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24
1524회. 다 잘될 거야
연적하는 흥미로운 얼굴로 연정운과 김미란을 보았다.
조금 모자란 후손과 여우 같은 그의 처를 보고 있으려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한편 김미란은 연적하가 여유를 부리자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역시 수상해.’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당황하기 마련인데 그는 태평스러웠다.
휴대 전화의 동시통역 어플을 거치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이십 대의 아들과 딸을 둔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청년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그때 문득 그녀의 뇌리로 며칠 전 뉴스에서 본 돌연변이들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돌연변이라면 사다리 없이 이 층을 드나드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김미란이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시아버지 유품이 있는 방에서 소리가 나서 우리가 확인했었어요. 그런데 사람은 없고 창문만 활짝 열려 있더라고요. 누군지 몰라도 꽤나 급하게 달아난 것 같았어요. 그 방은 이 층이라 외부에서 드나들려면 사다리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마당에는 사다리가 없었어요.”
꽤 긴 이야기라 김미란은 휴대 전화의 통역을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끊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연적하가 대답하기 무섭게 김미란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뉴스에서 보니 돌연변이들은 이삼 층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오르더라고요?”
“아, 저도 봤습니다.”
“만약 적하 씨가 돌연변이라면 우리는 적하 씨를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이번에는 연정운도 아니라던 방금 전과 달리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다.
연적하가 구천현녀경에 관심을 보이다 못해 팔라고까지 했었기 때문이다.
‘구인회 부장이 그걸 구입해서 연적하에게 선물하는 것’과 ‘연적하가 구천현녀경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처의 말처럼 연적하가 돌연변이라면 모든 미스터리는 자연히 풀린다.
그리고 구인회 부장의 평소 태도로 볼 때 연적하가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쯧! 며칠만 참지. 어차피 구 부장이 선물해 주었을 텐데…….’
한편 남편이 무언으로 동조하자 김미란은 계속해서 연적하를 몰아붙였다.
“우리 집에도 준우가 사다 놓은 유전 변이 측정기(MDM)가 있어요. 우리 가족들 중에는 돌연변이가 한 사람도 없었어요. 적하 씨를 검사해 봐도 될까요? 강요는 아니니까 거절해도 괜찮아요.”
방으로 들어갔던 연서연도 궁금했던지 물을 마시는 척하며 다시 부엌으로 나왔다.
연적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연적하가 동의하자 김미란은 거실에서 휴대 전화보다 조금 큰 검은 패드를 들고 왔다.
“대성전자에서 만든 유전 변이 측정기(MDM)예요. 미국산보다 더 정확하다고 하더라고요.”
말과 함께 김미란이 연적하의 앞에 검은 패드를 내려놓았다.
스위치를 켰는지 검은색 화면에 하얀 원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연적하는 진과월과 임초연이 생각나 웃겼지만, 짐짓 덤덤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과학을 종교처럼 맹신하는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검은 패드에 떠오른 숫자는 0이었다.
예상 밖의 결과에 당황한 김미란이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영이네…….”
그런 그녀에게 연적하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중국에서는 돌연변이를 나라 밖으로 출국시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런가요? 괜히 의심해서 미안해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섭섭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행히 제가 돌연변이가 아니어서 의심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설사 제가 돌연변이라 해도 그게 도둑인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한국에도 돌연변이가 많이 있을 테니까요.”
그것 역시 맞는 말인지라 김미란은 쓰게 웃을 뿐 반박하지 못했다.
결과를 확인한 연서연은 어색한 분위기를 피해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갔다.
김미란은 유전 변이 측정기를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자아, 그럼 나는 다시 일하러 나가 볼까?”
말과 함께 은근슬쩍 자리를 떠나려는 연정운을 연적하가 불러세웠다.
“삼촌.”
“어?”
“저는 이제 그만 호텔로 가겠습니다.”
“왜? 더 있지 않고? 한국어 빨리 배우려면 우리 집에 있는 게 낫잖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요.”
“에이, 네가 그렇게 나가면 우리도 마음이 불편하지.”
“삼촌 부부 마음 편하라고 제가 계속 이 집에 머무르는 것도 이상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본래 연적하는 맺고 끊음이 명확한 사람이다.
그가 연정운의 집에 온 것은 단지 구천현녀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을 달성한 지금, 찜찜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연정운의 집에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칼같이 자르는 그의 태도에 연정운은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뻘의 조카인데도 선친에게 야단을 맞는 것처럼 마음이 후달렸다.
“그건, 그렇지. 네가 편할 대로 하거라. 지금 바로 나갈 생각이냐?”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연정운은 처와 딸에게도 알려 주려다가 괜히 분위기만 더 이상해질 것 같아 참았다.
“감사는 내가 해야지. 네 덕분에 구 부장과 좋은 계약을 하게 됐는데.”
통역 없이 중국어로 나누는 대화라 연정운은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감사를 표했다.
“구 부장과의 계약이 계속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그 이후를 준비하는 게 좋을 겁니다.”
자신과 삼합회가 멀어지면 투자도 자연히 정리될 터라 하는 소리였다.
“그래, 알겠다.”
연정운도 예상한 일이라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사실 2억의 계약금과 6억의 유품 판매 대금, 5년간의 월급만 해도 분에 넘는 행운이었다.
연적하는 평소처럼 한국어 교재를 들고 집을 나섰다.
***
오후 1시경.
