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82
1482회. 내 나이쯤 되면 그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엘리오의 시선이 골리앗에게로 향했다.
5년 전 남부 왕국에서 제국군의 골리앗을 본 적이 있지만 저건 그때와 달랐다.
양쪽 손에 마력총과 마력포 중간 크기의 총신이 달려 있었다.
‘저런 걸 열 기나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엘리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총사령관의 비공정에 저런 비밀 무기가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게 튀어나오니 무슨 양파를 보는 듯하다.
엘리오의 시선을 따라가던 크나우프 대공이 간단히 말했다.
“4세대 골리앗이오.”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개량된 마력포처럼 저 골리앗에도 뭔가 손을 쓴 게 틀림없다.
엘리오는 그게 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제국군은 비밀이 많다.
개량한 마력포처럼, 저 4세대 골리앗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지 않을 게 뻔했다.
어색함을 감지한 크나우프 대공이 화제를 돌렸다.
“마력석은 저 건축물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시지요.”
이윽고 엘리오와 크나우프 대공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백여 명의 제국군과 열 기의 골리앗이 그 뒤를 따랐다.
마족들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신전 앞에서 황망히 뒤로 물러났다.
신전은 거대했다.
입구의 크기만 해도 열 기의 골리앗이 일렬 횡대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광활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외부에서 볼 때도 컸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좌우편에 각각 집채만 한 크기의 석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걸어가던 엘리오가 멈칫하자 크나우프 대공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오?”
엘리오가 석상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는 얼굴이 있어서요.”
“누구요?”
“안타르라는 이름의 마족 신입니다.”
“마족의 신이라고 했소?”
“예, 자기 입으로도 그랬고, 다른 마족의 신도 그를 샤이틴이 총애하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 석상들이…….”
“예, 마족의 신들 같습니다.”
크나우프 대공이 근심스러운 눈으로 석상들을 바라보았다.
양쪽 벽을 따라 세워진 석상의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다시 걷던 엘리오가 우뚝 멈춰 섰다.
뒤늦게 신전 끝의 보좌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까닭이다.
보좌에 앉은 이의 얼굴은 악신(惡神)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보좌 뒤편에 검은 돌기둥이 있는데, 그 주위로 어둠의 에테르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엘리오는 직감적으로 저 검은 돌기둥이 마력석임을 알아차렸다.
그때 보좌에 앉은 이의 입에서 유창한 대륙 공용어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몸으로 용케도 이곳까지 왔구나.”
꽤나 의미심장한 말에 엘리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당신이 악신 샤이틴인가?”
“그러하다. 이곳은 오직 나만을 위한 장소. 내 허락을 받지 않은 자는 들어올 수 없다.”
그 말에 엘리오는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다.
제국군과 사제들만 있을 뿐 마족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왜 마족을 불러들이지 않았지?’
엘리오는 눈을 찌푸렸다.
마력석을 파괴하러 온 인간은 들여보내고, 정작 자신의 종들은 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샤이틴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는 직접 묻는 게 상책이다.
“우리는 마력석을 파괴하러 왔다. 그런데 마족은 막고 우리를 들어오게 했다고? 왜지?”
“그야 너희를 이곳에 불러 모은 이가 나니까.”
“당신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고? 천만에! 우리는 마나 프트라스의 신탁을 따라왔다.”
“정말 그럴까?”
뜻 모를 말을 마친 샤이틴이 느긋하게 상체를 보좌 등받이에 기댔다.
이해할 수 없는 샤이틴의 태도에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할 때다.
그와 나란히 서 있던 크나우프 대공이 갑자기 엘리오를 단검으로 찔렀다.
콰악―!
반사적으로 발현된 호신강기가 단검을 막았다.
그러나 그랜드 마스터의 마나는 호신강기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콰직!
뭔가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엘리오의 허리에 박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크나우프 대공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단검의 끝이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티탄족 전사의 가호가 막아 준 것이었다.
“윽!”
엘리오가 빠르게 크나우프 대공과 거리를 벌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열 기의 골리앗이 엘리오를 중심에 두고 반원형으로 늘어섰다.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크나우프 대공과 골리앗들을 번갈아 보았다.
“크나우프 대공! 무슨 짓입니까!”
엘리오는 크나우프 대공과 제국군이 악신의 정신 마법에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나우프 대공의 입에서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하오.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소. 나를 욕해도 괜찮소.”
“제국을 구하기 위해서라니요? 마력석을 파괴하면 되잖습니까!”
“황제와 샤이틴 간에 맹약을 맺었소. 제국의 보존과 경의 목숨을 맞바꾸기로.”
“그게 무슨…….”
크나우프 대공이 씁쓰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흑마법사들이 황제를 찾아와 샤이틴과의 협력을 종용했소. 황제는 제국을 보존하게 해 주겠다는 말에……. 끝내 샤이틴과 맹약을 맺었소.”
엘리오는 황제의 선택에 이를 갈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악신 샤이틴과 손잡고 자신을 죽이기로 하다니.
문득 엘리오의 시선이 안나 라마크리슈 사도를 향했다.
안나 사도의 놀란 얼굴을 보니 그녀도 지금 알았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엘리오는 싱크레어를 보았다.
“너는 알고 있었느냐?”
“죄송해요.”
그러나 싱크레어의 표정은 크나우프 대공과 달리 담담했다.
사실 그녀는 단지 알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담한 상태였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고민한 사람은 크나우프 대공이었다.
라고아 백작의 경지를 두려워한 그는 끝까지 ‘라고아 백작’과 ‘마력석의 파괴’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런 그에게 싱크레어는 라고아 백작이 여전히 인간임을 주지시켜 주었다.
