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497
1497회. 그럼 일반인은 가축이냐?
장완구에 소재한 신화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에서 악강록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양복 예산은 얼마나 되냐?”
“삼천 위안(한화 약 55만원)요.”
오늘 아침 진과월은 직원들에게 연적하를 스물다섯 살의 외조카로 소개했다.
진과월의 우려와 달리 연적하는 삼합회 직원들과 놀랄 만큼 잘 섞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산가족을 만난 것 같았다.
덕분에 금방 직원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서른 살의 악강록이 고작 몇 시간 만에 연적하에게 반말을 하는 이유다.
“좋은 건 못 사겠고……. 중저가로 뽑으면 되겠다. 와이셔츠와 넥타이, 속옷도 좀 사야 할 테니까. 아, 구두와 양말도 사야 하는구나. 벨트는 있냐?”
“벨트가 뭡니까?”
“아, 내가 괜한 걸 물었군. 그런 옷차림에 벨트가 있을 리 없지. 이게 벨트다.”
악강록은 양복을 열어 차고 있던 벨트를 슬쩍 보여 주었다.
“아하! 가죽으로 된 허리끈요?”
“어, 그런데 너 학교는 졸업했냐?”
“아뇨.”
“저런, 미안하다. 괜한 걸 물었네. 그럴 수 있지. 막내인 청운이도 초중(初中, 중학교) 과정만 마쳤다니까.”
“…….”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연적하는 눈만 끔뻑거렸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악강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소학교만 나온 건 아니지?”
“소학교도 안 다녔습니다.”
“진짜?”
악강록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고급 중학(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인데 소학교(초등학교)도 안 나왔다니?
물론 류청운처럼 ―불우한 환경에서는― 어쩌다 가출해 초중 과정만 마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류청운도 소학교는 졸업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부모가 자식을 소학교도 안 보낼 수는 없는데…….’
아니, 소학교를 안 나왔다고 벨트가 뭔지 모른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건 학교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터득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옷차림도 그렇고…….’
어째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총기 가득한 눈동자를 보면 그런 걱정은 멀리 달아난다.
실제로 빠릿빠릿한 게 어딜 가든 제구실을 할 놈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삼합회 직원들과 단시간에 친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여섯 살 때부터 십 년 동안 창고에 갇혀 있었거든요.”
“어…… 그…….”
뭐라 할 말이 없던 악강록은 연적하의 어깨를 툭툭 다독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물다섯 살짜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했다.
옷차림이 기괴한 것도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그런 학대를 받고도 멀쩡하면 그거야말로 기적일 터였다.
***
백화점에서 쇼핑을 마친 악강록과 연적하는 점심까지 먹고 홍련상회로 돌아갔다.
양복을 입은 연적하는 자연스럽게 홍련상회에 녹아들었다.
그는 낮 시간 동안 형님들의 일을 거들고, 저녁이 되면 TV를 시청했다.
드라마에서 시작된 현대 문물 탐험은 조금씩 뉴스로 옮겨 갔다.
―……지난 2033년 카다라쉬 프랑스 신원자력 연구소의 폭발 이후 차원에 균열이 가고, 그것은 곧 블랙 스피어의 출현으로 이어졌습니다. 블랙 스피어로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돌연변이 현상이지요. 블랙 스피어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에너지로 지구의 생명체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던 것인데요. 그런데 에너지만 방출하던 블랙 스피어에 변화가 생겼다는 보도입니다. 장호유 기자 나와 주세요.
―장호유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북경에 나와 있습니다. 북경의…….
연적하는 390년이 지난 현대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저 블랙 스피어였다.
그걸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검은 태양’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 태양’이 되기 전의 ‘어비스 출입구’ 같았다.
네 번째 하늘도 아닌 지구에 왜 저런 것이 생겼나 했더니…… 과학자들의 실험 때문이란다.
“미친놈들.”
블랙홀은 모든 걸 빨아들인다는데 왜 그걸 인공적으로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을 때 문밖에서 류청운의 음성이 들려왔다.
