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79
1479회. 태고신 아브라나트
뜨거운 불길이 엄습한 순간 엘리오는 이형환위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호신강기로 버틸 수 있는 불길이 아니라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형환위는 마법이 아니라 상승의 경신술.
몸을 움직여 피해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던 것이다.
찰나지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에는 어둠의 에테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구룡번신도 어둠의 에테르에 종종 막히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내 부정했다.
공간 이동에 실패한 것과 신법을 쓸 수 없는 것은 달랐다.
지금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자신의 몸이 걸린 것 같았다.
‘잡혔구나!’
마치 허공섭물에 당한 것처럼, 누군가 자신의 몸을 허공에 붙들어 맨 것이었다.
그때 불길이 그를 덮쳤다.
화르르륵―!
뜨거운 불이 폭포수처럼 그의 몸을 때렸다.
강한 압력에도 무언가에 사로잡힌 그의 몸은 허공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히드록시 메네로제스는 허공에 붙들린 엘리오 군주에게 마음껏 브레스를 뿜어냈다.
‘죽어라!’
브레스는 드래곤에게 최강의 기술인 만큼 마력의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군주가 아니었다면 셋을 세기도 전에 마력이 고갈됐을 터였다.
그러나 히드록시는 무려 1분간이나 쉬지 않고 브레스를 쏟아 냈다.
브레스 속에 갇힌 엘리오 군주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제법 버티는구나!’
그러나 저 정도면 이미 제구실을 하기는 틀렸다고 봐야 한다.
브레스가 조금씩 약해지자, 이번에는 키네로트 비슈니치가 날아갔다.
곧이어 화염검이 춤을 추었다.
화염검에서 뻗어 나간 카오스 블레이드가 붉게 변한 엘리오의 몸을 때렸다.
퍼퍼퍼펑! 퍼펑―!
엘리오의 몸에서 묵직한 폭발음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자신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키네로트는 눈을 찌푸렸다.
‘뭐지?’
파열음이 터져야 정상인데 폭발음이라니?
그건 브레스를 그토록 오래 맞고도 아직 튕겨 낼 힘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히드록시의 마력이 고갈되자 브레스도 끝났다.
히드록시는 벌렸던 입을 다물고 엘리오 군주의 상태를 살폈다.
그건 키네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용암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엘리오의 몸에서 펄펄 김이 솟았다.
엘리오는 양팔을 교차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것 같았다.
비공정에 타고 있던 제국군과 사제들은 라고아 백작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드래곤의 브레스는 인간이 견뎌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드래곤의 브레스는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 브레스를 온몸으로 맞았다.
하물며 그 상태에서 시커먼 블레이드에 수차례 직격당하기까지 했다.
아직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게 신기했지만, 살아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건 키네로트와 히드록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군주가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다 해도 육체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키네로트가 아홉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엘리오 군주에게 다가갔다.
키네로트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엘리오 군주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생각하면 탄내가 나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탄내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은근 불안해진 키네로트는 천천히 화염검을 엘리오 군주를 향해 뻗었다.
그때다.
교차한 두 팔 아래 굳게 닫혀 있던 엘리오의 눈이 번쩍 떠졌다.
‘헉!’
깜짝 놀란 키네로트는 미친 듯 날개를 펄럭여 뒤로 물러나려 했다.
어떻게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고도 멀쩡한지 궁금한 건 둘째다.
지금은 저 가공할 적과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엘리오가 더 빨랐다.
엘리오가 벼락처럼 키네로트를 덮친 것이다.
검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키네로트는 반사적으로 화염검을 휘둘러 쳐 냈다.
콰앙―!
엘리오의 검이 뒤로 튕겨 났다.
브레스와 카오스 블레이드에 당한 충격으로 온전히 힘을 쓰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나 당황한 키네로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물러나기에 급급한 키네로트는 반격은커녕 오히려 몸을 움츠렸다.
엘리오의 눈이 번득였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는 끈덕지게 따라붙으며 미친 듯 검을 휘둘러 상대를 압박했다.
쾅! 쾅! 쾅! 콰앙―!
싸움은 기세다.
엘리오의 현란한 검격에 키네로트는 이것저것 따질 틈도 없이 막기 바빴다.
검격을 나누며 둘의 신형이 조금씩 하늘로 올라갔다.
마력이 고갈된 히드록시는 둘의 검격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
미련하리만치 우직한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솟아올랐던 공허의 검이 벼락처럼 키네로트의 머리로 내리꽂혔다.
키네로트의 화염검이 한 박자 늦게 위로 떠올랐다.
거기서 둘의 운명이 갈렸다.
제대로 힘이 실린 공허의 검을 화염검은 당해 내지 못했다.
콰자작―!
귀에 거슬리는 파열음과 함께 화염검이 부서졌다.
공허의 검이 훤히 드러난 키네로트의 머리를 베고 지나갔다.
순간 키네로트는 더 물러나지 않고 우뚝 멈췄다.
쉬지 않고 펄럭이던 아홉 쌍의 날개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키네로트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키네로트의 죽음을 확인한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히드록시를 향해 던졌다.
쐐애애액―!
히드록시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용족 고유의 방어 마법인 앱솔루트 배리어를 펼쳤다.
우웅―!
반투명한 마력장이 히드록시의 앞에 나타났다.
공허의 검이 마력장에 부딪쳤다.
콰콰콰콰―!
조금씩 공허의 검이 마력장을 파고 들어갔다.
마력이 완전히 사라지자 히드록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꽝!’ 소리와 함께 마력장이 흩어졌다.
