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15
1515회.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落葉歸根]
3월 초.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
오후 3시경, 두 남자가 공항 건물에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십 대 중반의 청년과 안경을 낀 삼십 대 중반의 장년인은 연적하와 안내인 구인회였다.
연적하는 신기한 눈으로 연신 사방을 둘러보았다.
한국은 중국과 인접해 있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크고 화려한 데다 깨끗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십언시나 합비를 보고 감탄했었는데 인천은 그보다 더 대단했다.
“중국이 세계 2위라고 들었는데……. 왜 한국이 더 발전한 것처럼 보이죠?”
“하하, 그건 국가 경쟁력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자원이나 군사력, 경제력이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한국은요?”
“자원은 없는 나라지만 군사력은 세계 5위, 경제력은 7위 안에 듭니다.”
“예에? 자원도 없고 땅도 좁은데 그게 가능합니까?”
“한국은 좀 예외적인 나라입니다. 남북한의 대립 때문에 군사력이 기괴할 정도로 강하고, 국민의 교육 수준 또한 세계에서 유례없이 높습니다. 세계 1위라는 미국의 성인 문맹률이 22퍼센트고, 중국이 5퍼센트인데, 한국은 0.5퍼센트라고 하니까요.”
“굉장하네요.”
“글자가 쉬운 탓도 있습니다.”
“아, 한글요?”
“예, 세계에서 가장 간단한 글자라……. 문맹률 0.5퍼센트가 의아할 정돕니다. 저도 일주일 만에 배웠으니까요. 그 정도면 처음부터 글자를 익힐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주일 만에 한글을 배웠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연 선생님도 한국에 계시는 동안 시도해 보십쇼. 생각보다 훨씬 쉬워서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른 나라의 글자를 일주일 만에 배웁니까?”
“하하! 그럼 저하고 내기하시겠습니까? 연 선생님이 한글을 일주일 내에 배울 수 있는지 없는지로요. 저는 있다에 걸겠습니다.”
두 사람이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저 앞쪽에 공항 버스가 정차했다.
버스를 본 구인회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저 버스를 타면 차이나타운까지 곧바로 갈 수 있습니다. 가시죠.”
잠시 후 두 사람을 마지막으로 태운 공항 버스가 천천히 움직였다.
***
인천.
차이나타운.
오후 4시경, 연적하와 구인회는 차이나타운에서 하차했다.
외국 여행 중이지만 구인회만 서류 가방을 들고 있어 얼핏 보기에는 회사원들 같았다.
차이나타운을 둘러보는 연적하에게 구인회가 말했다.
“생각보다 작지요? 다른 나라와 달리 화교들이 유독 한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한국 정부에서 화교를 탄압한 것도 있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은 좀처럼 섞이지를 못합니다.”
“아하.”
연적하는 십언시에서 만난 두우로를 떠올렸다.
그는 한국인을 고려봉자(高麗棒子)라고 부르며 조롱했었다.
“불과 불이 만났다고나 할까요? 음식부터 시작해서 문화, 역사까지 타협하지 않고 극한 대립을 한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건 왜 그런 겁니까?”
“한국을 중국의 소수민족들 중에 하나로 욱여넣고 싶은 중국과, 한국 특유의 저항 정신이 만들어 낸 결과죠.”
“해결책이 있겠습니까?”
“어느 한쪽이 포기하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그때 양복을 차려입은 노인 하나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구인회가 먼저 고개 숙여 알은체를 했다.
노인, 주현식이 가볍게 묵례로 화답한 후 구인회와 동행한 청년을 힐끔거렸다.
구인회가 연적하에게 주현식을 소개했다.
“연 선생님, 이분은 차이나타운의 화교 모임을 이끌고 있는 주현식 회장님이십니다. 주 회장님, 이분이 제가 안내를 맡고 있는 연 선생님이십니다.”
주현식은 상대가 고작 이십 대 중반에 불과했지만 먼저 고개를 숙였다.
“주현식이라고 합니다.”
“연적합니다.”
두 사람 간에 인사가 끝나자 구인회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 회장님,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합비에서 온 연씨들을 찾고 있습니다. 진전이 좀 있었습니까?”
“있다마다요. 연씨가 많은 것도 아니라서, 금방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연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시지요.”
구인회가 슬쩍 한 걸음 물러섰다.
주현식이 혀로 입술을 적신 뒤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합비 출신의 연가량과 그 가족들이 차이나타운에 들어온 건, 지금으로부터 64년 전인 1970년입니다. 연가량은 처음에 ‘만복래’라는 중화요리 집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4년 뒤에 ‘석경장’이라는 중화요리 집을 창업했지요.”
순간 연적하는 가슴이 벅찼다.
후손들이 아직까지 석경장을 잊지 않고 있다니!
그들이 자신의 후손이라는 것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 알 수 있었다.
“석경장이 이곳에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다른 곳으로 이주했습니까?”
“연가량과 그 가족들은 이십 년쯤 전에 한국으로 귀화를 하면서 차이나타운을 떠났습니다. 연못 연씨가 본래 한국인이라고 하더군요. 귀화를 하면서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말을 한 게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차이나타운에 손님이 줄어들자 인천 시내로 가게를 옮겼습니다.”
“아직도 요릿집을 하고 있습니까?”
“예, 지금은 연가량의 아들이 물려받아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딘지 가르쳐 주십쇼.”
연적하의 말에 주현식은 품 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건넸다.
“저도 주변에 물어물어 주소만 알아 두었습니다. 연가량이 귀화를 한 뒤로는 우리 화교 모임에 발을 끊어서요.”
