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5
155회. 천 채주, 아주 마음에 들어
장강일괴 양대호가 부채주의 목을 베자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알겠어. 유명교와 녹림 간에 더 이상의 충돌이 없기를 바라.”
말과 함께 연적하가 양대호에게 다가갔다.
씁쓰름한 표정으로 서 있던 양대호가 공손하게 읍을 해 보였다.
“무산소축에 총순찰님의 전언을……. 컥!”
그의 시선이 아래로 향한 순간, 연적하는 그의 가슴에 검을 박았다.
양대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왜…….”
“받은 대로 돌려주는 거야. 너도 뒤통수 맞는 기분 느껴 보라고.”
“쿨럭.”
양대호가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안 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독심귀랑 양소란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양대호와 연적하의 싸움을 보다가 합류하려 했는데 그럴 만한 틈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놀라기는 혈검과 옥불도 마찬가지였다.
연적하와 같은 고수가 웃는 얼굴로 기습을 할 줄이야!
이윽고 양소란과 혈검, 옥불이 병기를 손에 들고 바람처럼 강변으로 치달렸다.
상대가 천외천의 고수라 해도 이대로 눈 뜨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칠 장(약 21미터)여 거리를 남겼을까?
씩씩거리며 달려가던 세 사람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죽은 양대호의 몸에서 돌연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온 까닭이다.
십 척(약 3미터)이 넘어가는 키의 괴물을 보며 양소란이 중얼거렸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총호법! 저것이 말로만 듣던 그 괴물인가 보오.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오!”
혈검은 꽤나 놀랐던지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연적하와 괴물로 변한 양대호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두 괴물의 싸움을 보며 양소란은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으로서는 괴물로 변한 양대호가 적인지 아군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흑백쌍마처럼 서로에 대한 지극한 신뢰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지금 저 싸움에 뛰어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혈검과 옥불 또한 그 점이 신경 쓰였던지 합공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연적하와 양대호의 싸움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캉. 캉. 캉.
연적하는 검으로 쉴 새 없이 초열마인으로 변한 양대호를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마치 정으로 바위를 찍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캬아아아!”
양대호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연적하의 검에 수십 차례 맞아서 그런지 손놀림은 처음과 달리 둔했다.
연적하는 한 아름이나 되는 그의 손바닥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뛰어들어 구천구검 일 식 현녀강림을 펼쳤다.
콰직.
검이 가슴에 박히자 양대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아아악!”
다음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양대호의 등이 터져 나갔다.
검 끝으로 뻗어 나간 구천기가 가슴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양소란과 혈검, 옥불은 멍하니 서서 괴물이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양소란은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거야.’
십두마병의 최후가 저런 것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잠시 후 연적하가 엉거주춤 서 있는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들은 뭐야? 응? 설마 십두마병들이야?”
연적하는 가슴의 팔주령에서 묘한 기운이 솟아나자 인상을 찌푸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양소란이 혈검과 옥불에게 신호를 보냈다.
혈검과 옥불이 품자(品字) 형태로 연적하를 에워쌌다.
준비를 마친 양소란이 물었다.
“우리는 무산소축에서 온 사람들이다. 너는 왜 십두마병들을 죽였느냐?”
한편, 수적들이 물러가자 구천노도 심통과 남궁천 남매, 설차수 일행, 마부 이사는 뭍으로 올라왔다.
심통과 남궁연은 숨 돌릴 틈도 없이 세 사람과 대치하고 있는 연적하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저 셋이 십두마병이라면 연적하를 돕기 위해서다.
연적하가 억울한 얼굴로 답했다.
“총채주가 녹림에 있는 십두마병들을 정리해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시작한 일인데, 나는 사실 십두마병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어. 십두마병들이 나를 죽이려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한 거야.”
“…….”
양소란은 양대호가 연적하를 죽이려 한 걸 본지라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심통과 남궁연이 옥불과 혈검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순간 양소란의 눈가에 이채가 어렸다.
늙은이와 아가씨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십두마병을 대적하려 해서다.
“구천노도는 알겠는데 또 한 분은 누구실까?”
남궁연은 답하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양소란을 빤히 보기만 했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양소란이었다.
‘기분 나쁜 눈빛이야.’
마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십두마병이 된 뒤로 눈싸움에서 기가 꺾이기는 처음이다.
무공의 고하와는 별개로 가급적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눈이었다.
양소란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백두마군급인 연적하와 십두마병과 대등하게 싸웠다는 구천노도, 그리고 정체불명의 젊은 여고수까지.
‘오늘은 길(吉)보다 흉(凶)이 많겠군.’
백산의 복수를 위해 생명을 걸 수는 없다. 사실 그럴 만큼의 정이 깊지도 않았다. 그저 괜찮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뿐이다.
“연적하, 우리가 물러난다면 보내 줄 수 있느냐?”
양소란이 연적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웃으며 양대호를 죽인 놈이라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
연적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답했다.
“말했잖아. 십두마병이 나를 죽이려다가 도리어 죽은 거라고. 나는 딱 당한 만큼만 돌려준 거야. 당신들이 먼저 칼질을 하지 않으면 나도 안 해.”
“믿겠다.”
양소란이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었다.
정말 그를 믿어서라기보다는 싸움을 피하려고 먼저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머뭇거리던 혈검과 옥불도 결국 무기를 내렸다.
막 돌아서려던 양소란이 말했다.
“백산은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고 그를 죽인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연적하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이봐 할망구. 당신들이 죽인 수도사들은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사람들이었어? 어디서 호걸 흉내를 내고 있어. 자꾸 내 속 긁어서 좋을 일 없으니까, 곱게 보내 줄 때 가. 내가 지금 참고 있는 건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야. 뭘 알고 떠들어.”
