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5
1475회. 너도 공적 점수를 관리하냐?
다음 날 아침.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의 말대로 엘리오가 탄 비공정이 선두로 나섰다.
비공정에 탄 기사와 총사 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실제로 엘리오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가는 기사와 총사도 여럿 있었다.
엘리오는 나중에야 그것이 공적치 때문임을 알았다.
같은 정벌대라 해도 역할에 따라 공적치 점수를 더 많이 받는다나.
엘리오는 ‘인간이 멸망하느냐? 부흥하느냐?’의 기로 앞에서도 공적치를 계산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싱크레어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한 문제니까요. 귀족이 아니면 사람 대접 못 받잖아요. 그러니 공적 점수 관리에 신경 써야죠. 정벌대에 있다고 모두가 작위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너도 공적 점수를 관리하냐?”
“당연하죠. 사격술도 그래서 배운 거잖아요.”
고개를 주억거리던 엘리오는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구름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랑이 몸통에 새의 날개를 가진 그것은 중급 마족 바아라크였다.
그때 주 돛의 탑캐슬에 있던 관측병이 소리쳤다.
“1시 방향에서 뭔가 몰려옵니다!”
관측병은 아직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는지 ‘뭔가’라고만 했다.
곧이어 비상 상황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기사와 총사 들이 무장을 한 채 갑판 위로 달려 나왔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자 관측병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바아라크입니다! 바아라크가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습니다!”
바아라크라는 말에 기사와 총사 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비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마족과 마주치게 된 때문이다.
비공정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천천히 우측으로 선회했다.
마족과 전투가 벌어지면 포격을 하려고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바아라크족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50미터 앞까지 바아라크족이 날아왔다.
그런데 바아라크족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눈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크헝!’ 하고 포효하는 게 누가 봐도 전투 모드다.
바아라크족이 멈추지 않고 다가오자, 마력포가 불을 뿜었다.
콰쾅! 쾅! 쾅! 콰앙―!
엘리오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다.
상급 마물인 와이번도 마력포에 버티었는데 하물며 상대는 마족이다.
마력포 정도에 쓰러진다면 마족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마력 포탄의 폭발과 함께 바아라크족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마력 포탄이 바아라크족을 직접 타격하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폭발에 휘말린 바아라크족들이 추풍낙엽처럼 추락하다니?
제국군이 마력 포탄을 교체한 것 같았다.
하기야 엑시티움이 나온 지도 어언 6년, 그사이 마력 포탄을 개량했대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싱크레어는 눈앞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째서 마족이 마물보다 약하죠?”
“약할 리가 있나. 마력 포탄을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한 모양이다. 잘 보거라. 마족을 맞추지 않고 근처에서 폭발하고 있지 않느냐.”
“아! 그러네요!”
“섬광이 유달리 붉은 걸 보니 엑시티움을 마력포에 응용한 것 같구나.”
“엑시티움을 아낄 수 있게 돼서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엘리오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묘하게 마력포의 선전이 신경에 거슬렸다.
‘저런 신무기가 실전 배치됐다는 걸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그간 크나우프 대공과도 수차례 만났지만 신무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북부의 기사라도 조금 너무하다 싶다.
‘설마 아직도 왕국을 적으로 여기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입맛이 썼다.
바아라크족은 예상치 못한 인간의 반격에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비공정을 깨부수는 게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육탄으로 돌격해 왔다.
구름처럼 몰려든 바아라크족에 비해 비공정의 마력포 숫자는 너무도 부족했다.
바아라크족이 이십 미터 앞까지 다가오자,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꺼내 휘둘렀다.
마족에게 딱히 원한은 없지만 검은 산에 가는 걸 막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하늘에서 검의 화신이 비처럼 쏟아졌다.
콰콰콰콰콰―!
검의 화신에 직격당한 바아라크족들이 그 자리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비공정의 마력포가 불을 뿜었다.
쾅! 쾅! 쾅! 쾅! 콰앙―!
검의 화신에 상처 입고 버둥거리던 바아라크족의 몸이 찢겨져 나갔다.
일부는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바아라크족은 마치 불나방처럼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천산검영과 포격을 뚫고 비공정에 접근한 바아라크족은 광포화 상태에서 날뛰었다.
총사들은 살기 위해 엑시티움을 사용해야 했다.
퍼퍼퍼펑! 퍼엉―!
비공정에서 쏘아져 나간 붉은 빛줄기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생사를 도외시한 바아라크족의 공격에 비공정 두 척이 추락했다.
바아라크족과 비공정이 뒤섞이자 엘리오도 난전에 뛰어들었다.
그는 오라 블레이드로 비공정에 접근하는 바아라크족들을 베어 넘겼다.
초식도, 검리도 내팽개치고 마구잡이로 공허의 검을 휘둘렀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파도처럼 밀려오던 바아라크족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되찾자 엘리오는 싱크레어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그녀는 피에 절어 있었지만 여전히 롱소드를 들고 있었다.
마력탄이 떨어지자 결국 칼을 잡은 것 같았다.
그녀를 지켜 주기는 했지만 몇 번은 시야에서 놓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조마조마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니 기특하고 대견했다.
‘크나우프 대공이 잘 가르쳤구나.’
애초에 소드 비기너는 중급 마족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것은 운도 따랐겠지만, 실력이 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바아라크족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엘리오는 달아나는 바아라크족 하나를 잡고 물었다.
