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96
1496회. 인상적이군
호북성 십언시 장완구.
홍련상회.
늦은 밤.
진과월은 자신을 구해 준 연적하와 함께 소리 소문 없이 홍련상회로 돌아왔다.
그리고 연적하에게 직원 숙소 중 하나를 내어 주었다.
“원룸이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것은 다 갖추고 있으니,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걸세. 내일 사장님이 출근하면 소개시켜 줄 테니, 그때까지 가급적 방에만 있게. 임시라고 하지만 절차가 있는 법이니까.”
사장인 동자건은 홍콩 홍련방의 원로지만, 십언시로 내려와 새로운 용두(龍頭, 두목)가 되었다.
삼합회는 갈라져 나간 분파라도 본진의 이름을 함께 사용한다.
홍련상회의 이름에는 그런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홍련상회가 십언시의 홍련방이 되는 셈이다.
말하다가 문득 장락방을 떠올린 진과월은 원통해서 이를 빠드득 갈았다.
‘장락방 따위가 홍련방을 건드리다니.’
아무리 본토에서 삼합회가 힘을 쓰지 못한다 해도 그건 도를 넘어선 도발이었다.
“아침에 직원들이 일어나면 좀 소란스러울 수도 있네만……. 방에만 있으면 누가 들여다보고 그러지는 않을 걸세. 혹시 누가 자네를 보고 누구냐고 물으면…… 그냥 내 먼 친척이라고 둘러대게. 사정상 잠시 머무르게 됐다고 하면 더 묻지 않을 걸세.”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는 내가 출근할 때 편의점에서 사다 줄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게.”
“예.”
“또 뭐가 있을까.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전자렌지도 있고…… TV는 유선이 아니라 위성이네. 그래도 어지간한 건 다 볼 수 있으니까 골라서 보면 될 걸세.”
“…….”
연적하가 무슨 소린지 몰라 반응하지 않자, 진과월은 손수 TV를 켜서 무협 방송 채널을 찾아 주었다.
“다른 게 보고 싶으면 이걸 누르면 되네.”
진과월은 보란 듯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 후 다시 무협 채널로 돌아왔다.
그리고 리모컨을 탁자 위에 올려두고, 원룸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이만하면 필요한 건 다 가르쳐 준 것 같았다.
“더 궁금한 게 있나?”
“없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집으로 가 볼 테니 쉬고 있게. 내일 아침에 다시 봄세.”
진과월은 친근하게 연적하의 어깨를 다독여 보인 후 밖으로 나갔다.
다음 날.
진과월은 약속대로 아침 일찍 출근했다.
가는 길에 홍련상회 인근의 편의점에서 전자렌지 용 즉석 섭취 식품도 몇 개 샀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출출할 때 꺼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다.
아직 사장이 출근하지 않을 시간이라 그는 직원 숙소부터 찾아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이 후끈한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어후! 공기가 탁하군. 밤새 TV를 본 건가?”
“아, 벌써 아침입니까?”
연적하가 뻘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TV를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방 안 공기가 봄이 되기 전인데도 후덥지근했다.
‘쯧쯧!’ 혀를 차던 진과월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공기가 밀려들어 오자 쿰쿰하던 방은 금방 쾌적해졌다.
“예전에는 TV를 바보 상자라고 불렀다네. 사람이 한번 TV에 빠져들면 헤어나질 못하거든.”
연적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머리만 긁적거렸다.
본의 아니게 밤을 새웠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밤새 TV를 시청한 덕분에 390년의 간극을 많이 좁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침 식사일세. 어느 것으로 먹을 텐가?”
말과 함께 진과월은 탁자 위에 도시락 세 개를 쭉 펼쳐 놓았다.
연적하는 그중에 하나를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그러자 진과월이 말했다.
“그럼 이제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게. 이 근방의 식당은 점심때에나 열어서 직접 해 먹는 방법밖에 없다네. 점심은 직원들과 함께 먹고, 저녁은 내가 사겠네.”
“예.”
수중에 돈이 없던 연적하는 진과월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돈은 있나?”
진과월이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직원들과 어울리다 보면 커피라도 사야 할 텐데 돈이 있는지 궁금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진과월은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어 지폐 한 뭉치를 꺼내 건넸다.
“삼천 위안(한화 약 55만원)일세. 그 이상한 옷은 너무 튀니, 양복을 한 벌 사 입도록 하게.”
연적하가 넙죽 돈을 받아 챙기며 물었다.
“근처에 옷가게가 있습니까?”
“나중에 직원들과 통성명을 하고 나면 한 친구를 붙여 주지. 그의 도움을 받으면 될 걸세.”
“직원들도 삼합회 사람들입니까?”
“직원 숙소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보면 되네. 홍련상회에서 일반인은 회계 업무를 보는 아가씨와 배달원들밖에 없네.”
“아, 그렇군요.”
연적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파오촌에서 십언시까지 오는 동안 홍련상회의 사정을 대충 들었다.
중국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정상적인 사업을 해야 하기에 만든 게 홍련상회였다.
과거 같았으면 대놓고 홍련방의 이름을 사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러면 바로 공안에 잡혀간다나?
연적하가 손에 도시락을 들고 움직이지 않자 진과월이 물었다.
“전자렌지 사용법을 잊었나?”
“예.”
진과월은 연적하가 고른 도시락을 전자렌지에 넣고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이렇게 2분에 맞추고 시작을 누르면 되네.”
우우웅―.
전자렌지가 돌아가자 연적하가 가까이 붙어 내부를 살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진과월이 한마디 덧붙였다.
“전자파가 나와서 눈에 좋지 않다니 들여다보지는 말게.”
