 검기가 내리꽂힌 것이다.
“컥!”
공거인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비집고 나왔다.
두 팔을 늘어트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앞으로 연적하가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싸움을 지켜보던 십여 명의 도적들은 맥 빠진 얼굴로 병기를 내던졌다.
그러나 연적하는 공거인의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긴장한 얼굴로 죽어 가는 공거인을 응시했다.
우드드득. 우득.
뼈마디가 뒤틀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공거인의 피부에 균열이 갔다.
곧이어 옷과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공거인을 지켜보던 연적하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공거인은 이전의 십두마병들과 달랐다.
지금까지의 십두마병들은 최소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거인은 아니다.
검붉은 것까지는 같았지만 거대한 몸통에 박쥐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툭 튀어나온 입 좌우에는 두 개의 검붉은 이빨이 상아처럼 돋아 있다.
저런 걸 누가 사람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공거인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자 도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으악!”
“마룡이다!”
“마룡이 나타났다!”
입에서 연기를 내뿜는 그것은 확실히 마룡처럼 보였다.
기막힌 얼굴로 공거인을 살피던 연적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으로는 무엇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너는 마룡이다.’
진설하의 작명에 영향을 받은 그는 이름부터 지었다.
비록 머리가 도마뱀을 닮았지만 전체적으로 마룡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마룡의 붉은 눈이 연적하를 향했다.
그리고 한 아름이 넘어 보이는 입을 쩍 벌려 적의를 나타냈다.
입안에 칼날 같은 이빨이 수백 개나 박혀 있고, 목구멍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캬아아아!”
천둥 같은 소리에 연적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마룡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도적들은 아예 땅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연적하는 다급히 마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심통과 남궁천, 남궁연은 괜찮아 보였다.
내력이 약한 설차수 일행만 다리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버티는 모습이다.
“캬아아아!”
마룡이 다시 한번 괴성을 쏟아 냈다.
구천기를 끌어 올리고 있던 연적하는 별 느낌이 없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의 그런 불쾌한 현기증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너는 또 뭐냐?’
연적하는 검을 힘차게 말아 쥐고 마룡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인간 형상을 한 마인들의 눈은 검은색이었는데 마룡은 피처럼 붉었다.
연적하가 다가오자 마룡의 머리가 살짝 들렸다가 내려왔다.
“캬아-.”
마룡의 입에서 시뻘건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륵.
예상치 못한 화염 공격에 깜짝 놀란 연적하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불길이 화살처럼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십 장(약 30미터)이나 뻗어 나간 화염은 구경하던 산적들을 덮쳤다.
“으악!”
“뜨, 뜨거워!”
“살려 줘!”
화염에 휩싸인 산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마룡이 토해 낸 불은 산적들을 재로 만든 뒤에야 사그라졌다.
그 모습을 본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마룡이 토해 내는 불길은 다른 화염마인의 것과 달랐다.
‘설마 상대를 완전히 불사르기 전까지 꺼지지 않는다는 건가?’
화염마인의 불과 비슷하려니 생각하고 있던 연적하는 흠칫 몸을 떨었다.
‘절대로 닿으면 안 된다!’
그때 다시 마룡의 입이 벌어졌다.
화르르륵.
연적하는 감히 맞서지 못하고 제비처럼 몸을 날렸다.
비록 삼류 잡배들도 쓰지 않는 비연보였지만 속도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화염을 피한 연적하는 신검합일의 수법으로 마룡에게 날아갔다. 공격과 수비 양쪽을 모두 고려하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연적하가 날아오자 마룡이 또다시 입을 벌렸다.
그러자 마룡의 입에서 이전보다 굵은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르륵.
순간 연적하는 신검합일에서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으로 검공을 바꿨다.
신검합일보다 구천구검에 대한 믿음이 더 커서 생긴 일이다.
연적하의 검 끝에 바람이 쌓였다.
휘이잉. 콰콰콰콰-.
돌개바람은 이내 태풍으로 변해 정면으로 몰아쳤다.
콰르르릉!
구천구검의 검풍과 지옥의 겁화가 마주쳤다.
쿠쿠쿠.
