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09
1509회. 아무 사이도 아니시잖아요
십언시 공안국 5과.
특임과 1팀장인 임초연 경사가 애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의 손에는 팀원들이 취합해 올린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도대체 배주대곡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녀의 눈이 다시 보고서로 향했다.
보고서는 시간별로 일련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2월 25일.
저녁 8시경 진소향이 무극방에 납치.
2월 26일.
오후 1시 40분 연적하가 배주대곡을 방문.
오후 2시 15분 진소향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동방경호 차량이 배주대곡으로 들어감.
오후 2시 45분 연적하 배주대곡을 나와 택시를 타고 홍련상회로 돌아감.
오후 3시 진소향이 배주대곡 정문으로 나와 동방경호의 차량을 타고 홍련상회로 돌아감.
오후 3시 30분 왕주천 고문이 마화동 사장을 태우고 배주대곡을 나감.
배주대곡 일대의 CCTV를 조사해 기록한 것이니 오차는 없다.
그날 왕주천 고문과 함께 나간 마화동 사장은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날 사라진 게 마화동 사장만은 아니었다.
동방경호의 직원 열한 명도 같은 날 이후로 모습을 감췄다.
그들 모두 배주대곡으로 출근한 뒤로 세상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동방경호의 직원들이 모두 돌연변이임을 고려하면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동방경호의 마장청 같은 경우 공안국에서 주목할 정도로 차원력이 높다.
그런 마장청까지도 그날 마화동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흑사회와 삼합회가 전쟁이라도 벌인 걸까?’
장락방과 천무방의 피해만 보면 그렇게 생각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임초연은 고개를 저었다.
삼합회인 홍련상회의 피해가 전무한 까닭이다.
“뭐지?”
임초연은 보고서를 신경질적으로 책상에 내려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화동 사장과 동방경호의 돌연변이들이 사라질 이유가 없었다.
그때 모강준 경원이 말했다.
“배주대곡에서 내부 반란이 일어났던 게 아닐까요? 강무 부사장이 마 사장을 제쳤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장락방은 마 사장이 꽉 쥐고 있었습니다. 내부 반란이 있었다면 장락방에서도 사상자가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 경우 장락방의 실종자는 마 사장 한 사람뿐입니다. 장락방 내부도 일체의 동요 없이 조용하고요.”
임초연의 설명이 끝나자 모강준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강소정 경원이 한마디 했다.
“연적하 씨가 좀 수상하지 않습니까? 사건 당일 배주대곡에 들어간 외부인은 딱 두 사람이잖아요. 진소향 씨는 납치됐다가 동방경호 차량으로, 연적하 씨는 자발적으로 배주대곡에 방문했습니다. 평소와 다른 점은 이 두 사람밖에 없는데 진소향 씨는 옮겨진 반면…… 연적하 씨는…….”
“내가 직접 나사(NASA)에서 제작한 유전 변이 측정기로 그를 검사했다. 그의 차원력은 0이었다.”
“아, 예.”
임초연의 말에 강소정도 바로 고개를 숙였다.
사라진 돌연변이들만 열한 명인 사건에 일반인을 결부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임초연이 보고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연적하가 배주대곡에 1시간 5분이나 머물렀다고?’
그것도 다시 보니 사건이 일어난 황금 시간대다.
홍련상회의 손님이 적진인 배주대곡에서 1시간이 넘도록 시간을 보냈다?
그가 사건의 배후는 아닐지라도, 뭔가를 목격했을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임초연이 모강준과 강소정에게 말했다.
“모 경원님은 연적하 씨와 홍련상회의 관계를 좀 파 봐요. 그리고 강 경원은 연적하 씨의 신상에 대해 좀 자세히 조사해 보고. 나는 연적하 씨를 다시 만나 보고 오겠습니다.”
자신의 추리가 통했다고 생각한 강소정이 반색을 하고 물었다.
“역시 연적하 씨에게 뭔가 있는 거 같죠?”
“그것보다는 그가 배주대곡에서 뭔가를 봤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의 입을 열려면 압박할 게 필요해. 그러니 그를 몰아세울 수 있는 게 있는지 좀 털어 봐. 뭐라도 건지면 바로 전화하고.”
“알겠습니다!”
강소정의 씩씩한 대답을 뒤로하고 임초연은 제5과를 나섰다.
