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58
158회. 곡소리 나게 해 줄까?
칠상문의 문주 살천도 곡문상은 광서성 출신으로 한때 낭병(狼兵, 도적과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만든 부대)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다.
그의 절기인 아랑도법도 낭병 시절에 만난 이인(異人)에게 전수받았다고 한다.
낭병은 전투를 잘했지만 통제 수단이 마땅치 않아 군기가 문란했다. 심지어 백성들을 노략질하기도 해서 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곡문상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빼앗는 걸 당연시 여겼다.
칠상문 제자들도 그를 닮아 가 무한에서는 ‘이리 떼’로 불리고 있었다.
사해반점 이 층.
칠상문의 제자 열 명이 이 층 입구를 틀어막듯 지켰다.
곡문상은 태평상방 방주 연해평을 옆자리에 눌러 앉히고 태연스럽게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칠상문의 행사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윽고 그의 눈이 연적하 일행에서 멈췄다.
아름다운 여자들과 기품 있는 청장년들을 보니 왠지 찜찜하다.
왜냐고?
저런 여자들은 결코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되거나, 능력 있는 자들과 함께 움직인다.
‘누구지?’
곡문상이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한편 연해평은 곡문상과 강남삼괴가 두려워 감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대신 본심이 아니라는 듯 울 듯한 얼굴로 천검문 문주 유진원만 힐끔거렸다.
곡문상의 얼굴을 본 일괴 담인한이 물었다.
“곡 문주, 무슨 일이 있소?”
“아니외다. 그저 저들이 누군지 궁금해서.”
곡문상이 턱짓으로 연적하 일행을 가리켰다.
삼괴의 시선이 일제히 그의 턱 끝을 따라 움직였다.
“누군지 아시겠소?”
삼괴가 모두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괴 천계화가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기 드문 미녀들이로군요. 남자들의 기도도 범상치 않고. 칠파이문의 제자들이려나?”
그녀의 말에 삼괴 정춘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통 사람들은 아닌 것 같소. 칠파이문이 아니면 사대세가의 자제들 같은데.”
칠파이문에 사대세가의 이름이 나오자 곡문상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그가 정사지간이라 해도 칠파이문과 사대세가의 눈치는 보였던 것이다.
그가 살짝 긴장하자 일괴 담인한이 피식 웃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칠파이문이 뭐 대수라고 그러오? 정의맹이 힘을 쓰던 때라면 모를까. 지금 칠파이문은 이빨 빠진 호랑이외다.”
“하하하! 그런가요. 이 곡 모가 오늘 한 수 배웠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잔 따라 드리리다.”
곡문상이 삼괴의 잔에 소홍주를 가득 부은 뒤 자신의 잔을 채웠다.
“자자, 여러분. 오늘은 칠상문과 태평상방이 하나가 되는 날이니…….”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멀찍이서 듣고 있던 활인검 유진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실로 염치없는 말씀이시구려! 그게 태평상방의 방주님을 강제로 끌고 가서 할 소리요?”
그러나 곡문상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봄이 되니 파리가 극성이구먼. 오늘같이 좋은 날 어찌 건배하지 않을 수가…….”
공교롭게 바로 그 순간 계단으로 여덟 명의 청년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이 층 입구를 막고 있던 칠상문도들은 갑작스러운 천검문도들의 등장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천검문도들의 얼굴을 본 곡문상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한눈에 봐도 칠상문도들이 지키고 있는 일 층을 뚫고 올라온 모양새다.
그 말은 이미 칼부림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감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칠상문을 건드렸더냐!”
분노한 곡문상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층에 올라선 이철산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처럼 앞을 막아선 칠상문도들 사이로 얼핏 곡문상과 세 명의 노인들이 보였다.
‘저들이 삼괴인 모양이구나.’
그때 멀리서 ‘이 사범!’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원의 음성이었지만 미처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눈앞으로 곡문상이 성난 황소처럼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괴는 흥미로운 얼굴로 곡문상의 뒤를 따랐다.
곡문상과 삼괴가 나서자 칠상문도들이 좌우로 갈라져 길을 텄다.
곡문상이 이철산의 아래위를 훑으며 말했다.
“네가 새로 왔다는 무술 사범이냐?”
“그렇습니다.”
“감히 칠상문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냐?”
“그럴 리가요? 나는 단지 천검문 문주님의 부름을 받고 달려왔을 뿐입니다.”
산에서 내려온 이철산은 정중했다.
나름 녹림에서의 과거를 청산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네놈의 기개는 가상하다만 상대를 잘못 보았다. 내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용서할 수가 없구나.”
곡문상이 다짜고짜 도를 뽑아 휘둘렀다.
슈각.
긴장하고 있던 이철산은 황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하지만 가까이 있던 천검문도 하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도에 맞고 말았다.
“악!”
옆구리를 베인 천검문도가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칼질에 화들짝 놀란 천검문도들과 칠상문도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이 층 입구에서 곡문상과 이철산의 싸움이 벌어졌다.
챙챙챙챙-.
두 자루의 도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상대를 향해 몰아쳐 갔다.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유진원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허! 실로 놀라운 도법이로구나.”
곡문상의 도에 시퍼런 도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철산은 그런 곡문상의 도에 밀리지 않았다.