“연 형님.”
연적하가 방문을 열자 류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부사장님이 나오시랍니다.”
“나를?”
“저녁 같이 먹자고 하셨다면서요? 가게 앞에서 형님 나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 고맙다.”
연적하는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달려갔다.
정문을 열고 나가니 과연 진과월이 묘령의 아가씨와 함께 서 있었다.
“숙부님.”
연적하는 미리 약속한 대로 그를 숙부님이라 불렀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진과월이 옆에 있던 딸에게 말했다.
“내가 말한 연 조카다. 너보다 한 살 많으니 오라버니라고 부르면 된다.”
그러자 크리스티가 연적하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크리스티예요.”
“아, 반갑습니다. 연적합니다.”
크리스티는 연적하의 아래위를 한번 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콧대가 높은 그녀에게 일반인인 연적하는 기타 등등에 속한 까닭이다.
연적하도 크리스티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미인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남궁연과 비교하면 평범했기 때문이다.
둘의 인사가 끝나자 진과월은 휘적휘적 앞서 걷기 시작했다.
홍련상회가 위치한 곳은 장완구의 번화가.
상회의 100미터 이내만 봐도 고급 요릿집 대여섯 개가 있다.
진과월이 연적하와 딸을 데리고 간 곳은 최근 단골이 된 구룡각이었다.
진과월을 알아본 구룡각 사장이 계산대에서 나와 직접 자리를 안내했다.
진과월과 크리스티, 연적하가 앉자 주인이 물었다.
“부사장님,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구룡 특제 코스로 삼 인분.”
“예,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인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인 후 왔던 길을 돌아 나갔다.
어색한 침묵이 세 사람 사이를 흘렀다.
침묵을 깬 사람은 진과월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니 완전히 다른 사람 같구나. 앞으로는 그렇게 다니거라.”
“예.”
“그리고 소희 너는…….”
“크리스티라니까요. 신분증에도 그렇게 적혀 있구만.”
“끙! 적하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그러니 너도 적하에게 불손하게 굴면 안 된다. 알겠느냐?”
“누가 들으면 제가 다른 사람에게 불손한 줄 오해하겠어요. 저는 빈부귀천 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고요.”
“그건 알지. 내 말은 평등하게 때리지 말라는 말이다.”
“아빠, 제가 누굴 때렸다고 그러세요?”
“누굴 때려? 지난달에만 내가 네 대신 합의를 본 사람이 두 명인데?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
“남자는 싫다는대도 저에게 계속 치근덕거렸고, 여자는 자기가 돌연변이라는 걸 믿고 먼저 저를 공격했다고요.”
“그 덕분에 합의금이 싸게 먹혀 다행인 줄 알아. 남자는 팔이 부러졌고, 여자는 갈비뼈에 금이 갔다. 합의로 끝난 게 천운이지……. 쯧!”
사실 진과월이 삼합회의 향주였기에 합의로 끝날 수 있었다.
진과월이 일반인이었다면 당사자들 간의 합의로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피이.”
크리스티가 입을 삐죽이자 진과월이 따끔하게 말했다.
“너, 십언시에서 일어난 일이니 내가 수습했지, 홍콩에서 그랬으면 감옥에 갇혔다. 그러니 그 성질머리를 좀 죽이고 살란 말이다.”
“아, 몰라요. 여하튼 나는 억울하게는 못 살아요. 그까짓 감옥에 가고 말지.”
“감옥에 가면 하루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왜 이러세요? 제 디피(Dimension Power)가 얼마인지 아시면서. 여자 수감자들이 떼로 덤벼도 저 하나를 못 이길걸요?”
“잠은 안 잘 거야? 잠자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
그 부분에 있어서는 크리스티도 자신이 없는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최선은 감옥에 가지 않는 거야. 전과자들이 왜 그렇게 체포되는 걸 두려워하는지 알아? 제집처럼 드나든 감옥에 가기 싫어서다.”
