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1
151회. 파천마군에 대해서 좀 알아?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을 발견한 진설하가 멀리서 알은체를 했다.
연적하는 손을 흔들어 보인 후에 화용독심 남궁연과 진설하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좋아 보여 더 대화 시간을 가지라고 피해 준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점소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헤헤, 뭘 드릴까요? 술이라면 천 년 된 우물물로 빚은 구온춘주(九醞春酒)가 저희 객점의 자랑입니다. 장강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부탁해서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 주문했다.
“그 자랑이라는 구온춘주 한 단지와 함께 먹을 만한 안주를 내오거라.”
“예, 예. 안주로 돼지고기볶음과 살짝 데친 청채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굽실거리던 점소이는 심통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방으로 사라졌다.
멀뚱멀뚱 술과 안주를 기다리던 연적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심 노인. 파천마군에 대해서 좀 알아?”
“흐흐. 파천마군 님을 모르는 녹림도 있습니까? 당연히 알지요.”
“파천마군은 어떤 사람이야?”
“어릴 때 소림사에서 일하다가 기연을 얻어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신 분이지요. 그분의 암천수라검은 아직까지 적수가 없었습니다.”
말을 하면서 심통은 연적하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왜 그렇게 봐?”
“공자님의 검술이라면 어쩌면…….”
심통은 슬며시 말끝을 흐렸다.
파천마군은 녹림을 넘어 천하 사파의 정신적인 지주인지라 감히 왈가왈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연적하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내 검술이라면 그를 이길 수 있겠다는 거야?”
“유명교 교주라면 모를까 파천마군 님과는 대적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야?”
“그게 아니라 천하 사파가 다 그분의 말씀을 따르니까 조심하시라는 차원에서.”
“사파가 녹림 총채주를 따른다고?”
“녹림도 사파가 아닙니까? 아직은 칠파이문을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이 그분뿐이니 따를 수밖에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십니까?”
“파천마군이 정의맹 사람들을 나에게 붙여 줬잖아.”
“예, 그랬지요.”
“아까 낮에 설 소협이 그러더라고. 녹림이 정의맹보다 먼저 유명교에 칼을 뽑아서 감탄했다나? 파천마군이 그저 대마두인 줄 알았는데 대의가 뭔지 아는 사람 같다고. 그러면서 파천마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 보는데 내가 뭘 알아야지.”
“흐흐흐. 하여간에 정파 놈들은 설레발을 참 잘 친다니까요.”
“뭐가 설레발이라는 거야?”
“생각해 보십쇼. 파천마군 님이 유명교와 싸우겠다고 하셨습니까?”
곰곰 생각하던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딱히 그런 말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죠? 파천마군 님은 유명교에서 먼저 녹림 칠십이 채를 건드리니까 그걸 정리하라고 하신 거잖습니까?”
“그런 셈이지.”
“공자님이 보실 때 유명교는 정파입니까? 사파입니까?”
“사파에 가까운 거 아니야? 거기 십두마병들 중에 녹림 출신이 많았잖아. 녹림이 아니더라도 죄다 나쁜 놈들투성이였고.”
“바로 그겁니다. 유명교는 파천마군 님의 말을 듣지 않는 사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파가 파천마군 님을 따른다고 말씀 드렸었지요?”
“어.”
“그 이유는 파천마군 님이 칠파이문을 극도로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극도로 싫어한다고?”
“흐흐. 예. 파천마군 님이 천하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혹시 그게 뭔지 들어 보셨습니까?”
“몰라.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심통이 기막힌 표정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래도 오봉산채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파천마군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오봉십걸들이 이전에는 그런 데 관심을 둘 수준이 아니었지.’
오봉십걸 소리를 듣기 이전에 그의 의형제들은 좀도둑에 불과했다. 그러니 파천마군에 대해 무지한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험험, 파천마군 님은 중과 도사와 정파의 위선자들이라면 아주 치를 떠는 분이십니다.”
“중과 도사를 그렇게 싫어해? 아니 왜?”
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정파의 위선자’까지는 이해가 간다. 자신도 그런 자들을 보면 짜증이 나니까.
그런데 중과 도사에게 치를 떨 이유가 있나?
“소림사에서 얼마나 사람대접을 못 받았으면 그렇게 싫어하시겠습니까. 겪어 본 사람들만 아는 말 못 할 고통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
잠시 생각하던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와룡장도 겉으로 보기에는 정파의 무가였지만 자신은 그곳에서 온갖 학대를 받았었다.
“그런 파천마군 님이 같은 사파와 전쟁을 하시겠습니까? 하여튼 정파인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원. 뭐든지 자기들 좋을 대로 판단한다니까요.”
“하지만 내가 지금 십두마병들과 싸우고 있잖아?”
“그야 그들이 칠십이 채를 손에 넣으려고 먼저 수작을 부렸으니까요.”
“그래서 파천마군은 유명교와 안 싸울 거라고?”
“유명교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린 거겠지요. 그들이 계속해서 칠십이 채를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는 않으실 겁니다만.”
“건드리지 않으면 싸우지 않을 거다?”
“흐흐. 지금까지 녹림의 적은 정의맹이었습니다. 날만 풀리면 그놈들은 ‘협객행’이라는 이름으로 산채를 들쑤셔 대지 않았습니까? 숙적을 코앞에 두고 같은 사파와 싸울 리가 없지요. 물론 파천마군 님의 권위에 도전했으니 응징은 하겠지만서도.”
“아!”
“여하튼 정의맹과 손잡고 유명교를 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럼 나는 뭐야?”
“녹림을 건드리지 말라고 유명교에 보내는 경고 아니겠습니까?”
“…….”
