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83
1483회. 너는 이 세계를 파괴할 생각인가?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처음부터 황제의 편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황제가 흑마법사들과 교류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정도에서 벗어난 황제를 비난했다.
―천재적인 자신의 머리를 믿고 너무 막 나간다.
―마나 프트라스를 버리고 악신 샤이틴의 손을 잡으려 하나!
―악신 샤이틴은 그래 봐야 악신이다.
―어둠이 짙어도 아침은 온다. 마나 프트라스를 멀리해서는 안 된다.
―황제가 잘못된 길에 빠져 제국의 앞날이 걱정된다.
이 모두가 크나우프 대공이 자신을 따르는 대귀족들에게 한 말들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둠에 잠기자, 그 역시도 절망했다.
그즈음 흑마법사들이 귀족 사회에 ‘숨겨진 역사’라는 것을 퍼뜨렸다.
―이세계를 창조한 신은 마나 프트라스가 아니라 샤이틴이다.
―마나 프트라스가 샤이틴에게서 이 세계를 강탈했다.
―역사가 승자를 중심으로 쓰여지듯 승자는 선한 신, 패자는 악신이라 불리게 됐다.
―언제고 샤이틴이 돌아와 창조신의 자리를 되찾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귀족들의 반발이 미약했다.
충격을 받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왜냐면 이미 5년 전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한 까닭이다.
때를 맞춰 숨어 지내던 흑마법사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과거와 달리 정통 마법사들과 치안대는 흑마법사들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흑마법사들이 황실의 비호를 받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둠에 잠식된 세상에서 정통 마법사보다 흑마법사들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바뀌면서 흑마법사는 주류 사회에 편입되었다.
귀족 사회가 흑마법에 관대해졌을 때 크나우프 대공은 황제에게 불려 갔다.
그날 그는 황제와 악신 샤이틴 간의 맹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크나우프 대공은 황제의 결정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제국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증오하는 황제를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다만 라고아 백작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자신이 문제였다.
신의, 기사도, 명예 따위로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고민하던 크나우프 대공은 어비스 정벌군의 출정식을 열흘 앞두고 라고아 백작과 만났다.
직접 만나 본 라고아 백작은 예상을 뛰어넘는 초인이었다.
하지만 그가 악신보다 강하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민이 깊어졌다.
‘초인과 악신 중 누구 손을 잡아야 하나?’의 갈등은 어비스에 들어와서도 계속됐다.
잠자리에 들 때와 깰 때의 마음이 달랐다.
그러다 싱크레어를 통해 라고아 백작이 인간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도 창조신을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아닌 악신과 손을 잡기로 결심했다.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
검은 산에서 다시 마주한 라고아 백작은 쇠약해져 있었다.
크나우프 대공은 그런 라고아 백작의 모습에 인간적인 연민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에 안도했다.
그 뒤로 모든 것이 황제의 뜻대로 흘러갔다.
크나우프 대공과 제국군의 공격에 라고아 백작은 피를 쏟아 내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라고아 백작은 ‘내가 악신을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크나우프 대공은 믿지 않았다.
당장 자신의 검도 받아 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악신을 상대한단 말인가.
마지막에 한 ‘미안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크나우프 대공은 비틀거리는 라고아 백작의 머리를 검으로 내리찍었다.
그 순간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번쩍―!
눈부신 섬광에 깜짝 놀란 크나우프 대공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에 힘을 주고 살피던 그의 안색이 돌변했다.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검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
벽을 따라 서 있는 신상들조차 검의 크기에 비하면 작아 보였다.
거대한 검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크나우프 대공은 놀란 눈으로 검을 살폈다.
‘이 검은 대체 뭐지?’
검폭은 3미터쯤 되어 보였고, 길이도 30미터에 달한다.
신화에 나오는 거인들의 무기도 저보다는 작을 터였다.
비현실적인 크기의 검은 놀랍게도 자신을 노리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골리앗 쪽으로 이동했더니 검 끝이 자신을 따라 움직였다.
‘헉!’
크나우프 대공은 숨을 멈추었다.
항거할 수 없는 미증유의 힘 앞에 한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뒤이어 그의 시선이 라고아 백작을 향했다.
이곳에서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엘리오와 크나우프 대공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한순간 모든 것이 멈추었다.
제국군은 물론 악신 샤이틴조차 갑자기 나타난 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다.
피에 흠뻑 절어 있던 엘리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큭!”
뒤로 갈수록 웃음소리는 더 커졌고, 급기야 어깨까지 들썩였다.
“크흐하하핫―!”
엘리오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악신 샤이틴 앞에서 자신을 공격하다니?
힘을 합쳐 악신과 싸워도 부족할 판국에 이게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거대한 검의 출현에 불안감을 느낀 크나우프 대공이 소리쳤다.
“쏴라! 라고아 백작을 죽……. 헉!”
거대한 검이 날아오자 크나우프 대공은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뒷걸음질 치며 마나 블레이드로 거대한 검을 미친 듯 후려쳤다.
쾅! 쾅! 쾅! 콰앙―!
그러나 거대한 검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벽까지 몰린 크나우프 대공은 한 손으로 ―가슴 앞까지 밀고 들어온― 거대한 검의 끝을 움켜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거대 검을 때렸다.
그러나 자세가 좋지 않았던 탓에 충돌음은 전과 달리 가볍기만 했다.
챙! 챙! 챙―!
그마저도 거대한 검이 가슴에 파고들면서부터는 사라졌다.
“끄윽…….”