일직선으로 날아가던 화염은 검풍을 뚫지 못하고 주춤주춤 뒤로 밀렸다.
끝내 화염이 반대편으로 방향을 꺾자 마룡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퍼어억!
마룡의 발아래로 화염과 검풍이 쏟아져 내렸다.
마룡이 더 높게 날아오르려고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릴 때다.
허공에 있던 연적하가 마룡을 향해 쏜살같이 떨어져 내렸다.
한 박자 늦게 마룡의 붉은 눈이 연적하를 향했다.
“차핫!”
연적하가 기합과 함께 구천구검 사 식 현녀강우(玄女降雨)를 펼쳤다.
한순간 허공에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검기가 생성되었다.
곧이어 검기는 소나기처럼 마룡을 뒤덮었다.
퍼퍼퍼퍽-.
“캬아아악!”
날개에 구멍이 숭숭 뚫리자 마룡은 지상으로 추락했다.
퍼퍼퍽-.
현녀강우의 검기가 쉬지 않고 마룡의 몸에 박혔다.
그럴 때마다 마룡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풀썩풀썩 일어났다.
현녀강우의 검기가 휩쓸고 지나간 직후, 마룡이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그 순간, 연적하의 검이 마룡의 정수리에 떨어졌다.
‘일 검에 만변(萬變)이 담겨 있다’는 일 식 현녀강림이다.
“캑!”
마룡의 입에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처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연적하의 눈앞에 흑암의 동혈이 나타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마치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붉은 빛이 일렁거리고 있다.
‘설마 저건?’
눈에 힘을 주고 보니 별빛이라 생각한 것은 마룡의 눈이었다.
수만, 아니 수십만도 넘는 눈 앞에서 연적하가 기함을 할 때다.
그중 수백 개의 눈이 연적하가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헉! 나를 본 거야?’
그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뜬 순간, 몸이 뒤쪽으로 빨려들었다.
현실로 돌아온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옥의 마룡들이 바글거리는 것은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았다.
푸스스-.
얼마 전까지 공거인이었던 마룡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열 개의 파란 빛 덩어리를 보고 있던 연적하는 무심코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아직 정체도 모를 그것의 명복을 빌었다.
마룡의 숨이 끊어질 때 나온 이질적인 기운은 이번에도 팔주령에 모였다.
‘혹시 팔주령의 기운 때문에 마룡이 나를 알아본 건 아닐까?’
이전에는 괴물들이 자신을 느끼지 못했다.
팔주령을 차고 다니면서 생긴 일인지라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살짝 연 누님에게 물어봐야겠다.’
팔주령을 차고 다니는 것은 설차수 일행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정의맹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올까 봐 남궁연이 입단속을 시켜서다.
삼도산채의 도적들이 주춤주춤 연적하 앞으로 나왔다.
그들 중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총순찰님, 저희는 반역하지 않았습니다. 저놈들은 모두 유명교도입니다.”
그가 공거인의 지시에 따르던 도적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순간 화염을 피해 살아남은 세 명의 도적이 땅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용서해 주십쇼! 공 채주가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무산소축에 갔던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연적하가 뚱한 표정으로 세 도적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그렇다면 무산소축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
“무, 무엇을 말하라는 것인지요?”
“저희가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을 뿐입니다요.”
도적들의 변명을 듣고 있던 심통이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이놈들! 총순찰님이 물어보면 무조건 대답할 일이지! 무슨 개소리들이냐! 네놈들이 무산소축에서 보고 들은 것을 죄다 털어놓으란 말이다! 뒷간에 갔던 일까지도 숨김없이 말하라고!”
그제야 도적들은 하나둘씩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말했다.
워낙 서열이 낮은 도적들인지라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무산소축에 일곱 명의 십두마병이 있다는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잠시 후 연적하가 유명교도를 처음 고발한 도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이름이 뭐야?”
“여명지라 합니다.”
“좋아. 당분간 네가 삼도산채의 채주다. 무산소축에서 또 이상한 놈을 보내 산채를 집어삼키면, 즉시 총채주님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라.”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여명지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연적하를 우러러보았다.
그에게 연적하는 이미 단순히 녹림의 총순찰이 아니라 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