“감사합니다.”
연적하는 종이를 받아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나저나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니…….
지금 자신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연적하에게 주소를 건넨 주현식이 기대 어린 얼굴로 슬쩍 운을 뗐다.
“모처럼 본토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환영의 자리를 마련해도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바빠서요.”
연적하가 조금의 여지도 없이 거절하자, 주현식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쯤 되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던 구인회가 슬며시 다시 나섰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연 선생님께서 시간이 없으시니 이해해 주십시오. 제가 출국하기 전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그제야 그늘졌던 주현식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럽시다. 나야 구 부장만 와 줘도 감사하지. 그럼 그렇게 알고 있으리다.”
이윽고 주현식은 연적하와 구인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 돌아갔다.
주현식이 사라진 직후, 구인회가 연적하에게 물었다.
“연 선생님, 지금 바로 석경장으로 가시겠습니까?”
“예.”
“쪽지를 주시면 제가 택시 기사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연적하는 흔쾌히 쪽지를 꺼내 구인회에게 넘겼다.
기사가 한자를 모를 수도 있으니 구인회에게 통역을 맡긴 것이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인천 시내로 이동했다.
***
인천시 주안동.
노을이 질 무렵, 택시 한 대가 신기시장 앞에서 멈춰 섰다.
곧이어 택시에서 두 남자가 내렸다.
차이나타운에서 석경장을 찾아온 연적하와 구인회다.
구인회가 신기시장 안내도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 안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가 보죠.”
한적하던 차이나타운과 달리 신기시장은 사람들로 미어 터질 것 같았다.
어떤 구간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어가자 사람들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구인회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권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지요?”
“번잡하지 않으니 좋네요.”
“…….”
예상 밖의 대답에 구인회는 슬쩍 연적하의 얼굴을 살폈다.
진심인지, 그냥 해 본 말인지 궁금해서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담담해서 도무지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색한 가운데 5분을 더 걸어갔을까?
석경장이라는 간판을 발견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멈춰 섰다.
연적하가 석경장의 간판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세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 산 아래 석경장을 세웠는데, 후손들이 시장통으로 진출할 줄이야!
묻어 두었던 남궁연과 딸, 손주들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연적하를 보던 구인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 선생님,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중화요리 집은 다른 가게들보다 조금 일찍 마감을 합니다.”
“아, 그럽시다.”
잡념을 떨친 연적하는 성큼성큼 가게로 걸어갔다.
구인회는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
중화요리 석경장.
연적하와 구인회가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을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 저녁 식사로 분주해야 할 때에 이렇게나 사람이 없다니!
연적하가 텅 빈 홀을 둘러볼 때, 구인회가 주방 쪽을 향해 한국어로 소리쳤다.
“계십니까?”
그러자 주방에서 중년 남자 하나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십쇼.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남자의 물음에 구인회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식사하실 거냐는데요?”
연적하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구인회는 얼른 남자와 눈을 맞췄다.
“예, 장사하는 거 맞죠?”
“당연하지요. 60년 전통의 중화요리 전문점입니다. 메뉴판 보시고 주문하시면 됩니다.”
연적하와 구인회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자, 남자가 직접 찻잔과 찻물을 내왔다.
분주한 그를 지켜보던 구인회가 슬쩍 물었다.
“사장님 혼자 운영하시는 겁니까?”
“아, 예. 원래 홀 서빙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만둬서요.”
“그러시구나. 60년 전통이라고 하셨는데 잘하는 요리가 뭡니까?”
“메뉴판에 있는 건 다 잘합니다.”
중년 사내는 요령이 없는지 메뉴판 타령만 했다.
애매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던 구인회가 연적하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연적하 역시 뭘 주문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대접만 받았지 메뉴를 고민해 본 적 없기에 그러는 것이다.
구인회가 손가락으로 홀 안에 세워져 있는 빛바랜 마라탕 광고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마라탕 됩니까?”
“그게, 음……. 됩니다. 원하신다면 해 드려야지요.”
어딘지 개운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해 준다니 구인회는 고민하지 않았다.
마라탕만큼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된 요리도 드문 까닭이다.
“연 선생님, 마라탕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연적하는 마라탕이 뭔지 모르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광고판만 봐서는 매운 탕 요리 같은데, 제법 맛이 있을 것 같았다.
“마라탕 이 인분으로 주십쇼. 그리고 혹시 술도 팝니까?”
메뉴판에 고량주라는 글자가 보여서 확인차 물은 것이었다.
“이과두주와 연태고량주가 있습니다.”
구인회가 다시 한번 연적하를 돌아보았다.
“연 선생님, 술 드시겠습니까?”
“나는 달달한 술이 아니면 안 먹습니다.”
“그렇다면 연태고량주를 한번 드셔 보시지요. 과일향이 나는데 달달합니다.”
“그러죠.”
연적하는 거절하지 않았다.
연태고량주가 뭔지 모르겠지만 달달하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연태고량주 한 병도 함께 주십쇼.”
“알겠습니다.”
잠시 후 중년 남자가 주방으로 사라지자 구인회가 나직이 말했다.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습니다만……. 분위기가 요리를 잘하는 것 같지 않아서요. 나중에 제대로 된 요릿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연적하는 가타부타 말없이 찻잔에 차를 따라 마셨다.
구인회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석경장은 가장 바쁠 시간에도 손님이 없었고, 요릿집 특유의 맛있는 냄새도 나지 않았다.
솔직히 후손이 하는 가게니 참고 있지, 그게 아니었으면 자신도 뒷담화에 참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