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80
1480회. 죽어라, 배신자여
창끝 같은 구름이 밀려오자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휘둘렀다.
츠츠츠츠―.
검에 직격당한 구름 줄기들이 연기처럼 꺼졌다.
그러나 검으로 부순 것보다 길게 뻗어 오는 구름의 숫자가 더 많았다.
특히나 뒤에서 몰려오는 구름은 쳐 낼 틈도 없이 고스란히 엘리오의 등에 박혔다.
퍼퍼퍼퍽―!
검에 맞자 연기처럼 스러진 것과 달리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다.
충격이 적지 않은 듯 엘리오의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브레스에 갑옷과 옷이 모두 타 버린 상태라 구름에 직격당한 자리가 훤히 보였다.
엘리오의 넓은 등판에 붉은 자국이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순간 아브라나트의 놀란 음성이 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에테르눔! 마족이 어찌 티탄족 전사의 가호를 받고 있느냐! 네놈은 누구냐!
줄기줄기 솟아오르던 구름이 가라앉았다.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라고?”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클라우드 스피어(Cloud Spear)를 튕겨 낸 것은 분명 티탄족 전사의 가호다! 너는 티탄족과 무슨 관계냐!
아브라나트의 음성이 살짝 흔들렸다.
만에 하나 티탄족이 다시 돌아온다면 샤이틴과 태고신들 모두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아.”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티탄족 전사의 가호라는 말에 베리스 군주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군주들은 불멸의 사다리가 티탄족 전사를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라 생각한다. 불멸의 사다리마다 가지고 있는 마도구가 달랐는데…… 어제 오니스토스 신전에 있던 것은…… 에테르눔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베리스 군주는 에테르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르테늄의 경우 같은 자리에 충격을 두세 번 받으면 파괴된다. 하지만 에테르눔은 파괴되지 않고 오히려 빠르게 재생되기까지 한다.’라고.
‘에테르눔을 몸에 두른 티탄족 전사가 전장을 쓸고 다녔다’고도 했다.
태고신 아브라나트가 티탄족 전사를 죽였다고 하더니 바로 알아본 모양이다.
그 지독한 브레스를 용케도 견뎌 냈구나 싶었는데 에테르눔 덕분이었던 것 같다.
“오해하지 마. 우연히 티탄족의 신전에 들어갔다가 얻게 된 거니까. 나는 티탄족 전사가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인간족 대전사라고나 할까? 여기에 온 것도 티탄족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라고.”
―티탄족의 오니스토스 신전을 말하는 것이냐?
“그래, 베리스 군주가 오니 어쩌고 하더라고.”
―…….
아브라나트는 그 말의 진의를 생각하느라 잠시 침묵했다.
오니스토스 신전에 ‘불멸의 사다리’라 불리는 모노리스가 있음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엘리오 군주가 가진 티탄족 전사의 가호도 설명이 된다.
“더 할 얘기 없으면 하던 일 마저 하자고. 내가 좀 바빠서 말야.”
엘리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융단처럼 깔려 있던 구름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뒤이어 구름들이 또다시 벌 떼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구름 줄기들이 중앙에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작은 스피어들은 하나의 거대한 스피어가 되었다.
이른바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다.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회전하며 엘리오를 향해 날아갔다.
엘리오도 공허의 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쏘아져 나간 오라 블레이드가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를 때렸다.
그러나 빠르게 회전하는 구름 덩어리가 오라 블레이드를 삼켜 버렸다.
퍼억! 퍽―!
김빠진 소리와 함께 오라 블레이드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엘리오가 몇 번이나 더 오라 블레이드를 날려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엘리오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천산검영까지 펼쳤다.
쏴아아아―!
애석하게도 비처럼 내리는 검의 화신(化身)들은 아브라나트의 몸에 닿지 않았다.
거대한 구름 덩어리는 검의 화신들조차 집어삼켰다.
검의 화신은 오히려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의 몸체만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구름 속에 섞인 검의 화신이 햇빛을 받아 번득였다.
