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32
1432회. 남천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득도 못해요
무당산 뒤편에 자리한 여가촌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건 여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변이 산으로 막혀 있고, 농지가 적어 먹고사는 게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들은 오룡궁에 장작을 팔기도 했다.
봄여름에는 주방에서 사용할 소량의 나무만 있으면 되니 도사들이 준비했지만,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난방에도 써야 하기에 돈을 주고 샀던 것이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지만 약재를 채집하는 사람은 없었다.
약재를 알아야 채취해서 내다 팔 텐데, 여가촌 사람들이 아는 것은 식용 가능한 풀뿌리 정도였다.
가뭄이 들면 풀뿌리라도 캐 먹어야 하기에 몸으로 터득한 지혜다.
가을이 되자 여남은 슬슬 집안 구석구석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뒷담과 썩은 지붕 등 보수할 곳은 많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부터 무너진 담장을 보수하던 중에 모친에게서 조금 맥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집안을 위해 구천현녀 사당에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 웬 청년을 데리고 왔단다.
큰딸인 소옥의 나이가 십팔 세니 뜨내기를 조심해야 하건만, 노모는 청년이 제사 음식을 먹어 치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큰마음 먹고 준비한 제사라는 걸 알기에 노모의 그런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모는 평소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했다.
그런 분이 구천현녀의 사당에서 굶주린 사람을 봤으니 데려오지 않으면 이상하다.
여남은 청년이라는 말에 어떤 사람인지부터 확인해 둘 요량으로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다행히 멀리서 본 인상은 평범해서 안심이 됐다.
물론 선한 얼굴의 악인도 많지만, 체형이나 행색이 딱 낙척서생 같았다.
여차하면 한주먹에 때려눕힐 수도 있겠다 싶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 내심 안심이 됐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행색을 보니 도적이나 유랑인은 아닌 것 같고, 뭐 하는 사람인가?”
“이것저것 하는 사람입니다.”
연적하는 딱히 자신을 소개할 말이 없어 두루뭉실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답답했던지 노파가 끼어들었다.
“웃어른이 물으면 자세하게 대답을 해야지. 어른들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 모르나?”
손녀보다 어린 노파의 말에 연적하는 기가 막혔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아침을 얻어 먹었으니 이제 떠나면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인 까닭이다.
그때 여남이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갈 곳은 있나?”
“없는데요?”
여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일 해 본 적 없어 보이는 손을 보니 방구석에서 평생 책만 읽은 게 틀림없다.
그런데 글공부만 하다 이리저리 떠돈 사람치고는 행색이 멀쩡하다?
‘무당산에서 돈이 떨어졌던 모양이군.’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여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글은 좀 읽을 줄 아나?”
“그야 당연하죠. 소학(小學)까지 뗐습니다.”
연적하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실상 소학은 어린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책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일자무식인 여남의 귀에는 대단한 말로 들렸다.
“당장 갈 곳이 없다면 우리 집에 조금 더 머물러도 되네.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글공부를 시켜 주었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중년 남자의 말에 연적하는 소년과 소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거절하고 떠나도 되지만, 노파가 베푼 덕을 생각하니 망설여진다.
그래도 무공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에게 글공부를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어, 내가 누굴 가르칠 정도로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닌데요?”
그 말에 여남은 물론 노파와 중년 여자의 눈빛까지 부드러워졌다.
이 순간 여남의 가족은 ‘저런 겸손이라면 어쩌면 대단한 서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생의 말에 여남은 더욱 간곡하게 매달렸다.
“이것도 인연인데, 딱히 갈 곳을 정하지 않았다면 조금 머무르며 아이들의 글공부를 지도해 주게. 자네도 봐서 알겠지만 이곳에는 서당이 없네. 아이들이 장성하면 마을을 떠나려 할 텐데, 최소한 글은 읽을 줄 알아야 사람대접 받으며 살 게 아닌가.”
부친이 너무 저자세로 나가자 소룡이 한마디 했다.
“아버지, 저도 천자문은 조금 깨우쳤는데요?”
그러자 여남의 처 섭소천이 철부지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며 야단쳤다.
“이놈이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어딜 끼어들어!”
소룡은 어머니를 피해 누이의 옆으로 달아나며 기어코 한마디 덧붙였다.
“저도 까막눈은 아니라고요.”
섭소천이 서생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
“배우지 못해 저럽니다. 많이 배우신 분이 제발 사람 좀 만들어 주세요.”
연적하는 중년 부부의 간청에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머무는 동안 가르쳐 보겠습니다.”
중년 남자의 말마따나 이것도 인연이다.
비록 와룡장에서 소학까지 배웠지만, 소요종의 여러 경서를 읽었고, 반신의 경지에 오르며 기억력과 통찰력도 좋아졌으니 겁낼 필요는 없었다.
서생이 승낙하자 여남 부부는 물론 여남의 노모도 뛸 듯이 기뻐했다.
여남 부부와 여남의 노모는 서생에게 소옥의 방을 내주었다.
소옥은 당분간 할머니와 한방을 쓰기로 했다.
졸지에 서생에게 방을 빼앗겼지만 소옥은 상심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젊은 서생과 한집에 살게 되어 은근 들떠 있었다.
여하튼 그렇게 해서 연적하의 여가촌 생활이 시작됐다.
그날 오후.
연적하와 소옥과 소룡 남매가 처음으로 한방에서 마주 앉았다.
생기 가득한 소옥과 달리 소룡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기껏 달아날 계획을 말해 준 사람이 집에 눌러앉으니 그런 것이다.