“네, 네, 알았습니다. 그러니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손님 앞에서 왜 자꾸 저에게 창피를 주세요?”
“하아! 앞으로는 제발 싸우지 마라. 이젠 너를 홍콩으로 보내는 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에이, 참. 저도 십언시라서 참지 않은 거예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
진과월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부녀간의 대화는 막을 내렸다.
팽팽한 말씨름으로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식당 안에 흐르는 음악을 듣던 크리스티가 문득 연적하에게 물었다.
“오타쿠[御宅族]라면서요?”
“그게 뭔가요?”
“애니에 나오는 이상한 옷 입고 다니지 않았어요?”
“아, 이상한 옷……”
“그런 사람을 오타쿠라고 하잖아요.”
진과월은 오타쿠가 뭔지 몰라 가만히 딸과 연적하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예, 그럼 제가 오타쿠인가 봅니다.”
“와아! 그 나이에 오타쿠로 사는 거 쉽지 않을 텐데. 누구 옷을 입은 거예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요.”
“으흥.”
그러나 크리스티는 오타쿠가 아닌 관계로 그게 누군지 알지 못했다.
사실 관심도 없다.
일반인이, 그것도 스물다섯 살이나 먹고 오타쿠라니, 점점 더 멀리하고 싶을 뿐이다.
진과월이 슬쩍 딸에게 물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복장이라고? 무협이 아니라?”
“그렇다잖아요.”
“이상하네. 쟤 무협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는데.”
“무협도 좋아하나 보죠. 요즘 무협 드라마는 거의 판타지잖아요.”
“아, 그러냐?”
진과월은 딸이 그렇다니까 그런 줄로 이해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연적하는 홍련상회 앞에서 진과월 부녀와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간 연적하는 다시 TV 앞에 앉았다.
뉴스에서는 온통 블랙 스피어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한참 뉴스에 몰두하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TV 소리를 낮추고 문을 여니 류청운이 서 있었다.
“왜?”
“왜는요, 형님하고 한잔하고 싶어서 왔죠. 들어가도 됩니까?”
“어, 들어와.”
연적하가 방문을 활짝 열자 류청운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이윽고 류청운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술과 안주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연적하는 류청운의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류청운이 연적하의 잔에 맥주를 따르며 지나가듯 말했다.
“크리스티 누님을 가까이서 보니 어떻습니까?”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겠더라.”
“푸흣! 그런 거 말고요. 아름답지 않냐 이 말입니다.”
“뭐, 그 정도면 준수한 편이지.”
연적하가 시큰둥하게 답하자 류청운의 눈이 커졌다.
“그 정도면이라뇨? 형님, 크리스티 누님은 홍콩대학교 다닐 때 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퀸?”
“미의 여왕에 뽑혔다고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던데…….”
연적하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로 미의 여왕이라니? 남궁연을 보면 눈알이 남아나질 않겠다.
“뭐, 형님 취향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취향을 존중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본래 미추는 주관적인 거라, 서로를 존중하는 게 맞아.”
그 뒤로 두 사람은 TV를 보며 묵묵히 술을 마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류청운이 술기운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하아! 제 디피가 강록 형님만큼만 됐어도…….”
“강록 형님은 몇인데?”
“오백요.”
“너는?”
“삼백밖에 안 됩니다.”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돌연변이 평균 디피가 150이니 삼백이면 두 배나 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높은 거 아니냐? 평균의 두 배나 되는데?”
“크리스티 누님이 몇인 줄 아십니까? 자그마치 칠백입니다. 오백은 돼야 사람으로 보일 텐데…….”
“에이, 디피 삼백이 그런 소리를 하면 쓰나. 그럼 일반인은 가축이냐?”
“형님이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조만간 사람의 신분은 디피 수치로 나누어지게 될 겁니다. 당장 삼합회에서도 그러고 있어요. 디피가 오백이 넘어가면 조장으로 임명합니다. 서열, 공적, 다 필요 없어요.”
300dp의 류청운이 억울하다는 듯 주먹을 말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