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4
144회. 죽일 수 있다면 알려 주마
대충 삼도산채의 정리가 마무리되자 화용독심 남궁연이 말했다.
“무산소축에 십두마병이 일곱이나 있다니 안 되겠어요. 그들과 얽히기 전에 서둘러 떠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우리는 아직 그들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맞아요. 빨리 가요.”
진설하는 십두마병들이 두려운 듯 호들갑을 떨었다.
그건 중상을 입었던 유근식도 마찬가지였다.
“가시죠?”
설차수 일행의 거듭된 재촉 덕분에 출발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이두 마차는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산채를 벗어나자 마부 이사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보통 사람인 그에게 녹림 산채는 꽤나 부담스러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
신시(오후 3~5시) 무렵.
도와 검을 소지한 두 노인이 삼도산채로 바람처럼 올라갔다.
무산소축에서 보낸 십두마병들이다.
그들은 삼도산채에 잠깐 머물렀다가 급하게 다시 산을 내려갔다.
***
지주(池州).
연적하 일행의 이두 마차가 관도 위를 무섭게 질주했다.
“이려! 이려!”
마부 이사는 해가 지기 전에 도시에 들어가려고 연신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는 성문이 닫히기 직전에 도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마차가 성문을 통과하자 이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가닥. 다가닥.
잠시 후 마차는 천천히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여강현과 달리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마차가 다니기 불편할 정도였다.
결국 이사가 따로 마차를 끌고 가까운 마방에 가기로 하고 사람들은 내렸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유근식이 설차수에게 말했다.
“사형, 도시가 크니까 우리를 찾기 어렵겠죠?”
“그럴 게다. 이거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지.”
설차수는 모처럼 긴장을 풀고 미소 지었다.
무산소축의 십두마병들과 만나게 될까 봐 쉬지도 못하고 꼬박 하루를 이동했다. 이두 마차가 사람들 눈에 띄는 물건이라 더 그랬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도시라면 안심이다.
물론 이두 마차가 흔한 건 아니라서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은 마을보다는 훨씬 나았다.
연적하 일행은 가까운 객잔에 방을 얻어 하루를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연적하 일행은 일찌감치 강변으로 나가 배를 물색했다.
운이 따랐는지 반 시진(1시간)도 되지 않아 큰 배를 구할 수 있었다.
연적하 일행과 이두 마차를 실은 배가 천천히 강 중심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섯 명의 남자가 열심히 삿대질을 해서 배를 강 중심으로 밀어냈다.
마침내 물살 좋은 곳에 들어가자 삿대질하던 남자들도 겨우 휴식을 취했다.
진설하가 뒤로 스쳐 지나가는 강변을 보며 해맑게 소리쳤다.
“와아! 이제는 마음 놓아도 되겠죠?”
그녀는 동의를 구하듯 설차수와 유근식을 보았다.
사실은 지주에 와서도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가는 순간 근심은 사라졌다. 누구라도 배를 따라오지는 못할 테니까.
피식 웃던 유근식이 농담을 던졌다.
“강변에서 보고 있다가 달려올지도 몰라.”
“에이! 설마요.”
두 사람은 시시덕거리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설차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강변에 시선을 두었다.
강변을 따라 걷거나 강가에서 고기 잡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응?’
‘강변에서 달려올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들어서 그런 걸까?
배를 따라 빠르게 강변을 달리는 두 사람이 보였다.
‘설마? 아니겠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드는 설차수의 귓가로 심통의 음성이 들려왔다.
“공자님, 아무래도 저 두 늙은이들이 배를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흠칫 놀란 설차수가 다시 강변의 두 사람을 살필 때다.
이번에는 연적하가 말했다.
“그러게. 용케도 우리를 찾아냈나 보네.”
“아! 아깝다. 배가 일다경만 먼저 출발했어도 찾지 못했을 텐데.”
남궁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설차수와 유근식, 진설하가 굳은 표정으로 강변을 바라보았다.