위기를 느낀 엘리오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피하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과연 태고신이구나!’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날카로운 구름이 코앞까지 닥쳐오는데 엘리오는 오히려 공허의 검을 던졌다.
공허의 검이 아브라나트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쐐애액―!
구름을 조종하는 이가 아브라나트라 생각해 아브라나트를 노린 것이다.
이른바 너 죽고 나 죽자는 동귀어진의 한 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구름이 공허의 검보다 한발 빨랐다.
엘리오는 어쩔 수 없이 공허의 검에서 시선을 떼고 구름에 집중했다.
그가 한쪽 손을 앞으로 내뻗자 영기의 벽이 나타났다.
거의 동시에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가 영기의 벽을 파고들었다.
가가가각―!
본래 그는 영기의 벽으로 공격을 막고, 이기어검으로 아브라나트를 노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아브라나트를 향해 옮겨 가기도 전에 영기의 벽이 뚫리고 말았다.
콰아아―.
부드럽기 그지없는 구름이 영기의 벽에 구멍을 낸 것이다.
엘리오가 놀랄 틈도 없이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가 엘리오의 가슴에 닿았다.
“크윽!”
엘리오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도 엘리오는 급히 두 손으로 구름을 붙잡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구름이 가슴으로 파고들 것만 같아서다.
가가가각―!
회전하는 구름에 손바닥이 쓸리며 기이한 소리가 났다.
손으로 구름을 잡은 뒤에야 엘리오는 구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것은 눈속임이었다.
그의 손안에서 회전하는 구름은 단단하기가 강철을 잡은 것 같았다.
가슴의 통증에 엘리오는 고개를 숙였다.
구름과 맞닿은 곳에 구멍이 뚫렸고, 그곳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뒤늦게 오싹 소름이 끼쳤다.
호신강기와 티탄족 전사의 가호까지 단숨에 뚫어 버리다니!
그러나 돌이켜 보면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아브라나트는 제 입으로 자신이 악신 샤이틴 다음으로 오래된 신이라 했다.
티탄족 전사를 여럿 죽였다더니 과연 그럴 만한 능력을 가졌다.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에 엘리오의 몸이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상체가 뒤로 꺾이자, 저 멀리 오연하게 서 있는 아브라나트의 모습이 보였다.
엘리오는 처음으로 굴욕을 느꼈다.
구천검령을 얻은 뒤 누군가에게 이처럼 일방적으로 밀려 보기는 처음이다.
‘공허의 검은?’
그러고 보니 공허의 검이 보이지 않았다.
검을 날린 뒤 이 구름 덩어리에 신경을 쓰다가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자신이 조종하지 않으니 아래로 추락한 것이리라.
엘리오는 공허의 검을 무위로 돌려보낸 뒤, 아브라나트의 근처에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의지만으로 아브라나트를 향해 힘껏 쏘아 보냈다.
쉬익―!
본래 이기어검은 검결지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검결지는 이기어검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동작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마법사들이 무영창으로 마법을 쓰는 것과 같다.
마법사들이 마법 주문을 영창하는 것은 그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공허의 검이 아브라나트의 몸에 닿기 직전, 아브라나트가 손을 들어 올렸다.
놀랍게도 공허의 검은 손바닥에 막혔다.
공허의 검은 마치 강철 벽이라도 만난 것처럼 아브라나트의 손을 뚫지 못했다.
그뿐 아니다.
아브라나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 끝으로 공허의 검을 잡고 ‘끄끄끄’ 웃었다.
마치 너의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아브라나트가 들고 있던 검을 내던지자 공허의 검이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엘리오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부끄럽지만 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비스에서 자신의 영기보다 아브라나트의 기운이 더 강했다.
증명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구름이 다시 가슴으로 밀려들어 왔다.
회전하는 구름의 첨단을 움켜잡은 손바닥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힘과 기술에서 아브라나트에게 밀린 것이다.