***
십언시 장완구.
홍련상회를 나온 연적하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정처 없이 쏘다녔다.
이윽고 해가 저물었다.
저녁이 되자 거리는 낮 시간 때보다 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과거와 가장 많이 달라진 게 이거다.
자신이 살던 시절에는 해가 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현대라 불리는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았다.
거리가 낮 시간대보다 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거참!’
심지어 밤에만 여는 가게도 많았다.
시선(詩仙) 이백이 말했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같달까.
물론 이백은 산속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정반대라 할 수 있지만.
인파에 섞여 터덜터덜 걷는 그에게 웬 중년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거었다.
“혼잔가?”
“왜요?”
“이쁜 아가씨가 있는데…… 연애하는 데 오백 위안(한화 약9만원)이면 되네.”
“관심 없슴다.”
“남자도 있네. 남자는 삼백 위안(한화 약 5만원)만 내게.”
“관심 없슴다.”
“돈이 부족한가? 새로 들여온 성인 인형은 백 위안(한화 약 1만 8천원)이네.”
“아, 관심 없다고요.”
“백 위안도 없으면서 왜 싸돌아다녀? 헌팅이라도 하게? 그얼굴에 잘도 먹히겠다.”
“뭐요?”
연적하가 눈을 부라리자 중년 남자는 찔끔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때마침 벨 소리와 함께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 전화를 꺼내 보니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연적하 씨? 나 공안국의 임초연 경사입니다.
“그런데요?”
―배주대곡 마화동 사장의 일로 잠시 물어볼 게 있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어딘지 모르겠는데요?”
―장난하지 마시고요. 지금 나 피하면 장완구의 보안(保安)들이 홍련상회로 모시러 갈 겁니다. 그걸 바라는 건 아니겠죠?
“진짜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그럽니다.”
―가까이 있는 간판 중에 가장 큰 거 하나 불러 보세요.
“신천지 엔터테인 클럽[新天地 娱乐会所]?”
―그 앞에서 움직이지 마세요. 15분쯤 걸릴 겁니다.
“이리로 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툭 끊어졌다.
연적하가 황당한 얼굴로 휴대 전화를 응시했다.
“뭐야 이 여자?”
딱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듣지도 않고 통화를 끝낸다?
자신을 이렇게 함부로 대한 여자는 맹세코 처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람을 맞히고 싶었지만 참았다.
버팅기다가는 자칫 공안이 홍련상회로 들이닥칠 수도 있으니 만나 줘야 했다.
연적하는 인도의 화단 경계석에 걸터앉아 임초연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러기를 십 분여.
이번에는 이십 대 초반의 아가씨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어,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뭔데요?”
“도원호텔[桃園大酒店]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곳 사람이 아니라서요.”
“아, 어디서 오셨어요?”
“합비요.”
“그러시구나. 저는 무한에서 왔어요. 타지에서 오신 분을 만나니 반갑네요. 숙소는 어디에 잡았어요?”
“홍련상회라는 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민박집인가 봐요?”
“주류 도매상인 것 같더라고요.”
“아, 그런 곳에서도 민박을 하나 보구나. 방이 좀 있나 봐요?”
“직원 숙소 같은 게 있더라고요.”
“설마 직원은 아니시죠?”
“그럴 리가요. 손님입니다.”
“후훗! 농담이에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녁 식사라도 함께할까요? 제가 보시다시피 혼자 여행을 와서…… 먹을 때 눈치가 좀 보이더라고요.”
“저런, 어쩌죠? 제가 지금 누구랑 만나기로 했는데…… 올 시간이 거의 다 됐네요.”
“어머, 일행이 있으신가 보다.”
“일행은 아니고…… 잠깐 만나자는 사람이……. 어, 저기 도착했네요.”
아가씨의 눈이 청년을 따라갔다.
독일산 중형 세단에서 정장 차림의 아름다운 여자가 내리고 있었다.
여자, 임초연이 연적하를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작별 인사할 기회를 놓친 무한의 아가씨가 쭈뼛쭈뼛 뒤로 물러났다.
임초연이 연적하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어딜 가나 항상 옆에 여자가 있으시네? 얼굴은 평범한데…… 돈이 좀 많으신가?”
그 말에 기분이 상한 듯 무한의 아가씨가 뒤에서 쏘아붙였다.
