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08
1508회. 누가 따라간대요?
마소전은 집안에서 내놓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두우로는 유난히도 사촌 형 마소전을 따랐다.
거칠고 포악한 성정이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다.
마소전 역시 그런 두우로를 가족보다 더 아꼈다.
양아치인 두우로가 흑사회로 빠지지 않은 건 마소전이 만류해서였다.
덕분에 두우로는 대학까지 진학하며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양아치로 살아가던 두우로에게 일생일대의 변화가 찾아왔다.
블랙 스피어의 영향으로 돌연변이가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차원력 300의 돌연변이가 된 두우로는 더 이상 평범한 양아치가 아니었다.
조직에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 하고 다니는 짓은 흑사회 저리 가라였다.
두우로가 폭주하자 마소전은 그에게 ‘대학 졸업 후 신화파로 오라’ 했다.
어설픈 범죄자가 되느니 차라리 흑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십언시 흑사회는 과거처럼 불법이 아닌 합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공안과의 관계도 좋아 어쩌다 법을 어겨도 대부분 훈방 조치로 끝났다.
마소전은 지금의 두우로에게는 오히려 흑사회가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렇게 두우로의 미래를 설계했는데…….
혈육보다 아끼던 두우로가 반병신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다.
그걸 보는 것만도 치가 떨리는데, 마소전이라는 이름을 앞세웠음에도 웃으며 무시했다는데 꼭지가 돌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퇴원하기 전에 놈의 물건을 잘라 가져다주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목숨만 살려 놓는다면 진과월 부사장도 문제 삼지 않을 터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십언시 흑사회와 암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이라면 말이다.
“감사합니다, 형님.”
다 죽어 가던 두우로의 얼굴이 그제야 조금 살아났다.
상대의 목숨을 취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아무리 삼합회가 본토에서 힘을 못 쓴다 해도 신화파보다는 강했으니까.
***
퇴근한 진과월은 딸이 보이지 않자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시곗바늘은 저녁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런가 보다 할 테지만 지금은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불과 며칠 전 딸이 납치를 당했었기 때문이다.
장락방과는 기적적으로 잘 풀렸지만 홍련상회의 적은 아직도 많았다.
본디 삼합회의 삶은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십오 년 전에 달아난 처도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었다.
그녀가 달아난 이유 중에는 위태로운 삶에 지친 것도 있을 터였다.
그걸 알기에 굳이 그녀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를 홍콩으로 유학 보낸 것도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물론 앞으로도 딸과 함께 살 생각은 없다.
이번에 납치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각오는 더욱 단단해졌다.
“어허, 이 시간까지 어딜 쏘다니고 있는 건지.”
스물네 살의 나이를 생각하면 늦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과월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그는 거실을 서성이며 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시곗바늘이 9시 30분을 가리키자 그는 휴대 전화를 꺼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집 앞요.
“빨리 와라.”
묵뚝뚝하게 말한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귀가했다.
진과월은 딸이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서자마자 물었다.
“홍콩에는 언제 돌아갈 거냐?”
“왜요?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네가 지내기에 안전한 곳이 아니다.”
“설마 또 그런 일이 있겠어요? 십언시에서 장락방이 가장 세가 크다면서요?”
“사람이 꼭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것만은 아니다.”
“네 네, 집 앞에서 개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고, 길가다 소에게 받혀 죽을 수도 있죠.”
크리스티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소리였다.
딸의 반항에 진과월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중국에서 홍련방의 위치는 흑사회보다 못하다. 장락방이 물러났다고 해서 네가 지내기에 안전한 곳은 아니야.”
“저도 알아요. 오래 있지 않을 거예요.”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냐?”
“연 오라버니는 언제 떠난대요?”
부녀간의 대화에 갑자기 연적하가 나오자 진과월이 눈을 찌푸렸다.
“그걸 왜 물어?”
“연 오라버니 갈 때 같이 가려고요.”
“뭐어? 지금 그 녀석을 따라가겠다는 거냐!”
뜻밖의 대답에 흥분한 진과월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누가 따라간대요? 연 오라버니가 이곳을 떠날 때, 저도 홍콩으로 가려고요.”
그제야 진과월은 자기가 착각했음을 알았지만 여전히 의아했다.
“왜 일정을 그 녀석에게 맞추려는 거냐? 그 녀석이 뭐라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나중 언제?”
“홍콩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 녀석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두지 마라.”
“왜요?”
“왜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알아야지. 그 녀석이 내 생명의 은인인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나는 그 녀석에게 새로운 신분증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곳을 떠날 때는 적잖은 돈도 줄 거다. 그 정도면 은혜를 갚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흐음! 아빠는 연 오라버니가 싫어요?”
“그 녀석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걸 빼면 괜찮은 녀석이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동정심은 그 녀석이나 우리에게 좋지 않아. 그는 우리의 가족이 아니다. 되게 할 마음도 없고. 무슨 뜻인지 알리라 믿는다.”
진과월이 굳은 얼굴로 딸을 보았다.
동정심으로 시작된 관계는 훗날 후회할 일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신과 전처처럼 말이다.
딸이 대답하지 않자 진과월은 윽박지르듯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언제부터 그 녀석이 ‘연 오라버니’가 된 거냐?”
그의 기억에 딸은 연적하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부를 때도 ‘저기요’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입만 열면 ‘연 오라버니’라니 당혹스러웠다.