엘리오가 아브라나트를 향해 말했다.
“웃냐?”
―죽어라, 배신자여.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가 다시 가슴에 닿았을 때, 엘리오는 구천검령을 불러냈다.
“너나 죽어!”
융단 같은 구름에 그늘이 졌다.
곧이어 한 자루 거대한 구천검령이 아브라나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헉! 아스트랄 소드? 저게 왜!
엘리오를 파고들던 구름이 급하게 방향을 바꿨다.
이윽고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가 구천검령의 거대한 검신을 때렸다.
퍼어엉―!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구천검령이 한차례 흔들렸다.
그러나 구천검령은 힘을 잃지 않고 아브라나트를 향해 날아갔다.
바닥에 깔려 있던 구름이 포도 덩굴처럼 줄기줄기 위로 솟구쳐 구천검령을 감았다.
구천검령의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기세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
아브라나트의 신경이 구천검령에 가 있을 때 엘리오의 검결지가 빳빳하게 섰다.
곧이어 구름을 뚫고 공허의 검이 치솟았다.
뒤늦게 아브라나트가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공허의 검은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공허의 검은 미꾸라지처럼 그의 손을 피해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파앗―!
아브라나트의 옆구리에서 검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감히!
군주 따위에게 당한 아브라나트가 분노에 찬 일성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공허의 검은 아브라나트의 주위를 나비처럼 맴돌며 쉬지 않고 찔러 댔다.
아브라나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구천검령을 막느라 눈 뜨고 당하기만 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코앞에 닥친 아스트랄 소드였다.
마족 군주의 날파리 같은 검에는 베여 봤자 상처를 입고 말 뿐이지만, 아스트랄 소드에 직격당하면 존재 자체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단숨에 전세가 역전됐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태고신 아브라나트의 온몸이 피에 물들었다.
―어째서 아스트랄 소드가 한낱 군주의 말을 듣느냐!
그러나 구천검령이 대답을 해 줄 리 만무하다.
―어째서 궁극에 도달한 존재가 군주의 손발 노릇을 하느냐 말이다!
구천검령이 구름의 방해를 뚫고 아브라나트에게 점점 다가갔다.
쓰아아아―.
끝내 아스트랄 소드를 막지 못하자 아브라나트는 엘리오 군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그러시든가.”
엘리오의 검결지가 아브라나트를 가리켰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공허의 검이 아브라나트를 향해 날아갔다.
쐐애액―!
용암처럼 들끓던 구름이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폭발하듯 위로 솟구쳤다.
달리 피할 곳이 없던 엘리오는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다.
퍼퍼퍼퍽―!
구름이 호신강기를 때렸다.
엘리오의 눈이 구름에 쏠려 있을 때, 아브라나트가 빠르게 날개를 펄럭였다.
촤촤촤촤―!
아브라나트의 날개에서 나온 수백 개의 깃털이 엘리오에게 날아갔다.
권능을 다 쏟아 낸 아브라나트의 옆구리에 공허의 검이 박혔다.
퍼억―!
그러나 아브라나트의 눈은 위쪽을 향해 있었다.
곧이어 구천검령이 검신에 구름을 잔뜩 매달고 아브라나트에게 이르렀다.
아브라나트는 조금 전 엘리오가 그랬듯, 두 손으로 아스트랄 소드를 움켜 잡았다.
하지만 구천검령은 메가 클라우드 스피어와 질적으로 달랐다.
구천검령이 아브라나트의 손을 뚫고 가슴에 박힌 것이다.
그와 동시에 아브라나트가 쏘아 낸 깃털들도 엘리오를 덮쳤다.
콰드득―!
퍼퍼퍼퍼퍽―!
―끄아아아아아―!
아브라나트의 처절한 비명이 구름 위 하늘에 울려 퍼졌다.
태고신 아브라나트는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엘리오의 형편도 좋지 않았다.
알몸에 검은 깃털이 박힌 그는 마치 ‘털을 뽑히다 만 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