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6
146회.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어
너무도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연적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무영검 백산이 혼잣말하듯 말을 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가 한백인을 죽이자 벽검문의 문주인 한무진은 나를 범죄자 취급했다. 하지만 나는 한백인을 죽인 것으로 만족하고 그가 무슨 소리를 하건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니 그때의 일이 후회스럽다.”
“쯧! 왜 그랬어. 복수는 넘치게 해야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하던데……….”
“후후. 그러게 말이다. 어쩌면 그 와중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는지도……. 그때만 해도 협의에 어긋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연적하가 착잡한 눈으로 백산을 보았다.
수도사들을 열 명 이상 죽이고 십두마병이 된 사람의 과거사가 왜 이리 서글픈지.
“한무진은 자식이 저지른 범죄는 숨기고, 복수를 한 나만 괴팍한 살인자로 만들었다. 나는 죽어 마땅한 마인이지만 그날의 진실만은 밝히고 싶다. 나를 대신해서 네가 그 일을 해다오.”
“한백인이 죽을 짓 했다는 걸 밝히란 말이야?”
“그렇다.”
“알았어.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이승에 미련 두지 마.”
“고맙다.”
백산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십두마병이 죽으면 마병으로 변하니 지금 죽는 게 세상을 위한 일이었다.
“…….”
연적하가 차마 손을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구천노도 심통이 나섰다.
“공자님,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마인이라 해도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은 후유증이 남는다. 심통은 또다시 연적하가 악몽에 시달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연적하는 거절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생사의 대전 중에 벌어지는 일이라면 모를까.
그의 한 많은 개인사까지 듣고 나니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심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엽도를 뽑아 백산의 목을 잘랐다.
서걱.
곧이어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가 갑판에 툭 떨어져 내렸다.
멀찍이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참수에 ‘악’ 하고 짤막한 비명을 흘렸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기겁할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머리통이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다.
그리고 몸통이 꾸물꾸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뿌드득. 뿌득.
뼈마디 뒤틀리는 소리가 선상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선체에 부딪치는 장강의 물소리마저 묻힐 정도로 크고 날카로웠다.
곧이어 백산의 몸에서 인간의 머리에 뱀의 몸을 가진 존재가 스르륵 빠져나왔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것 같았다.
비록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백산과는 천지차이였다.
솥뚜껑만 한 머리에 주먹만 한 뱀의 눈알이 박혀 있고, 귀밑까지 길게 찢어진 입술 사이로 연신 갈라진 혀가 들락거렸다.
신화 속 용처럼 짧은 두 개의 앞발에는 창끝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박혀 있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이전의 다른 괴물들과 비슷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검붉은 피부에서 매케한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허허로운 백산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던 연적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쯧!”
백산과 인두사(人頭蛇)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인두사가 심통을 노려보며 천천히 파리를 풀었다. 그러자 인두사의 머리는 거의 일 장(약 3미터) 높이로 올라갔다.
흠칫 놀란 심통은 급히 연적하 뒤로 이동했다.
심통을 따라가던 인두사의 차가운 눈이 연적하에게 닿았다.
연적하는 인두사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순간 인두사의 입이 살짝 벌어지며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크크-.”
“허! 지금 웃은 거야?”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인두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갑판에 있던 사람들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몇몇 노인들이 바닥에 엎드리며 연신 소리를 질러 댔다.
“어이쿠! 뇌신님!”
“뇌신님이 노하셨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인두사의 눈이 잠깐 사람들을 향했다가 다시 연적하에게 돌아왔다.
연적하는 바로 끝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인두사가 가진 능력을 설차수 일행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래도 먹이를 내려다보듯 하는 저 표정은 정말 불쾌하기만 하다.
“들어와. 들어오라고.”
그런 연적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마침내 인두사가 움직였다.
화아악. 인두사의 입에서 녹색의 운무(雲 霧)가 뿜어져 나왔다.
안개는 삼 장 높이에서 널리 퍼져 나갔다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순간 남궁연이 짧게 소리쳤다.
“독이다! 적하야, 안개를 걷어 내야 해!”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연적하는 즉시 머리 위로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을 펼쳤다.
휘이잉. 콰콰콰-.
검 끝에 쌓인 바람은 이내 태풍이 되어 녹색 운무를 밀어냈다.
운무가 말끔히 걷히자 인두사는 화가 난 듯 거칠게 꼬리를 흔들었다.
쉬이잉.
연적하는 수평으로 날아오는 꼬리에 구천세법 칠 식 용조할지를 퍼부었다.
퍼퍼퍽.
“캬아아!”
꼬리에서 전해지는 극렬한 통증에 인두사의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단 한 번의 접전으로 인두사의 표정이 변했다.
더 이상 인두사는 연적하를 먹이로 보지 않고 움직임에 신중을 기했다.
화아악.
다시 한번 녹색 운무가 하늘을 덮었다.
운무에 가려 일순 인두사의 모습이 사라질 정도다.
연적하는 다시 한번 풍천소축을 시전했다.
휘이잉. 콰콰콰-.
검 끝에 모인 바람은 태풍이 되어 운무를 위로 밀어냈다.
바로 그때 소리 없이 다가온 인두사의 꼬리가 연적하의 상체를 휘감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연적하만 있는 게 아니다.
연적하만 보고 있던 심통이 대갈일성을 내지르며 유엽도를 휘둘렀다.