“아빠가 홍련상회 직원들에게 외조카로 소개하셨다면서요. 그러니 저도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거예요.”
“전에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잖느냐?”
“처음에는 낯설어서 그런 거죠.”
“그럼 지금은 처음이 아니라는 소리냐? 그 녀석을 만나기라도 했어?”
“오늘 낮에 우연히 신랑서점에 갔다가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었어요.”
“그 녀석이 서점에 있었다고? 거기서 뭘 할 게 있다고?”
“역사책을 읽고 있던데요?”
“그런 걸 읽어서 뭐에 쓴다고. 아! 무협 드라마 마니아였구나. 그런 쪽으로 빠져들기를 다행이지. 제정신도 아닌데 이상한 데 관심을 두었으면 어쩔 뻔했느냐?”
진과월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다 문득 물었다.
“그런데 설마 지금까지 그 녀석과 함께 있었던 건 아니지?”
“하이고, 아빠! 친구들 만나서 저녁 먹고 왔어요. 피곤한데 저 씻고 쉴게요.”
크리스티는 진과월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욕실로 쏙 들어갔다.
***
다음 날.
연적하가 신랑서점의 잡지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 주머니가 부르르 떨렸다.
어제 류청운이 쓰라고 준 대포 폰으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연적하는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님, 어디십니까?
“신랑서점. 왜?”
―부사장님이 지금 당장 들어오시랍니다.
“어.”
전화를 끊은 연적하는 밖으로 나가 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30분쯤 걸어가자 멀리 홍련상회의 건물이 보였다.
저곳에서 지낸 지 열흘이 넘었다고 집에라도 돌아온 느낌이다.
연적하가 홍련상회 안으로 들어가자 어느 틈에 류청운이 다가와 물었다.
“또 무슨 사고 친 거 아니죠?”
“그런 일 없다.”
“그럼, 신분증이라도 왔나 보네요.”
류청운은 걱정이 돼서 왔는지 그 말을 하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래도 한솥밥 먹은 지 좀 됐다고 챙겨 주니 괜히 웃음이 났다.
잠시 후 연적하는 부사장실의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연적하의 물음에 진과월은 사무용 책상에서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앉거라.”
“예.”
연적하는 진과월의 맞은편에 슬쩍 걸터앉았다.
높으신 분 앞이라 그런지 잘못을 한 기억이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어제 크리스티와 점심을 먹었다고?”
“아, 예. 우연히 신랑서점에서 만나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헤어져 저는 신랑서점으로 돌아갔습니다. 크리스티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고요. 왜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 건 아니다. 납치당한 일도 있고 해서 신경이 좀 쓰인달까.”
“아, 예에.”
“그건 그렇고 네 신분증 말인데.”
“예.”
“내일이나 모레쯤 받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저는 보름은 더 지나야 받게 될 줄 알았는데.”
“사람 일이 다 그렇지. 빠를 때는 깜짝 놀랄 만큼 빠르지만, 느릴 때는 또 한세월이고. 너의 경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생명의 은인에게 그 정도도 못 해 줄까. 너도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해 주는 말이다. 신분증이 나오면…… 어디로 갈 생각이냐?”
“합비요.”
“혹시 석경장을 찾아가려는 것이냐?”
“예.”
“…….”
진과월은 연적하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석경장이 57년 전 문화혁명 때 불타 사라졌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너에게 석경장은 어떤 곳이냐?”
“고향집입니다.”
“고향집이면 그곳에서 자랐느냐?”
“자란 건 아니고, 살던 곳입니다.”
“살던 곳이라……. 어차피 너도 알게 될 테니 솔직히 말해 주마. 석경장은 57년 전 문화혁명 때 불에 타서 사라졌다.”
“…….”
깜짝 놀란 연적하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석경장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고요?”
그에게 중요한 건 ‘언제냐?’가 아니라 ‘석경장이 불에 타서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래, 10년이나 계속된 문화혁명 중에 많은 책과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여강현에 있던 석경장도 그 십년동란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럼…… 사람들은요? 사람들도 모두 죽었습니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여강현을 떠나 한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한국요?”
“그래, 십중팔구는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자리를 잡았을 게다. 혹시 그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이냐?”
“아니요. 우선은 석경장부터 가 보려고요.”
“모두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됐다고 하지 않더냐. 그 뒤로 재건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려느냐?”
진과월은 연적하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57년 전 불에 타서 사라진 석경장을 찾아가 무얼 하려고?
“예, 석경장에서 찾아야 할 물건이 있어서요.”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구나.”
“연씨들이 한국으로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곳에 남아 있을 겁니다.”
“석경장에 살던 사람들이 연씨였느냐?”
“예.”
“허, 거참.”
진과월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한 그가 안쓰러웠지만 만류하지 않았다.
부사장실에서 나온 연적하는 넋이 나간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나마 사람들은 무사하니 다행이다만,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글은 서점에서 읽은 바 있다.
‘무슨 그런 일이 다 있나?’ 황당했는데 석경장이 그때 파괴됐다니.
새삼 ‘세상일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구천현녀경은 석경장 터에 아직 남아 있을까?
혹시 대화재의 혼란을 틈타 누가 훔쳐 간 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후손들이 한국으로 건너갈 때 가지고 갔을까?
복잡한 마음에 그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