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69
169회. 돈이 막 굴러 들어와요
청산방의 지옥도 종다소는 사십이 넘도록 도를 수련한 남자였다.
그래서 마차 부수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객잔의 불은 해시 초(오후 9시)에 꺼졌고, 그 뒤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는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야 움직였다.
마차는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음에도 객잔 앞에 방치되어 있었다.
마차 옆에 선 종다소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멍청한 놈들. 방주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걸 알면서 왜 안 지키는 거지?’
방파 간의 싸움은 단지 칼부림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청산방의 방주 고검월 녹사조처럼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를 괴롭힐 줄 알아야 한다.
흑운방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마차를 방치한 대가로 결국 무너질 것이다.
‘풍우성, 잘 가라.’
그는 소리 없이 마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주위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는 누가 볼세라 서둘러 망치로 지붕을 내리찍었다.
콰지직.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어쩌면 깊은 밤이라 더 크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깜짝 놀란 종다소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
객잔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고,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씨벌. 십 년 감수했네.’
발밑을 내려다보니 두 뼘쯤 되는 균열이 나 있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녹림 총순찰의 눈에도 띌 것이 틀림없다.
‘충분해. 가자.’
막 달아나려던 종다소는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왠지 관자놀이가 간질거리는 것 같다.
‘뭐지?’
옆머리를 긁적이던 종다소의 시선이 무심코 객잔 일 층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헉!’
두 남녀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한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종다소는 못 본 척하고 옆으로 뛰어내렸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펄떡였다.
분명히 어제 나루터에서 잠시 마주쳤던 정의맹의 사람들이었다.
‘녹림의 마차니 모른 척해 주겠지?’
남자의 불쾌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금은 정의맹과 녹림의 적대적인 관계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연적하가 기막힌 얼굴로 중얼거렸다.
“누님, 저 사람 지금 마차 지붕에서 뛰어내린 거 맞죠?”
“응.”
“청산방 사람 아니에요?”
“맞아. 지옥도 종다소야.”
“그는 왜 우리 마차에 올라갔던 걸까요? 뭐 부서지는 소리가 나던데.”
“흑운방이 망하는 걸 보고 싶었나 봐.”
“아! 우리 마차를 부숴서 흑운방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건가요?”
“그래. 강호란 모략과 술수가 난무하는 곳이야. 눈앞의 결과만 보고 움직이면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지.”
“기가 막히네요.”
“그나저나 이제 두 개 방파의 운명이 네 손에 결정나게 생겼구나. 어떻게 할 생각이니?”
“누님은 어느 방파가 더 괜찮은 것 같아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유익한 방파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둘 다 하는 짓이 비슷했다.
흑운방은 지나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고, 청산방은 죄를 뒤집어씌우려 수작을 부렸다.
“어려운 질문이구나.”
천하의 화용독심도 고개를 저을 만큼 두 방파는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한 시진(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 남궁연이 침상에 올라가 누웠을 때다.
인기척에 깼는지 진설하가 물었다.
“으음, 아직 안 주무셨어요?”
“잠깐 물 좀 마시고 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내일은…….”
뭐라고 중얼거리던 진설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남궁연은 숨죽이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만 보면 괜히 죄지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내일은 연적하가 은월을 거절한 것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자리에 누웠음에도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자신이 왜 도둑고양이처럼 밖을 들락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나가는 건지, 그를 보기 위해 나가는 건지…….’
요즘은 거의 매일 밤 그와 마주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아. 나 뭐하고 있지?’
유명교에 대한 복수만 생각해야 하는데 자꾸만 마음이 흔들린다.
처음 정주를 떠날 때만 해도 유명교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유명교보다는 그에게 더 신경이 쓰인다.
돌이켜 보면 은월과 함께 있는 그를 보던 순간이 절정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은월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때의 후회와 번민이 자신의 내부에서 이상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에 대한 걱정인지, 그에 대한 관심인지는 확실치 않다.
중요한 건 자꾸만 그가 눈에 밟힌다는 사실이다.
남궁연이 뒤척거리고 있을 때, 연적하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끙! 공자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왜?”
“나갔다 들어온 뒤로 못 주무시는 것 같아서요.”
“별거 아니야. 심 노인이야말로 왜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있어?”
“흐흐흐. 공자님께서 그렇게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시는데 잠이 올 리가 있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연적하는 혼자 살아온 시간이 많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 모르십니까? ‘반찬단지에 고양이가 부지런히 드나들듯 한다’는 뜻입니다.”
순간 연적하는 뜨끔했다.
그러나 이내 화제를 돌렸다.
“험, 그건 내가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덕분에 청산방 놈들이 못된 짓 하는 것도 봤거든.”
“그놈들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조금 전에 종다소가 마차 지붕을 부수고 달아나는 걸 봤어. 흑운방에 덮어씌우려고 그런 거겠지.”
“허! 그 병신 같은 놈이 결국 사달을 냈군요. 보셨으면 그 자리에서 잡아 족치지 그러셨습니까?”
“누군지 뻔히 아는데 뭘 그렇게 서둘러.”
“용케도 그런 장면을 보셨네요? 식당에 계속 계셨던 모양입니다?”
“어? 어. 그냥, 적적해서 술 한잔 했어. 저녁때 남긴 여아홍 생각이 나서.”
“공자님.”
