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5
145회. 세상을 구원하고 싶으냐?
무영검 백산의 사문은 동방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백두산에 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백산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백산은 고향을 떠나 합비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만나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백산은 정파의 협객으로 존경받으며 늙어 갔을 것이다.
어느 해 여름.
벽검문의 소문주인 한백인이 백산의 처를 겁탈했다.
자신의 처가 수치심에 자결하자, 백산은 대로에서 한백인의 목을 베었다.
그 뒤로 벽검문과 백산은 원수가 되었다.
벽검문이 정의맹의 일원인지라 백산은 자연히 정파에서 배척을 받았다.
차라리 그가 합비를 떠났더라면 계속 협객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처의 무덤 곁을 지켰고, 서서히 정파와 멀어져 갔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돌림병으로 잃자 그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갔다.
그가 무산소축에 식객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한 가지 소문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했다.
“무산낭랑 이매화의 술법이 하늘에 닿아 죽은 자를 불러오기까지 한다”라고.
백산은 죽기 전에 처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설사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백산은 멍하니 연적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들도 딱 저만한 나이에 죽었다.
“노인장. 말해 보라니까. 하늘로 올라가던 그 파란 도깨비불이 뭐냐고.”
“후후. 그래, 알려 주마. 대신에 나도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뭔데?”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여강현의 가족들 곁에 묻어다오. 그렇게 해주겠다면 유명교에 대한 비밀까지도 모두 알려 주마.”
“삼도산채에서 못 들었어? 십두마병들은 죽어서 시체도 남기지 못해. 정말 가루가 되어 버린다니까. 먼지가 돼서 날아가 버리는데 어떻게 묻으라고?”
“저, 정말이냐?”
백산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죽어서도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구천노도 심통과 절정도 이초량의 싸움도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차차차창-.
심통과 이초량의 도가 현란하게 얽혔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두 사람 모두 상승의 경지인지라 오십 합이 넘도록 칼날조차 상하지 않았다.
‘제발 좀 죽어라!’
이초량은 이를 악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팽팽한 싸움이지만 그의 속은 타들어 갔다.
자신의 절기인 파황도법이 통하지 않아서다.
이초량은 본래 남직례성의 정파 문파인 천지문 출신이다.
천지문에서 파황도를 배운 그는 군문에 투신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직속 상관의 눈 밖에 나서 다시 강호로 돌아왔다.
그런데 천지문에서는 군문에서 쫓겨 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문을 경원시하는 강호에서, 군문에서 퇴출당한 무관이 환영받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다.
홀로 강호를 주유하던 그는 배신감에 서서히 정사지간의 길을 걸었다.
비록 사문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전쟁 중에 완성된 그의 파황도는 진짜였다. 그래서 그의 별호도 ‘도(刀)의 끝에 이르렀다’는 절정도다.
백산이 제압당한 걸 본 이초량은 모든 내력을 끌어모아 도에 실었다.
최후의 일격으로 싸움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우우웅-.
이초량의 도가 누런 광망에 휩싸였다.
도의 궁극에 이르러야 가능하다는 도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상태에서 이초량은 패황도의 마지막 초식인 파천멸도를 펼쳤다.
수십 개의 도강이 심통을 향해 몰아쳐 갔다.
심통은 급히 구천세법의 육 식 천뢰무망으로 맞받아쳤다.
천뢰무망은 그의 마지막 밑천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도 최선을 다한 셈이다.
순간 하늘에서 아홉 가닥의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꽈광!
단 한 수에 갑판 위로 휘몰아치던 도강이 씻은 듯 사라졌다.
동시에 이초량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윽!”
갈기갈기 찢겨진 그의 상체가 한차례 경련을 일으켰다.
곧이어 꼿꼿하게 서 있던 이초량이 피를 뿜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철퍼덕.
“공자님!”
심통은 이초량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연적하를 불렀다.
행여나 그가 백산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재빨리 소리쳐 알린 것이다.
연적하가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백산에게 말했다.
“노인장. 죽은 십두마병이 어떻게 되는지 잘 봐 둬.”
“…….”
말을 마친 그는 서둘러 이초량이 쓰러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으드득. 으득.
뼈마디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이초량의 몸이 쫙쫙 갈라져 나갔다.
이초량의 거죽을 찢고 나온 것은 정수리에 외뿔이 돋아난 일각마인이었다.
“크라라라라-!”
일각마인이 마치 달밤의 늑대처럼 하늘을 향해 목놓아 울었다.
그런 후 천천히 심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깜짝 놀란 심통이 뒷걸음질 쳤다.
“아니야, 내가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일각마인이 심통에게 칼날 같은 손톱을 휘두른 것이다.
휘잉. 휘잉.
반월형 강기가 빛살처럼 심통에게 날아갔다.
심통은 뒤에 사람들이 있는지라 피하지 못하고 유엽도로 강기를 쳐 냈다.
카앙. 캉.
“공자니임!”
심통의 애절한 외침이 강 위에 울려 퍼졌다.
순간 연적하가 일각마인의 등 뒤에 유령처럼 나타났다.
위기를 느낀 일각마인이 급히 돌아서며 거칠게 손을 휘저었다.
휘잉. 휭. 휭.
얼핏 강기가 연적하의 몸을 가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연적하의 검이 더 빨랐다.
‘나중에 출수하여 제압한다’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의 묘리가 담긴 공력이다.