순간 연적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녹림, 사파, 유명교, 정의맹, 설차수 일행, 남궁천과 남궁연, 그 모든 것들의 움직임이 이제야 일목요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신은 적과 동행 중이었던 것이다.
진짜 적은 유명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한순간 멍할 정도였다.
“놀라셨습니까?”
심통이 실실 웃으며 연적하를 보았다.
그는 엄밀히 말해 정사지간에 속한 사람이었다.
녹림의 변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정의맹 사람들과 함께 유명교와 싸우다 보니 정체성에 혼란이 왔을 것이다.
어쩌면 파천마군이 정의맹과 손잡고 유명교를 물리치려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파천마군의 생각은 자신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유명교보다 칠파이문을 더 싫어한다. 분위기상 지금은 드러내지 않아도 아마 거의 그럴 것이다.
때마침 점소이가 구온춘주와 안주들을 내왔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연적하의 잔에 심통이 술을 가득 따랐다.
“공자님, 너무 그렇게 놀랄 것 없습니다. 강호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으니까요. 혹시 압니까? 파천마군 님이 정말 유명교와 싸울지.”
연적하가 단숨에 잔을 비우고 중얼거렸다.
“쳇! 빈말인 거 다 알아. 나를 바보로 아네.”
“어이쿠! 바보는 백 자와 삼백 자밖에 못 외운 저와 오봉십걸들이지요.”
심통이 얼른 연적하의 빈 잔을 채웠다.
“심 노인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면 연 누님은 알고 계시겠지?”
“모르긴 몰라도 저보다 더 많은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무심코 남궁연에게 극존칭을 사용했다. 그 정도로 그녀를 경외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적하와의 관계 때문에 남궁천 남매에게 고분고분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심통은 남궁연을 무불통지(無不通知)라고 믿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심통이 목소리를 낮췄다.
“공자님, 구천현녀의 얼굴이 남궁 소저를 닮았다고 했었지요?”
“어.”
“이건 저의 생각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남궁 소저는 구천현녀의 현신일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술은 내가 마셨는데 왜 헛소리는 심 노인이 해?”
“아니 그게……. 너무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남궁 소저에 비하면 제갈세가 사람들은 발톱의 때만도 못합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분명 구천현녀일 겁니다.”
“쯧쯧! 갈 때가 됐나? 노망이 아주 제대로 들었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다 사 줄게.”
심통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치며 말했다.
“공자님. 저승의 마귀들도 십두마병의 몸에 현신하는데 구천현녀가 오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아니 교주는 염마왕까지 부르려고 한다면서요? 제 말이 맞을 수도 있다니까요.”
“아, 좀 닥쳐. 자꾸 헛소리하니까 파천마군에 대해 한 말도 의심이 되잖아.”
“파천마군 님에 대해 한 말은 한 점 의혹도 없는 사실입니다. 사파에서 힘 좀 쓰는 놈 붙잡고 물어보면 저와 같은 말을 할 겁니다.”
마침 계단으로 내려온 청운검 남궁천이 연적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가 연적하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무슨 얘긴데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야?”
행여나 연적하가 엉뚱한 소리를 할까 봐 심통이 먼저 나섰다.
“파천마군 님에 대해 궁금해하셔서 내가 아는 걸 몇 가지 말씀드렸소.”
“아, 파천마군. 무서운 사람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심 노선배?”
남궁천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심통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조금 전에 자신의 입으로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을 돌렸다.
남궁천은 연적하의 의형이지만, 한편으로는 정파의 고수인 까닭이다.
피식 웃던 남궁천이 연적하에게 말했다.
“파천마군은 소림사 출신이지만 그가 죽인 사람들 가운데는 소림사 고수도 많아. 그야말로 거칠 게 없는 사람이지. 재밌는 건 그의 손에 죽은 사파 고수도 적지 않다는 거야. 정사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너도 너무 그를 믿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험, 험. 남궁 공자. 녹림의 총순찰님 앞에서 총채주님의 흉을 보는 겁니까? 그렇다면 나도 정의맹 맹주인 풍뢰도에 대한 비사를 말해 볼까요?”
“하하! 무슨 비사씩이나. 맹주님의 성격이 불같아서 좌충우돌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흐흐. 풍뢰도가 정사파를 가리지 않고 손을 쓰면 좌충우돌이 되는군요.”
심통의 은근한 돌려 까기에 남궁천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맹주인 풍뢰도와 파천마군의 성격은 비슷했다.
둘 다 다혈질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연적하는 두 사람의 신경전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두고 정파니, 사파니 하는 정치적인 말들이 오고 가는 게 보인다.
이럴 때는 입장이 난처하다.
지인들이 정사파에 골고루 섞여 있어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 줄 수가 없어서다.
***
구강.
새벽.
밤새 말을 달려온 세 사람은 큰 섬(강주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멈춰 섰다.
독심귀랑 양소란과 혈검, 옥불이다.
말에서 내려 쉬고 있는 양소란에게 혈검이 다가갔다.
“총호법. 이제 어찌하시겠소? 장강일괴에게 바로 가실 게요? 아니면…….”
혈검이 말끝을 흐렸다.
눈앞의 섬이 바로 장강수채가 있는 강주진이었다.
강가로 나가 아무 배나 잡아타면 일다경(약 20분)이면 건너갈 수 있다.
“우선은 좀 지켜보기로 하지요. 장강일괴라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양소란의 말에 혈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장강일괴는 장강수로 연맹의 맹주이니 연적하를 상대로 부족함이 없을 거외다.”
옥불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게 좋겠소. 우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놈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연적하와의 싸움에 누군가는 먼저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없는 장강일괴에게 그 일을 떠맡기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