배와 나란히 달리는 두 노인이 보였다.
강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피던 남궁연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부분에서 강폭이 눈에 띄게 줄어드니까, 분명히 배로 뛰어들 거예요.”
“이런! 연아. 너는 저 늙은이들이 누군지 알겠느냐?”
남궁천이 남궁연을 바라보았다.
무산소축이 합비에 있으니 그녀라면 혹시 알까 싶었던 것이다.
“절정도 이초량과 무영검 백산 같아요. 십 년쯤 전 무산소축의 식객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결국 십두마병이 됐나 보네요.”
“이초량과 백산이라고?”
남궁천은 의외라는 얼굴이다.
절정도 이초량과 무영검 백산은 정사지간의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사람들까지 십두마병이라니!
사파의 고수들만 십두마병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저들을 아시오?”
심통의 물음에 남궁천이 씁쓰름한 얼굴로 답했다.
“두 사람은 과거에 협객이었습니다. 은원에 휘말려 정파의 고수들을 죽인 뒤로는 정사지간이라 불렸지요. 그런 사람들까지 힘에 눈이 멀어 십두마병이 되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요.”
“흐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소.”
대화의 소재가 타락한 정파인이라 그런지 심통은 어딘지 으쓱한 얼굴이다.
“저들은 절정도와 무영검으로 불릴 만큼 도와 검의 고수들이니 주의해야 할 겁니다.”
남궁천의 그 말은 심통의 호승심을 자극했다.
삼화취정의 경지에 오른 뒤로 허접한 도적들만 상대해 왔다. 지금까지 만난 십두마병들도 공력만 뛰어났지 무술 실력은 별 볼 일 없었다.
‘흐흐. 그러니까 정파의 고수라는 말이렷다.’
심통의 눈에 모처럼 결기가 어렸다.
제대로 된 고수와의 싸움을 앞두고 내심 흥분이 되는 모양이다.
강변을 따라 달리던 이초량이 말했다.
“백 형. 저들이 우리가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소.”
“후후.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 않소.”
“그렇기는 하지만 왠지 냉면검귀를 죽였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구려.”
“신경 쓰지 마시오. 냉면검귀는 내력만 높았지 본신 실력은 그저 그랬소.”
두 사람은 빠르게 달리면서 대화하는데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신법도 행운유수와 같이 부드러웠다.
행색도 그렇고 십두마병만 아니라면 딱 정파의 은거기인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두 사람 앞에 좁아진 강폭이 나타났다.
이초량과 백산은 약속이나 한 듯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강으로 날아갔다.
이초량과 백산은 삼 장(약 9미터) 거리를 훌훌 날아가다 강으로 떨어졌다.
뱃전에 나와 있던 사람들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원로 고수들이 강에 빠질 것처럼 보여서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초량과 백산은 가볍게 수면을 발로 찍고 다시 도약했다.
“와아!”
짝짝짝! 등평도수라는 상승의 경공술에 사람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휘리릭. 척.
이초량과 백산이 갑판 위에 깃털처럼 내려섰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숨죽이고 두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이초량이 갑판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구화산에서 냉면검귀를 죽인 자가 누구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입히지 말고 나와라.”
기다렸다는 듯 연적하와 심통이 앞으로 나섰다.
이초량과 백산 앞에 선 연적하가 빙글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인장. 그렇게 말하니까 협객 같잖아. 왜 협객 흉내를 내고 그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연적하도 심통만큼이나 위선자를 싫어한다. 어린 시절에 와룡장 사람들에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다.
그래서 십두마병인 이초량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듯한 태도에 배알이 꼴렸다.
“네가 녹림 총순찰 연적하냐?”
이초량이 기이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삼도산채에서 듣기는 했지만 막상 만나니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놈이 냉면검귀를 죽였다고? 십두마병인 그를?’
십두마병마다 개인차가 심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칠파이문의 장로급은 된다. 그걸 스물도 채 안 돼 보이는 젊은 놈이 죽였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어. 나야.”
