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39
1439회. 누구 닮지 않았어요?
다음 날.
손자가 거짓말처럼 건강해지자 노파는 며느리를 앞세워 무당산을 올라갔다.
구천현녀의 사당에 감사 제사를 올리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가는 길에 사람이 좀 보였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오룡궁에서 도력 높은 도사님이 가르침을 주신단다.
내친김에 노파는 며느리와 함께 오룡궁까지 올라갔다.
오룡궁 앞마당은 오룡궁에서 파는 도기(道器)와 신선도(神仙圖)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가난한 노파와 며느리에게는 모두가 그림의 떡이었다.
신선에 대한 그림을 구경하던 섭소천이 시어머니를 끌어당겼다.
“어머니, 저기 좀 보세요.”
“뭘 보라는 거야?”
“저 그림요. 누구 닮지 않았어요?”
노파의 시선이 며느리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젊은 도사가 검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글 선생을 닮았다?
고개를 갸웃하던 노파는 그림을 팔고 있던 오룡궁 도사에게 다가갔다.
“도사님, 저 그림은 누구를 그린 거예요?”
그러자 도사가 그림 옆에 길게 적힌 글귀를 가리키며 답했다.
“남천 신선께서 오룡궁에서 포룡검 펼치시는 걸 그린 그림이오.”
“그럼 저 그림 속의 도사님이 남천 신선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소. 이 그림은 오직 오룡궁에만 있는 귀한 보물이오. 남천 신선께서 우리 오룡궁에서 수도하신 것은 알고 있소?”
“예.”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룡궁과 남천 신선의 관계를 알았다.
오룡궁의 도사들이 입만 열면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때 포룡검 펼치시는 장면을 오룡궁의 도사님이 그린 것이오. 남천 신선의 실제 얼굴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라 할 수 있소.”
노파는 남천 신선의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글 선생이다.
“허, 참…… 진짜 닮았네.”
노파의 말에 신선도를 팔던 오룡궁 도사가 물었다.
“누굴 닮았다는 거요?”
“우리 집에 있는 글 선생요.”
“하하. 그건 아마 남천 신선이 평범하게 생겨서 그러는 것일 게요. 이 그림을 보고 다들 주변에 닮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이다.”
오룡궁 도사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노파는 입을 다물었다.
다들 그런 소리를 한다니 수긍해야지 별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 신선도는 얼마나 하나요?”
“은자 열 냥이오.”
노파의 입이 쩍 벌어지자 오룡궁 도사가 설명하듯 말했다.
“본래 은자 백 냥을 준다 해도 팔면 안 되는 그림인데……. 오룡궁의 보수를 위해 큰맘 먹고 내놓은 것이오.”
도사가 백 냥 운운하자 섭소천이 슬쩍 딴지를 걸었다.
“그럼 백 냥에 파시지 왜 열 냥에 파세요?”
“쩝!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남천 신선의 그림이지만……. 남천 신선을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리되었소.”
오룡궁 도사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남천은 과거 고금제일인이라 불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림의 사정일 뿐, 도가에서 남천의 지위는 매우 낮아 열 냥에도 팔릴까 말까 했다.
남천 신선이 도술로 유명했더라면 그의 그림도 칠선도만큼이나 인기가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노파와 섭소천은 몇 번 더 신선도를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은자 열 냥이 아니라 한 냥에 판다 해도 그들에게는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오룡궁을 떠난 노파와 며느리는 구천현녀 사당에 가서 제사를 올렸다.
돌아 나오는 길에 섭소천이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남천 신선의 얼굴 말이에요. 생각할수록 글 선생을 닮지 않았어요?”
“평범하게 생겨서 그렇다고 하잖느냐.”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닮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뭐? 너는 글 선생이 남천 신선이라도 된다는 거냐?”
“아뇨.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예요. 글 선생과 처음 만난 곳도 구천현녀의 사당이고, 우리는 아직까지 글 선생의 이름도 모르잖아요.”