크나우프 대공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회한이 어린 눈으로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라고아 백작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크나우프 대공은 눈을 부릅뜬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크나우프 대공을 양단한 거대한 검은 신전 벽까지 뚫고 나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총사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퍼퍼퍼펑―!
그러나 엑시티움은 엘리오에게 닿지 않았다.
어느 틈에 돌아온 구천검령이 엘리오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터터터텅―!
검면을 때리고 튕겨 난 붉은 빛줄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또 한 자루의 거대 검이 나타나 총사들을 쓸고 지나갔다.
그랜드 마스터도 양단하는 구천검령을 총사들이 당해 낼 리 없다.
총사들과 남아 있던 골리앗이 저항 한번 못 해 보고 썰려 나갔다.
살아남은 총사와 사제 들은 허겁지겁 마족의 신상 뒤로 몸을 숨겼다.
더 이상 엘리오에게 마력총을 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제국군과 엘리오의 전투가 끝났다.
두 자루 구천검령이 엘리오를 지키듯 그의 좌우편에 자리했다.
구천검령들의 강림에도 신전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실제로 좌우편은 물론 앞뒤로도 탁 트여 있었다.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엘리오는 천천히 악신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그린 것처럼 굵은 혈선이 그어졌다.
보좌에 앉아 있던 샤이틴도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이틴의 키는 삼십여 미터에 달해 엘리오를 내려다보아야 했다.
엘리오와 샤이틴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처음으로 구천검령들이 묵직한 검명을 흘렸다.
우우우웅―.
지이잉―.
먼저 입을 연 것은 샤이틴이었다.
“놀랍구나. 인간의 몸에 아스트랄 소드라니. 우주가 생성된 이래 너와 같은 인간은 없었다.”
5년 전 안타르에 이어 샤이틴마저 구천검령을 아스트랄 소드라고 하자 엘리오는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구천검령은 오래전 구주의 신비지경에서 얻었다.
신비지경이 비록 구주에 있었지만, 그 공간은 구주에 속하지 않았다.
신비지경은 구주에서도 풀리지 않는 신비였다.
오죽하면 이름까지도 신비지경일까.
5년 전 마족 초월자 앙네스 로덴에게 아스트랄 소드에 대해 들었지만, 앙네스 로덴 역시 귀동냥으로 전해 들은 것에 불과했다.
어쩌면 지금이 구천검령의 신비를 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아스트랄 소드에 대해 아나?”
“아느냐고?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받아들였느냐?”
“검의 혼[劍靈]이잖나.”
“그 이상이다.”
샤이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엘리오가 영 알아먹지 못하는 눈치자 샤이틴이 계속해서 말했다.
“신의 몸이 영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런가.”
자존심 강한 엘리오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샤이틴은 아스트랄 소드를 힐끔 본 후에 설명을 이어 갔다.
“신은 자신이 원하는 형상으로 육화할 수 있다. 그 본질이 영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사 영체가 파괴된다 해도 의지만으로 재건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신을 가리켜 불멸의 의지(텔레마)라고 하기도 한다.”
설명이 길어질 것 같자 엘리오가 끼어들었다.
굳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지 않아서다.
“마족 초월자에게 저 ‘검의 혼’이 ‘돌이킬 수 없는 폴리모프’라고 들었다. 당신과 마나 프트라스가 힘을 합쳐 다른 차원으로 보냈다는 것도. 그게 사실인가?”
“후후. 마족들에게 전해지는 고대의 전승을 들은 모양이군.”
“…….”
엘리오는 묵묵히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고대의 전승은 대체로 맞지만 와전된 부분도 있다.”
“뭐가 맞고 뭐가 와전되었다는 건가?”
“아스트랄 소드의 기원과 그 폐해는 사실이다. 아스트랄 소드는 무자비한 파괴를 일삼아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당신과 마나 프트라스가 힘을 합쳐…….”
“그 부분이 와전되었다. 나와 마나 프트라스는 본질적으로 상극이라, 힘을 합칠 수 없다. 같이 멸망하면 멸망했지 힘을 합칠 이유도 없고, 힘을 합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당신들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아스트랄 소드는 어떻게 된 거지?”
“이 세계는 아스트랄 소드들의 폭주로 거의 멸망할 뻔했다. 신의 자아를 가진 채 영원히 검의 형상으로 살아야 하니…… 아무리 신이라도 정신이 오락가락할 만도 하지.”
“그래서 아스트랄 소드들이 어떻게 됐다는 말인가?”
“후후, 알고 싶으냐?”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엘리오가 구천검령을 하나 더 꺼냈다.
엘리오의 머리 위에 나타난 구천검령이 섬뜩한 검명을 흘렸다.
쓰아아아―.
“…….”
아스트랄 소드가 하나 더 나오자 샤이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는 이 세계를 파괴할 생각인가?”
“그건 당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보는데. 나를 죽이려고 한 것은 당신이라고.”
엘리오를 노려보던 샤이틴이 날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했다.
“하아, 아스트랄 소드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그들이 또다시 폭주하면 너는 물론 네가 속한 세계도 파괴될 테니까.”
“이 세계의 창조신님, 대화를 원한다면 성의를 보여.”
엘리오가 악신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스트랄 소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엘리오는 아스트랄 소드를 다른 차원으로 보낸 존재가 궁금했다.
엘리오의 재촉에 마침내 샤이틴의 입이 열렸다.
“나도 아스트랄 소드들을 다른 차원으로 보낸 존재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 뚫리더니, 아스트랄 소드들을 빨아들였다. 그 뒤 아스트랄 소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어쩌면 티탄족이 찾아 헤매는 우주의 절대자가 한 일인지도 모르지.”
엘리오는 샤이틴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허허롭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