양소란이 흠칫 놀란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가 십두마병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무슨 소리를 해도 통하지 않으리라.
결국 그녀는 소태 씹은 얼굴로 돌아섰다.
세 사람은 갑작스러운 등장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 갔다.
연적하 일행은 다시 창룡전으로 돌아갔다.
장강수채의 수적들과 장강수로연맹의 수적들이 우르르 몰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감히 입도 뻥긋 못 하고 연적하의 눈치만 살폈다.
만사 귀찮은 얼굴로 수적들을 둘러보던 연적하가 말했다.
“너희들이 배를 폭발시켜서 마차와 말을 잃었어. 가지고 다니던 행낭도. 행낭 속에 건량과 은자, 전표, 등등.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용서해 주십쇼!”
“모두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장강일괴가 그런 짓을 할 줄 몰랐습니다!”
“맞습니다. 몇 놈들이 저지른 잘못입니다! 저희는 몰랐습니다.”
수적들의 외치는 소리로 전각은 한 순간 난장판이 됐다.
장강수채의 신임 채주로 내정된 혈죽어옹 천수산이 급히 소란을 가라앉혔다.
“총순찰님, 이번 일은 저희 모두의 뜻이 아닙니다. 장강일괴와 몇 놈들이 꾸민 짓입니다. 속하가 신속히 조사해서 관계된 놈들은 죄다 쳐 죽이겠습니다.”
“그리고?”
“예?”
천수산이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용서를 구하고, 반역자들을 싹 죽이는 것 외에 또 뭐가 남았다고?
“말했잖아. 마차와 말, 행낭. 우리는 거덜 났다고. 녹림이 아니라 개방이라고 해도 될 정도야. 이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 당연히 배상해 드려야지요. 가지고 계시던 것들을 모두 원상 복구해 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기대해 볼게. 설마 장강일괴처럼 또 뒤통수 치는 건 아니겠지? 이번에도 그랬다가는 아주 장강의 수적들 씨를 말릴 줄 알아.”
“그,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속하가 책임지고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돈이 좀 많았어. 오봉산채에서 모은 돈을 죄다 가지고 나왔거든. 나는 한 삼천 냥쯤 돼. 심 노인은 얼마였지?”
연적하가 금액을 두 배로 부풀리자 심통도 머리를 굴렸다.
“저는 천……오백 냥 정도였습니다.”
‘헉! 저런 도둑놈!’
거의 빈털터리였던 심통의 뻔뻔한 거짓말에 연적하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지적할 수는 없으므로 모른 척 넘어갔다.
심통은 연적하가 노려보자 얼른 다른 사람을 끌어들였다.
“험, 험,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잃어버리셨나? 다들 적지 않은 돈을 들고 다니는 것 같던데.”
그러나 남궁천 남매와 설차수 일행은 정파의 협객들인지라 속이지 않았다. 정파의 협객이 수적들을 속인다는 건 자존심의 문제였으니까.
간이 작은 마부 이사는 본전에 백 냥을 덧붙였다.
천수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강수채의 창고를 털어 배상금을 지불했다.
“마차와 말은 인근 현에서 구입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불편하시더라도 구가촌에 모시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자고. 천 채주 일 처리하는 게 아주 마음에 드네. 이런 인재가 왜 이제 채주가 된 거야?”
연적하가 흡족한 얼굴로 천수산의 어깨를 다독였다.
물에 한 번 빠지고 재산을 두 배로 불려서 불쾌하던 기분은 어느새 잊었다.
천수산은 연적하 일행을 구가촌에 있는 화려한 객점으로 안내했다.
“이곳이 구룡객점입니다. 장강수로 연맹의 두목들이 애용하는 곳인데, 구가촌은 물론 인근 현에도 이만한 규모는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연적하는 깨끗하고 커다란 객점이 마음에 들었다.
구질구질한 수적들이 사용하는 곳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총순찰님 일행이 머무시는 동안 다른 손님을 일체 받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오봉산채라 생각하시고 편히 쉬십시오.”
천수산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연적하가 멀어져 가는 천수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친절하네. 객점 점소이를 보는 것 같아.”
“흐흐. 혈죽어옹이 친절하다고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공자님이 처음일 겁니다.”
“그를 알아?”
“누가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기만 해도 낚싯대로 때려 죽이는 놈입니다. 낚싯대에 피가 마를 날이 없어서 혈죽이라는 말까지 붙었지요.”
“저렇게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이?”
“공자님에게만 그러는 겁니다. 남궁 공자, 내 말이 틀렸소?”
“하하. 적하야 그건 노선배님의 말이 맞다. 정의맹에서 해마다 ‘올해의 사악한 마두 열 명’을 선정하는데, 최근 십 년 동안 늘 이름이 올라간 사람이다.”
“헛! 열 명의 마두에 들어갈 정도로 저 사람 무공이 높아요?”
그러자 진설하가 설명하듯 말했다.
“정의맹에서 선정한 ‘사악한 마두 열 명’은 무위가 뛰어난 자들이 아니에요.”
“그럼요?”
“살인을 가장 많이 한 자들이지요. 그래서 열 명의 마두에게는 척살령이 내려져 있기도 해요. 그러니까 올해 꼭 죽였으면 하는 열 명의 마두인 셈이죠.”
설차수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보탰다.
“그들의 목에는 포상금도 제법 많이 붙어 있습니다.”
“아!”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것만으로도 평소 녹림과 정의맹이 어떤 관계인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