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2
1472회. 마력총 앞에서 인간은 평등해진다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의 말에 엘리오가 놀라서 반문했다.
“싱크레어가요? 그 애는 이제 열여덟인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기적으로 이른 것은 아니오. 기사의 종자 생활은 그보다 어린 나이에도 시작을 하니까.”
“그건 그렇지만 정벌군이 가는 곳이 어비스라…….”
말로는 비공정을 이용하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 비공정으로 검은 태양에 들어가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번 어비스 진입의 목적은 탐사나 모험이 아닌 정벌과 파괴에 있다.
마족들의 인간에 대한 적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피바람이 몰아칠 어비스에 싱크레어를 데리고 간다?
솔직히 그는 가급적이면 만류하고 싶었다.
크나우프 대공이 탁자 옆에 서 있는 싱크레어를 힐끔 본 후에 말했다.
“기사에게 위험하지 않은 전장이 있소? 게다가 위험한 전장일수록 얻는 것도 큰 법이오. 어비스는 싱크레어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작위 때문입니까?”
“그 부분은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게 좋겠소. 싱크레어, 네가 말씀드리거라.”
그러자 조마조마한 눈으로 두 스승의 대화를 지켜보던 싱크레어가 입을 열었다.
“어비스 정벌은 공적 점수가 가장 높아요. 또다시 전쟁이 나지 않는 한, 평민 기사가 공적 점수를 쌓을 기회는 없어요.”
“흠.”
엘리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쟁이 나지 않는 한 공적 점수를 쌓을 기회가 없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이세계에서 사람답게 살려면 기사만으로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어비스 정벌은 위험하니 전쟁이 날 때를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고민하던 엘리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런데 내 부관보다는 크나우프 대공 전하의 부관이 낫지 않으냐?”
“대공 전하와는 6년이나 함께 지냈잖아요. 이번에는 스승님을 곁에서 모시고 싶어서요.”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내가 황제의 눈 밖에 나서 너까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자 크나우프 대공이 끼어들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오. 싱크레어는 내 제자이기도 하니까. 백작으로 인해 싱크레어가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오.”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소리다.
크나우프 대공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엘리오도 더는 거부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공의 약속만 믿고 싱크레어를 부관으로 데리고 있겠습니다. 부디 저 때문에 싱크레어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아서요.”
의미심장한 엘리오의 말에 크나우프 대공은 가슴이 철렁했다.
한편으로 ‘그냥 내가 데리고 있을 걸 괜히 보내 준다고 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이 났으니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번복하면 두 그랜드 마스터의 모양새만 우스워질 뿐이다.
“허허, 염려 마시오.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부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물론 그 전에 싱크레어가 그만한 공을 세워야 하겠지만 말이오.”
크나우프 대공의 말에 싱크레어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두 스승님의 제자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할게요!”
크나우프 대공은 싱크레어를 남겨 두고 떠났다.
그제야 쫓겨났던 손님들이 하나둘씩 여관으로 돌아왔다.
싱크레어는 여관에 방을 얻은 뒤 본격적으로 엘리오를 따라다녔다.
그로부터 열흘 후.
마침내 에스카토스와 베일럼 왕국의 비공정이 제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에스카토스와 베일럼 왕국은 군대는 파병하지 않았다.
당장 북부를 지키는 데도 병력이 빠듯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비공정에 탑승한 사람은 비공정을 움직이는 기술자들과 호위기사 몇 명이 전부였다.
북부 왕국의 지원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제국은 불평을 토로하지 못했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북부 제일의 기사가 참여한 까닭이다.
제국은 곧바로 대대적인 출정식을 열었다.
출정식이 끝난 직후, 제도의 광장에서 열두 척의 비공정이 날아올랐다.
비공정 한 척당 백여 명의 기사와 총사가 탑승했으니 많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취사를 담당한 부대만 일반 병사들일 뿐, 그 외는 모두 기사와 총사 들이라 최강의 전투력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공정.
선수의 갑판에 젊어 보이는 두 남녀가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엘리오와 싱크레어다.
비공정을 처음 탄 스승에게 경험자인 싱크레어가 이것저것 알려 주고 있었다.
“……어두워서 검은 태양이 육안으로는 잘 안 보이잖아요. 그래도 마공학자들이 위치를 계산해서 날아가고 있는 거예요.”
“대단하네.”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실 어두워졌다고 검은 태양이 완전히 안 보이는 건 아니다.
마치 금환 일식처럼 검은 태양의 주변이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서 검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그는 마공학자들의 뛰어난 머리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스승님.”
“응?”
“스승님은 어비스에 들어가 보셨잖아요?”
“그랬지.”
“어비스는 어떤 곳인가요? 정말 땅만 파도 보물이 나오나요?”
“누가 그래? 땅만 파도 보물이 나온다고?”
“사람들이요.”
“너 아카데미 안 다녔냐?”
“네, 필요한 건 대공가에서 개인 교습 받았어요.”
“그랬구나. 어쩐지.”
엘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싱크레어는 어비스에 들어가기 전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파비안, 하워드, 크레아는 모두 아카데미 출신들이라 어비스에 대해 아는 게 많았다.
그런 사람들과 지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싱크레어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저도 아카데미를 다녔어야 하는 걸까요?”
싱크레어는 슬쩍 라고아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검술을 배울 목적으로 크나우프 대공가를 떠나지 않았다.
아카데미보다 대공가에서의 배움이 훨씬 이득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양쪽 다 장단점이 있으니까 뭐라고 말은 못 하겠다. 넓게 배우려면 아카데미가 낫지만, 검술의 깊이는 대공가에 미치지 못할 테니까.”