연적하가 그런 소룡을 보며 물었다.
“소룡이, 글공부하기 싫으냐?”
“아닙니다. 스승님.”
팔자에도 없는 글선생에 ‘스승’ 소리까지 들으려니 영 어색해진 연적하가 말했다.
“나에게 스승이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속이 배배 꼬인 소룡이 도발적인 눈으로 서생을 보았다.
솔직히 나이는 자신이 어리지만 악으로 깡으로 싸우면 서생쯤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내가 먼저 태어 났으니 선생님이라고 해라.”
“선생님요? 그런 말도 있습니까?”
“뜻을 알고 쓰면 말이지, 안 될 건 또 뭐냐?”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우리를 가르칠 책은 있으십니까?”
서생이 빈손이라 해 본 소리다.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마하담에 온갖 물건이 다 들어가 있지만 책은 단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없지. 너, 천자문을 공부 중이라고 했지?”
“예.”
대답과 함께 소룡이 혹시나 싶어 들고 온 천자문 책을 앞으로 내밀었다.
“천자문은 다 뗐냐?”
“절반 정도요.”
연적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가르칠 책도 없는데 천자문마저 다 뗐으면 진짜 난감했을 것이다.
“그럼, 천자문으로 시작하면 되겠구나. 소옥이라고 했지?”
연적하가 쳐다보자 소옥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
“예.”
“너도 천자문을 아느냐?”
“동생과 비슷해요.”
“잘됐구나. 그럼 오늘부터 너도 함께 천자문을 익히도록 하자꾸나.”
“네.”
소옥과 소룡 남매는 선생님 앞에서 천자문의 글자를 읽고 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무료해진 소룡이 슬슬 운을 뗐다.
“선생님.”
“왜?”
“선생님은 과거 보셨어요?”
“안 봤다.”
“아, 글공부만 하셨구나. 은거기인이셨나 부다.”
“글이나 읽어라.”
“그래도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분이 누군지는 알아야죠. 집은 어디세요?”
소옥도 궁금했던지 동생을 만류하지 않고 서생의 눈치를 살폈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한 연적하도 더 이상 글 읽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나는 집도 절도 없다.”
“진짜요?”
소룡이 황당한 눈으로 서생을 보았다.
말끔한 복장을 했기에 있는 집안 사람이려니 생각했는데 집이 없다니!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소룡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건 신선이 된 남천의 말인데, 선생님도 남천을 믿으시나 보네요.”
“남천에 대해서 아느냐?”
“할머니가 남천과 구천현녀를 믿으시거든요. 입만 열면 남천 신선이 어쩌고 하셔서.”
“남천은 신선이 아니다.”
“예?”
이번에는 소옥도 놀랐는지 기어코 한마디 했다.
“신선이 아니라고요?”
“그의 처는 신선이 됐지만, 남천은 신선이 되지 않았다.”
“진짜요? 남천도 우화등선해서 신선의 세계로 떠났잖아요.”
“남천은 아직 현세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갈 세계도 신선의 세계는 아니다.”
그러자 소룡이 끼어들었다.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세요? 우리 할머니는 남천이 우화등선했다고 하는데.”
“다 아는 수가 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내일 올 때는 오늘 배운 것을 열 번씩 종이에 써 오도록 해라.”
애매한 얼굴로 시선을 주고받던 소옥과 소룡 남매는 마지못해 일어나 나갔다.
그날 저녁.
저녁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산책하듯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그가 다시 앞마당에 돌아왔을 때, 노파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보게.”
“예?”
“자네가 우리 손주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들었네.”
“이상한 소리요?”
“남천 신선이 우화등선하지 않았다고 했다면서?”
“예.”
“하아!”
노파는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물론 남천 신선의 우화등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집안에 들인 사람이 그런 사람일 줄이야.
구천현녀의 사당에서 만났기에 당연히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네. 나는 믿으니 내 손주들에게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하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할머니는 왜 남천이 우화등선했다고 믿는데요?”
연적하가 노파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생의 당돌한 시선에 ‘쯧쯧!’ 혀를 차던 노파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남천 신선과 십전무후 신선은 금슬이 좋았네. 두 신선은 현세에서 칠십 년 이상을 함께 살았지. 그러다 십전무후가 먼저 등선을 했고, 몇 년 뒤에 남천 신선이 그 뒤를 따라갔어. 자아, 자네도 입이 있다면 말해 보게. 그렇게 금슬 좋은 남천 신선이 십전무후 신선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노파의 말에 울컥한 연적하가 되받아쳤다.
“십전무후가 등선을 한 건 맞아요. 하지만 십전무후는 남천을 위해서 등선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불로장생을 위해 수도를 했던 겁니다. 왜냐고요? 남천은 득도를 하지 못했거든요. 남천은 신선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십전무후는 그런 남천을 현세에 남겨 두고 혼자 신선의 세계로 떠난 겁니다. 금슬이 좋았다고요? 그런거 다 한때입니다. 신선이 되어 천년만년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인간의 삶은 눈 한번 깜빡인 것에 불과하다고요. 그때 가서 십전무후의 기억 속에 남천이 남아 있을 줄 아세요?”
“하지만 남천 신선은 분명히 우화등선을 했네.”
“아뇨. 남천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득도 못해요. 왜냐면 그는 평범한 인간이거든요.”
화가 난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이를 ‘까드득!’ 갈았다.
노파는 남천 신선을 비하하는 서생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눈치가 보여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