“저기요, 말씀을 이상하게 하시는데 우리는…….”
순간 임초연이 공안 신분증을 꺼내 여자에게 보인 뒤 물었다.
“저기가 아니라, 공안국의 임초연 경사입니다. 그쪽은 누구시죠?”
상대가 공안이라는 걸 알게 된 아가씨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임 경사님, 저는 이 남자분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냥 길 좀 물어봤을 뿐이에요.”
“알겠습니다. 일단 신분증 좀 줘 보시죠. 이 남자가 강력 사건의 참고인이라, 이 남자와 만나는 사람들도 확인을 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던 아가씨가 신분증을 꺼내 임초연에게 건넸다.
신분증의 사진과 아가씨 얼굴을 대조하던 임초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전구면 바로 옆 동네 분이시네. 이 남자에게 길 물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이 남자 타지 사람인데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거든요.”
임초연이 아가씨에게 신분증을 돌려주자 아가씨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멍한 얼굴로 서 있던 연적하가 확인하듯 물었다.
“저 아가씨 진짜 모전구 사람이에요? 무한에서 여행 왔다면서 도원호텔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여자가 같이 저녁 먹자고 했죠?”
“예.”
“저녁 먹으면 입가심으로 술 한잔하자고 했을 거예요. 그랬으면 이상한 술집에서 탈탈 털리고 쫓겨났을 거고요. 나한테 감사하세요.”
“저 아가씨도 꽃뱀인가요? 그냥 일반인 같아 보였는데.”
“꽃뱀처럼 보이면 남자가 물리겠어요? 일반인처럼 보여야 남자들이 침 질질 흘리면서 정신 못 차리죠. 연적하 씨처럼 말이에요.”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내가 연적하 씨를 세 번 봤는데, 그중 두 번이 꽃뱀과 함께 있을 때였다는 거 압니까?”
“저기요.”
“임초연 경사입니다.”
“임초연 경사님, 진짜 오해라니까요. 그때는 마담에게 당한 거고, 지금은…….”
“꽃뱀에게 당할 뻔한 걸 내가 구해 줬지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요. 아직 밤바람이 차가운데 커피라도 마시며 이야기하죠.”
임초연이 가까운 커피숍을 가리켜 보였다.
연적하는 억울했지만 인생을 배웠다 생각하고 더 거론하지 않았다.
***
판다커피[熊猫咖啡].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두 남녀가 마주 앉았다.
연적하와 임초연 경사다.
입장하며 주문했던 커피를 가지고 온 임초연이 연적하 앞에 한 잔 내려놓은 뒤 말했다.
“연적하 씨에 대해 좀 알아봤습니다. 재밌는 분이시더군요.”
“제가 원래 좀 재밌습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닙니다.”
임초연은 초장부터 기를 죽이려는 듯 일체의 농담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았다.
괜히 여기서 나대 봐야 의심만 받을 뿐 하등 도움이 될 게 없어서다.
“깨끗하더군요. 벌금 한번 낸 적이 없을 정도로 말이죠. 물론 농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요.”
“깨끗한 게 잘못인가요?”
“그런데 말이죠. 삼합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농촌 청년이 왜 홍련상회에 머무르고 있을까요? 아니면, 어떻게 홍련상회의 손님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부사장님과…….”
“아무 사이도 아니시잖아요.”
“쩝.”
연적하는 현대 국가의 정보 수집력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십언시에서 합비까지 직선 거리로 천오백 리(약 600km)가 넘는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제 거리는 의미가 없다.
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임초연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공교롭게도 연적하 씨가 배주대곡에 찾아간 날, 마화동 사장과 동방경호의 직원 열한 명이 사라졌습니다. 전에 배주대곡에 찾아가 마 사장을 만났다고 하셨죠?”
“네.”
연적하는 커피를 홀짝거렸다.
씁쓰름하면서 고소한 가운데 약간 신 듯한 맛의 어울림이 묘하다.
홍련상회에서도 커피를 마셨지만 그곳에 있는 건 한국산 믹스커피였다.
설탕과 프림이 빠진 커피 본연의 맛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이 커피 이름이 뭐라고 했는데…….’
머리를 쥐어짜도 입구에서 봤던 긴 영어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딴생각이 조금 길었나 보다.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드니 임초연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습니까?”
“연적하 씨가 졸업한 여강현의 고급중학교 이름이 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