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0
150회. 저래서 요물이라고 합니다
암기라는 외침에 남궁천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섣불리 대응하려 하지 않고 아예 뒤쪽으로 훌쩍 물러난 것이다.
오랜 강호행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
한순간 청운검 남궁천이 서 있던 자리로 검은 모래가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쏴아아-.
검은색 모래를 본 남궁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단혼사(斷魂沙)!”
그것은 당가의 암기 중에 극악하기로 으뜸이라는 독 모래였다.
단검이나 침 따위면 모를까?
아무리 고수라 해도 한 주먹이나 되는 독 모래를 막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남궁천의 대처는 현명한 것이었다.
음양공자 양진호가 아쉬운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가 장갑 낀 손으로 품에서 다시 단혼사 한 줌을 꺼내 들고 소리쳤다.
“한 줌에 무려 은자 백 냥짜리 단혼사다! 삼백 냥어치를 구했는데 계속해 볼 테냐!”
남궁천은 말없이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는 무림세가의 일원으로 단혼사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혼사는 단순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살상력은 뛰어나다. 모래 알 하나에 닿기만 해도 당가의 비전 해약이 없으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그렇게 지독한데 특별히 제작된 장갑만 있으면 누구라도 하독이 가능했다. 독공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수적이 가지고 다닐 정도로 말이다.
‘배 위만 아니었어도…….’
좁은 배 위에서 단혼사는 치명적인 수법이었다.
상대도 그것을 알기에 이젠 대놓고 단혼사로 승부를 보려는 것이리라.
이 장쯤 떨어진 곳에서 수적의 암습을 보던 유근식이 버럭 소리쳤다.
“저런 비겁한 놈! 저래서 도둑놈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구천노도 심통이 유근식을 힐끔 보았다.
연적하와 자신의 앞에서 도둑놈 어쩌고 하니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눈치 빠른 진설하가 급히 유근식의 옆구리를 찔렀다.
“사형, 그냥 저놈이 나쁜 거예요. 저놈이.”
“어? 그렇게 말했잖아.”
유근식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단혼사를 처음 보는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물었다.
“누님 단혼사가 뭐예요?”
“당가에서 만든 독 모래야. 당가 비전의 절독에 담근 모래라서 스치기만 해도 중독돼. 해약이 없으면 무림 고수라 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지.”
그 말에 깜짝 놀란 연적하가 남궁천을 향해 소리쳤다.
“형님! 그냥 오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연적하의 말을 들은 남궁천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는 허공으로 도약해 무려 이 장(약 6미터)의 거리를 가볍게 건너갔다.
남궁천이 떠나자 양진호와 사지 멀쩡한 수적은 미친 듯 삿대질을 해서 거리를 벌렸다.
상대로부터 두 배쯤 멀어지자 양진호는 비로소 허리를 곧게 폈다.
사 장(약 12미터)이 넘는 거리를 믿고 안심한 것이다.
“크크큿! 야 이 씨벌 놈들아! 나 여기 있다! 재주 있으면 와서 죽여 보든지!”
연적하는 말없이 선수에 우뚝 섰다.
그리고 구천세법의 칠 식 용조할지를 펼쳤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검 끝이 마지막으로 양진호의 배를 가리켰다.
콰콰콰-.
검 끝에서 세 가닥 검기가 쏟아져 나갔다.
검기가 지나가는 수면 위로 물이 일 장(약 3미터)이나 솟구쳤다.
콰지직. 콰직. 쾅.
검기에 직격당한 양진호는 육편(肉片)이 되어 흩어졌다.
뒤이어 세 동강 난 배가 천천히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장호진에서 새로 탄 승객들은 기사를 목격하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걸 본 선장은 마치 자기가 한 일인 양 어깨에 힘을 실었다.
잠시 후 배는 유유히 완보주를 지나갔다.
***
장호진.
해거름 무렵, 한 떼의 인마가 마을로 들어섰다.
무산소축의 총호법 독심귀랑 양소란과 혈검, 옥불이다.
그들은 마방에 말을 맡기고는 가까운 객점으로 이동해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꽤나 지쳤던지 금방 일어나지 않았다.
이틀이나 쉬지 않고 말을 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초인적인 내력도 누적된 육체의 피로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묵묵히 차를 마시던 혈검이 양소란을 힐끔 보았다.
“귀랑께서는 백산과 친분이 있으셨지요?”
“조금요.”
“허허. 솔직히 우리는 그와 소원한 관계였습니다. 매번 술자리에 초대를 해도 응하질 않더군요. 정파 출신이라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건지. 쩝.”
“출신보다는 취향이 달라서 그랬을 거예요. 그는 술과 여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자 옥불이 한마디 했다.
“술과 여자를 마다하는 사내가 있습니까? 분명 우리와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귀찮아진 양소란은 더 이상 백산을 변호하지 않았다.
주색잡기에 빠진 두 늙은이가 무슨 생각을 하건 상관없었으니까.
그때 혈검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백산과 이초량에 대한 소문은 우리도 들었습니다. 죽어서 이상한 몰골이 되었다지요?”
옥불도 은근슬쩍 거들었다.
“마룡과 뇌신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혹 팔주령의 부작용 같은 걸까요?”