쾅.쾅.쾅.
폭발음과 함께 강기가 터져 나갔다.
강기를 베어 낸 검은 부드럽게 일각마인의 가슴으로 전진했다.
순간 일각마인은 두 손으로 검을 움켜잡으려 했다.
하지만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은 일각마인의 손을 피해 가슴에 닿았다.
푸욱.
검이 박히자 일각마인은 구슬픈 울음을 흘렸다.
“크르르르…….”
일각마인의 기운이 검을 타고 들어와 팔주령에 안착했다.
곧이어 지옥을 보고 돌아온 연적하 앞에서 일각마인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 자리에 파란 덩어리들이 일렁거렸다.
연적하는 두 손을 모으고 빛 덩어리가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연적하가 돌아섰다.
갑판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쩝!’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는 백산에게 다가갔다.
“노인장. 십두마병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봤지? 난 거짓말 안 해. 노인장도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할 거야. 그러게 누가 십두마병이 되래?”
“허허…….”
백산의 입에서 허허로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십두마병의 실체가 저런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모든 게 인과응보라 생각하면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 부탁을 바꾸어야겠다. 네가 들어줄 수 있는 것으로.”
“노인장이 해 줄 말이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보기와 달리 나는 좀 까다로운 사람이야.”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에 네가 판단해라. 내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를.”
“좋아. 말해 봐.”
연적하는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다.
그건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인지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먼저 내 이야기를 들려주마. 그 속에 답이 들어 있으니 잘 새겨듣도록 해라.”
백산은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나와 벽검문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그 뒤 하나뿐인 아들마저 돌림병으로 죽고, 나는 강호를 떠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산낭랑 이매화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죽기 전에 처와 아들을 만나 보고 싶어서 무산소축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십두마병이 되었지.”
“쯧! 그냥 보고 싶은 가족이나 만나지 왜 십두마병이 된 거야?”
“이매화가 그러기를 원했다. 십두마병이 되어 자신을 따르면 초혼제를 열어 주겠다고 했지. 나는 그녀가 내건 조건을 거부할 수 없었다.”
“초혼제는?”
“한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다시 열어 주겠다고 해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사기야. 사기. 죽은 사람을 무슨 수로 불러와? 나도 그 비슷한 짓을 하는 여자를 본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럴듯한 거짓말이더라고.”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백산의 말을 들으니 구천현녀의 화신이라던 구천동모가 생각났다.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라. 모산파의 술법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니까.”
“다르긴 개뿔. 순 사기라니까. 이야기는 그게 전부야? 파란빛은?”
갑자기 백산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십두마병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느냐?”
“몰라.”
“그것은 ‘열 개의 머리를 바쳐 마병(魔兵)을 얻는다’는 뜻이다.”
“열 개의 머리라고? 그게 설마 수도사들의 머리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다. 유부에 있는 염마왕의 권속을 불러오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불심이나 도력이 높은 자들의 생명력만큼 좋은 것도 없지.”
“그럼, 십두마병은 열 명의 수도사를…….”
“그 이상을 제물로 쓴 자도 많았다. 엉터리 수도사들은 효과가 없거든. 너희가 초능이라 말하는 그 힘은 염마왕의 권속이 주는 능력이다.”
“하아! 파란빛은?”
“나는 본 적이 없지만 네 말을 들으니 짐작 가는 게 있다. 그건 어쩌면 염마왕의 권속에게 종속되었던 수도사들의 영혼인지도 모른다. 염마왕의 권속이 소멸됨으로 자유를 얻게 된 거겠지.”
“역시 그랬구나…….”
연적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파란빛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기쁨의 감정은 확실히 인간적이었다.
백산이 계속해서 말했다.
“백두마군은 백 명의 수도사를 제물로 바치고 염마왕의 권속을 불러 온 자들이다. 마병(魔兵)과 마군(魔君)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그들을 괜히 ‘지옥의 군주’라 부르는 게 아니다.”
“…….”
연적하는 물론 듣고 있던 심통, 남궁천, 남궁연, 설차수 일행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백두마군이 뛰어날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지옥의 군주’라는 설명을 들으니 왠지 등골이 오싹하다.
“수도사 백 명의 목숨으로 이승에 불러온 권속이니 얼마나 강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러나 ‘지옥의 군주’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있음을 잊지 마라.”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천두마왕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다. 유명교 교주가 되고자 하는 게 바로 그 ‘천두마왕’이다. 너는 ‘마왕’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느냐?”
“설마 염마왕?”
남궁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염마왕’의 다른 이름은 ‘염라왕’, 즉 지옥을 관장하는 귀신들의 왕이다.
“총명한 아이구나. 교주가 지옥의 염마왕을 불러내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다. 이승에 지옥도가 펼쳐지게 될 테지.”
“그가 그런 미친 짓을 한다고요?”
“후후. 유명교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아느냐? 염마왕이 다스리는 세상이다. 교주와 백두마군들은 진심으로 그런 세상이 오기를 소원한다. 세상을 구원하고 싶으냐? 교주가 천두마왕이 되어 염마왕을 불러내기 전에 그를 찾아 죽여라. 나는 이전까지 그 모두를 허황된 믿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십두마병의 실체를 보고 알았다. 염마왕이 이승에 강림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을 마친 백산이 음울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제 내 부탁을 말해도 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