순간 이초량과 백산이 시선을 교환했다.
자신들의 앞에서 저렇게 태연자약한 것을 보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곧이어 백산이 물었다.
“무산소축은 녹림과 적이 아니거늘 왜 그를 죽였느냐?”
“노인장. 녹림의 일에 관심 가지지 마. 남의 집안일에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려고 그래?”
“…….”
딴은 맞는 말인지라 백산은 반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의 말대로 십두마병인 냉면검귀는 녹림 산채의 채주인 까닭이다.
이초량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제 보니 말재간이 상당한 놈이로구나. 냉면검귀가 그저 녹림도였다면 우리가 왜 나섰겠느냐? 그는 무산소축의 십두마병이다. 너는 무산소축의 사람을 죽인 죄를 지었다. 우리를 따라 무산소축에 가서 벌을 받겠느냐?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겠느냐?”
가만히 지켜보던 심통이 불쑥 나섰다.
“늙은이. 주제넘은 소리 작작 해라. 천하에 우리 공자님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네놈들이야말로 시체라도 남기고 싶으면 조용히 무산소축으로 돌아가라. 삼도산채에서 듣지 못했느냐?”
이초량이 가소롭다는 얼굴로 냉소를 쳤다.
“흥! 우리가 그따위 헛소리를 믿을 것 같으냐?”
“흐흐흐!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면 곧 알게 될 게다. 가서 네놈 교당의 당주에게 물어보든가. 공자님 손에 가루가 된 십두마병이 한둘인지 아느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구나. 네가 구천노도 심통이라는 늙은이냐?”
“으흐흐흐. 그렇다면?”
“죽어야지.”
말과 함께 이초량이 벼락처럼 도를 뽑아 심통을 베었다.
절정도라는 별호답게 그의 발도술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보통의 고수라면 기습에 목숨을 잃고도 남았겠지만 심통은 그런 쪽으로 닳고 닳은 인물.
챙-.
귀청을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심통이 한 걸음 물러났다.
“으흐흐흐! 정사지간이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언제 뽑았는지 심통의 손에도 유엽도가 들려 있었다.
“죽어라!”
빠드득 이를 갈던 이초량이 대갈일성을 내지르며 심통에게 달려갔다.
곧이어 이초량과 심통이 불구대천의 원수들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연적하가 백산을 힐끔 보았다.
그는 꽤나 심란한지 아까부터 착잡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노인장. 내가 궁금한 게 있거든. 십두마병이 죽으니까 가루가 되더라고. 그런데 가루 속에서 파란 도깨비불 열 개가 나왔어. 그게 뭔지 알아?”
백산은 대답 대신에 천천히 검을 뽑았다.
스릉.
“나를 죽일 수 있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알려 주마.”
“그 약속 잊지 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적하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깜짝 놀란 백산이 검으로 가슴을 보호하며 좌우를 살필 때다.
등 뒤에서 무시무시한 검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백산은 벼락처럼 돌아서며 검을 떨쳤다.
차차창-.
지면과 허리와 머리로 날아오던 세 가닥 검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백산이 막 가슴을 쓸어내리려는 순간, 이번에는 검풍이 전신으로 밀려 왔다.
그는 허겁지겁 뒷걸음질 치며 무영검 십칠식을 전개했다.
쉬익. 쉬익…….
칼날 같은 검풍을 하나하나 찢어냈다.
죽기 살기로 검풍을 해소하자 이번에는 수백 개의 칼끝이 전신으로 밀려왔다.
‘크윽!’
백산은 상대의 신묘한 검공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좌절했다.
저 검공에 비하면 십두마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핏. 핏.
양쪽 어깨가 따끔하다고 느낀 순간 팔이 축 늘어졌다.
챙강.
손아귀에서 흘러나간 애검이 갑판에 떨어졌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그의 귓가로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말해 봐. 파란 도깨비불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