아니, 단지 밀리지 않는 게 아니다. 드문드문 섬전 같은 도기를 내뿜기도 했다.
이철산을 평범한 사범으로 생각하고 있던 유소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무한에서 곡문상과 맞상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곡문상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은 그의 무위가 뛰어나서였다.
그녀는 이철산이 그런 곡문상과 싸우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철산의 도기에 놀란 곡문상은 처음과 달리 신중하게 칼을 썼다.
그래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곡문상이 ‘어허!’ 하는 기합과 함께 도를 크게 휘두르고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일도에 사지 중 하나를 끊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그러기는 틀린 것 같다.
이런 식의 장기전은 자신에게 손해였다.
일문의 문주가 고작 무술 사범과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였다고 소문나면 그런 개망신도 없다.
힘들게 싸워 이겨도 수치고, 지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된다.
곡문상의 시선이 슬쩍 삼괴를 향했다.
그의 고심을 알아차린 일괴 담인한이 먼저 나섰다.
담인한은 양손에 건곤권(날이 달린 반월형 무기)을 착용하며 말했다.
“곡 문주, 그동안 우리를 잘 대접해 주셨으니 밥값이라도 하게 해 주시오.”
순간 곡문상이 반색을 했다.
삼괴 개개인의 무공은 자신보다 윗줄이었다.
칼을 섞어 보니 이철산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반 수쯤 아래.
삼괴가 나서면 못해도 십 초식 안에 그의 숨통이 끊어질 게 확실했다.
“하하하.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하지만 일문의 문주가 돼서 무술 사범과 어울리기도 그러니 부탁드리겠소이다.”
담일한이 건곤권을 착용하자, 천계화는 도를 뽑았고, 정춘산은 아미자를 손에 들었다.
그들이 삼괴 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개개인의 무공이 절정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함께 싸웠다.
그것이 단지 의리 때문인지, 혹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인지는 삼괴만 알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강남삼괴는 합공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비겁한 놈들!”
소리 치며 달려나가려는 유진원을 유소운이 붙잡았다.
지금까지 사람 한 번 베어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함께 있던 천검문의 제자 넷은 분루를 삼키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삼괴를 본 이철산이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노인 셋이 다가오니 기가 막혔다.
일문의 문주라는 사람이 하는 짓도 황당하지만, 삼괴도 그 못지않았다.
‘정사지간이라더니 그냥 사파로구나.’
저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녹림의 과거를 지우겠다고 버둥거리던 게 우습기만 하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겁에 질려 구경만 하는 천검문도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그들이 덤벼 봐야 시체만 늘어날 뿐이니까.
‘후!’
한숨을 길게 내쉬던 이철산은 어깨를 쭉 폈다.
남아 있는 오봉십걸들을 생각해서라도 비루하게 갈 수는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저러면 이제 개싸움 되는 건데.”
뚱한 얼굴로 보고 있던 연적하의 말에 구천노도 심통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으흐흐흐. 그래도 공자님의 아우는 늑대로 보입니다. 다른 것들이야 개라고 하면 개한테 미안할 정도지만요.”
설차수 일행과 남궁천 남매의 시선이 무술 사범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그가 곡문상과 싸울 때 보인 도법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연적하의 동생이라니?
진설하가 설차수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형, 저 사람이 오봉십걸 중 하나인가 봐요.”
“그러게 말이다. 칠상문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구나.”
진설하와 유근식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사람들이 오봉십걸을 모르지만 언젠가는 천하를 떨쳐 울릴 것이다. 연적하의 끝 모를 무위와 오봉십걸의 연대감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개싸움’이라는 말에 삼괴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일괴 담인한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좋지 않아.’
처음부터 은근히 경계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싸움에 끼어들 모양이다.
아까는 칠파이문을 무시했지만 솔직히 그들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싸움에서 이기기도 어렵지만, 승리하고 난 뒤에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한편 소리의 진원지를 살피던 이철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저 멀리 연적하와 심통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형님!”
이철산은 연적하를 향해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칠상문도들은 감히 그의 앞을 막지 못하고 엉거주춤 비켜났다.
연적하에게 다가간 이철산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연적하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야, 많이 컸다.”
“다 형님 덕분입니다. 채연이와 소백이가 형님이 오셨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 달려올 겁니다.”
“사람도 이곳에 있어?”
“예, 저와는 달리 무한의 상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월봉도 저보다 많이 받습니다.”
“쯧쯧! 옆구리 옷이 터졌네. 아까 칼에 맞았나 보다. 세상에서 눈먼 칼이 제일 무섭다니까.”
은근 화가 나 있던 연적하는 곡문상의 도법을 눈먼 칼이라고 낮춰 말했다.
불쾌한 얼굴로 지켜보던 곡문상이 삼괴와 함께 연적하 일행에게 다가갔다.
“노부는 무한 칠상문의 곡문상이라 하오. 당신들은 누구기에 함부로…….”
“늙은이. 딱 보니까 나랑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 곡소리 나게 해 줄까?”
곡문상이 기막힌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다짜고짜 늙은이 어쩌고 해 대니 돌아 버릴 지경이다.
그런데 같은 길이라니?
이놈도 설마 말 많고 탈 많은 낭병 출신인가?
‘같은 길’이라는 말에 꽂힌 곡문상이 노기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입이 거친 놈이로구나. 그런데 같은 길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