“아!”
깜짝 놀란 연적하가 전자렌지에서 후다닥 떨어졌다.
“시간이 다 되면 멈추고 알려 줄 걸세. 그때 꺼내 먹으면 되네. 그럼 나는 이만 나가 보겠네. 그 전에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직원을 통해 나를 찾게.”
“예.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연적하는 TV에서 본 대로 깍듯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진과월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다독인 뒤에 돌아서 나갔다.
***
오전 10시.
홍련상회 사장실.
“……연적하는 임시로 직원 숙소를 쓰게 했습니다. 신분증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신분증이 나올 때까지 제가 데리고 있을 생각합니다. 숙소 문제는…… 사장님께서 내보내라고 하시면 따로 방을 얻어 주겠습니다. 허락도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 점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진과월이 동자건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동자건이 일반인이지만 그래도 홍련상회의 용두인 까닭이다.
육십 대의 동자건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부사장에게 그 정도의 재량도 없을까. 그 남자의 신분증은 내가 해결해 줄 테니 너는 장락방에 집중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진과월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삼합회에 도움을 요청할 경우 자신보다 용두인 동자건의 입김이 더 강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장락방과의 싸움은 어차피 돌연변이인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육십 대의 동자건이 싸움에 뛰어들 정도면, 이미 홍련상회는 망했다고 봐야 한다.
“크리스티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남자까지. 짐이 하나 더 늘었구나.”
진과월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크리스티는 진과월의 외동딸이다.
홍콩에서 대학을 졸업한 딸이 갑자기 돌아와 함께 지내고 있던 차에, 군식구가 하나 더 늘어났으니 동자건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크리스티는 하나뿐인 딸이고, 연적하는 생명의 은인이니 짐은 아니지요.”
“합비 출신이라고 했지?”
“예.”
“신분증을 만드는 김에 뒷조사를 좀 해도 되겠지? 장락방의 끄나풀일 수도 있으니까.”
“예, 하지만 연적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조사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 청년에게는 물어볼 것도 없다. 지문과 안면 인식 프로그램이면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조금 미안하더라도 거리를 두도록 해라.”
연적하가 생명의 은인으로 다가와 더 큰 것을 노릴 수도 있기에 하는 소리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과월은 동자건의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연적하의 등장 시기가 공교로운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가만, 말 나온 김에 지금 그 남자를 데려와 보거라. 정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아니면 그러는 척하는 건지 봐야겠다.”
“예.”
잠시 후 연적하와 함께 돌아온 진과월이 그를 동자건에게 소개했다.
“이 청년이 주파오촌에서 저를 구해 준 연적하입니다. 연 조카, 인사 올리게. 우리 홍련상회의 사장님이자, 십언시의 용두이신 동 대인이시네.”
연적하는 진과월의 말이 끝나자 꾸벅 머리를 숙였다.
“연적합니다.”
동자건이 청년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동자건일세. 자네가 위기에 빠진 우리 부사장을 구해 줬다고?”
“구해 준 건 이름 모를 협객이고, 저는 부사장님을 모시고 달아난 것뿐입니다.”
“말을 아주 똑 부러지게 하는군. 그래, 합비에서 왔다지?”
“예.”
“이런 우연이 있나. 내 처가가 합비라네. 합비 어디쯤 살았나?”
“여강현의 석경장입니다.”
그러자 동자건은 진과월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주거지를 알고 있는데 신분증이 없다니?
진과월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았다.
“석경장에서 얼마나 살았나?”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살던 곳은 아는데…… 그곳에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른다?”
“예.”
“말하는 걸 보니 똑똑해 보이는데, 신분증은 어쩌다 잃어버렸나? 신원만 확실하다면 신분증을 재발급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동자건은 오랜 경륜으로 진과월이 놓친 부분을 파고들었다.
신원이 확실하면 삼합회를 통해 만들 이유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곁에서 지켜보던 진과월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자신은 ‘미친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그 부분을 놓쳤기 때문이다.
동자건 사장의 어르고 다그치는 말투에 살짝 기분이 상한 연적하가 힘주어 말했다.
“제가 칠칠맞게 뭘 흘리고 다니는 사람은 아닙니다.”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없으면 흘린 거지.”
“있습니다.”
말과 함께 연적하가 품에서 호패를 꺼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여기 제 이름 석 자가 보이시죠? 연적하.”
동자건이 황당한 눈으로 호패와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진과월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는 자기를 무협 드라마의 주인공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곧은 연적하의 눈동자를 보던 동자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저건 흔하게 볼 수 있는 연기가 아니다.
진짜 무협 드라마의 주연에게도 저 정도 연기력은 없을 터였다.
동자건은 호패를 들고 살폈다.
이름 석 자와 그 아래 관직으로 보이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외검선(天外劍仙)?’
‘황제의 숨겨진 검’이라 불리던 시절, 금의위에서 만들어 준 호패였다.
하지만 역사에도 없는 관직이라, 누가 봐도 무협 마니아의 작품이었다.
동자건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던 호패를 책상 끝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인상적이군. 확실히 백번 듣기보다 한 번 보는 게 나아. 연 형제의 신분증은 내가 책임지고 만들어 주지.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만들어 줬다고 하지 말게. 그랬다가는 좋은 인연이 악연으로 변하게 될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나?”
동자건은 혹시나 하는 염려에 협박을 곁들였다.
같은 흑도 출신의 연적하가 그 말속에 담긴 걱정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새벽까지 본 드라마의 대사로 화답했다.
“그건 제가 무덤까지 안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소리네만, 그 호패.”
“예.”
“다른 직원들 앞에서는 꺼내지 말게. 조금 과한 감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