양소란은 뒤늦게 두 사람의 관심이 다른 데 있음을 알았다.
그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죽음 이후의 변화에 놀랐던 모양이다.
“흠, 나도 당주님께 여쭤 봤습니다만 모른다고 하시더군요. 다음 백두마군의 모임에서 그 문제를 다루겠다고 하셨으니 곧 알게 되겠지요.”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옥불이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나저나 파천마군이 갑자기 연적하를 앞세워 그러는 이유가 뭘까요? 두 분은 그가 정말 본교에 대적하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혈검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파가 아닌데 우리와 각을 세울 필요가 있겠소? 뭔가 따로 원 하는 게 있을 게요.”
옥불이 양소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양소란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본교가 녹림에 관여하는 게 싫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따지고 보면 외부 세력이 채주들을 교체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혈검과 옥불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처음에는 하는 짓이 괘씸했는데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세 사람은 그 뒤로도 한동안 녹림과 연적하의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甲論乙殿)을 이어 갔다. 상대가 녹림 총순찰이라 녹림의 속셈이 궁금했던 것이다.
***
평택현 서경.
어둑어둑해질 무렵, 연적하 일행의 배는 작은 포구에 정박했다.
장호진과 달리 서경은 객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덕분에 연적하 일행은 제대로 된 식사와 잠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삭사를 마친 진설하는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고 잠시 머뭇거렸다.
잠자리에 들기는 이른 시간인지라 다시 내려가 차라도 마시고 싶었다.
이전 같으면 남궁연에게 함께 가자고 했을 텐데 아침의 일 이후로 조금 눈치가 보였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미안해요.”
“네? 뭐, 뭐가요?”
“아침에 제가 좀 심한 말을 했어요. 사과드리고 싶었는데 틈이 나질 않아서.”
진설하가 남궁연을 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소저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요 뭐. 제가 긴장을 너무 풀었던 것 같아요. 연 소협이 잘 처리해 주니까 위험하다는 걸 자꾸 잊게 돼요.”
진설하와 눈이 마주치자 남궁연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그 정도로 강하게 할 말은 아니었어요. 제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아요.”
남궁연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지인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하고 사과를 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가까운 사람에게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럴 일이 없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진설하는 갑작스러운 남궁연의 태도에 당황했다.
범접하기 어려운 그녀가 이 순간만큼은 보통의 여자들처럼 보였다.
천하의 화용독심 남궁연이 말이다.
멍하니 서 있던 진설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차라도 한잔 마실까 하는데, 함께 가시겠어요?”
“네.”
남궁연과 진설하는 사이좋게 방을 나섰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객점 식당은 한산했다.
진설하는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두 개의 빈 잔에 얼른 차를 따랐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슬며시 남궁연의 앞으로 밀었다.
남궁연이 별일도 아닌데 사과까지 한 것에 대한 나름의 답례였다.
“고마워요.”
두 사람은 잠시, 몇 번이고 우려내어 별맛도 없는, 차를 음미했다.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진설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연 공자님 말이에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것 같아요. 무공은 하늘에 닿았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아이처럼 순수하시거든요.”
“그런 면이 있죠.”
“처음에는 젊은 고수라서 존경했는데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설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궁연의 입가에 살포시 웃음이 떠올랐다.
“존경은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사랑스러우세요.”
“…….”
뜻밖의 고백에 남궁연이 화들짝 놀란 눈으로 진설하를 보았다.
남궁연이 너무 정색하자 진설하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아니요. 제가 연 공자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뜻이에요. 소저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네. 저도 그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하는 남궁연은 어딘지 후련해 보였다.
진설하가 신이 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렇죠? 연 공자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저도 그런데 소저는 더하시겠죠? 아침에 물수제비라는 걸 하시는데 정말 같은 사람이 맞나 싶더라니까요. 십두마병들을 상대할 때는 천신과 같은 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적하를 좋아하시나요?”
직설적인 물음에 진설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사랑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그런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연 공자님은 친절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분인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은근히 거리를 두시거든요. 마치…….”
진설하는 ‘남궁 소저처럼요’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그건 겨우 회복된 두 사람의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궁연이 겉으로 드러나게 거리를 유지한다면, 연적하는 은근히 벽을 세움으로 자신이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득 진설하는 남궁연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은근히 밀어낸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떨까?
더 강하게 밀어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괜히 웃음이 났다.
뚱한 얼굴로 서로 딴청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왜 그렇게 웃어요?”
남궁연의 물음에 진설하는 급히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요. 그냥 잠깐 엉뚱한 생각을 해 봤어요.”
“재미있는 얘기면 같이 웃어요.”
남궁연의 채근에 진설하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저런 식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다.
인간 세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남궁연이 오늘따라 친근하게 느껴진다.
마침 다시 식당으로 내려가던 연적하는 두 여자의 다정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 종일 본체만체하던 두 사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재잘대는 게 신기했던 것이다.
‘쯧쯧’ 하고 혀를 차던 심통이 연적하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저래서 여자를 요물이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쯤이면 칼부림이 났어야 하는데, 세상 다정한 모습이지요?”
연적하가 어깨로 심통을 밀어냈다.
“더러워. 속삭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