“요즘은 조금 후회도 돼요.”
“왜?”
“기사보다 총사가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됐으니까요. 저도 총술이나 익힐걸 그랬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건 과장된 소리가 아니었다.
기사보다 총사의 대우가 더 좋았다.
공적을 쌓는 일에도 기사보다 총사가 더 유리했다.
총사는 비록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 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지만, 기사는 무슨 수를 써도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지 못한다.
지금처럼 마나가 사라진 환경도 기사에게 불리하다.
기사의 경지는 마나의 수련에 달려 있는데 마나가 늘지 않으니 망한 것이다.
그러나 총사는 다르다.
사격은 ―마나와 무관하게― 노력만으로 사격술 실력을 높일 수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총술 수련을 병행하도록 해.”
“스승님이 보기에도 기사는 미래가 없나요?”
“솔직히 말해 줄까?”
“예.”
엘리오는 잠시 주위를 살핀 후 나지막이 말했다.
“기사인 내가 이런 말을 하려니 참 씁쓸한데……. 그랜드 마스터인 나도 총사가 무서워.”
“예에? 진짜요?”
얼마나 놀랐는지 싱크레어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소리 좀 줄이고.”
“아, 네.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정확히는 총사가 아니라, 총사가 가진 엑시티움이나 타나토스가 무서워.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도 엑시티움에 맞으면 죽을 수 있으니까.”
“세상에…….”
기막혀 하는 싱크레어에게 엘리오가 확인하듯 물었다.
“너 지금 소드 비기너 끝에 도달했지?”
“네.”
이전이라면 어깨를 으쓱했을 테지만 싱크레어의 표정은 어두웠다.
기사의 현실이 암울해서다.
“파비안과 비슷한 경지니 크나우프 대공이 너를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알겠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돼.”
“뭔데요?”
“아무리 너라도 마력총을 든 병사의 상대가 못 된다는 거.”
“아…….”
“이게 우리의 현주소야. 마력총 앞에서 인간은 평등해진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좋은 거지. 황제가 고작 천 명의 기사들로 어비스를 정벌하겠다잖아. 그게 가능한 이유는 제국군이 엑시티움을 가졌기 때문이야. 엑시티움으로 인간은 마족과 동등한 위치에 올랐다고.”
“하지만 기사의 신분은 땅에 떨어졌잖아요.”
“기사뿐이냐? 마법사도 이젠 한물갔어. 전투 마법사들이 죄다 마공학이나 연금술로 진로를 바꾸고 있다잖아.”
“그래서 저도 총사가 되기를 원하세요?”
“어, 어차피 마나 수련도 못 하는데 기사를 고집해서 뭐 하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 기사를 고집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공적치를 쌓는 거잖아? 기사보다 총사가 더 유리하다니까. 내가 아는 기사도 부상을 입고 총사로 전향했는데, 총사가 되기를 잘했다고 하더라.”
“히잉! 세상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총술이나 익힐 걸 그랬어요.”
“지금도 안 늦었다. 총술 그거 반나절이면 익힐 수 있어.”
“네에? 진짜요? 총술이 그렇게 쉽다고요?”
“내가 마력총 하나 얻어 줄 테니까 어비스에 가거든 그걸 사용해 봐라. 검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엑시티움이 떨어지면 그때는 마력총 대신에 칼을 써야 할 게다.”
“네. 역시 스승님을 따라다니니까 배우는 게 많네요. 진즉에 스승님을 찾아올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지금쯤 눈 감고도 마력총을 쏠 수 있었을 텐데.”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가 북부처럼 차가워졌다.
뱃전과 선미에 있던 기사와 총사 들이 하나 둘 선실로 들어갔다.
엘리오는 싱크레어를 선실로 들여보내고 선수에 홀로 남았다.
날아다니는 마물이나 마족의 습격에 대비해서다.
그러나 다행히 마물이나 마족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이럴 때는 어두운 게 좋다니까.’
한밤중에 몰래 부잣집 담을 넘는 기분이 이럴까?
지극히 녹림도다운 생각을 하던 엘리오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실 웃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어쩔 수 없나 보다.
두 시간쯤 날아 올랐을까?
드디어 금빛 띠를 두른 듯한 검은 태양이 눈앞에 나타났다.
비공정은 머뭇거림 없이 곧장 검은 태양으로 뛰어들었다.
앞서 날아가던 비공정이 하나 둘 사라졌다.
어비스로 들어간 것이다.
엘리오는 따로 토르누비스(운종술)를 쓰지 않게 된 것에 감사했다.
토르누비스를 썼다는 건 비공정이 파괴됐다는 걸 의미하니까.
스르륵―.
비공정과 함께 엘리오의 몸이 검은 태양 속으로 쑥 들어갔다.
어비스 내부는 기억 속에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저녁 노을로 하늘이 붉었지만, 바깥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좋구나! 이게 진짜 세상이지.”
한순간 바깥세상이 가짜고, 어비스가 진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갔던 기사와 총사 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곳곳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살다가 밝은 세상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밝은 세상을 향한 반가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마중이라도 나오는 듯, 비공정이 날아가는 방향에서 새까맣게 뭔가 몰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발견한 듯 긴박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땡! 땡! 땡! 땡! 땡―!
갑판으로 나왔던 기사와 총사 들이 무기를 가지러 서둘러 선실로 돌아갔다.
잠시 후 중무장한 기사와 총사 들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틈에 돌아온 싱크레어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스승님, 저 검은 점들은 뭔가요?”
아까부터 전방을 주시하던 엘리오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와이번이다.”
“헉! 상급 마물이라는 그 와이번요?”
“그래, 그냥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