“이름은 아무 소용 없다. 어차피 그런 떠돌이가 진짜 이름을 가르쳐 줄 것 같으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 슬쩍 물어볼까요?”
“뭘?”
“이름요. 한집에 살면서 이름도 모르는 건 좀 그렇잖아요. 죄를 짓고 숨어 사는 사람이면 어떻게 해요?”
“그런 사람이 잘도 진짜 이름을 가르쳐 주겠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나중에 어찌 될지 누가 알겠어요.”
며느리 말에 노파는 냉소를 쳤다.
“흥! 너도 소옥이처럼 허튼 생각을 하고 있는 게냐? 그런 뜨내기에게 소옥이를 줄 생각이야?”
“솔직히 그냥 뜨내기는 아니잖아요. 십언시까지 가서 소룡이를 구해 왔는데……. 글 선생이 우리 집을 그 정도까지 생각해 주고 있는 걸 보면…… 소옥이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요?”
“허튼소리. 행여나 소옥이 앞에서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글 선생 주변을 맴도는데, 그러다 큰일 난다.”
“아유!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한참을 묵묵히 걷던 노파가 문득 물었다.
“아범이 글 선생에 대해 따로 한 말은 없느냐?”
“그게 좀 이상해요.”
“왜?”
“밑도 끝도 없이 저에게 글 선생을 잘 모시라고 하더라고요?”
“소룡이를 구해 줘서 그런 거겠지.”
“아뇨. 글 선생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어요.”
“어려워해?”
“예, 요즘은 글 선생에게 이래라저래라 말도 안 하잖아요. 그러면서 얼마나 챙겨 주라고 하는데요. 소옥이도 다시 글공부 보냈으면 하던걸요?”
“소옥이는 안 돼!”
갑자기 시어머니가 언성을 높이자 섭소천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깜짝이야. 소옥이 얘기만 나오면 어머니는 왜 그렇게 질색을 하세요?”
“척 보면 알아. 글 선생은 지나가는 바람이야. 그런 남자에게 소옥이를 주면 안 돼.”
“그래도 글 선생이 질색팔색할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소옥이가 평생 글 선생을 그리워하며 혼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너도 그런 소리는 입 밖에도 내지 마라. 누굴 소옥이에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돼.”
“저도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에요. 어머니가 글 선생을 너무 나쁜 사람처럼 말씀하셔서…….”
“글 선생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다만 소옥이가 헛된 바람을 가질까 봐 그러는 거지.”
섭소천은 시어머니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시어머니의 말마따나 딸과 글 선생이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인 까닭이다.
그날 밤.
섭소천은 잠자리에서 여남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여보, 오늘 어머니와 오룡궁에 갔다가 뭘 본 줄 알아요?”
“오룡궁? 구천현녀의 사당이 아니라?”
“원래는 사당에 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사람들이 오룡궁으로 몰려가더라고요. 도력 높은 도사님의 설법이 있다나 뭐라나.”
그녀는 남편에게 오룡궁에서의 일을 들려주었다.
“……거기서 신선도를 하나 봤는데, 글쎄! 당신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거예요.”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뜸 들일 만하니까 뜸을 들이죠. 남천 신선의 그림이 하나 걸려 있더라고요.”
“그런데?”
“내 이야기 듣고 놀라지 말아요. 남천 신선의 얼굴이 글 선생과 똑같았어요.”
“뭐?”
누워 있던 여남이 이불을 박차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에 놀란 섭소천이 눈을 끔뻑이다 말했다.
“아이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네. 왜 그렇게 놀라요?”
“그림 얘기나 자세히 말해 봐.”
“남천 신선요?”
“그래.”
“오룡궁 도사님 말씀으로는 남천 신선이 오룡궁에서 수도할 때, 다른 도사님이 그린 그림이래요. 남천 신선의 실제 얼굴이라나? 그걸 은자 열 냥에 팔더라고요. 오룡궁 수리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그림 하나에 은자 열 냥이라니, 다른 세상 같더라니까요.”
“정말 그림 속의 남천 신선과 글 선생이 똑같았어?”
