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6
1476회. 정벌대가 성공할 것 같은가요?
엘리오는 싱크레어가 끝내 자신의 옆에 남겠다는 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정벌대에서 그는 혼자였다.
사백여 명의 생존자들 가운데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은 싱크레어뿐이었다.
“그래, 알겠다. 크나우프 대공도 네가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황제에게 밉보이는 건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하거라.”
“네.”
싱크레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엘리오는 문득 딸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딸도 저렇게 감정의 변화가 다채로웠다.
그는 진심으로 싱크레어가 작위를 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엘리오의 표정이 부드러워지자 싱크레어가 물었다.
“그런데 스승님.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그랜드 마스터도 엑시티움에 맞으면 죽는다고.”
“그랬지.”
“하지만 크나우프 대공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던데요?”
“크나우프 대공은 엑시티움이 안 무섭다더냐?”
“아니요, 반대로 말씀하셨어요. 스승님이 엑시티움을 이겨 낼 거라고 하셨어요. 인간의 경지를 초월하셨다고.”
“내가?”
“네.”
엘리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지금까지 몇 번 엑시티움에 맞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부상을 입었지. 내 몸에는 엑시티움에 맞은 자국이 남아 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잖아요.”
“내가 죽지 않은 건 전적으로 운이 좋아서였다. ‘엑시티움 앞에서 인간은 평등해진다’고 한 말을 잊었느냐? 나 역시도 육체를 가진 인간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육체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한다.”
싱크레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스승을 보았다.
오늘에야 비로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어떤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소문처럼 신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인간이었다.
“실망했느냐?”
“아니요. 오히려 스승님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라 좋아요. 스승님을 초월적인 존재로 생각할 때는 너무 멀어서 실감이 안 났거든요.”
“아무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은 너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경각심요?”
“그래, 지금까지는 암암리에 내가 너를 보호해 주었지만……. 마족과 싸울 때는 몇 번이고 너를 시야에서 놓쳤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
싱크레어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바아라크족은 고작해야 중급 마족일 뿐이다. 어비스에는 상급 마족과 마족 군주, 그리고 악신 샤이틴을 따르는 신들이 있다.”
물론 악신 샤이틴도 등장할 수 있지만 그 부분은 ―정벌대에 너무 절망적이라― 생략했다.
“그들과 싸우면서 너를 지켜 줄 수는 없다. 내 고향에 이런 말이 있지. 싸울 때는 운이 칠십 퍼센트, 기술이 삼십 퍼센트가 필요하다고. 그러나 지금의 너에게는 운이 구십 퍼센트, 기술이 십 퍼센트다. 왜냐면 내가 너를 완벽하게 지켜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과거 히르헤라의 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파비안도 그런 죽음의 위기를 숱하게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싱크레어가 다부지게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을게요.”
“그래, 살아남기만 한다면 작위를 받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게다.”
무려 이세계를 구원하는 일이다.
거기다 싱크레어의 실력이면 남작이 되는 건 누워서 물 먹기였다.
“비공정에서는 내가 너를 돌보겠지만…… 지상전이 벌어지게 되면 크나우프 대공과 합류하도록 해라.”
“스승님은요?”
“그야 가장 강한 적과 싸우고 있겠지.”
“아…… 알겠어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면 크나우프 대공님의 부대에 합류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이제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지상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내 근처에 있으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때는 크나우프 대공의 곁이 가장 안전할 게다.”
정벌대에서 크나우프 대공이 가장 강하니 그의 곁에 있는 게 그나마 나을 터였다.
머뭇거리던 싱크레어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응?”
“스승님이 보시기에 정벌대가 성공할 것 같은가요?”
“왜? 실패할 것 같으냐?”
“중급 마족들에게 비공정의 절반이 파괴됐잖아요. 상급 마족이 공격하면…….”
“그건 걱정하지 마라. 상위로 올라갈수록 공격은 나에게 집중될 테니까.”
“네?”
“마족들의 지능은 인간보다 뛰어나다. 그들은 비공정보다 나를 없애는 데 주력할 게다. 비공정은 어차피 검은 산에 가지 못할 테니.”
“예? 왜요?”
“검은 산을 뒤덮고 있는 어둠의 에테르가 독해서다. 크나우프 대공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게다. 하물며 다른 기사와 총사 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그 정도로 독하다고요?”
“소드마스터인 오마르 백작도 숨 쉬는 데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하아!”
“그렇게 실망할 거 없다.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는 열심히 수련하고 있느냐?”
“네, 하루도 빼지 않고 수련했어요.”
“작은 하늘 회로를 사용하면 어둠의 에테르 속에서도 괜찮아질 게다.”
“정말요?”
“거짓말이라고 하면 안 해 볼 거냐?”
“해 봐야죠.”
“그래, 검은 산뿐 아니라 어비스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숨 쉬기가 힘들어지면 작은 하늘 회로를 사용해 보거라. 효과가 있을 게다.”
“네, 그런데 정벌대가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대답해 주지 않으셨어요.”
“성공할 거다. 내가 죽지 않는다면.”
“…….”
싱크레어는 더 묻지 않았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는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홀로 남겨진 엘리오는 싱크레어와의 마지막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정벌대와 자신의 목표는 같았다.
마력석의 파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작 이틀 만에 벌써 열두 척의 비공정 중에서 여섯 척이 파괴됐다.
천이백 명의 정벌대원 중에서 생존자는 고작 사백여 명.
상급 마족은 물론 신적 존재들을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다.