그녀가 크나우프 대공에게 ‘라고아 백작이 엑시티움에 죽을 위기를 겪었고, 여전히 엑시티움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려 주지 않았다면, 샤이틴의 편에 서지 않았을지 모른다.
싱크레어의 말에 엘리오가 확인하듯 물었다.
“작위 때문이냐?”
“소드 익스퍼트들 사이에서 소드 비기너가 공적치를 얼마나 쌓겠어요? 살아남으면 다행이죠.”
“내가 죽으면 공적 점수를 많이 받겠구나.”
“자작도 가능할 거예요.”
아주 잠깐 싱크레어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곧이어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제 말을 듣고도 안 놀라시네요?”
“내 나이쯤 되면 그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싱크레어는 젊은 스승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흘려들었다.
엘리오는 속이 쓰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얼마 전 싱크레어가 준 창상약에 독 성분이 있음을 알았지만 황제의 농간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싱크레어가 벌인 짓이라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가볍게 한숨을 쉬던 엘리오는 크나우프 대공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북부 왕국과 남부 왕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에 대한 대답은 보좌에서 들려왔다.
“왕국의 영토는 마족과 새로운 생명체들에게 내어 줄 것이다.”
엘리오의 얼굴이 굳었다.
새로운 생명체란 남부의 괴물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더 궁금한 게 없는 것 같으니 그만 끝내거라. 인간은 말이 너무 많아.”
샤이틴의 말에 크나우프 대공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기다렸다는 듯 열 기의 골리앗이 중형 마력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카카카캉―!
카카카카캉―!
붉은 빛줄기가 엘리오에게 쇄도했다.
위험을 감지한 엘리오는 이현환위의 신법으로 피하려 했지만, 몸이 따르지 않았다.
신전 내부에 흐르는 어둠의 에테르가 너무 강했던 탓이다.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콰콰콰콱―!
붉은 빛줄기가 떨어진 신전 바닥이 움푹움푹 파였다.
그중 몇 개가 엘리오의 몸을 강타했다.
퍼퍼퍽―!
호신강기와 티탄족 전사의 가호를 받았음에도 몸에서 피가 튀었다.
엘리오는 다급히 공허의 검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길게 뻗어 나간 오라 블레이드가 골리앗 한 기를 휘감았다.
콰자자작―!
허리가 성둥 잘린 골리앗이 작동을 멈췄다.
그사이 다른 골리앗은 물론 총사들까지 마력총을 쏘아 댔다.
굵고 가느다란 붉은 빛줄기가 엘리오에게 집중됐다.
엘리오는 어둠의 에테르에 대항해 영기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막아 두었던 혈도가 열리며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래도 영기를 최대한 끌어 올린 덕분에 두 발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엘리오는 이형환위로 골리앗의 뒤로 이동했다.
몇몇 눈치 빠른 총사들의 예측 사격이 골리앗의 뒤 공간에 쏟아졌다.
엘리오의 오라 블레이드가 골리앗 세 기를 박살 냈지만, 그 역시 가슴에 엑시티움 한 발을 맞았다.
“크윽!”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엘리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골리앗과 달리 총사의 엑시티움은 티탄족 전사의 가호를 뚫지 못했다.
덕분에 엘리오는 다시 이형환위를 펼쳐 다른 골리앗에게 다가갔다.
그는 골리앗부터 처리할 작정이었다.
골리앗의 공격이 치명적이기도 했지만, 사람을 베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다시 두 기의 골리앗을 박살 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엘리오는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크나우프 대공은 남아 있는 네 기의 골리앗을 총사와 샤이틴 사이로 이동시켰다.
골리앗의 뒤에 샤이틴이 있으면 라고아 백작도 쉽게 공격하지 못할 거란 계산에서다.
역시나 골리앗과 샤이틴을 본 라고아 백작은 이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 엘리오는 크나우프 대공이 골리앗을 뒤로 돌리자 버럭 소리쳤다.
“크나우프 대공! 인간의 적이 악신 샤이틴이라는 것을 잊었소? 나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게 만들지 마시오! 나는…….”
크나우프 대공이 엘리오의 말을 잘랐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제국을 위해 싸울 것이오! 쏴라!”
퍼퍼퍼펑―!
잠시 멈칫했던 총사들의 마력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까드득!’ 이를 갈던 엘리오는 공허의 검으로 엑시티움을 베어 낸 후, 연이어 천산검영을 펼쳤다.
콰콰콰콰―!
검의 화신들이 총사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단 일격에 오십여 명의 총사가 고꾸라졌다.
생존한 총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골리앗의 뒤로 몸을 피했다.
그걸 본 크나우프 대공이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라고아 백작이 한계에 도달했다 여겨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엘리오 역시 사양하지 않았다.
그는 크나우프 대공을 제압해 제국군과의 전투를 끝낼 생각이었다.
곧이어 두 그랜드 마스터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닥쳤다.
쾅! 쾅! 쾅! 쾅! 콰앙―!
귀청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마나와 오라의 파편이 불꽃처럼 튀었다.
십여 차례 검격 후 두 자루 검이 맞붙은 채로 교차했다.
가가각―!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거리에서 엘리오가 소리쳤다.
“대공! 악신 샤이틴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제국을 구하려면 달리 방도가 없소!”
“우리가, 아니 내가! 샤이틴을 이길 수 있습니다!”
“틀렸소. 백작은 샤이틴을 이기지 못하오. 지금의 백작은 나의 상대도 되지 못할 것이오.”
“…….”
크나우프 대공의 말에 엘리오는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자신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현기증은 물론, 검을 쥔 손조차 덜덜 떨렸으니까.
“미안하오.”
크나우프 대공은 라고아 백작을 밀쳐 내며 벼락처럼 머리를 내리찍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엘리오의 몸에서 빛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