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93
1493회. 자네 인민해방군에 있었나?
마침내 마나 프트라스가 ‘가라’고 하자 엘리오는 거대한 돌비석을 마주 보고 섰다.
하계로 돌아가는 건 처음이 아니다.
그때는 카마 데비아스의 코어(core)를 이용해 특정한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카마 데비아스의 코어는 일회성이라 가루가 된 지 오래.
혈육에 대한 기대는 없지만 구천현녀와 다시 만날 걸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그랬는지 들어나 보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던 엘리오가 구천검령을 끄집어냈다.
이윽고 천문이 열리자, 엘리오는 지체하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
고오오오―.
밤하늘에 돌연 무형의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이내 한 사람을 토해 내고 사라졌다.
툭.
가볍게 땅 위에 내려선 연적하는 마력장의 여파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연적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사방이 캄캄한 게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뒤로 돌아섰다.
낡은 토지신묘가 떠나던 날 본 그대로 서 있었다.
토지신묘를 보니 여남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이 새삼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있던 노파와 여남, 그리고 여남의 자식인 소룡과 소옥이 생각났다.
“아직도 살아 있으려나?”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연적하는 일단 토지신묘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아무 연고자도 없는 현세로 되돌아온 것은 구천현녀를 만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토지신묘 내부는 기억보다 더 낡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이놈의 토지신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기가 없나 보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할 뿐이다.
연적하는 토지신묘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구천현녀와 소통하기 위해 태상정일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呪)를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걸 외운다고 구천현녀가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달리 할 일이 없어서다.
***
검은 하늘에 초승달이 선명한 밤.
정신없이 어둠 속을 달려가던 남자가 나무뿌리에 걸려 뒹굴었다.
제법 충격이 심했을 텐데 사내는 비명은커녕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내 벌떡 일어난 그는 자세를 낮추고 좌우편을 한차례 살폈다.
그러나 바람 소리만 요란할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그의 눈에 쓰러지기 직전의 토지신묘가 들어왔다.
토지신묘를 보는 사내, 진과월(陳果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신이 달려가던 방향이니 꼬리에 붙은 암살자들과는 무관할 터였다.
아직 들판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을 정도로 추우니 노숙은 무리다.
슬쩍 팔목에 찬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자신을 쫓던 암살자들도 지쳐서 쉴 시간이기는 했다.
‘잠깐 치료라도 하고 가는 게 낫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진과월은 소리 없이 토지신묘로 다가갔다.
‘응?’
토지신묘에 접근한 진과월이 멈칫했다.
안쪽에서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에 인가도 없는 외진 토지신묘에서, 그것도 이 시간에 주문이라니!
이를 악다물고 망설이던 그는 천천히 손끝으로 나무문을 밀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윽고 조금 열린 문틈으로 진과월은 내부를 살폈다.
토지신묘 중앙에 기이한 복장을 한 청년이 홀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입에서 연신 알아듣지 못할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필 그때 바람에 살짝 열려 있던 문짝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끼익―.
진과월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때맞춰 반개하고 있던 청년의 눈이 활짝 열렸다.
진과월과 청년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곧이어 진과월의 시선이 양 허벅지에 올려져 있는 청년의 손을 향했다.
암살자들과 한패라면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빈손이다.
그제야 진과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수도 중이었나 본데…… 방해해서 미안하네. 지나던 길에 잠시 쉬어 가려 들렀네. 날씨가 좀 추워야지.”
진과월은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적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중년 남자를 응시했다.
얼굴은 동포 같은데 옷차림이 영 생뚱맞아서다.
저런 형태의 옷은 구주(九州)는 물론 로디나 대륙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중년 남자를 살피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남자가 손목에 두른 것은 아무리 봐도 시계였다.
“그거 혹시 시곕니까?”
청년의 물음에 진과월이 의아한 눈으로 청년을 보며 되물었다.
“시간을 알고 싶은가?”
“예.”
말과 함께 연적하가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순간 깜짝 놀란 진과월은 후다닥 뒤로 물러나 청년과 거리를 벌렸다.
청년이 품 안에서 무기를 꺼내는 줄로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손에 들린 것은 회중시계였다.
그제야 진과월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청년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안 맞았나 보군. 지금 시간이…… 2시 27분일세.”
회중시계의 시간을 2시 27분으로 맞추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중년 남자의 시계와 자신의 시계가 어딘지 많이 다른 것 같아서다.
일단 숫자부터 회중시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호기심으로 쳐다보던 진과월도 그걸 알아차리고 한마디 했다.
“그건 시계가 아니라 무슨 기압을 측정하는 도구 같군.”
“시계 맞는데요?”
“2시 29분을 막 지나고 있으니 맞춰 보게.”
연적하는 일단 중년 남자의 시계와 시간을 맞췄다.
맞으면 계속 사용하고, 아니면 그때 가서 마하담에 처넣을 생각이었다.
청년이 회중시계를 품 안에 다시 넣자 진과월이 지나가듯 말했다.
“이것도 인연이니 통성명이나 하세. 나는 진과월이라 하네. 여기서 가까운 중평촌이 고향이지.”
“저는 연적하라고 합니다. 합비에서 왔습니다.”
“꽤나 멀리서 왔군. 합비에서 십언시까지는 무슨 일로 왔나? 아까 보니 주문을 외우던데 설마 수도자 같은 건가?”
“수도자는 아니고요. 그냥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 복장으로 다니지는 않았겠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봤을 것 같은데.”
“아…… 많이 이상합니까?”
“옷차림도 그렇고, 주문도 그렇고……. 자네 혹시 법륜공(法轮功)을 수련하나?”
“법륜공요? 그건 무슨 문파의 무공입니까?”