“누가 인간을 공격하라고 시켰나?”
“족장이 가자고 했다.”
“족장은 어디 있나?”
“죽었다.”
바아라크족의 대답에 엘리오는 얼굴을 찡그렸다.
족장이 죽었다면 누구의 지시인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쯧!’ 하고 혀를 차던 엘리오는 잡고 있던 바아라크족을 놓아주었다.
풀려난 바아라크족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날개를 펄럭여 달아났다.
선미로 간 엘리오는 뒤따르는 비공정을 살폈다.
남아 있는 비공정은 모두 여섯 척.
비공정을 하나하나 확인하던 엘리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력탄과 식료를 싣고 따라다니던 비공정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바아라크족은 기본 무장만으로 막아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
뒤늦게 엘리오는 자신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고작 비공정 열두 척으로 악신 샤이틴의 세상인 어비스를 정벌하려 했다니.
제국의 귀족들이야 어비스를 우샤스 운드라의 던전이라 믿었으니 그랬다 쳐도, 자신은 그래서는 안 됐다.
어비스가 악신 샤이틴의 세상임을 알았다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알았다 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간 자신이 어비스에 대해 했던 말들은 모두 이단 사상으로 취급받았다.
어쩌면 제국군도 위험성을 알지만 신무기를 믿고 밀어붙였는지도 모른다.
선수(船首)로 돌아온 엘리오에게 싱크레어가 다가갔다.
“스승님.”
“어, 그래. 다친 곳은 없냐?”
“네, 병참선이 파괴됐다고 사람들이 난리를 치던데 진짜예요?”
“맞다.”
“세상에…… 검은 산까지는 얼마나 남았는데요?”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거다.”
물론 그것도 방향이 맞을 때나 그런 거지만 엘리오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흐음! 음식과 마력탄이 어떤지 모르겠네요.”
“지상에 착륙하면 크나우프 대공에게 슬쩍 물어보려무나.”
“지상은 불안한데 그냥 계속 날아가면 안 돼요?”
“그건 안 되지.”
“왜요? 비공정에 쪼그리고 앉아서 잘 수도 있잖아요.”
“나도 대략적인 방향밖에는 몰라. 나머지는 눈으로 보면서 확인해야 돼. 밤에도 계속 움직이다가 검은 산을 지나치기라도 하면? 아니면 영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끙! 그건 그렇네요.”
싱크레어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벌은 실패로 끝날 게 분명해서다.
실패로만 끝나면 다행이다.
먹을 게 떨어진 상태에서 어비스를 방황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뉘엿뉘엿 노을이 질 때 비공정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갔다.
정벌군 총사령관인 크나우프 대공이 참모들과 함께 엘리오를 찾아왔다.
참모들은 여전히 바아라크족의 습격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악신 샤이틴의 개입인지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같았다.
그것은 ‘어비스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적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러다 아스타로이드까지 쳐들어올까 봐 걱정입니다.”
한 젊은 참모의 말에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꽤나 방정맞은 말이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에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스타로이드라는 말에 엑시티움을 떠올린 엘리오가 크나우프 대공에게 물었다.
“대공 전하, 병참선이 모두 파괴되었는데…… 작전 수행에 차질은 없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크나우프 대공이 케이사 콜드월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신 답하라는 뜻을 감지한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나섰다.
“어젯밤 테라독이 습격했을 때 병참선 한 척의 마력 기관에 문제가 발생했소. 그래서 그곳의 짐을 다른 전투선에 분산시켰소. 오늘 병참선들을 모두 잃었지만……. 분산한 물자가 남아 있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엘리오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심사가 불편했다.
그런 중대한 일을 왜 자신에게는 알리지 않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윽고 참모들의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돌아가며 라고아 백작에게 검은 산에 대해 물었다.
“검은 산은…….”
엘리오는 숨기지 않고 답했다.
길었던 문답이 끝나자 크나우프 대공과 참모진은 홀연히 떠났다.
혼자서 터덜터덜 막사로 돌아가던 엘리오가 멈칫했다.
어제부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신은 정벌군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직위는 참모지만, 일반 기사와 총사 들 만큼이나 정벌군에 대해 몰랐다.
“젠장, 너무하네.”
크나우프 대공에 대한 섭섭함이랄까?
타인에게 드러내 말하기 애매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싱크레어라는 공동의 제자를 두었고, 여관에 찾아와 정벌대에 대한 조언까지 해 준 사람이, 왜 정벌대에서 자신을 따돌리는지 모르겠다.
‘다 그 젊은 황제 때문이겠지?’
한순간 ‘싱크레어를 괜히 맡았나?’ 하고 후회가 됐다.
자신과의 관계가 그녀의 공적치에 조금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다.
때마침 싱크레어가 쪼르르 달려왔다.
“회의는 다 끝났어요?”
“그래.”
회의 분위기를 떠올린 엘리오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스승의 표정을 본 싱크레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요? 나쁜 소식이라도 있나요?”
“그런 건 아니고. 싱크레어, 너 지금이라도 대공 전하께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
“예? 갑자기 왜 그러세요?”
“황제가 나를 너무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래. 내 옆에 있으면 네 공적치만 깎일 거야.”
그러나 싱크레어는 고집스럽게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홰홰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