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22
1522회. 필멸자에게만 허락된 복
계약금 2억에 가보 6억을 더하면 현금이 자그마치 8억이다.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거금에 김미란은 정신이 아득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녀는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입꼬리가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는 김미란에게 연정운이 말했다.
“가보를 판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
“왜요?”
“돈이 만악의 뿌리인 거 몰라? 유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세상이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애들이 설마 그럴라고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여하튼 조심해서 나쁠 것 없잖아. 이 집에 우리만 사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사실 그는 구인회 부장과의 일을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구 부장이 그걸 원하기도 했지만, 처자식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결과적으로 먼 조카에게 가보를 팔아넘기는 형국이라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런 남편의 속도 모르고 김미란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았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당신도 당분간 술을 입에 댈 생각 하지 말아요. 술만 들어가면 입이 가벼워지니까.”
“어허, 사람을 뭐로 보고.”
“걱정이 돼서 그래요. 당신은 술만 입에 들어가면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니까.”
“알았어, 적하가 우리 집에서 나가기 전까지 안 마실게. 그럼 됐지?”
그렇게 연정운은 자존심 때문에 비밀을 만들고 금주 약속까지 했다.
그날 저녁.
모처럼 연정운 가족과 연적하가 한자리에서 저녁을 먹게 됐다.
연정운은 그 자리에서 홍콩 투자 회사와 있었던 일을 공개했다.
연적하는 빙그레 웃었고, 연서연은 좋아서 펄쩍 뛰었다.
“아빠, 그럼 나 천천히 일자리 알아봐도 되죠?”
“언제는 급하게 알아봤냐?”
“눈치가 보여서 중소기업이라도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중소기업이 어때서?”
“이왕이면 대기업이 나으니까 그러죠.”
“그래? 이왕이면 서울대가 나은데 너 서울대 못 갔잖아.”
“어쨌든 급하게 안 서두를게요.”
대학 이야기가 나오자 연서연은 얼른 말을 매듭지었다.
싱글벙글 웃던 김미란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우리 차 바꾸기로 했다.”
“뭐로요?”
“타이탄.”
타이탄은 키마 자동차에서 생산한 5세대 자율 주행 자동차다. 디자인은 한국 차답게 독창성이 부족했지만 튼튼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와아! 드디어 우리 집도 완전 자율 주행 자동차 타는 거예요? 대박!”
연서연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5세대 자율 주행 자동차는 인간보다 더 운전을 잘하기 때문이다.
5세대 자율 주행 자동차가 출시된 뒤로 재력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운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식사가 끝났다.
방으로 돌아간 연적하는 연정운 가족이 좋아한 것에 만족했다.
삼합회에 투자를 받는 게 조금 그렇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이제 구천현녀와 만나는 일만 남은 건가.’
그나마도 구천현녀경이 한집에 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구천현녀를 떠올리자 그동안 애써 눌러 두었던 온갖 감정이 밀려왔다.
심란한 마음에 엎치락뒤치락하던 연적하는 밤 1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모처럼 만에 꾼 꿈에서 연적하는 묘한 장면을 보았다.
연정운이 구인회 부장에게 잘 포장된 뭔가를 건네고 있었다.
크기와 생김새를 보니 어째 구천현녀경 같다?
분위기가 연정운이 구천현녀경을 구인회에게 팔아 치운 것 같았다.
‘저놈이! 나한테 팔라니까…….’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 연적하는 꿈속에서 이를 빡빡 갈았다.
딱 봐도 자신이 모르게 진행되는 거래였다.
알았다면 저런 거래가 성사되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화를 참지 못해 씩씩거리던 연적하는 눈을 번쩍 떴다.
역시나 꿈이었다.
그는 이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했다.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자 부지불식중에 육신통이 발현된 것이다.
‘하여간 연씨가 다 그렇지.’
연정운을 탓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보를 삼천만 원에 팔 생각을 했던 연정운이 아니던가.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구인회 부장이다.
이 시점에 그는 왜 필요도 없는 청동 거울을 구매한 것일까?
‘딱히 골동품을 수집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그랬다면 진즉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옛날 물건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뭐 상관없지.”
연정운이 구천현녀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가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구천현녀경이 제대로 된 도사들에게나 쓸모가 있지 일반인에게는 골동품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거늘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는 말해서 무엇할까.
그렇다고 연정운에게서 구천현녀경을 회수할 마음은 없다.
후손의 집에 기거하면서 도둑질을 하면 되겠나.
구천현녀경의 미래는 구천현녀경에 맡기는 게 나으리라.
‘연이 닿아 연씨들에게 온 것처럼 말이지.’
생각을 정리한 연적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적하는 유령처럼 유품을 모아 놓은 방 앞에 나타났다.
방문은 잠겨 있었지만 허공섭물로 안쪽 문고리를 돌리자 열렸다.
자물쇠를 사용하지 않는 게 이럴 때는 참 고마울 뿐이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닫았다.
팔려고 준비를 했는지 구천현녀경은 비단보로 잘 싸여 있었다.
구천현녀경에 다가간 연적하는 조심조심 비단을 걷어 냈다.
역시나 구천현녀경이다.
구천현녀경을 바라보는 연적하의 표정은 복잡했다.