“그렇다니까요. 내가 놀라서 어머니에게 알려 드렸더니, 어머니도 보고 깜짝 놀라셨어요.”
“…….”
여남은 넋 나간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
불현듯 미륵방도들끼리 나누던 알쏭달쏭한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납인면사가 이상한 사술을 쓰더라고. 어쩌고저쩌고의 제자 연남천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진실 되게 답해라. 그랬더니 씨발! 죽도록 처맞아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세 놈이 술술 불더라고. 와아!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데 소름이…….
“여보? 무슨 문제 있어요?”
섭소천이 멍하니 앉아 있는 남편의 팔꿈치를 잡고 흔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남이 처를 보았다.
처와 어머니는 구천현녀와 남천 신선, 십전무후의 신봉자였다.
“당신 혹시 연남천이라는 이름 들어 봤어?”
“그건 남천 신선님이 속세에서 사용하던 이름 중에 하나예요. 왜요?”
“아, 아니, 그냥.”
“싱겁기는. 그런데 당신 요즘 좀 수상해요.”
“뭐가?”
“당신이 글 선생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진 거 알아요?”
“그야 소룡이 은인이니 그렇지.”
“흐음. 다른 이유는 없고요?”
“다른 이유?”
“어머니와 나 모르게 글 선생에게 돈을 빌렸다거나 그런 거 아니죠?”
“무슨 헛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
처에게 큰소리를 치고 누웠지만 정작 여남은 잠들지 못했다.
글 선생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파 고수인 글 선생이 남천 신선의 이름을 들먹인 이유는 뭘까?
한참 동안 어두운 천장을 응시하던 여남이 중얼거렸다.
“글 선생 말야.”
“글 선생이 왜요?”
“어쩌면 남천 신선의 후손인지도 몰라.”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글 선생이 왜 남천 신선의 후손이에요?”
여남은 글 선생이 어떻게 아들을 구했는지 털어놓았다.
“……소룡이를 구한 납인면사라는 사파 고수가 글 선생이야. 미륵방에서 납인면사가 세 놈에게 연남천이라는 이름으로 사술을 썼대. 그랬더니 세 놈이 감추고 있던 비밀을 술술 불더래.”
“어머나, 어머나……. 그럼 남천 신선의 후손을 우리 집에 모신 거예요?”
“글 선생을 처음 본 게 구천현녀의 사당이라면서?”
“맞아요, 거기에서 자고 있었어요.”
“글 선생은 남천 신선의 후손일 거야. 그래야 모든 게 맞아떨어져.”
“어머니가 들으면 깜짝 놀라시겠네요.”
“확실한 건 아니니까 말씀드리지 마. 날이 밝는 대로 내가 슬쩍 떠볼 테니까.”
“글 선생을요?”
“어.”
“그럼 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어머니와 ‘글 선생과 함께 지내는데 이름도 모르는 게 말이 되냐’고 한참 얘기했었는데.”
“말 나온 김에 이름도 여쭤볼게.”
“그래요. 이웃에서 글 선생 이름이 뭐냐고 묻는데 난처하더라고요.”
섭소천은 글 선생이 정말 남천 신선의 후손이면 시어머니도 소옥이와 맺어지는 걸 극렬하게 반대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날이 밝자 여남 내외는 글 선생의 방 앞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음에도 글 선생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여남이 글 선생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글 선생은 보이지 않고 가지런히 정리된 침구만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니 작은 탁자 위에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글자를 모르는 여남은 큰 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잠시 후 부친에게 편지를 받아 읽은 여소룡이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인연이 다했으니 찾지 말라고 하시네요.”
아들의 말에 여남 부부는 허탈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글 선생이 떠났다는 말에 노파는 그럴 줄 알았다며 구시렁거렸다.
“낙척서생 주제에 자기가 도사라도 되는 것처럼 인연 타령은……. 게다가 서생이라면서 글씨도 엉망이야. 우리 소룡이가 눈 감고 써도 이보다 잘 쓰겠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노파는 편지를 곱게 접어 품에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