“이놈! 어딜!”
유엽도가 꼬리를 찍자 인두사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인두사의 교활한 수법에 울컥 화가 난 연적하는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삼 장 높이까지 날아오른 연적하가 몸을 뒤집으며 옆으로 이동했다.
구천세법 팔 식 구룡번신의 수법이 펼쳐진 것이다.
“캬아!”
인두사는 짧은 앞발로 연적하를 움켜잡으려 했지만 번번이 빗나갔다.
구룡번신을 펼칠 때의 연적하는 마치 나비와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몸을 뒤집은 연적하가 검끝으로 인두사를 가리켰다.
구천세법의 마지막 뢰검분형이었다.
번쩍. 꽈광!
뇌전이 머리에 떨어지자 인두사는 줄 끊어진 연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추락하는 인두사의 뒤를 연적하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숨 쉴 틈 없이 구천구검 일 식 현녀강림의 수법을 펼쳤다.
콰직.
인두사의 머리를 뚫은 검이 턱 아래로 비집고 나왔다.
쿵.
연적하는 공중에서 물구나무 선 채로 인두사의 머리를 갑판에 박아 버렸다.
오 장(약 15미터)여 길이에 달하는 인두사의 몸통이 갑판 위에서 펄떡거렸다.
절을 하던 노인 몇이 꼬리에 맞아 나뒹굴었다.
시간이 지나자 꿈틀거리던 몸통도 서서히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또다시 양미간의 신맥이 화끈거리자 연적하는 살짝 긴장했다.
최근 들어 무저갱이 실제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빨려가듯 흑암의 세계로 이끌려 간 연적하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캬아아아!”
‘헉!’
뒤쪽을 돌아보던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인두사 하나가 머리를 부여잡고 발작하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다?’
이전에는 보이기만 했는데 이젠 들리기까지 한다.
‘설마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마치 저 괴물이 이승을 오가듯, 자신도 저승에 오게 된 걸까?
“크크크.”
“크크.”
사방에서 인두사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때 몸이 뒤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아!”
다시 현실로 돌아온 연적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푸스스-.
가루가 된 인두사의 거대한 몸은 때마침 불어온 강바람에 사라졌다.
열 개의 파란 빛이 하늘하늘 하늘로 올라갔다.
연적하는 잠시 두 손 모아 죄 없이 희생된 수도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슬그머니 다가온 심통이 말했다.
“공자님, 오늘은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어.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거든.”
“아! 시골 늙은이들의 헛소리 말씀입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연적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심통이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았지만 애써 설명하지 않았다.
그때 갑판 위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몇몇이 수면을 가리키는 걸 보니 강물에 뭐가 있는 모양이다.
연적하는 무심코 강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배를 뒤집은 채 떠올라 물결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남궁천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 그 인두사의 독에 죽은 것 같다. 당가의 오대절독도 저 정도는 아닌데. 네가 독무를 밀어내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게다.”
연적하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니 오대절독이니 하는 말은 모르지만 인두사의 독이 무섭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형님, 그런데 사람들이 괴물을 보고 뇌신이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그건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뇌신은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거든. 태호 복희씨, 복희씨 등으로 불리지.”
“아! 그 복희씨요? 팔괘를 만들었다는?”
“그래. 하지만 아까 그 괴물의 몸은 용이 아니라 뱀이었잖아. 눈들이 삔 거지.”
진설하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요. 어딜 봐서 그게 뇌신이라는 건지 원. 척 봐도 ‘인두사’더구만.”
그녀의 말에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자신도 인두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똑같은 이름으로 불러서다.
“응? 왜 웃어요?”
“아니요. 인두사라는 이름을 잘 지으신 것 같아서요.”
“헤헤. 제가 작명에 소질이 있죠? 참, 인두사에 대한 연 소협의 평을 듣고 싶어요. 아, 마룡도 같이요.”
진설하가 기대에 찬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흠, 평이라. 인두사의 독무가 무섭다는 건 이미 아실 테고. 아! 이전의 다른 괴물들과 달리 교활하더라고요. 독무에 신경을 쓰게 하고 꼬리로 공격했어요.”
“어머!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잘 적어 놔야겠다. 그리고요?”
진설하는 이미 기록해 놓고도 시치미를 떼고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런 속도 모르고 으쓱해진 연적하는 계속해서 말했다.
“발톱 공격도 굉장히 날카로웠어요. 멀리서는 독무, 가까이서는 꼬리와 발톱 공격. 그걸 주의하면 되겠네요.”
“네, 그리고 마룡은요?”
“일단 날아오르면 상대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입에서 뿜어내는 화염은 무조건 피하라고 하세요. 불꽃 하나라도 몸에 닿으면 재가 되기 전까지 꺼지지 않을 테니까.”
“하아! 무시무시하네요.”
진설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상대와 싸워야 한다는 걸 정의맹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옆에서 듣고 있던 심통이 끼어들었다.
“흐흐. 네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써서 올려도 그걸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게다. 십두마병이 저승의 마귀들이라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 그걸 눈앞에서 본 나도 생각이 오락가락하는데. 공자님은 어떻습니까?”
“응? 뭐가?”
“십두마병이 저승에서 온 마귀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승의 존재가 아닌 건 틀림없는 것 같아.”
연적하는 뱃머리로 걸음을 옮겼다.
혼탁한 강물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자신도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말려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