“어?”
“여아홍이 어떤 술인지 아십니까?”
“붉은 빛이 도는 달착지근한 술이지. 그건 왜?”
“역시 모르시는군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 술은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기념으로 담그는 술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여아홍이지요. 나중에 남궁 소저에게 ‘남궁세가에 묻어 둔 여아홍 한 단지만 달라’고 부탁해 보십시오. 틀림 없이 굉장한 걸 내 줄 겁니다.”
물론 그렇게 묻어 둔 여아홍은 딸을 시집보낼 때 꺼내서 사용한다.
구천노도 심통은 일부러 뒷말을 생략했다.
“정말이야? 몰랐네. 그런데 남궁세가가 불에 탔다는데 괜찮을까?”
“땅속 깊이 묻어 두었을 테니 멀쩡할 겁니다. 객잔에서 파는 것들과 수준이 다르니 기억해 두셨다가 꼭 말씀해 보십시오.”
“어, 고마워.”
연적하는 언제고 적당한 날에 그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날이 밝았다.
흑운방도들은 마차에 말을 연결할 때까지도 지붕이 깨진 걸 알지 못했다. 그저 어제 밤늦게 수리를 끝냈으니 다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처음 이상을 발견한 사람은 흑운방 방주 괴검 풍우성이다.
숙소인 이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지붕 형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대경실색한 그는 한달음에 뛰어 내려가 마차를 점검했다.
역시나 지붕 한가운데가 움푹 꺼져 있고, 금 간 틈새로 내부가 엿보였다.
“춘상공! 너 이놈! 어제 수리를 끝냈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
깜짝 놀란 춘상공이 마차 위로 올라갔다.
“헉! 이게 무슨? 아닙니다! 어제 제가 분명히 잘 수리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건 뭐냐고!”
“…….”
춘상공이 대답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을 때다.
느긋하게 밖으로 나온 심통이 마차 위를 올려다 보았다.
“거기 두 놈. 아침부터 남의 마차에 올라가 무슨 호들갑이야?”
공포에 질려 있는 풍우성을 대신해 춘상공이 더듬더듬 답했다.
“어, 어르신, 분명히 어제 수리를 끝냈는데……. 아침에 보니 깨져 있습니다.”
“누구 짓인지 알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마라.”
그제야 풍우성과 춘상공은 죽다가 살아난 얼굴로 급히 내려왔다.
“어르신, 누가 감히 마차를 부수었는지 알려 주십시오. 저희가 가서…….”
심통이 풍우성의 말을 끊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키려고 했다. 너, 청산방의 방주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예, 이곳에서 멀지 않은 신도산장에 있습니다.”
“그에게 가서 우리 총순찰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거라. ‘청산방 방주는 직접 종다소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종다소 그놈이 한 짓입니까?”
“그렇다. 지난밤 그자가 마차 지붕 위에 있는 것을 총순찰님이 직접 보셨다. 필히 두 놈 다 목을 깨끗하게 씻고 오라 해라.”
풍우성이 희희낙락한 얼굴로 답했다.
“예,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상공아.”
“예.”
“네가 지금 신도산장으로 가 봐야겠다. 어르신의 말씀을 한 자도 빼지 말고 그놈들에게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춘상공은 씩씩하게 답한 뒤에 바람처럼 달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
연적하 일행이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춘상공이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
청산방 방주 고검월 녹사조와 종다소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오체투지를 했다.
“총순찰님! 용서해 주십시오! 욕심에 눈이 멀어 죽을죄를 저질렀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두 사람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찍어 댔다.
연적하의 옆쪽에 시립하듯 서 있던 흑운방주 풍우성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놈들! 죽으려면 그냥 칼을 물고 엎어지든지 하지. 왜 총순찰님의 마차에 해코지를 했느냐! 그러고도 살기를 바란 것은 아니겠지!”
“크흐흑! 총순찰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으허헝! 살려 주십시오!”
녹사조와 종다소는 연적하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대성통곡부터 했다.
연적하가 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무림인들치고 이렇게 착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잘못을 발뺌할 줄 알았는데 죄를 자복(自服)하고 울부짖다니!
‘아니 이렇게 마음 약한 사람들이 왜 칼부림을 하고 다니지?’
세상은 아직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투성이다.
울음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 되자 연적하는 한마디 했다.
“조용.”
“…….”
순간 부모상 치르듯 울부짖던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흑운방은 내 마차를 부수고 삼천 냥을 냈다. 너희는 어떻게 할 테냐?”
녹사조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슬며시 쳐들었다.
가만 보니 저 젊은 마두가 원하는 건 목숨이 아니라 돈인 모양이다.
“저는 사…….”
녹사조는 말하다 말고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흑운방보다 천 냥을 더 불렀는데 그의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째 탐탁지 않은 얼굴이다.
“오, 오천 냥을 드리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망치질 한 번에 오천 냥이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지붕 수리는 금방 끝났다.
목수들이 나무 판자 몇 장을 들고 와 뚝딱거리니 반 시진(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마차에 오르기 전, 연적하가 남궁천에게 말했다.
“형님, 이 마차가 복덩어리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돈이 막 굴러 들어와요.”
청운검 남궁천이 부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죄지은 자들이 알아서 바치는 것이니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못하리라. 명가에서 자란 그로서는 신세계를 본 느낌이었다.