마력장을 꿰뚫고 들어간 공허의 검이 히드록시의 가슴에 박혔다.
“크윽!”
히드록시가 검을 양손으로 잡고 진저리를 쳤다.
마족 진영이 침묵에 휩싸였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비공정에서 ‘와아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버둥거리던 히드록시의 몸이 검과 함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묵묵히 내려다보던 엘리오가 검결지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히드록시의 몸에서 빠져나온 공허의 검이 그에게 돌아왔다.
되돌아온 공허의 검을 잡으려던 엘리오가 돌연 허공으로 도약했다.
쉬익―!
공허의 검이 엘리오의 발 아래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깜짝이야! 씨발!”
엘리오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이기어검으로 잡으려던 검이 자신을 공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공허의 검이 선회하자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무위로 돌렸다.
그를 공격하던 공허의 검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때 더 높은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타메이온의 군주 엘리오여. 너는 샤이틴님의 의지를 거역했음은 물론, 나의 충직한 종들마저 죽였다. 무엇이 너로 하여금 동족과 샤이틴님을 배신하게 하였느냐?
“배신이 아니다. 나는 마족과 인간이 더불어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인간은 마나 프트라스의 개다. 마족과 마나 프트라스의 개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너는 마하카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었느냐?
“인간은 그 전쟁과 관계없잖아. 인간은 마수에게도 쩔쩔매는 존재라고.”
―마나 프트라스는 티탄족의 하수인이고, 인간은 마나 프트라스의 종이다. 그러므로 마나 프트라스와 인간은 죽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샤이틴님의 뜻이고, 태고신들은 그 뜻에 따를 것이다.
“당신은 태고신 중에 하나인가?”
―그러하다. 내 이름은 아브라나트. 이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샤이틴님을 섬기고 있었다.
“혹시 안타르도 태고신이었나?”
―네가 죽인 안타르는 샤이틴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태고신이었다.
“그렇군. 여하튼 나는 반대야. 복수를 하려면 티탄족을 찾아가서 하라고. 마수보다 약한 인간에게 화풀이를 하지 말고. 아, 티탄족은 무서워서 못 찾아가려나?”
엘리오의 비꼬는 말에 잠시 하늘이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너는 샤이틴님을 배신했고, 태고신과 태고신의 종들 또한 죽였다. 죽음으로도 네 죄를 다 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를 어쩔 건데?”
―오라. 나 아브라나트가 샤이틴님의 이름으로 너를 심판하겠다.
이윽고 머리 위쪽의 구름이 갈라졌다.
하늘로 오르기 전 엘리오는 잠시 마족과 비공정을 번갈아 보았다.
자리를 떠나는 게 내키지 않지만 검은 산으로 가려면 따라야 했다.
신적 존재와 많이 싸웠지만 이렇게 대놓고 더 높은 곳으로 오라는 신은 처음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는데?’
자칫 정신을 잃으면 아무리 강한 육체라도 추락해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엘리오를 태운 구름이 머리 위 갈라진 하늘길로 올라갔다.
더 높은 하늘 위.
발 아래 융단처럼 깔린 구름 위에 기괴한 존재가 검은 날개를 활짝 편 채 우뚝 서 있다.
독수리 머리를 한 그의 왼손에는 방패, 오른 손에는 짧은 검이 들려 있었다.
잠시 후 구름을 뚫고 올라온 엘리오가 그의 앞에 마주 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엘리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아브라나트인가?”
사방에서 천둥소리처럼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하다. 그런데 너는…… 부라퀴족인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그나저나 당신을 이기면 그다음은 샤이틴인가?”
―부라퀴족 군주여, 너도 마족이라면 창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아, 그래. 여하튼 대답은?”
―샤이틴님의 뜻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태고신이라면서 너무 저자세 아냐? 샤이틴도 당신과 같은 신일 텐데.”
―같은 신이라고? 크크, 크크크큿!
기묘한 웃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융단처럼 깔려 있던 구름이 웃음소리에 맞춰 거칠게 출렁였다.
“왜? 당신도 태고신이라면서. 샤이틴과 많이 달라?”
―많이 다르냐고? 크크크큿! 샤이틴님은 항거할 수 없는 공포다. 샤이틴님에게 거스른 자들은 하나같이……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태고신들조차 예외는 아니다. 한낱 부라퀴족인 너는 다를 것 같으냐?
“다를걸? 내 이명이 뭔지 알면 당신도 벌벌 떨 거야.”
―그래, 네 또 다른 이름이 무엇이냐?
“신살자.”
말과 함께 엘리오가 공허의 검을 뽑아 들었다.
자신만만한 그의 태도에 아브라나트의 검은 눈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안타르를 죽였다고 오만하구나. 안타르가 샤이틴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태고신 중에 가장 강한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가장 강한가?”
―샤이틴님 다음으로 오래된 태고신이 나다. 마하카브에서 티탄족 전사 여럿을 죽였지.
말을 마친 아브라나트가 돌연 짧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휘우우웅―!
바람소리와 함께 깔려 있던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랐다.
회전하는 구름의 끝이 창끝처럼 날카로웠다.
곧이어 수백, 수천의 회전하는 구름이 엘리오를 향해 날아갔다.
엘리오는 급히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토르누비스로 만든 구름만 저만치 이동하고 그의 몸은 그 자리에 붙들려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듯한 느낌.
그제야 엘리오는 조금 전 자신이 브레스를 피하지 못한 게 아브라나트 때문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