싱크레어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고작 비공정 열두 척으로 어비스를 정벌하겠다니?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그럼에도 무모하다 욕할 수 없는 건, 그게 인간의 최선인 까닭이다.
열두 척의 비공정과 크나우프 대공이면 사실상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쓴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일 때,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라고아 백작님.”
돌아보니 마나 프트라스 교단의 사도인 안나 라마크리슈였다.
“안나 사도님? 무사하셨군요.”
“마나 프트라스님의 가호 덕분에요.”
안나 라마크리슈 사도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상 마나 프트라스는 활동을 멈춘 상태였으니 그녀가 산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다.
만약 프트라스 교단의 성직자들이 추락한 여섯 척의 비공정에 타고 있었다면, 반드시 죽었을 터였다.
“그런데 저는 왜?”
엘리오는 안나 사도를 빤히 보았다.
문득 그녀가 자신에게 검은 산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건 도와 달라고 수석 사제를 북부로 보낸 사람의 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총사령관님에게 들었어요. 라고아 백작님이 검은 산에 대해서 잘 안다고 했다죠?”
왠지 따지는 듯한 말투가 조금 거슬렸지만 엘리오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나 프트라스 교단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싫어할 짓을 골라 한 편이었다.
과거 자신이 마나 프트라스에 대해 했던 말들은 모두 이단적인 사상이었으니까.
그래도 오해받을 일은 피할 생각이다.
“잘은 아닙니다. 어비스를 탐험할 때 우연히 한 번 본 게 전부입니다.”
“혹시 제가 검은 산에 대해 백작님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 불쾌하셨나요?”
“불쾌까지는 아니고요.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그러셨군요. 제가 백작님에게 그 부분을 말씀드리지 않았던 건…….”
“크나우프 대공님에게 들었습니다. 기밀이었다고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저는 백작님께서 어비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굳이 검은 산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지 않았던 거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검은 산을 본 건 우연입니다. 어비스에 대해 속속들이 안다고 말할 정도는 못 됩니다.”
엘리오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어비스가 악신 샤이틴의 거처인데 그걸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건 자칫 ‘악신 샤이틴의 주구’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말이죠. 제가 신탁에서 본 검은 산과 백작님이 가 봤다는 검은 산이 같은 곳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세요?”
“…….”
안나 사도의 날카로운 지적에 엘리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어비스에 대해 모른다.
자신이 밟아 본 땅은 극히 일부분이다.
확실히 자신이 갔던 검은 산과 안나 사도가 본 것이 다를 수도 있었다.
엘리오가 대답하지 못하자 안나 라마크리슈가 말을 이어 갔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바로 그거예요. 제가 백작님에게 선두를 내어 준 것은……. 제가 본 검은 산이 어디에 위치한지 몰라서예요. 저는 우리가 가는 곳에 신탁의 검은 산이 있기를 바라요.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희생은 헛된 것이 될 테니까요.”
그녀는 지금까지의 희생이 엘리오의 책임인 것처럼 말했다.
엘리오는 그녀의 입을 때려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제가 경솔했군요. 제가 본 검은 산이 워낙 독특해서 당연히 그곳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안나 사도님이 선두에 나섰어도…… 제가 본 검은 산부터 확인하러 갔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엘리오의 반격에 안나 라마크리슈는 얼른 말을 돌렸다.
“잘잘못을 따지러 온 게 아니에요. 백작님이 저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러 왔어요.”
“제가 뭘 오해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하아, 모르신다면 됐어요. 저는 마나 프트라스 교단과 백작님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엘리오가 담담한 눈으로 안나 사도를 보았다.
그건 진심이었다.
비록 자신이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악신 샤이틴보다는 마나 프트라스와 심정적으로 더 가까웠다.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마나 프트라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안나 라마크리슈 사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군요. 목적지가 가까워진 것 같은데 저와 우리 교단의 사제들이 백작님의 비공정으로 옮겨 가도 괜찮을까요?”
“신탁에서 본 것과 다를 수도 있으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엘리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만에 하나 검은 산이 신탁과 다르면, 그녀가 탄 비공정이 선두로 나서야 한다.
비공정 간에 연락을 주고받느니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게 백번 나았다.
두 번째 밤도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웨이브가 시작됐나?’라고 생각할 만큼 많은 마물들이 몰려왔다.
미개척지인 만큼 상급 마물이 주를 이뤘지만 정벌군은 마공학의 산물로 막아 냈다.
밤새 야광탄이 불빛을 밝혔고, 마력포와 마력총이 불을 뿜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삼십여 명에 그쳤다.
이틀 동안 밤낮으로 전투에 내몰린 정벌군의 몰골은 초췌했다.
정벌군의 관심도 ‘공적치’에서 ‘생존’으로 옮겨 갔다.
귀족이 되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던 싱크레어도 더 이상 공적 점수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비공정이 이륙하기 직전, 마나 프트라스 교단의 사제들은 총사령관의 비공정에서 라고아 백작의 비공정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장한 분위기 속에 비공정이 날아올랐다.
마나 프트라스 교단의 사제들은 일찍부터 선수에 자리를 잡았다.
비공정이 언제 검은 산을 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제들 속에는 엘리오와 싱크레어의 모습도 보였다.
싱크레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만 스승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그게…….”
하필 그때 머리 위에서 관측병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10시 방향! 새까맣게! 아니, 하얗게! 몰려옵니다!”
엘리오는 재빨리 10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하얀 날개에 하얀 옷을 입은 아스타로이드들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