연적하가 전혀 못 알아듣자 진과월은 그가 법륜공과 관계가 없음을 알았다.
“법륜대법(法輪大法)이라는 심신 수양법을 법륜공이라 하네. 그걸 익히면 공안(公安)에 체포 당하니 근처에도 가지 말게.”
“공안은 뭔가요?”
“합비에서 왔다는 사람이 공안도 모르나?”
진과월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상한 옷차림에 주문까지,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연적하가 고개를 젓자 진과월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설명했다.
“공안부(公安部)를 공안이라 부르네. 공안부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포청 같은 곳인가요?”
“이런, 미치겠군. 그래도 드라마를 본 기억은 있는가 본데…… 맞네. 드라마에 나오는 포청이 공안이네. 자네, 신분증은 있나?”
“호패요?”
“그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고, 거민신분증(居民身份证) 말일세.”
“없는데요?”
“그럼 거주증(居住证)은?”
“그건 또 뭔가요?”
“자네 합비에서 왔다고 했지? 십언시에서 지내려면 따로 지방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네. 그때 받는 게 거주증이네.”
“없는데요?”
“그럼 가지고 있는 게 뭔가? 자네를 증명할 수 있는 게 뭐냐 말일세.”
“호패요.”
“이런 제길, 지금 나와 장난하나? 아…….”
흥분해서 야단치던 진과월은 격통이 밀려오자 황급히 옆구리를 움켜잡았다.
지혈이 안 됐는지 칼에 맞은 자리가 축축했다.
진과월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연적하가 그의 옆으로 돌아갔다.
연적하를 정신병자쯤으로 생각한 진과월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이쿠, 칼에 맞으셨네요?”
“조금 긁힌 것뿐이네.”
“치료를 도와 드릴까요?”
“할 줄 아나?”
진과월은 자신이 치료하기 어려운 부위라 슬쩍 물었다.
상대가 미친 것 같아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타인의 도움이 절실했다.
연적하는 대답 대신 빠르게 손을 놀렸다.
점혈을 하고, 마하담에서 창상약을 꺼내 꼼꼼하게 바른 뒤 헝겊으로 칭칭 동여맸다.
진과월은 연적하의 몸에 시야가 가려 잘 보지 못했다.
그러나 통증이 진정되는 기미가 느껴지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고맙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은혜는요 무슨. 사해가 다 동포라고 하지 않습니까.”
연적하가 다시 드라마 대사를 흉내 낸다고 생각한 진과월은 한숨을 내뱉었다.
‘말하는 게 제정신은 아닌데…….’
그냥 외면하자니 청년의 눈빛이 맑은 게 마음에 걸린다.
‘이것도 인연인데 거두어 줄까.’
자신은 홍련상회의 부사장, 상회에 자리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자네, 가족은 있나?”
“부모와 처자식을 말하는 거라면 없습니다.”
연적하의 음성은 담담했다.
후손이라면 몰라도 부모와 처자식은 사망한 지 오래였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진과월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사리 자신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삼합회(三合會)의 식구로 받아들이는 일인 만큼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 대인은 뭐 하시는 분이십니까?”
“대인은 아니고, 부사장이라고 부르게.”
“진 부사장, 이러면 됩니까?”
“보통은 ‘부사장님’이라고 한다네.”
“아, 부사장님.”
“난 십언시에 있는 홍련상회의 부사장일세.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에 왔다가…….”
“칼에 맞으셨구나.”
칼 소리에 진과월의 손이 무심코 허리춤으로 향했다.
무슨 약을 발랐는지 이제는 자상 특유의 욱신거림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 약을 발랐나?”
“창상에 좋다는 약요.”
“설마 호랑이 기름 같은 건 아니겠지? 최소한 부서지산유고(夫西地酸乳膏, 외상 연고) 같은 걸 발라야 하는데…….”
“이름은 몰라요. 그래도 군대에서 쓰던 약이라 잘 들을 겁니다.”
“자네 인민해방군에 있었나?”
“아뇨. 북부 왕국군에 있었는데요?”
“아…….”
진과월은 이때 청년이 미쳤음을 확신했다.
그가 ‘옆구리에 바른 약을 닦아 내야 하나?’ 고민할 때 청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부사장님은 강도라도 만난 겁니까?”
“강도 따위는 열 놈이 덤벼도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네.”
“…….”
연적하는 진과월을 훑어보았다.
기이한 힘이 느껴지지만 녹림의 고수보다 월등히 강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아! 장락방에서 고향집에 암살자들을 보냈네.”
“암살자요?”
“그것도 그냥 암살자가 아니라…… 하아, 자네는 몰라도 되네. 아니, 모르는 게 낫네.”
“장락방이라면 하남성 남양에 있는 정도 방파 아닙니까?”
과거 남양에서 목격한 장락방과 혈사문의 싸움을 떠올린 연적하가 알은체를 했다.
“무슨 드라마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한 장락방은 십언에 있는 흑사회일세.”
“아하, 흑사회면 흑도를 말하는 건가요?”
“맞네.”
“그럼, 부사장님은 정파?”
연적하의 진지한 물음에 진과월은 어깨를 들썩이며 킬킬 웃었다.
삼합회를 정파라고 하다니 사람들이 알면 배꼽 잡을 소리였다.
“왜 웃으세요?”
“무협 드라마가 사람을 다 망쳐 놓은 것 같아서 그러네. 우리 홍련상회는…….”
진과월의 설명이 막 시작되려는데 문밖에서 사람들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우렁우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진과월! 나와라! 남자답게 싸워 보자! 디피(Dimension Power)가 천을 넘긴다는 놈이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도망만 다닐 테냐!”
순간 진과월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었다.
새벽 2시가 넘었기에 날이 밝은 뒤에나 움직일 줄 알았는데 기어코 따라붙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