남궁연은 자신에게 늙어 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득도를 선택했다.
구천현녀의 전생인 그녀에게 탈각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자신은 큰 상처를 입었다.
신선의 수명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장구하다.
신선의 수명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찰나다.
찰나지간의 인연에 연연할 신선은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애틋할지 몰라도 결국은 세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그다음은?
남궁연과 다른 남선의 만남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그런 감정을 추스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는 데 성공했는데, 구천현녀가 자신을 위해 소멸의 위험까지 불사했단다.
구천현녀는 왜 그랬을까?
네 번째 하늘에서 아득바득 돌아온 것은 구천현녀를 만나기 위해서다.
구천현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왜 천겁의 위험을 알면서 나를 도왔냐고.
당신에게 남궁연의 삶은 어떤 의미였느냐고.
‘그리고 나는…….’
거기까지 생각한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벌써 390년이나 전의 일이 아니냐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먼 과거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자신은 아니다.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탈각한 남궁연을 위해 가묘를 만들고, 그 옆에 새로 생긴 딸의 무덤을 볼 때의 먹먹함이, 지금도 가슴을 누르고 있다.
이윽고 그의 손이 구천현녀경에 닿았다.
순간 구천현녀경에서 ‘쩡!’ 하고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구천현녀경을 덮고 있던 녹 때가 빠르게 녹아내렸다.
거울처럼 미끈한 표면이 드러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수처럼 맑은 구천현녀경의 표면이 달빛에 반짝였다.
그때 문득 연적하의 입이 열렸다.
“구천현녀님.”
그의 부름에 응답하듯, 반짝이던 구천현녀경에 구름이 뭉글뭉글 일어났다.
구천현녀경을 가득 채운 구름은 이내 밖으로 흘러나왔다.
방바닥에 구름이 깔렸다.
곧이어 거짓말처럼 사방의 벽이 사라지고 광활한 운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느낌이다.
구름 저편에서 누군가 천천히 다가왔다.
남궁연을 쏙 빼닮은 구천현녀였다.
그런데 이전에 봤을 때와 달리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도력을 모두 사용했다더니 그래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천현녀님?”
“그래. 용케도 인연이 닿았구나.”
“저를 네 번째 하늘로 보내기 위해서 도력을 다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랬지.”
“천겁을 받았습니까?”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면 신선이라도 피할 수 없는 게 천겁이다.”
천겁을 받았다는 소리였다.
연적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게 도력의 고갈 때문이 아니었다니!
“왜요! 왜 그랬습니까!”
“내가 간절히 바랐으니까.”
“언제부터 내가 바라는 걸 그렇게 잘 들어줬다고요?”
“처음 너를 만난 날부터.”
그러자 울컥한 연적하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런데 왜 내 곁을 떠났습니까? 내가 바란 건 그게 아니었잖습니까!”
“남궁연이 너의 곁에서 늙어 죽기를 바랐느냐? 네 딸이 그랬던 것처럼?”
“…….”
연적하는 침묵했다.
그는 솔직히 남궁연이 득도를 선택한 것도, 딸이 늙어 죽은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궁연은 네게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어서 탈각을 선택했다. 네 딸 연지안이 득도를 거부한 것은……. 마신 메누아의 원신이 죽음을 원했기 때문이고.”
“나는……. 나는…….”
연적하는 할 말이 많았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르는 바가 아니다.
안다.
그건 남궁연이 득도를 하겠다며 했던 말이었다.
자신의 괴로움이 모두 자신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임도 알고 있다.
알지만 탈각한 남궁연을 마음에서 지워 버릴 수 없으니 괴로울 뿐이다.
남은 장구한 세월을 이런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니…….
그러다 그는 문득 자신이 뭔가 빼먹은 게 있음을 깨달았다.
고개를 번쩍 쳐든 연적하가 구천현녀에게 물었다.
“구천현녀님에게 남궁연의 삶은 뭐였습니까? 무수히 많은 전생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까?”
신선들은 인간을 구원한다는 이유로 인간의 삶 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달리 보면 신선들에게 전생은 유희와도 같았다.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하계를 들락거리는 신선들도 적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구천현녀가 답했다.
“다른 시간 속을 살아가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삶이었다.”
사실 그건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연적하를 돕기 위해 모든 도력을 쏟아부었고, 천겁의 위험마저 감수했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요? 나는 구천현녀님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그러자 구천현녀가 되물었다.
“너에게 남궁연은 어떤 존재냐?”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저의 전부입니다.”
순간 구천현녀의 얼굴에 얼핏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착각이라 생각될 정도로 찰나지간에 사라졌다.
연적하가 꼭 들어야겠다는 듯 다시 말했다.
“내 질문에도 답을 주십시오.”
“남궁연의 삶이 그렇듯 너 역시도 무엇보다 소중하다.”
“…….”
그토록 바라던 대답이었지만 연적하는 오히려 고개를 툭 떨구었다.
구천현녀에게 자신이 소중하면 뭐 하냐 말이다.
아니 오히려 남궁연의 기억을 가진 구천현녀를 보니 가슴만 더 답답했다.
그런 그의 귓가로 구천현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영원한 사랑은 필멸자에게만 허락된 복이다. 너는 그것을 원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