마지막 강의가 끝났지만 연적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연정운에게 ‘집에서 나가겠다’고 했으니 당장 숙소부터 새로 구해야 했다.
‘학원 때문에라도 아직은 인천에 있는 게 낫겠지?’
인천에 계속 머무르고 싶지는 않았다.
도시도 작지만 무엇보다 연정운의 집에서 멀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야 태연한 척했지만 김미란의 말에 그는 상처를 입었다.
함께 살던 사람이 자신을 도둑으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
물론 그 방에 몰래 숨어들어 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신을 도둑질이나 할 사람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본래 녹림의 도적이었던 그는 자신이 도둑으로 의심받았다는 것을 영 떨쳐 내지 못했다.
휴대 전화로 숙박업소를 검색한 그는 학원에서 가까운 곳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로 문의하기에는 한국어 실력이 안 되니 직접 방문해 통역 어플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쉽게 구해졌다.
처음 찾아간 넥스트 호텔에 장기 투숙을 문의하자 매니저는 무려 15%나 할인해 주겠다고 했다.
연적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OK를 외쳤다.
심지어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다고 해서 환전을 하지도 않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방 키를 받은 연적하는 방을 한차례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인천을 돌아다녔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듬더듬 되지도 않는 한국어로 대화를 했다.
선조가 같아서 그런지 한국어는 시간이 갈수록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간단한 생활 용어는 굳이 통역 어플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도시가 석양에 물들자, 연적하는 택시를 불러 넥스트 호텔로 돌아갔다.
그가 호텔 라운지를 가로지를 때, 품에서 휴대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꺼내어 보니 구인회 부장이었다.
“네, 구 부장님.”
―연 선생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조금 전에 석경장 연 사장님에게 소식 들었습니다. 연 사장님 자택에서 나오셨다고요?
“혼자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잘하셨습니다. 숙소는 정하셨습니까? 아직 정하지 않으셨다면 제가 있는 르네상스 호텔에 방을 얻어 드리겠습니다.
“벌써 구했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약속이 없으시다면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건 어떻습니까? 내일 제가 홍콩으로 출장을 가면 한동안 못 뵐 것 같아서요.
상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연적하는 거절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승낙하자 구인회는 연적하에게 호텔 이름을 묻더니 금방 찾아왔다.
통화를 끝낸 지 10분 만의 일이었다.
호텔 라운지에서 만난 두 사람은 호텔 내에 있는 한식 전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사 제쳐 두고 서둘러 온 것치고 구인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낮에 구천현녀경을 건네받던 중 지난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다.
연적하가 그때 구천현녀경을 빼돌리지 않은 건,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이제 연적하가 따로 숙소를 얻었으니 구천현녀경을 가져가는 것은 시간문제.
그러나 그 물건은 내일 홍콩 홍련방 창고로 옮겨진다.
연적하는 싫든 좋든 삼합회와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구인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구인회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싱거운 사람이네.”
***
3년 후.
서울특별시 강남구.
중화요리 석경장 2호점.
이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 둘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럼 강남 2호점은 구 부장이 내준 겁니까?”
“어.”
“형님은 한국 영주권을 얻으신 거고요?”
“아니, 나도 귀화했어.”
한국은 인구 부족으로 귀화 요건을 완화해 3년만 한국에 거주해도 신청이 가능했다.
“영주권이 아니라요?”
“어, 나도 고구려 후예인데 굳이 중국 사람으로 살 이유가 없잖아. 석경장 창업자 연가량처럼 나도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고나 할까.”
“멋지십니다.”
“멋은 무슨. 중국은 공산당 통제가 심해서……. 나같이 자유로운 사람은 못 살아.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만 해도 허가증에, 뭐에……. 아휴! 지겹다, 지겨워.”
“형수님은 찾으셨고요?”
“그해에 태어났어도 이제 세 살일 텐데, 찾아지겠냐? 누님이 그랬잖아. 꽃으로 피어날 테니 나비처럼 찾아오라고. 아직 꽃 피려면 멀었다.”
“형수님이 꽃다운 나이가 돼야 하는 거군요?”
“그렇지.”
“부럽네요.”
“뭐가 부러워? 너도 귀여운 여자와 만나고 있잖아.”
“요즘 좀 좋지가 않습니다.”
“왜? 뭐가 문제야? 초월적인 권능에, 대기업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피아노도 잘 친다면서? 그런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 리 없잖아.”
“여자 친구 어머니가…… 집안을 많이 따지십니다.”
“그게 뭐? 네가 여자 친구 어머니와 사귀는 거 아니잖아.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멈추는 거 봤냐? 연 누님은 나 때문에 집안과 의절도 했다. 물론 나중에 장인어른이 사과하면서 흐지부지됐지만.”
“형수님과는 상황이 달라서요. 여자 친구가 정서적으로 어머니에게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아!”
“그럼 사고를 쳐. 애가 들어서면 반대 못 할걸?”
“그게…… 여자 친구와 아직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닙니다.”
“운명의 여자라며?”
“상대는 그걸 모릅니다. 지금은 그냥 썸을 타는 관계고요.”
“…….”
상대가 그걸 모른다는 말에 연적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어째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구천현녀도 환생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했는데…….’
애써 불안한 생각을 떨쳐 낸 연적하가 힘주어 말했다.
“다 잘될 거야.”
안 되면? 현세를 관장하는 신의 목을 졸라서라도 되게 만들 것이다.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